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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놀이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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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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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도 놀이가 필요하다

미국에서 연쇄살인범들의 유년 시절을 분석한 사례가 있는데, 어떤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어린 시절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놀이 경험이 그들에겐 결핍되었던 것이다. 이를 담당했던 정신과 의사 '스튜어트 브라운'은 미국 '국립 놀이연구소(National Institute for Play)'의 소장이다. 미국에는 이런 연구소가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이를 계기로 약 6,000명의 유년 시절과 '놀이 역사(play history)'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어린 시절에 잘 놀지 못했던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 많은 정신적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우선 그들은 즐거움을 잘 느끼지 못하고, 경직되어 있으며, 일중독에 빠지거나 자주 우울한 증상을 보인다. 그렇게 어른이 된 '문제 어른'의 치료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바로 '나만의 놀이'를 찾는 것이다.


당신은 놀 줄 아는가?

문제는 '당신은 놀 줄 아는가'에 있다. 정신과 기준으로 보면, 제대로 놀 줄 아는 성인은 고작 10~20% 수준이라고 한다. 대부분은 놀 줄 모른다는 뜻이다. 거의 모든 성인들이 '놀이'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떠올린다. 맛집 탐방, 쇼핑, 음주, 게임, 스포츠 관람, 넷플릭스, 유튜브, TV, 인터넷... 이와 같은 것들은 전문 용어로 '유사 놀이 (pseudo-play)'라고 표현한다. '유사 놀이'란 놀이에서 능동성과 창조성을 제외하고 유희성만 남겨놓은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놀이가 아니다.


성인의 놀이는 단순히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분출하는 자극만으로는 만족되지 않는다. 성인이 되면 쾌락보다 더 깊은 '쾌감'이 있어야 한다. 단적인 예로, '즐거움'과 '기쁨'의 차이를 구별하기 시작한다.


즐거움과 기쁨은 모두 ‘쾌’의 감정이지만 서로 다르다. 즐거움, 즉 ‘락’은 감각적 차원의 쾌감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사고 싶은 물건을 쇼핑할 때 우리는 감각적인 쾌감을 느낀다. 이 쾌감은 고통이나 불편을 동반하지 않은 순수한 감정이다. 그에 비해 기쁨, 즉 ‘희’는 다르다. 기쁨은 고통이나 불편이 동반된 쾌감을 말하며 정신적인 것이다. 이별의 고통을 겪고 난 후 재회했거나, 밤잠을 쫓아가며 공부해서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낀다. 즉, 이 기쁨이라는 감정은 순수한 쾌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불쾌감을 거치고 난 후의 쾌감이다. 쾌감과 불쾌감을 아우르는 칵테일 감정인 것이다. 이 불쾌감은 만족의 지속에 중요한 연료가 된다. 단, 이 불쾌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일 때 그렇다. 즉, ‘자발적 불쾌’가 있을 때 ‘쾌’는 깊어지고 길어진다. 즐거움은 쉽게 휘발되지만 기쁨은 오래 지속되는 이유다. 복잡하게도 인간은 ‘감정적 낙차’를 좋아하도록 진화해온 것이다. 그리고 성인의 놀이에도 이런 감정적 낙차를 필요로 하게 된다.


단, 즐거움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즐거움만 있으면 놀이가 성립되었지만, 성인이 되면 즐거움뿐만 아니라 기쁨까지 수반되어야 만족한다는 의미다.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이 말하는 '놀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놀이란, 활동 자체만으로 즐거움을 주지만, 더불어 점차 깊이와 성장을 경험하여 기쁨을 느끼는, 삶의 균형과 활기를 가져오는 능동적인 여가 활동을 의미한다. 이러한 놀이를 가리켜 라틴어로 '오티움(outium)'이라고 한다.


나만의 놀이 찾기 방법

'나만의 놀이'를 찾는다는 건, 인생에서 나만의 리듬과 기쁨을 찾는 일과 같다. 다른 사람을 볼 필요 없이 과거의 나를 돌아보는 것이 그 방법이다.


* 과거의 나를 돌아보기 : "언제 몰입했었지?"

- 10대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던 일은 뭐였지?

- 20~30대 때, 일이나 육아 외에 기분이 좋아졌던 활동은?

- 지금 생각해도 "그때 참 좋았지" 싶은 순간은?

위와 같은 질문에 떠오르는 단상이 있다면 그것이 '잊고 있던 놀이의 씨앗'이다. 그 감각을 다시 불러와 보자.


