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짐이 곧 새로운 탄생

-시 <태몽>에 대한 해석 에세이

by 회복하는돌
깨트렸는데도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이 흘러나올 수 있구나.


어느날 달걀 프라이를 해먹기 위해 계란을 깨트렸다가 문득 든 생각이다.


나를 위한 한 상을 차린 후 유튜브를 보면서 밥을 먹었는데, 영상 주제는 딱딱한 복숭아와 물렁한 복숭아 중에 무엇이 더 맛있는지를 얘기하고 있었다.

영상을 재밌게 보는데, 물렁한 복숭아 안에도 딱딱한 씨앗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과일 속 씨앗이란 알을 깨고 나오는 박혁거세의 탄생처럼, 태어남을 예비하고 있는 수정체이지 않을까?

이런 산발적인 물음에서 이 시는 탄생했다.


예전의 나는 깨진 조각을 오래 붙들고 있는 사람이었다.

깨지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나를, 혹은 남을 탓하기도 하는, 욕심 많은 사람.

이제는 안다. 깨트렸기에 비로소 흘러나올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서지고 망침으로써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을.


당신이 지금 그 사실을 믿을 수 없고, 어느 시절의 나처럼 깨진 조각을 망연히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면, 우리 같이 달걀 프라이를 해먹어 보자.

부서짐이 탄생이라는 진리를

아주 간단히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이니 말이다.


요즘의 나는 종종 절을 찾는다. 불교에서 배우는 선명상에는 결가부좌 자세라는 것이 있다.

우리 마음에도 결가부좌의 자세가 필요하다. 부서짐을 인정하는 것.

고통을 고통하는 것. 아픔을 아파하는 것. 슬픔을 슬퍼하는 것.

수용하고, 인내하고, 올곧게 나아가는 것.


생명이 가진 가장 큰 생명력은 어쩌면 있는 그대로, 피하지 않고, 아픔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아프지 않아도 모자란 순간에 충분히 아파하려는 생명체는 인간뿐일 것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의 한 구절로 이 글을 마무리해본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 정호승, 산산조각


이전 01화혼자 태어나는 꿈을 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