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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과 아이, 드보르작 사이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 '우리 동네 음악회' (객석의 시선에서)

by 유진

보고!(누구한테?)

퇴근하고! 우리 동네(아주 남의동네) 음악회 다녀왔다! 정말 클래식을 좋아해 버린 탓에 이렇게 서초구쪽을 자주 오게 된다. 이번엔 관악이었다. 진짜 가본 데만 가고, 어딘가 가도 목적성이 없으면 집 밖을 나오지 않는 나에게 클래식은 정말 액티브한 취미다. (연주 보러 천안, 대전까지는 갔었다. 얼른 다른 동네에서도 공연하셨으면 좋겠다. 제가 따라갑니다 :))) ) 사람마다 각기 다른 여행 목적이 있지만, 나는 주로 친구가 가자고 할 때 여행을 떠난다. (여행 자체는 친구와 함께하는 재밌는 행위로 취급한다) 뭐 가면 일단 재밌지 않겠는가? 하는 심보가 보통이다. 내가 먼저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잘하지 않는다. 성향자체가 J이기 때문에 여행을 결정하는 순간부터 사실 또 다른 과업이 새로 발생해서 좀 피곤하다. (여행 계획을 촘촘히 짜야한다!!!)

일정이 닥친 그 순간에 나는 대체로 가고 싶은 곳이 없기 때문에 들릴만한 스폿을 반드시 알아놔야 한다. (내 관심사가 아니면 정말 다 괜찮기 때문에..) 그래서 여행은 내게 새로운 경험도 주지만,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사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난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그 특유의 '새로운 감각'을 얻을 수 있는 취미를 이미 가지고 있다. 남들이 들으면 에고. 그게 취미라고? 할만한 취미만 골라서 했다. 이틀 테면 팝페라 듣기. 중국어. 대본 쓰기. 지금은 클래식.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나 홀로 몰입해서 꽃을 피워내서야 만 알 수 있는 즐거움을 끼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기 보단, 현재 내가 가장 몰입하고 있는 것에 더 깊이 파고들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 그렇기에 나는 28일에도 여행을 간 셈이다. 거리는 뭐 여행지라고 따지기엔 가깝지만 공연이 아니었다면 근 몇 년간 방문하지 않을 것 같은 새로운 동네에 발을 들였다. (일단 신림선을 처음 다 봤다. 얘도 장난감 기차네)

멀다 멀어~~

공연을 보다가 배가 고프면 큰일이기 때문에 편의점에서 아이스티를 마시면서 공연 예습을.. (안 했다) 사실 공연 예습 자체를 철저히 하는 건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의 공연 때뿐이고 나머지는 거의 직전에 몰아서 듣거나 공연 전에 쫙 한 번에 셋 리스트를 돌리는 편이다. (이제 처음 듣는 곡이어도 너무 연주를 못하거나, 무작정 잔잔한거 아닌 이상 잠들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클래식을 많이 경험하고, 명곡에 자꾸 노출되어 보면 귀가 살짝 트인다. 그냥 멍멍.. 했던 소리가 입체적으로 귓가에 박혀온다. 약간 연식이 오래돼서 음질이 안 좋은 스피커가 갑자기 중저가 스피커로 교체되어, 실제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색이 약간 더 구체적으로 들리기 시작한 느낌? 바로 그렇다. 그래서 이제 어떤 곡을 들어도 마냥 멀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음. 좋다.



그래도 예습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날의 레퍼토리는 다음과 같다.


1. 요한 슈트라우스 2세 - '봄의 소리' 왈츠

딱 들으면! 누가 들어도 어디서 들어본 기분이 드는 곡! 난 클래식을 좋아하고 있다곤 말하지만 대중적인 건 아직 많이 안들어봤다. (그 유명한 불새..도 아직 안들어봤다) 철저히 공연 레파토리 위주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 레파토리가 (!!!!) 보통이 아니었다. (라흐마니노프 이런 사람만 알다가 갑자기 이자이 무반주 소나타 전곡 연주를 겪어냈다!!!) 진보적인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덕에 이런 봄의 소리 같은 곡은 만나면 반갑기도 하다. 이지리스닝의 표본아니던가? 평화롭기도 하고 이런 곡이야 말로 실연을 통해서 만나면 정말 마음이 둥둥 가벼워진다. 7분이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현장에 가면 너무나도 찰나와 같은 시간이다.


2. 스메타나 - '나의 조국' 중 몰다우

스메타나! 랑데뷰 페스티벌에서 연주가님이 함께했던 삼중주에서 처음 들었던 작곡가다. 여기서 또 만나게 되다니. 내가 어디선가 겪어봤던 사람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만나면 아주 반갑다. 그때 친해진 덕에 이렇게 또 반가워 하며 곡과 친해질 준비를 쉽게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또 딱 들어보면 서서히 휘몰아치며 곡의 깃발을 휘두르는 선율 속에 푹 빠지게 된다. 1분 26초, 2분 7초 쯤을 들어보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될 것 이다.


3. 드보르자크 - 교향곡 제8번 1,3,4 악장

이 곡도 3악장을 들으면, k민족이라면 익숙할 것이다. 뭔가 어디 영화나 드라마 배경음악으로 깔릴 법한 bgm으로 들어본 이상한 기분이 들것이다. (일단 난 그랬다) 드보르작 뭔가 아직 내게는 먼 이름이지만, 안다. 그의 곡이 얼마나 훌륭한지. 일전에 인천시향에서 드보르작 교향곡 9번을 들었었는데, 8번은 처음이었다. 9번에서는 내가 아주 예전 부터 좋아했던 going home 이란 곡의 원작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었다. 언젠가 이 작곡가와도 친해지겠지? 기대가 되는 밤이다.


앙코르 때 찍은 사진


해당 공연은 네이버 예약으로 신청한 사람이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음악회였다. 연령대도 클래식 마니아들이 주로 포진되어 있다기보다는 정말 동네 음악 축제를 보러 오듯 다양한 연령대가 많았다. 가족 단위부터 청년, 중년 그리고 노년까지. 객석의 분위기 자체도 좋았다. 악장과 악장 사이에도 박수는 없었고,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에서 충분히 악기의 소리를 감상할 수 있었다.

악보위원님의 설명은 아주 젠틀했다..

이날도 나의 애기운(?)은 기가 막혔다. 이상할 정도로 내 앞 좌석에는 애기들이 꼭 있었다. 이번에는 대충 4명 정도의 아기들이 군데군데 부모님과 함께 앉아 있었다. 관악아트홀이 음향을 충분히 담아내는 공간이라서 아이들이 움직이고 약간 난리난 제스처들이 좀 보였지만 이미 이전의 공연들을 통해서 성장한 나로서는 그 정도의 액션은 그냥 괜찮았다. (사탕만 아니면 된다) 그리고 귀엽기도 하다. 아이들과 함께 클래식을 즐기고 싶은 부모의 신난 표정도 귀여웠고, 답답해 미치겠지만 얌전히 앉아 있기도,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따라서 힘껏 고개를 까닥이며 참여하는 아이도, 아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무대를 응시하는 뒷모습도. 그런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에도 묵묵히 또 즐겁게 무대를 감상하는 내 옆자리 노부부도. 자리를 비켜주면서 친절하게 몸을 일으켜 세워주던 분도. 티켓을 나눠주시면서 가장 앞자리로 드리고 싶었다면서 기분 좋은 한마디를 건네주시던 직원분도. 다 좋았다. 지휘자가 입장하고 들어갈 때도 우레와 같은 박수를 충분히 보냈던 모든 순간들이 기억에 남는다. 이날의 관객은 모두 어른들이었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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