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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네오는 감정

임동민&최형록 듀오 리사이틀

by 유진


임동민 vn 최형록 pf


JANACEK: SONATA FOR VIOLIN AND PIANO, JW VII/7

본론부터 말하자면, 그 날의 곡들 중 가장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듣기 전에 첫 느낌을 회상해보자. 내가 좋아하는 소리, 아니, 내가 '좋다'고 느끼기도 전에, 마음이 쿵 내려앉는 소리가 있다. 일순간에 시작되는 명확하고 선명한 하나의 선, 너무 빠르지도, 지체되지도 않게 '짙게' 내려앉아 마음을 꾹 눌러주는 소리.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서두는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또, 내가 예습했던 녹음 버전보다 훨씬 더 감정적이었다. 어느 부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순간이 다가오면서 눈시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날은 정말 그랬다.




I. Con moto

밀도감 있는 선이 지체 없이 아래로 쭉 뻗어 내려가다 문을 열어버린다. 순식간에 물결처럼 밀려오는 소리들. 피아노가 밑을 깔아주는 듯, 울렁이는 듯, 격랑이 이는 듯한 흐름을 보인다. 그 위로 파도를 가르며 나타나는 현의 소리. 부유감이 느껴진다. 찰나의 머뭄 후 또 한 번의 그 선. 다시 요동치고, 그리고 그것을 빗겨가며 날아오르는 소리. 출렁이는 물결, 감히 어디에 닿으려 하는걸까. 그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며 아득한 선율이 이어진다.

잠깐의 침묵 후 두 소리가 다시 마주한다. 그러다가도 대립하는데. 매몰찬 짧은 대화들이 울려 퍼진다. "정말?" 그리 하겠다고 물어오는 격동의 소리. 바이올린은 비수를 날려버리며 처절하게 울어댄다. 매섭고 아프게. "너는 버텨낼 수 있는가?" 마주하는 듯하면서도 점점 거칠어지는 피아노. 얇게 울리는 바이올린의 이야기와 대답하는 피아노의 소리가 마구 교차한다. 가볍게 울리는 현과 둔탁한 건반 소리가 가라앉으며 조용해진다.


II. Ballada

이제 싸움이 끝난 듯, 동시에 갈라져 두 갈래로 피어낸다. 하나는 아래로, 하나는 위로 휘날리며 소리를 만든다. 엮이려다, 엮이지 않는 듯한 그 흐름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템포로 시작된 이후 끊임없이 이어진다. 종결 없이 아주 작은 소리로, 부드럽게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예고 없이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다시 사라질 듯 하다가... 피아노는 바이올린이 피어날 수 있도록 계단을 만들어 주고, 바이올린은 점점 더 높게 날아오른다.

점점 더 강하게, 높이 솟아 오르려는 바이올린. 그런데 떠나지 않고 그 곁에 머물며 시선을 맞춘다. 끝까지 이어지는 호흡, 현과 건반은 발을 맞추고 시선을 떼지 않으며 템포를 맞춘다. 또 한 번의 계단. 이번엔 신중하게, 분명히 짚어가며 올라온다. 잠깐의 흔들림 후, 동시에 터뜨린다. 뻗어 오르는 현의 소리, 밑에서 깊이 있게 받쳐주는 피아노. 날아오른 것이 높게, 아득하게 사라지는 그 순간을 바라보는. 이제 닿을 수 없이 멀리 사라진다.



III. Allegretto

또 다른 이야기. 피아노와 현이 대립하며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고 싸운다. 피아노가 달려가면 바이올린은 위아래로 찔러댄다. 짧은 순간에 피아노가 소리치면, 바이올린도 이에 질세라 소리친다. 세 번의 갈등. 현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외침을 피아노는 그저 듣고 있다. '직선'으로 바로 뻗지 않는 소리. 아주 잠깐의 머뭄으로 간절함을 표현한다. 바로 뻗지 않았기에 처연함이 더해진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짧게 대답하며 하나는 달리고, 하나는 찌른다. 타협의 여지가 없는 대립이 이어진다. 또 한 번의 엇갈림 속 끝을 향해 달려간다.



IV. Adagio

여유를 가지는 피아노와 달리 바이올린이 갈수록 점점 짧고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피아노의 선율이 달래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점점 더 강하게 신경질을 부리며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가 이내 '선명'하게 흐름에 맞춰 타오르는 소리. 이젠 괜찮을까? 여전히다. 피아노의 호흡을 따르면서도, 다시 참을 수 없는 신경질이 치고 들어온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자제된 톤으로, 속도는 여전히 빠르다. 피아노는 바이올린을 감싸며 흐름을 잡아 당기려 한다. 바이올린은 고함을 지르며 안 된다고 외치지만, 피아노는 그 소리에 맞먹으며 흐름을 잡으려 한다. 계속해서 발버둥치는 두 사람. 결국 바이올린은 조금씩 가라앉으며 차분해지고, 이제는 피아노와 호흡하며 내려앉는다. 조금씩, 천천히, 고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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