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학교
1993년,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공장에서 노사합의를 통해 근무시간을 단축했던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당시 주 36시간이던 근무시간을 28.8시간으로 줄이면서 근로자들은 풍족한 여가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 갑자기 근로자들의 이혼율이 증가했다. 신기하게도 너무 많은 여가 시간이 부부관계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비극은 여가 시간이 부족해서 오는 게 아니라 여가 시간을 즐길 줄 아는 능력이 없어서 온다. 처음 태어나서 하루 종일 여가 시간만 존재하는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해서 바쁘게 살다 보면 여가가 뭔지 그런 게 존재하긴 했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정년퇴직을 하게 되면 또다시 하루 종일 여가 시간만 존재하는 일상을 맞이하게 되는데, 문제는 어린 시절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게 아니라 마치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활기를 잃어버린다.
자유로운 영혼이란 어떤 이유가 있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요, 보상이 따라오기 때문에 보람을 느끼는 것이 아니며, 입증해야지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여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그런 삶을 살아본 적이 없기에 우리는 일을 통해서만 행동하고 일을 통해서만 보람을 느끼며 일을 통해서만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삶을 아주 오랫동안 살아가게 된다. 그와 비슷하게 영혼이 자유로운 동물들도 목에 끈을 묶고 울타리에 가둬서 키우는 가축이 되면 어느 날 갑자기 울타리를 없애고 목줄을 풀어줘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게 된다. 몸이 자유로워져도 자유를 느끼지 못하는 가축처럼, 사람도 그렇게 길러진다. 어느 사람의 영혼에서 자유를 앗아가 버리면 그는 육체를 구속하지 않아도 순한 가축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그렇게 길들어지는 시작점, 학교부터 바꿔야 한다. 학교가 꿈나무를 키우는 곳이라고 사기 치지 말자. 아이들을 초·중·고등학교에서 12년 동안 잘 길들어진 양계장 닭처럼 만들어 놓고선 항상 졸업식이 되면 "이제 세상에 나아가 독수리처럼 자유롭게 날개를 펼쳐라"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나쁜 어른이다.
영국에서 유럽 10개국을 대상으로 한 2016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도소의 수감자들이 학교 어린이들보다 더 많이 야외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유럽보다 더 심각할 것이니 말도 하지 말자. 특이나 한국은 학교 같은 공공 건축물에도 문제가 많다. 일례로, 공사비를 책정할 때 교도소가 평당 850만 원이라면 학교는 평당 550만 원으로 건물을 짓는다. 교도소나 학교나 건축 도면으로 보면 똑같이 닭장처럼 보이는데, 시설 비용은 교도소가 훨씬 좋다. 따라서 한국에선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것보다 교도소나 소년원에 가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시설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마침 우리나라는 학생 수가 줄어서 학교 교실이 남아도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것을 위기라고 말하지만 한 편으론 좋은 기회다. 남아도는 교실을 또 다른 교육 시설로 만드는 일에 머리 쓰지말고 차라리 테라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책상이 없는 곳에서 움직이고 날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아이들이 더 큰 상상을 할 수 있게 천장도 높여야 한다.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교실의 천장 높이가 2.6m인 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과 3.0m인 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창의력을 측정하는 실험이었는데 그 결과, 3.0m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창의력이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고작 40cm 차이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우리의 학교 천장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아이들은 2.6m 높이의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학원에 가면 2.5m 높이에서 과외를 하며, 이동할 때는 1.5m 높이의 봉고차에 실려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문제는 집에 와봐야 2.3m 높이의 아파트 방 안에서 잠을 자게 될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에게 학교와 학원을 봉고차로 실어 나르는 '천장 낮은 삶'을 제공해 주고 나서 이 아이들이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나 일론 머스크처럼 위대한 상상을 하는 인물로 성장하길 바란다면 당신은 진짜 나쁜 어른이다.
각 가정 집의 천장을 높일 수 없다면, 아이들이 12년 동안 머무는 학교만이라도 천장을 높게 만들어 주자. 그래서 더 높이 뛰어오르고, 더 높게 상상할 수 있게 해주자.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예 천장이 없는 자연 공간을 많이 열어주자. 그렇게 해서 아이들의 머리 위로 하늘이 열리게 해주고 그 하늘 위로는 우주의 끝이 닿지 않는 곳까지 상상할 수 있게 해주자. 다시 아이들의 영혼이 자유롭게 된다면, 그 다음 당신 차례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