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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딴생각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

by 딴생각


모든 사람이 이성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거짓이 분명한 대도 거짓을 선택하는 사람은 있다. 자신이 믿는 것에 진실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 것,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 특히나 정보가 많아진 요즘 시대에 유난히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객관적인 사실이 여론을 주도하지 못하고 자극적인 허위 정보가 쉽게 여론을 형성하는 현상을 자주 목도하게 된다. 감정과 개인적 믿음이 사실보다 우선시되는 현상, 이런 현상을 '탈진실(post-truth)'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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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실은 2020년 미국 대선에서도 일어났다. 당시 트럼프는 선거 패배 이후 "선거가 조작되었다"라고 주장했는데, 공식 개표 결과와 법원의 판단은 트럼프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상황은 점점 험악해져 갔다. 결국 극단적인 트럼프 지지자들은 폭도로 변신해 미국 국회의사당을 습격하게 된다. 2021년 1월 6일에 발생한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이기도 하지만, 감정적 분노가 진실을 압도해버린 대표적인 탈진실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었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수많은 국가에서 백신 접종을 위해 노력했지만,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음모론도 같이 확산되고 있었다. '코로나 백신 속에 마이크로칩이 들어 있는데 이것으로 국민들을 위치 추척할 것이다', '백신이 유전자 변형을 일으켜 새로운 인간 종을 탄생시킬 것이다' 등등 음모론의 내용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상상을 초월했다. 문제는 그것을 진짜로 믿고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특히 '5G 전파가 코로나를 확산시킨다'는 음모론 때문에 영국에서는 기지국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영국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도 진실보다는 감정에 치우쳤던 결과로 평가된다. 당시 EU 탈퇴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영국이 EU에 매주 3억 5천만 파운드를 낭비하고 있다"라며 엄청난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EU에 종속되지 말고 영국인의 자부심을 되찾자!"라는 영국 특유의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면서 EU 탈퇴를 국민 투표로 확정 짓게 된다. 그러나 진실은 뒤늦게 밝혀졌다. 세금 낭비와 손실이라는 주장은 거짓임이 밝혀졌고, 당시 총리였던 데이비드 캐머런이 내부 정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브렉시트를 국민투표로 밀어붙인 것이 실수였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영국은 지금도 GDP 감소, 무역 감소, 투자 감소, 노동력 부족 등 여러 가지 악제가 터지고 있으며,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 국민의 60%가 브렉시트는 실수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왜 진실을 외면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까?


첫째, 우리는 진실보다 오감을 자극하는 정보에 반응한다

우리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기부 선행' 뉴스보다 '비밀 결혼설' 뉴스를 더 많이 클릭하게 된다. 이런 루머는 사실 여부를 떠나서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동시에 '기부'라는 말보다 '비밀 결혼'에 꽂히게 만든다. 그리고 이야깃거리로 회자되며 널리 퍼지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테일러 스위프트' 하면 '비밀 결혼'만 남게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실을 소비하는 것보다 감정을 소비하는 일에 더 적극적이다.


둘째, 진실은 복잡하지만 거짓은 쉽다

정보는 많을수록 좋을까? 그렇지 않다. 수많은 뉴스, 영상, 댓글, 통계... 정보가 너무 많을수록 사람들은 판단하기를 포기하게 된다. 이를 '정보 피로(information fatigue)' 또는 '인지적 탈진(cognitive overload)'이라고 한다. 이런 피로감 속에서 사람들은 팩트보다는 더 자극적이고 단순한 주장에 이끌리기 쉽다. 이때 감정적·선정적인 거짓 정보는 더욱 빠르게 확산된다.


셋째, 정보의 편식이 결국 편향을 일으킨다

당신이 자주 클릭하는 기사, 오래 머무는 영상, 검색하는 키워드들은 알고리즘에 의해 맞춤형 콘텐츠로 다시 당신에게 되돌아온다. 내 친구는 손흥민이 골을 넣을 때마다 스마트폰의 알림 메시지가 뜨고, PL 축구 소식을 발 빠르게 챙겨보지만, 이런 정보를 모르는 나를 볼 때마다 대단히 한심하게 쳐다보곤 한다. "넌 어떻게 손흥민이 골을 넣은 것도 몰라?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내 친구에게 PL 축구는 세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과연 손흥민이 골을 넣을 때마다 스마트폰이 울리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내 인스타그램에서 맛집이 많아 보이는 이유는 내가 맛집을 많이 검색했기 때문이고, 유튜브 메인화면에 'KPOP'이 많은 이유는 내가 그것을 주로 시청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세상이 온통 맛집과 KPOP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보는 세상은 그렇게 보이는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다. 특히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나는 콘텐츠를 이용할 때 누군가는 진보나 보수 둘 중 하나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알고리즘의 특성을 인지하고 이용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당신도 어느 한쪽으로만 세상을 이해하는 바보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우리는 진실보다 믿고 싶은 것을 믿을 뿐이다

탈진실의 핵심은 이성의 부재가 아니라 감정의 우위다. 사람들은 사실 그 자체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증 편향(confirmatory bias)'에 기반한다. 이미 자기에게 형성된 믿음과 충돌하는 정보는 은연중 무시하게 되고, 그 믿음을 지지하는 정보만이 우선순위로 수용된다. 정보는 많아졌고 객관적인 정보도 더 많아졌지만, 정보를 소비하는 우리의 방식은 여전히 주관적이다.


