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삶을 이해하게 된 딸의 기록
요즘 나는 결혼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우연찮게도 휴학한 뒤 다니던 소셜링에서도, 부트캠프에서도, 심지어 카페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속에서도 미혼의 삼사십 대 분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주변의 압박 때문에 빨리 결혼을 해야 한다며 힘들어하는 사연들. 그런 사연들을 듣다 보면 ‘혼자 살아도 아무 문제 없는 세상인데 다들 왜 그러지?’ 하며 위로하는 동시에, 속으로는 죄송하게도 ‘나도 저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불쑥 든다.
이 고민을 엄마랑 전화 중에 털어놓은 적이 있다.
엄마. 내도 결혼 못하면 우야노. 내가 사십살까지 혼자 살면 어떡할거야.
내 진짜 요즘 느낌에 결혼 못할 거 같거든. 연애는 만들다만 관계만 쌓여가고,
남자들한테는 내가 잘 못해주는 거 같애. 내 승질 못 굽히잖아 알제.
고집도 세고. 말하다보면 내 생각만 재밌고.
나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인데,
연애하는 사람한테는 어떻게 대해야 될지 잘 모르겠어.
내가 이런 고민을 얘기하면 주로 돌아오는 반응은 스물세살 애기가 결혼 정병(?)에 시달리는 것에 반은 신기하다고 웃거나, 반은 기만이라고 느끼며 재수 없다는 듯 핀잔을 들었다. 요약하자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는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그렇게 살다가는 후회하니 빨리 눈을 낮추고 서로 최대한 잘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라는 조언 아닌 조언(?)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는 전혀 예상 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엄마 생각에도 니가 빨리 결혼하거나 할 거 같지 않아.
니는 늦게 하거나 안 할 거 같다.
뭐가 문제고. 더 잘됐다.
외로우면 엄마랑 살면 되겠네. 엄마랑 오손도손 놀면 되지.
엄마는 니만 행복하면 결혼을 안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못한다고 소리 듣면 뭐 어떻노. 니 성질 굽히지 마라. 어차피 그래 안 된다, 니는. 절대 남한테 깎아주려고 스스로를 동그라미인 거처럼 만들고 그라지 마라.
이기적이라 그러면 어때. 니만 생각해.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
나는 엄마처럼은 살기 싫다.
절대 엄마처럼은 되지 말아야지.
어릴 때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오래 전부터 별거 중이었던 우리 가족. 아빠와의 이혼 전후로, 엄마는 외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느라 자신의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했었다. 가족 여행도 제대로 가본 적이 없었고, 늘 할아버지 밥때에 맞추어 엄마의 스케줄은 움직였다. 엄마의 하루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도 모두 할아버지를 위한 삶을 사는 기분이 들어 나는 어린 마음에 엄마가 밉기도 했다.
그때의 분노와 애증을 담아 쓴 소설이 세시 매거진에 실린 〈뒤섞이는 세계〉였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내 소설에 펀딩을 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본가인 대구에 내려간 날, 엄마의 책장에 꽂힌 매거진을 보고 생각했다.
‘엄마는 저걸 무슨 생각으로 읽었을까?’
저게 내 마음의 어떤 구석을 표현한 거라는 걸 눈치챘을까. 그 어두웠던 구석을 전부로 오해할까 두렵기도 했고, 한편으론 엄마가 무언가를 느끼고 깨달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쓴 거라 기대가 되기도 했다.
소설에 대한 아무런 코멘트도 듣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시간은 다 가버렸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안고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섰다. 집 앞 버스 정거장까지 데려다준 뒤, 엄마는 딱 한마디를 했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