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여행가면 꼭 하게 되는 것
아무리 계획 없는 여행이라지만,
사람마다 여행을 가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엔 다음과 같다.
① 호텔 조식 먹기
② 인피니티 풀
③ 현지인처럼 길거리 식사
④ 그곳에서 만든 한식 먹어보기
⑤ 그곳의 밤문화
하노이 여행 2일 차에는 이 모든 것들을 다 하게 되었다.
7월 5일 금요일, 아침 6시
평소 출근할 때는 그렇게 안 되는 일이 여행만 오면 잘 되는 게 있다.
일찍 일어나는 버릇
그리고
아침식사도 안 하는데 여행만 오면 호텔 조식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난다.
'이 호텔 조식은 뭐가 나올까?'
아침 8시,
조용한 아침 분위기 속에서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주방의 모습이 보인다. 접시를 들고 음식들을 구경하며 손이 가는 것마다 하나하나 담아 본다. 베트남 반미와 소시지 그리고 샐러드로 따뜻하게 배를 채운다. 거기에 오렌지 주스는 대략 3잔 정도. 이렇게 두 접시를 먹고 마지막은 과일과 디저트로 한 접시를 더 먹으면 든든한 아침식사 끝!
호텔 23층에 있는 인피니티 풀로 올라갔다. 따로 수영복을 챙겨 오진 않았으니 반바지와 티셔츠로 수영복을 대신한다. 솔직히 말하면 수영복을 못 챙긴 게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수영복을 사본 게 언제였더라?
객실로 돌아와서 발코니에 수영복을 널었다.
하노이의 햇살은 강렬하지만 습도가 높아서 그런지 옷이 빨리 마르진 않았다.
뭐 어차피 내일도 수영할 거니까 상관없다.
잠시 원고 작업 중, 월간지에 기고 중인 IT 칼럼을 마무리해 본다.
여행을 즐기면서 동시에 원고 작업으로 충분한 수입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난 그런 삶을 택하고 싶다.
오후 2시쯤 되자 살짝 배가 고파졌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구글 지도를 살펴보니 우리 호텔 근처에 '분보후에 우엉(Bún Bò Huế O Uông)'라는 쌀국수 전문점이 눈에 띄었다.
애당초 별다른 계획이 없으면 움직임이 가볍다.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조리하는 모습이 그렇게 위생적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손님들은 전부 베트남 현지 사람들이었고,
메뉴판도 베트남어로만 되어 있어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 없는 상황.
이곳이야말로 진짜 베트남 쌀국수집!
주문을 받으러 남자아이가 다가온다.
프리미어 리그 유니폼을 입은 남자아이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손짓발짓해 가며 어떻게든 쌀국수를 주문해 본다.
우리가 주문한 게 쌀국수는 맞겠지?
자신감 없는 초이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괜찮아~ 그래봐야 16만동이야)
베트남에는 대략 6가지의 쌀국수가 있는데 우리가 먹은 것은 '분보후에'라는 쌀국수다.
대부분의 쌀국수가 밋밋한 맛이라면 분보후에는 고추기름을 넣어 칼칼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인이라면 기호에 더 맞을 수 있다. 특이한 점은 면발이 납작하지 않고 통통해 우동면발에 가깝다.
물론 이러한 지식은 먹고 나서야 검색으로 알게 되었다.
먹어보기 전에는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일단 몸으로 체험하면 학습욕구도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법.
평소 우리가 사전조사와 예습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면
여행에서는 거꾸로 해보는 거다.
학습보다는 체험이 먼저!
드디어 초이의 후배 규성이가 등장했다.
10년 만에 만난 두 남자의 재회는 의외로 쌀국수에 들어간 육수처럼 밋밋하기만 했다.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왜 포옹을 안 하는 거야?)
규성이가 추천한 찐 맛집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한국 주재원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하노이 미딩의 골든팰리스, 이 안에 주재원들이 사랑하는 맛집이 있다고 한다.
그곳은 바로 '순희?!'
뭐야, 우리 한식 먹는 거야?
가게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곳 주인장 성함이 순희라고 한다.
한국 소주 중에 유일하게 베트남 공장이 있다는 '좋은데이'로 달려 본다.
잠시 규성이를 소개하자면,
그는 한국 물류 회사인 H사의 베트남 박닌 지점장이다.
10년 전,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처음 넘어왔을 때는 주니어 직급이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지점장까지 올라선 능력자라고 해야 할까?
우리가 하노이에 도착했을 때, 카니발 승합차와 베트남 직원 두 명을 아낌없이 보내줬으니 능력자라고 해두자.
내가 못하는 걸 할 수 있다면 능력자라 부르고,
나 보다 돈이 많으면 오빠 아니 형이라 부를 수 있다.
(규성이 형!)
그렇게 다가온 하노이의 밤
오늘은 규성이 형이랑 회포를 풀기로 했다.
오늘 하노이의 밤은 가라오케다.
하노이에서 나름 유명하다는 '박카스(BACCHUS)'에 도착.
이곳에선 120분 동안 소주와 맥주가 무제한이었다. (물론 양주는 별도)
한국말을 제법 하는 베트남 직원이 들어와서 서비스를 소개해 줬다.
한참을 설명하더니 갑자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메뉴판에 없는 서비스를 추천해 줬다.
"원하신다면 파트너와 애프터 데이트를 할 수 있는데, 시간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고 그래서 계산을 할 때는 어쩌고저쩌고..."
뭐 어른이라면 대충 알아들을 법한 설명이 장황하게 이어지자 정중히 거절했다. 대신 팁을 주면서 좀 더 시원한 소주를 많이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하노이에서 밤을 즐기게 되면 정말 다양한 베트남 맥주를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의 국민 술이 소주라면 베트남은 맥주라고 봐야 한다. 거의 모든 베트남 사람들이 맥주를 사랑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한다. 특이한 점은 맥주 다음이 보드카라는 점.
실제로 주점뿐만 아니라 동네 마트를 가도 보드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느덧 밤 10시.
가라오케를 뒤로 한 채 이대로 헤어지기엔 너무 아쉬운 시간, 우리는 술이 모자란 사람처럼 3차를 향해 갔다.
이곳은 우리가 묵고 있는 L7호텔의 23층 라운지 바
라운지 바 바로 옆에 인피니티 풀이 연결되어 있어 야경을 구경할 수 있다.
짙은 밤하늘과 대비되는 하늘색 물결이 분위기를 더한다.
초이가 취한 것 같다.
나도 취했다.
밤 12시,
그렇게 하노이의 찬란한 밤이 깊어만 갔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