* '성과' 말고 '과정'이 재밌는 걸 찾기

일은 '결과'를 보지만, 놀이는 '과정'이 전부다. 놀이의 본질이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감각을 즐기는 놀이들]

· 낙서하기, 색칠하기 : 잘 그리지 않아도, 색을 고르고 선을 긋는 감각 자체가 기쁨

ex. '나는 일러스트레이터다'의 저자 '밥장'

· 도자기 만들기 : 손으로 흙을 만지며 형태를 빚는 감각적 몰입

· 요리하기(실험적 요리) : 맛보다는 만들어가는 창의성과 과정 자체의 리듬

[몰입과 사유의 놀이들]

· 퍼즐 맞추기 : 다 맞춘 후보다는 "어디에 맞을까?" 하고 조각을 고르는 탐색이 즐거움

· 책 필사하기 : 필사의 결과보다 손으로 따라 쓰며 생각이 정리되는 감각

· 글쓰기, 일기 : 멋진 글이 아니라, 쓰는 동안 감정이 정리되고 마음이 가벼워짐

[오감이 반응하는 놀이들]

· 음악 듣기(집중 청취) : 멜로디를 따라가며 감정의 흐름을 따라 느끼는 것 자체

· 춤추기 : 누가 보든 말든,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순간'이 쾌감

ex. '오늘도 혼자 클럽에서'의 저자 '소람'

['탐험' 그 자체가 놀이가 되는 활동들]

· 혼자 동네 골목 걷기 : 목적지 없이,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예상 밖'이 즐거움

· 중고 서점 탐방 : 사고파는 행위보다, 우연히 좋은 책을 발견하는 '발견의 재미'

· 기차 타고 무작정 여행 : 도착지 보다, 창밖을 보는 흐름 그 자체가 힐링


* 30일 실험 : 해보고 느껴보기

놀이를 머리로만 찾을 순 없다. 나의 취향과 감각을 찾기 위해 작은 실험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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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실험에서 중요한 건 실력이나 완성도 보다 '감정의 반응'이다. 나는 어떤 활동을 했을 때 기분이 맑아지는지 관찰해 보자.


나만의 놀이를 새롭게 정의하기

'놀이란 즐거운 것'이라고만 정의하면 너무 좁기도 하고, 기존의 놀이가 나와 안 맞을 수도 있다. 나만의 놀이를 새롭게 정의해 보자.


"나는 호기심이 생기는 게 놀이다."

"사람들과 나누는 게 놀이다."

"혼자만의 공간을 갖는 게 놀이다."


다른 예를 들자면, 기존 '놀이'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놀이'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대표적으로 '네이선 사와야'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레고 조립을 하며 놀았는데, 성인이 되어 변호사가 되었는데도 그 놀이를 멈출 수 없었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는데, 설명서에 나오는 대로 레고를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레고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조립하는 것이었다.


nathan-sawaya-yellow_(1).jpg 네이선 사와야의 레고 작품

그는 레고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경지에 이르렀고, 레고 그룹도 그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최초의 '브릭 아티스트'가 되었다.


어른의 놀이는 아이의 놀이와 다르다

아이들은 굳이 놀이를 찾지 않아도 놀 줄 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놀이는 무의식적으로 사라지고, 일과 책임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에게 놀이란 '되찾는 것'이며, 심지어는 '배워야 하는 기술'이 된다.


아이의 놀이는 즉흥적이고 본능적이지만, 어른의 놀이는 의식적이고 선택적이다.

아이의 놀이는 자라나는 힘이지만, 어른의 놀이는 살아내는 힘이다.

그렇기에 어른이 된 지금, 나만의 놀이를 갖는다는 것은 단순한 취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곧 삶을 회복하는 방식이자, 내 안의 나와 다시 연결되는 의식이다.


우리에게 놀이란 단순한 유희가 아니다. 삶의 균형을 회복하고, 자신을 되찾는 행위이며, 주체적인 감정의 회복이다. 놀이란 '아무 쓸모 없어 보이지만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일을 통해 성취를 얻고, 관계를 통해 소속감을 느끼며, 놀이를 통해 '나 자신'을 회복하는 것이다.


잘 놀 줄 아는 어른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겐 언제든 다시 나를 세울 수 있는 '놀이의 시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 만들었을 때, 비로소 '나만의 놀이'를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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