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를 소설화한 작품입니다.
바람은 거세게 휘날리고 대합실 밖으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자판기 앞에 서서 동전을 넣고 커피를 뽑았다. 기계 안에서 떨어지는 종이컵 소리와 함께 김이 희미하게 올라왔다. 따뜻한 온기가 손끝으로 전해져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합실을 둘러보며 앉을 자리를 찾았지만, 벤치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쪽에서는 누군가 몸을 웅크린 채 졸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작은 대화 소리들이 낮게 흘러나왔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서서 아무 데도 속하지 못한 채 서성였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지만 이미 입안에서는 쓴맛만 더 또렷해졌다. 결국 나는 벤치에 앉기를 포기하고, 사람들 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커피는 다 식어버렸고 나는 소리도 없이 가만히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울로 향하려면 열차를 두 번 갈아타야 한다. 밤이 늦었는데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차를 미리 예약하지 못한 탓에 어쩔 도리는 달리 없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앞쪽 벤치에 앉은 할머니가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나도 따라 졸음이 밀려와 하품을 했다. 난로 앞에는 사람들이 몇 모여 있지만 그리 따뜻하지는 않은 듯했다.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건 다가오는 봄밖엔 없으니까. 우리 앞에 놓인 추위를 감내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거겠지.'
언젠가 친구가 써준 편지에는 그런 말이 쓰여 있었다. 아마 대학을 갓 졸업하고 방황하던 어느 겨울날 받았던 편지였을 것이다. 친구는 이제 번듯한 직장인이 되어 나에게 아이 사진을 담은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나는 집도 절도 없이 혼자 떠돌며 글을 쓰고 있다. 보란 듯이 귀향해 성공을 말하고 싶었건만, 실컷 바다 구경만 하고 어머니는 찾아뵙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내 처지가 처량해서였는지, 아니면 작업에 방해가 돼서였는지, 어쩌면 둘 다였는지는 모르겠다.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듣는다. 지금 듣는 음악은 <California Dreamin’>이다. 이 노래를 듣는 이유는 노랫말이 꼭 나와 닮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가사 속 나와 같은 트렌치 코트를 입은 외로운 남자를 떠올려보곤 한다.
’모든 잎은 어둠의 색을 지니고 있고 하늘은 잿빛이다. 겨울날의 거리를 걸어봤자, 나는 캘리포니아에 있지 않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척을 해보지만, 눈을 감았다 떠도 나는 뉴욕에 있다......’
전도사도 추운 날씨를 좋아한다는 가삿말이 내 귀에 흘러나온다. 왜일까. 따뜻함을 잃어버린 계절 속에서 오히려 마음이 또렷해지기 때문일까.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이런 겨울날엔 나도 나의 모습을 등지고 어느 낯선 곳의 꿈을 꾸고 싶다.
기차에 몸을 실었던 날들이 문득 떠오른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던 어둠과 드문드문 보이던 불빛들, 그 사이에서 나는 늘 같은 자세로 앉아 글을 적곤 했다. 낯선 역에 내려 아무렇게나 들어간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얇은 이불을 덮고도 오래 잠들지 못하던 기억이 이어진다. 그곳의 공기는 늘 건조했고, 희미한 형광등 아래에서 나는 몇 줄의 문장을 붙잡고 씨름했다. 오늘로부터 세 시간 전, 울진 바다를 바라보던 순간도 함께 겹쳐진다. 바람은 거칠었고 파도는 낮게 부서지고 있었지만, 그 앞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오래 서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오기보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 필요해서였을 것이다.
이어폰 너머로 흘러나오던 음악과 파도 소리가 겹쳐지며,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간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바다 앞에서 나는 돌아갈 곳을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더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만을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간다. 어디를 가는지 몰라도 계속 밥을 먹고, 글을 쓰고, 잠을 자고. 무엇이 삶인지도 모른 채 살아낸다. 코 끝으로 담배 냄새가 자꾸 스친다.
입은 쓰지만 살아야 한다. 그것으로 족하다고 믿으며, 얇은 자켓 주머니 안으로 주먹을 더 꽉 쥐어보인다. 자꾸 풀어지는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