이런 편향이 가장 극대화되는 분야가 '정치'다. 정치에서는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일이 종종 생략되곤 한다. 무엇보다 감정을 동원시키고 분열을 일으키기 위해 의도적인 가짜 정보와 음모론을 많이 생산해 낸다. 선거, 이념 갈등, 국제관계 등 여러 정치 상황 속에서 각 정치 집단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이 진실이 아니라 탈진실에 가깝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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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보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그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를 인정해야 한다. 정보에 대한 당신의 첫 반응은 안타깝게도 감정에 기반을 둔다. 당신이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 판단을 다시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반응'은 감정에 충실할지 몰라도 이후의 '판단'은 보다 지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점은 판단이란 반응 보다 빠르지 못할 뿐. 예를 들어, 엄마를 떠올려 보자. 엄마의 잔소리는 늘 옳지만 그에 대한 당신의 반응은 늘 감정적일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엄마에게 항상 미안해지는 건 왜일까? 언제나 판단이 반응 보다 느리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렇다 치고 다시 정보로 돌아와서, 이미 거짓 정보에 물들어 버린 사람들, 자신의 신념을 거짓 정보로 무장한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탈진실인 사람과 대화하는 법


그들에게 '팩트' 제시는 무의미하다. 아니,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자신의 감정과 신념이 진실보다 우선이 돼버린 사람한테 팩트를 들이미는 것, 그것이 바로 '팩폭'이다. 오늘 보고 다시는 안 볼 사람이라면 그래도 되겠지만, 만약 가까운 사람이라면?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그가 감정을 드러냈을 때 냉철한 이성으로 혼내줄 게 아니라 포용적 감성으로 마주하는 게 제대로된 커뮤니케이션이다.


첫째, 먼저 그 사람의 감정을 인정해 주자

사람은 감정이 부정당하면 방어기제가 즉시 작동한다. 탈진실을 보이는 사람에게 곧바로 "그건 틀렸어!"라고 말하는 순간 벽이 세워지는 게 그런 이유 때문이다. 만약 탈진실이 그 사람의 감정(신념)과 닿아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 느끼는 것도 어떤 면에서 충분히 이해가 된다"라고 공감해 주는 것이 우선이다. 감정적인 면에서는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 주자.


둘째, 인정한 후에 질문으로 접근하자

정면 반박은 그 사람의 신념을 강화시키거나 이상한 똥고집을 부리게 만들 뿐이다. 대신 그 사람이 스스로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그건 어디서 나온 얘기일까?"

"그와 반대되는 견해도 있는데, 들어본 적 있어?"

"이런 사실도 있는데, 이건 어떻게 생각해?"

질문은 상대방의 잘못된 믿음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가장 부드럽고 강력한 대화법이다.


셋째, 팩트체크보다 맥락을 이야기하자

상대방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또는 주장)에는 분명한 맹점이 있다. 그 모순을 맥락으로 풀어서 이야기해 주자. 사실 관계를 직접적으로 따지기보단 상대방으로 하여금 열린 사고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핵심이다.


무엇보다 신념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탈진실이 신념이 되버린 사람을 바꾸는 일도 한 번에 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스스로 정보를 찾고, 천천히 확신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면 "틀렸어"라고 말하기 전에 '생각해 볼 여지'를 제공해 주는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이런 태도가 관계는 유지하면서 변화의 가능성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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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칼처럼 예리하지만, 그렇기에 쉽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이라는 부드러운 담요를 덮는다. 하지만 아무리 포근해 보여도, 거짓은 오래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지 않는다. 진실만이 결국 삶의 길을 비추는 유일한 등불이기 때문이다.


탈진실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건, 진실을 외치기보다 진실을 건네는 태도다. 무기를 든 설득이 아니라, 손을 내미는 대화가 중요하다. 우리는 때로 진실을 증명하려 애쓰기 보다, 상대가 스스로 의심하고 질문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줘야 한다.


진실은 정보의 양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 생각할 용기, 믿음을 재검토할 여유, 다른 시선을 존중할 수 있는 마음에서 피어난다.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누군가의 틀린 믿음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틀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옆에서 기다려주는 일인지 모른다.

진실은 강요할 수 없다. 하지만, 함께 찾을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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