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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딴생각

나에게 가장 안타까운 친구

by 딴생각

나에게 가장 안타까운 친구를 소개한다. 이 친구는 무엇보다 감정 조절이 서툴다. 자신이 감정을 다스리는 게 아니라 감정이 그를 다스린다. 생각의 주인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그의 주인이 되어 생각 밖에서도 그를 끌고 다닌다. 이 친구에게는 세상에 의심하고 분석할 것이 너무 많아서 원하는 삶을 매번 뒤로 미루곤 한다. 생각이 지나치게 과잉이라 중요한 것을 놓치는 일도 허다하다.


무엇보다 판단의 기준이 제멋대로다. 타인에 대해서는 행동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의도를 기준으로 후하게 평가한다. 타인의 감정을 본인의 이성으로 대응하면서 본인의 감정을 이성으로 대응하는 타인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한다. 마치 멀리 봐야 할 때 현미경으로 쳐다보고 자세히 봐야할 때 망원경으로 쳐다보는 꼴이다. 어떨 때는 한심해서 한 대 패주고 싶을 지경이다.


이 친구의 가장 탁월한 능력은 없는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좋은 기억은 잊고 나쁜 기억은 홀로그램 입체 영상으로 구현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또한 행복이 '불행 제로'인 상태라고 오해하고 있다. 행복만 있고 불행이 없는 영역은 존재하지 않으며, 행복의 기술은 불행을 포용하는 데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늘 행복 찾기에 실패한다.


타인의 행동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내면의 만족감'이란 것도 이 친구에게 없다. 타인을 객관적으로 명료하게 직시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자기만의 고집스러운 방식으로 타인을 바라본다. 그리고 늘 자신을 보호하거나 방어하는데 급급하다. 언제나 산만하며 소음 한가운데서 자신을 외친다. 마음속 흔들리지 않는 정적과 고요가 이 친구에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친구에게도 희망은 있다. 이 친구의 안타까운 점들이 반대로 보면 무한한 가능성의 토대라는 것을 나는 믿기 때문이다. 순간순간의 모든 경험에서 자유와 가능성의 느낌이 이 친구에게 있기 때문이다. 항상 열린 호기심과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한없이 연약한 친구이지만, "나는 연약하고, 정말로 연약하고, 말할 수 없이 연약했다."라고 말했던 싯다르타도 그 위대한 영적 여행을 연약함 위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미 알아차렸는지 모르겠지만, 그 안타까운 친구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그 친구는 바로 나의 연약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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