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태몽>
태몽
혼자 태어나는 꿈을 꿨어
알에서 태어난 영웅의 길몽이 아닌가 싶겠지만
나의 태초는
거북이 등껍질 안으로 숨어들면서
시작됐어
누군가가 내 껍질을 두드리며
딱딱할까 물렁할까 가늠해 보는데,
아 그건 복숭아 얘기였지
나는 단단한 등껍질 안에 숨은
물렁한 복숭아
그 속의 단단한 씨앗으로 다시 태어나는
마트료시카식 생을
살고 싶었어
달걀을 깨트리면 노른자가 터져 나오듯
어떤 부서짐은 탄생이기도 하다는데
깨고 나와야 할 순간을 놓쳐
이리도 물러터져 버렸나
그럼에도 나는 단단한 결심을 품은
물렁한 복숭아니까
달큰한 과즙으로
아직 이름 없는 수정체의 가능성에
다시 스며들 수 있기를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