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숭고한 여성의 삶은 어디에나 깃들어 있다는 걸
너 소설 재밌더라. 자전적인 얘기도 있고...엄마가 너 생각을 많이 했어. 할아버지랑, 우리 모래랑, 엄마랑 생각.
그 뒤로 내내 미안했다. 내가 엄마와 할아버지에 대해 느낀 감정이 꼭 저것뿐만은 아닌데. 저 부분만 들키게 된 게 못내 속상하기도 했다.
왜냐면 나는 더이상 엄마가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사는 것도, 엄마처럼 사는 것도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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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꽤나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귀한 집 막내딸로, 그 시절에는 못 사는 집이었다면 진학이 불가능한 예고를 갔고, 음대에 진학했다.
내가 엄마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 그런 엄마의 젊은 시절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도 있었을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할아버지를 모시지 않았다면, 엄마가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평행우주에서 살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이 생각을 오래 엄마를 위한 것이라고 여기며 엄마를 함부로 동정해온 것 같다. 아주 미련하게도.
그러나 나는 이제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삶이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지닌 것인지 알고 있다.
숭고한 삶은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으며 살아온 성공한 여성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그건 할아버지의 병원을 알아보는 엄마에게 가장 깊이 깃들어있는 것이다.
어릴 때 내 가치관은 그게 아니었어서 힘들었다. 나는 도대체 뭘 성공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지만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살고 싶었다. (사실 이 꿈은 아직도 가지고 있지만...)
남자에게서든 가족에게서든 자유로운 어떤 진취적인 여성.
그러나 어쩌면 그런 삶이 아니어도 아름다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자꾸 엄마처럼 사는 내가 보였다.
할아버지가 엄마를 돌보았듯이, 엄마와 살며 엄마를 돌보고 있을 내 모습이 왜 어떤 턱시도를 입은 남자 곁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보다는 자연스레 상상이 되는 걸까. 사실 불교 철학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지금 내 모습은 이미 엄마와 아주 닮아 있다. 언니는 나를 어린 시절의 엄마라고 부른다. 나는 더이상 그 사실이 싫지 않고 너무 사랑스럽다.
엄마처럼 살아도 나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얼마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