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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리 Jun 11. 2022

누군가의 '온전한 나 편'이 된다는 것

내가 가장 잘하는 단 한 가지

‘계춘할망’(2016)이란 영화가 있다. 잃어버린 손녀 혜지를 12년 만에 기적적으로 찾은 해녀 계춘의 이야기다. 배우 윤여정이 출연한다. 크게 흥행은 못했지만 나는 눈물 쏙 빼가며 봤다. 왜 그런 영화 있잖아.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했는데 주인공의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뜨끈한 기운이 올라오는 영화.


혹여 혜지를 다시 잃을까, 계춘의 사랑은 묵묵하다. 마을 사람들이 혜지의 행동을 두고 수군대도 교복 입은 혜지가 담배를 피워도 잔소리 한 번 없다. 그저 품는다. 그 힘은 생각보다 세다. 영화는, 험난하게 살아온 탓에 독하고 불안한 기운으로 가득했던 혜지가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그 힘을 증명한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이 영화가 내내 가슴에 남았던 건 계춘의 이 대사 때문이었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온전한 나 편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여.”


온전한 나 편 하나.

그걸 만드는 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는 게 인생이구나. 오래도록 곱씹었다.


영화 '계춘할망'


좋은 엄마란 체력이 좋은 엄마다.


지난 9개월 동안 온몸으로 깨달았다. 체력이 영 꽝인 나는 아이 옆에 누워있기 일쑤다. ‘몸으로 놀아주라’는 말을 지겹도록 듣지만 삭신이 쑤신다. 말을 많이 걸어줘야 한다는데 아기에게 홀로 입을 털어봐라. 10분이면 너덜너덜해진다. “사과는 빨갛지? 빨개... 사과는 빨갛고...”에서 더 나아가는 게 이렇게 힘들 일인가. 이유식 만드는 일은 거의 포기 단계다. 책이라도 많이 읽어주면 좋을 텐데, 아기 책은 왜 이렇게 재미가 없는 건지. 물어뜯는 책을 뺏는 일도 지친다. 영어책? 미안해요, 멀리 안 나갑니다.


끝없는 죄책감으로 이끄는 인별그램을 봐서였을까. 어느 날은 밑도 끝도 없는 좌절감에 빠져들고 말았다. 밥 먹이고 똥 치우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 기절 직전인 나는 대체 어떤 엄마란 말인가. 아이에게 무얼 해주고 있느냐고. 괜히 눈물까지 차오르려는데 맞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 떠올랐다. 나는 아기가 넘어지면 가장 빠르게 달려가 꽉 안아주는 엄마였다. 그치, 나 그거 잘해. 잘한다고!


그거라도 잘 하자는 결심이 서자 실행에 들어갔다. 애가 살짝궁 넘어져 울면 바로 달려가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기저귀가 축축해 울면 뛰어가 “엄마 왔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꼭 안아줬다. 얼마 후 부작용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거.짓.울.음. 살짝 넘어져도 괜히 내 눈치 보며 ‘이이잉’, 조금만 불편해도 ‘에에에에엥.’ 아이는 넘어져도 안아주지 않는 아빠 대신 나를 찾고, 내가 갈 때까지 누워서 징징대기 시작했다. 이 요물아.


하루는 목욕을 시키고 나왔는데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아무리 달래도 듣지를 않았다. 그런데 남편이 다 큰 애를 혼내듯 애를 혼내더니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아닌가. 아이는 한껏 울더니 금세 방실방실 웃었다. 나는 배신감에 사로잡혔다. 뭐냐, 너. 뭐냐고!


고집이 점점 세지는 녀석을 어째야 하는 건가. 오랜만에 육아서를 찾아봤다. 과연, 남편이 맞았다. 무조건 안아주는 대신 단호하게 말하고 내버려 두는 일도 때로는 필요하다는 말이 나와 있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게 그거 하나였는데, 그거 딱 하나였는데! 하지 말라뇨. 전 그저 똥이나 잘 닦아주는 걸로 위안 삼으란 말씀이신가요. 하긴 똥을 깨끗하게 닦아주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나는 다시 한 번 좌절했다.




어째야 하나. 고민할 새도 없이 매운맛 코스가 찾아왔다. 성장통인지 아이가 새벽마다 깨서 서럽게 울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우리 부부의 꼬라지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좀비물 서사의 시작은 분명히 육아였을 거다.


그러다 지난 새벽. 자지러지게 울다가 내 얼굴을 보더니 생글방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넘어져 힘들 때 “괜찮아, 벌떡 일어나”라는 말보다는 그저 꼭 안아주는 사람이 더 좋았었지. 맞아, 그랬었어.


그러니 울면 그냥 안아주자. 울 때마다 달려가 꽉 안아주는 것 말고도 아이와 애착을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은 무지하게 많다고들 하겠지만 그냥, 하자. 내가 가장 잘하는 단 한 가지를.


덜 씩씩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응석받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세상에는 ‘온전한 나 편’이 있어- 아이의 마음속에 그 믿음이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아가, 네가 넘어지면 옆에는 내가 있어.

언제까지나. 온전한 너 편으로.

.

.

.

그래도 오늘 밤엔 자자. 좀 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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