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시야기들>을 마무리하며
세상에 사랑할 만한 것이 문득 생각나는 음악 읽다 만 책 전개가 예측되는 시시한 영화일 뿐일지라도
그것들로만 채워진 세상의 꿈을 꾼다면
너는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
일어나는 법을 몰라 시끄러운 알람을 무시하고 아침밥을 거른 채 별 볼일 없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는 꿈을 꾼대도
너는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
이제 모든 아름다움이 너를 파괴한다
온갖 종류의 세상이 너에게서 멀어진다
남은 것은 너와 너의 집, 둘뿐이래도
너는 세상을 살아간다
그리 길진 않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살아낸 시절이 있다.
그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살아내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그렇다고 같지도 않고, 무의미한데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처럼, 사는 게 어려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면? 유행하는 음악과 영화를 욕하고 싫어한다면? 거슬리는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무언가를 살고 있는 기분이 이따금씩은 드는 것 같기도 했지만 나를 괴롭히는 방식으로는 오래 지탱할 수 없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숨 가쁘게 도망치던 나날들.
지금에서야 불행이 편할 정도로 약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고맙다.
이제는 존재보다 더 큰 증명이 없다는 것을 안다.
끝의 끝까지 살아내고 싶다. 새로운 음악이 끝없이 나오는 흐름을 따라가면서. 아는 척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알아들을 수 있는 만큼만 알아들으면서. 누군가를 질투하고 선망하고 미워하고 목이 터질 때까지 마음껏 울어보고도 싶다. 배가 부르면 밥을 먹다 말고 재미없는 책은 반만 읽을지라도.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을 그대로 살아보고 싶다. 이 모든 반복되는 하찮음을 통틀어 우리는 삶이라고 부르기로 했으니까.
그것으로 충분히 괜찮을 수 있는 날들이 기다리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