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선 사와야는 참 이상한 사람이다.
억대 연봉에 2주마다 나오는 수당.
뉴욕에 위치한 초고층 빌딩 안에서 일하는 '윈스턴 앤드 스트론'의 잘 나가는 변호사.
누가 봐도 선망의 대상인 이 남자는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배부른 자의 푸념이랄까?
내가 만약 그의 친구였다면 뒤통수를 후려치며 이런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정신 차려 이 친구야!"
그가 이룬 자수성가와는 다르게 그에겐 풀리지 않은 '오랜 집착'이 있었다.
그것은 무엇을 만들고 싶다는 일종의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었다.
그는 가끔 그런 집착을 어른스럽지 않게 레고 브릭을 조립하며 풀어야 했다.
돌이켜 보면, 그는 인생을 살면서 항상 '옳은 선택'만을 해왔다.
어린 시절엔 공부를 하는 게 '옳은 선택'이니까 공부를 했고, 대학에선 법을 전공하는 게 '옳은 선택'이니까 법을 전공했으며, 사회에 나와선 변호사가 되는 게 '옳은 선택'이니까 변호가 되었다.
그런데 왜?
그 모든 '옳은 선택' 후에 그에게 남은 것은 이상하게도 결핍일까?
무엇인가 만들고 싶다는 그의 '오랜 집착'에 대한 결핍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네이선 사와야는 레고 브릭을 조립하다가 살짝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좀 더 예술적으로 표현하자면 어떤 영감을 받았다고 해야겠다.
그는 떠오른 영감을 <엘로우>라 이름 붙였다. 그리고 미친 듯이 그 영감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일을 하다 말고 회사 메모지에, 음료수 받침대에, 심지어 식당 영수증에 수백 번 <엘로우>를 스케치하기도 했다.
<엘로우>에 대한 영감은 그의 삶을 바꾸기 시작했고 결국, 큰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는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주변 사람들이 만류하기 시작하자 다소 어이없는 대답을 해주기도 했다.
"저는 이제부터 하루 종일 레고를 만들 겁니다."
고작 31살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해 버린 네이선 사와야.
가까운 지인이라면 그에게 욕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미친놈!"
"니가 애야? 그런 건 퇴근하고 해!"
"그게 변호사가 할 짓이니?"
"나이 먹고 뭐 하는 짓이야? 결혼은 어떻게 할래?"
네이선 사와야 역시 만류하는 사람들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여인 코트니를 생각한다면 직장을 그만두는 짓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녀를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한다.
코트니에겐 사랑스러운 아이 셋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장기전으로 접어든 이혼소송 중이란 사실도 염두에 둬야 한다.
어쨌든 그가 억대 연봉의 변호사란 직업을 유지하는 것이 '옳은 선택'임이 분명했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네이선 사와야는 한 가지를 주저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했다.
"이번만큼은 그 '옳은 선택'이란 걸 하지 않겠어"
그는 결국, '오랜 집착'을 선택하고야 말았다.
"만약 당신이 너무 바빠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당신이야말로 그것을 만들고 있어야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 네이선 사와야
1973년 7월19일 생(44세).
뉴욕 대학 졸업 후, '원스턴 앤드 스토론'에서 변호사로 일하다가 갑자기 2004년부터 브릭 아티스트가 되었다.
레고 소속은 아니지만, 레고 그룹이 공시적으로 인정한 세계 최고의 레고 빌더.
2007년, 랭커스터 미술관에서 초청받아 첫 개인 작품전을 연 후 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2012년, 세계적인 인터넷 미술 매체인 아트넷 선정 '세계 인기 아티스트' 8위에 올랐다.
그의 작품전 은 CNN이 선정한 '꼭 봐야 할 세계 10대 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맨허튼과 로스앤젤레스에 개인 스튜디오가 있으며 약 400만 개의 레고 브릭을 소유하고 있다.
"유행에 맞게 당신의 영혼을 편집하지 마라.
그보다는 당신의 가장 강력한 집착들에 철저히 따르라."
- 프란츠 카프카
"전 앞으로 글도 쓰고 책도 낼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2013년 1월,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새해 다짐을 말해 주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일관적이었다.
애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어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 어이없어하는 사람, 실소하는 사람, 피식 웃는 사람 등등.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막상 사람들의 싸늘한 반응을 보니 오기가 발동했다.
한 번쯤 긍정적인 얘기를 들어보겠단 심정으로 매우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나의 다짐을 말해 주었다.
처음엔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그래, 잘 해보렴"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내가 읽은 아버지의 표정은 "이 녀석이 왜 뜬금없는 소리를 할까?"였다.
그다음엔 나의 20년 지기인 고등학교 동창 녀석에게 말했다.
당시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친구는 대답 대신 마시던 커피를 내 얼굴에 뿜었다.
이 정도면 대답은 들으나 마나였다.
마지막으로, 나를 사랑해 준 여인에게 말해 보았다.
다른 누구보다 조금은 나은 답변을 기대했건만 무척이나 간단명료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해 주었다.
"니가?"
상처받진 않았다. 생각해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회사 일 때문에 허구한 날 야근이나 하는 녀석이 갑자기 글을 쓰고 책을 내겠다니, 더군다나 글을 쓰는 걸 본 적도 없고 그럴 만한 재능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말이다.
(적어도 그 사람들 눈엔)
하지만 난 진지했다.
