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매이 Apr 05. 2021

나만 아는 이야기

'지원자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가하고, 제한된 채용인원 때문에 이번에는 함께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방금 온 문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아, 불합이구나. 사무실에는 타자 치는 소리만 가득했다. 혹시라도 옆 직원에게 들릴까 한숨도 묵음으로 쉬었다. 나 또 불합했구나.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어제 연차를 내고 면접을 보러 다녀왔다. 회사에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연차를 쓰겠다고 했다. 과장님은 조금 놀라신 듯 했지만 더 묻지 않고 그러라고 했다. 아무도 몰라야 한다. 사무실에 다른 회사 면접 본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좋을 건 아무것도 없다.

     

면접 시간은 오후 4시 반이었다. 평소라면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업무를 보고 있었을 시간에, 정장을 입고 문밖을 나서니 기분이 이상했다. 어색한 내 모습을 누군가가 알아볼 것만 같아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ooo님은 현재 재직중이신데, 왜 이직을 하려고 하세요?"

"아, 저 이번에 계약 만료가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입에서 '계약 만료'라는 키워드가 나오자, 면접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면접관의 질문에 좋은 대답이 되었을까. 나는 이제 곧 일자리가 없어지고, 그렇기에 이 회사가 더 간절하다는 걸 당신은 아시나요!!! 라고 면접장에서 소리치고 싶었으나, 그건 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눈으로는 '당신의 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라는 눈빛을 보내며, 마스크 뒤로 바싹 말라가는 입술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고작 15분의 면접을 끝냈을 뿐인데 밖은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오랜만에 구두를 신어서 그런지 얼얼해진 발을 끌고 집으로 향했다. 오늘의 15분을 위해 나는 하루의 연차를 꼬박 썼다. 다행히 그동안 회사에서 온 연락은 연말정산 서류가 잘못됐으니 내일 다시 수정해서 제출하라는 경영지원실에서 온 전화, 그거 하나 뿐이었다.

     

면접 결과는 하루만에 나왔다. 문자를 통해 알게 된 불합격 소식은 참 쓰게 느껴졌다. 회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면접 준비 오픈채팅방에 올라온 카톡을 정독했다. 인사담당자의 실수로 모든 면접자에게 불합격 문자가 간 건 아닐까, 라는 바보같은 상상을 하며. 한시간 후, 합격전화를 받았다는 사람이 있는 걸 보니 내가 불합격인건 인담자의 실수는 아니었나보다. 애써 시선을 핸드폰에서 사무실 모니터로 돌렸다. 난 이제 또 어디를 지원해야하지, 불합격 문자로 인해 빚어진 혼란과 좌절과 불안을 안으로 삼킨 채 꾸역꾸역 나에게 남겨진 일을 했다.

     


엊그제는 면접 안내 전화를 회사 비상계단 앞에서 몰래 받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로 돌아왔었는데, 오늘은 기분이 사뭇 달랐다. 지금 집이었다면 누워서 유튜브를 보며 사소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억지로 머릿속에 밀어넣어 면접 본 회사에 대한 미련이 내 안에 자리 잡을 새를 주지 않았겠지만, 여기는 사무실이다. 다 내려놓고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을 부여잡고 아무 일 없는 척 투닥투닥 키보드를 친다. 오늘따라 엔터 키에서 나는 소리가 날카롭다. 오늘은 칼퇴하고 아주 맵고 짠 아구찜을 먹을 것이다. 아구찜의 뜨겁고 매운 기를 빌려 크게 한숨 한 번 몰아 쉴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앤 해서웨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