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계약직. 그 말인즉슨, 누군가를 일정 기간 동안 대신해 일을 한다는 말이다. 사실, 처음 입사 지원을 했을 때는 ‘대체 계약직’이라는 단어의 뜻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난 서울에 가고 싶었을 뿐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공공기관 경력을 이용하여 1년 남짓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았을 뿐이다.
막상 입사해보니, 내가 ‘대체’ 계약직이라는 사실이 더 뚜렷하게 느껴졌다. 가끔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임원분들이나, 내가 인수인계받은 업무 관계자한테 나를 소개할 때, “안녕하세요. 0000실에 새로 온 누구입니다.” 뒤에 “000 계장님 육아휴직 대체로 일하게 되었습니다.”라는 말을 꼭 붙여야 그들에게 내 존재와 신분을 명확히 이해시킬 수 있었으니까.
우리는 인턴도 아니고 신입직원도 아니기에, 회사에서 무척 애매한 포지션을 맡고 있다. 누군가의 빈자리를 메꿔야 하기에 어떻게든 회사가 굴러가도록 일은 하지만, 회사에서 우리에게 많은 관심을 주진 않는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허례허식과 같은 사내 교육보다는 일단 실무를 하면서 일을 배우게 되는 경우가 많고, 친목도모 목적의 회사 행사에 대한 ‘거부권’이 있다. ‘나는 여기에 잠깐 있다가 갈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 서로 편해진다.
하지만 소속감을 중시하고, 소심한 관종인 나 같은 경우에는 대체 계약직이라는 내 신분이 가끔 슬프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난 곧 떠날 사람’이라는 명분이 오히려 내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됐다. 업무 관련 아이디어를 더 내고 싶어도, 회사 동료와 더 친해지고 싶어도 ‘난 어차피 몇 개월 있다가 갈 사람인데,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나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또, 실수를 해도 만회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 슬펐다. 사업의 중간 단계에 투입이 된 나로서는, 사업과 회사 업무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 없이 일단 주어진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실수도 잦아지고 자책도 늘었다. 몇 개월 지나 점점 일이 적응되다 보니 나에게 1년만 더 있었으면, 더 보란 듯이 잘 해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잘 알고 있다. 내가 다시 이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은 없다는 걸.
그런데 난 생각보다 일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입사 후 첫 한 달은 내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건 아닐까, 내가 지금 일을 잘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에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할 때도 있었고, 일을 너무 잘하고 싶은데 난 곧 떠날 사람이라 내 일에 대한 피드백을 안 해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졸렬한 피해의식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내 자신을 갉아먹기도 했다. 그동안 회사에서, 집에서 ‘좋은 평가’를 먹고 자랐던 사람처럼, 하루빨리 인정을 받고 싶었다. 잠깐 있다갈 계약직이지만 내가 맡은 사업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싶었다. 난 대체 계약직이지만 아무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