나 스스로는 뜬금없는 다짐도 아니었고 아주 오랜 시간 미루어 온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글쟁이'가 되겠다고 말한 건 나의 '오랜 집착'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난 기록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중학생 때부터 꾸준히 일기 쓰기를 했던 나는 지금까지 수십 권의 일기장과 플래너를 갖고 있다.
미니홈피와 블로그가 유행하면서 일기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습작들도 남겼다.
다만, 내가 쓴 글들은 전부 비공개라 누구에게 보여준 적은 없었다.
누군가에게 보일 수 있는 글.
처음으로 그런 로망을 품었던 것은 대학생이었던 22살이었다.
당시 가을이었던 어느 날, 우연히 집어 든 책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것은 오묘한 책이었다.
엄청 재미난 책도 아니었고, 한 번 읽으면 끝장을 볼 정도로 몰입감 있는 책도 아니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 한구석이 이상해지면서 알 수 없는 여운을 남기곤 했다.
그 책의 내용은 담백하지만 가늠하기 어려운 깊이가 있었다.
잘 다듬어진 한 구절 한 구절이 훌륭한 잠언과 경구였다.
스토리텔링은 전혀 없었지만, 수많은 이야기를 관통하는 청언(淸言)이 있었다.
그 책은 중국 고전인 <채근담>이었다.
나는 채근담이 지닌 깊이를 흠모하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일기를 기록하는 것과 너무나 다른 차원의 글이었다.
무엇보다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었다.
"이런 글을 쓰고 싶다"
기록에 대한 집착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후에 나의 일기장에서는 채근담에 대한 집착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단순한 삶의 기록이 아니라 삶을 통찰하는 담백한 문장을 쓰고 싶어 애쓴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작 스물두 살의 나이에 그런 문장이 나올 리 만무했다.
인생의 연륜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삶을 관통하는 지혜도 빈약했다.
나는 채근담을 집필했던 홍자성의 나이와 나의 지적 수준을 감안하여 새로운 목표를 일기에 기록했다.
"훗날 2013년이 되면, 나는 홍자성처럼 <채근담> 수준의 글을 쓸 것이다."
1996년 11월11일, 그렇게 다짐을 하고 17년이 지난 2012년 12월31일 늦은 밤.
2013년을 하루 앞두고 17년 전 일기장에 썼던 야무진 다짐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오랜 집착'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시기를 일기장에서 발견했을 때의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놀라움과 충격, 막막함, 절망, 낭패, 이제 어쩌나, 아이고 내 팔자야... 등등
문득 나의 책장을 살펴봤다.
스물두 살에 나의 마음을 빼앗아간 <채근담>이란 책은 분실했지만,
이후에도 생각날 때마다 구입했던 <채근담>이 무려 5권이었다.
지난 17년 동안 내 삶에서 무언가 결핍되었다고 느껴질 때면 어김없이 난 채근담을 펼쳤다.
너무나 오랜 집착이었다.
이젠 비공개 일기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일 수 있는 글'을 써야만 했다.
다시 4년이 지나 어느덧 2017년 1월.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사내 웹진 담당자와 마주쳤다.
"오과장님! 글은 잘 쓰고 계시죠? 이번 주말엔 꼭 칼럼 쓰셔야 합니다."
갑자기 미디어삼성 카톡방에서 기사 담당자가 나를 급하게 찾는다.
"오과장님! 저번에 쓰기로 한 기사 건 다음 주에 편성하려고 해요. 기사 작성 가능하시죠?"
지난번 [딴생각] 독자의 이메일이 아직도 머릿속을 맴돈다.
"오과장님, 책은 안 내세요? 조만간 서점에서도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지난 2013년 1월에 비하면 무척 달라진 반응들이다.
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 일까?
나는 그 이유를 매우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저 내 안에 있던 '오랜 집착'을 밖으로 끄집어냈을 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년 6개월 전.
2014년 6월23일, 누군가에게 보일 수 있는 글 [딴생각]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것이 어쩌다 사내 칼럼이 되고, 파워블로거가 되게 하더니, 이젠 기자 역할도 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게 불과 지난 2년 6개월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물론, 여전히 나는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매일매일 글을 쓸 수 없어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희한하게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어떻게든 글을 쓰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오로지 '오랜 집착' 덕분이었다.
'오랜 집착', 그것의 또 다른 의미는 '오랜 열정'이었다.
나에게 그런 열정이 있는지도 몰랐지만 이미 시간이 증명해 주고 있었다.
17년 동안 가슴에 품고 있었다면 그게 열정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 열정은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불가능할 것 같은 일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오랜 집착'이 있을 것이다.
이제 와서 끄집어내기엔 너무나 어린 시절 동심의 바람일지라도
피 끓는 청춘에 세상 물정 몰라 품은 무모한 도전일지라도
다 커버린 당신의 가슴에 아직도 결핍을 느끼게 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오랜 집착'이다.
그리고 시간이 증명해 준 '오랜 열정'이다.
레고 조립을 좋아했던 아이가 아티스트가 되게 하고
기록에 집착했던 아이가 글쟁이가 되게 하는
그 무엇도 가능하게 해 줄 '축적의 시간'이다.
당신의 오랜 집착은 무엇인가.
딴
BOOK 나는 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The Art of the Brick / 네이선 사와야 / 2016.06.01
BLOG 열정에 기름붓기 :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오타쿠 / blog.naver.com/passionoil / 2016.11.23
WEBSITE http://www.brickartist.com
늘상하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우리는 "타성에 젖어 있다"라고 합니다.
[딴생각]이란 타성이 아닌 '관점의 전환' 또는 '좋은 영감'을 의미합니다.
[딴생각] 61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