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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생각 Jun 08. 2024

법에 대한 딴생각

법정이 범죄자를 벌하는 곳이 아니라 범죄를 고치는 곳이 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사법체계를 만드는 일이 가능한 일이지 실험을 한곳이 있다. 그곳은 뉴욕 브루클린에 위치한 '레드 훅 정의센터(The Red Hook Community Justice Center)'다. 이 실험을 주도한 알렉스 칼래브리스 판사는 기존 사법체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그것은 "유죄 아니면 무죄".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바로 "문제해결!". '레드훅 정의센터'에선 문제해결이라는 관점에서부터 법정을 새롭게 정의했다.


이전과 다른 관점을 가지면 공간에 대한 설계도 달라지게 된다. 우선 법정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폐쇄된 가톨릭 학교 건물을 재활용한 '레드훅 정의센터'에는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문이 있고 벽은 밝은색 나무로 되어 있다. 통상 법정에는 창문이 거의 없어서 햇빛이 안 들어 온다는 점과 대비된다. 그리고 짙은 색 나무 인테리어로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게 일반 법정이라면 이곳은 밝은색 인테리어로 꾸몄으며 죄를 판결하는 곳이라기보단 소통을 하기 위한 분위기로 연출했다.


무엇보다 판사석을 낮췄다. 일반적인 법정에서는 판사석을 높은 위치에 두어 모든 사람들이 올려다보게끔 함으로써 판사의 권위를 높인다면 레드훅의 법정은 판사석을 낮춰 모든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이는 대화와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최적의 눈높이를 의미한다. 이렇게 판사, 변호사, 피고, 원고 등 사건의 이해 당사자가 모두 모여 범죄를 따지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더 나은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한 공간으로써 법정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레드훅 정의센터의 법정


실제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도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판사는 엄격함과 동시에 인자함으로 피고와 원고를 대한다. 그들에게 충분히 이야기할 시간을 배려하고, 판사석으로 불렀을 때는 우선 악수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 판사는 소송 당사자들에게 현재 처한 상황을 세심하게 설명해 준다. 이 법정에서는 사건을 원활하게 해결하고 피고와 원고가 제 삶을 추슬러 다시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점을 느끼게 해준다.


피의자에 대한 접근 방식도 다르게 한다. 정의센터에선 거의 모든 피의자에게 사회복지사가 배정된다. 사회복지사는 피의자의 임상학적 진찰 기록들, 예를 들면 약물 중독이라든지, 정신병력, 외상 유무, 가정 폭력 등을 살펴보면서 동시에 가정과 주변 환경도 같이 살펴본다. 이는 피의자가 일으킨 사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야를 넓혀 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렇게 더 넓은 시각으로 사건이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이유와 원인까지 파악하기 위해서 특별한 절차들이 수반된다.


법정이 사건만 보고 처벌하는 곳이라면 정작 사건을 일으킨 동기와 원인은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정의센터의 법정에선 판사가 피의자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약물 치료, 정신 건강 서비스, 트라우마 상담, 가족 분쟁 해결 등을 추가 조치할 수 있다. 결국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있기에 정의센터를 거쳐간 피의자들은 다시 범죄를 일으키는 재범률이 눈에 띄게 낮아지게 되었다.


'레드훅 정의 센터'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실험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들은 사법체계가 해야 할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에 따라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한다. 이는 우리가 법을 만들고 집행할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수단으로만 법이 존재한다면 법을 집행하는 모든 사람들은 기능직이나 다름없다. 유죄냐 무죄냐를 판단하는 일는 마치 '0'과 '1'로 구성된 이진수의 로직으로 짜인 알고리즘에 가깝다. 이는 인공지능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사실상 법률적인 업무만큼 용어나 언어들이 깔끔하게 정돈된 영역도 드물다. 언어 정돈이 잘 된 영역은 인공지능화가 더 쉽다. 더불어 그동안 쌓인 판례와 법률 데이터량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머신러닝을 통한 인공지능의 학습도 쉽게 이루어진다. 이미 이런 조건 덕분에 '리걸 테크(Legal-Tech : 법류과 기술의 결합으로 탄생하는 서비스)'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법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 한다. 법의 영역 안에서,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보다 인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보면, 인간의 능력이란 0과 1을 넘어서는 영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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