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몰입과 딴생각 ep.7 - 영화 [던전 앤 드래곤]을 보고,
게임 IP 사업을 담당하는 연인이 영화 <던전 앤 드래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사실 일과는 무관하고, 오랜만에 재밌게 나왔다는 서양 판타지 영화를 보고 싶어 했던 듯하다. IP 콜라보레이터로서 일한 지 4년 차. 콘텐츠 IP든, 캐릭터 IP든 모든 IP 사업은 '팬덤'을 기반으로 한다지만, 좀 더 대중에 기대느냐 아니면 정확한 팬층에 기대느냐의 차이는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게임 IP가 그렇다. 우리 IP의 팬층은 얼마나 크고, 어떤 연령층을 타깃으로 하며, 팬들의 특성을 어떠한지까지 보다 쉽게 증명해 낼 수 있다. 유명한 글로벌 게임 IP와 콜라보를 진행하면서 게임 IP를 더 매력적으로 느꼈고, 한때는 게임 IP가 콜라보에 조금 더 용이하다고 생각해 부러웠던 적도 있다.
뭐 아무튼, 던전 앤 드래곤은 내가 보기에는 썩- 그렇게 재밌는 영화는 아니었다. 완벽하지만 뻔한 기승전결에 오합지졸의 팀 캐릭터, 그리고 소소하게 계속 툭툭 던지는 미국식 유머가 내 스타일은 아니었기 때문. 그런데도 나름 볼 만한 이유가 있었다 생각한 것은 '게임 IP의 영화화'에 있어 나름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이 측면에서는 나름 재밌는 포인트들이 몇 개 있었기 때문이다.
1. 각자 역할에 충실한 캐릭터와 팀플레이 - 원작 게임을 잘 모르지만, 보통 게임은 직업을 선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저마다의 역할이 있고, 이 힘을 합쳐 하나의 팀으로서 게임을 전개해 간다. 그래서 '트롤'이니 이런 단어도 생긴 것이겠지? 제 역할을 못해 팀에 악영향을 끼치는 존재 말이다. 아무튼 영화에서도 각자에게 부여된 직업적 역할이 있고, '판타지 버전의 가오갤'처럼 오합지졸 캐릭터들의 팀플레이를 재밌게 볼 수 있다.
2. NPC 캐릭터의 등장 - 팔라딘 젠크는 누가 봐도 NPC였다. 곤경에 처했을 때 딱 하고 나타난 능력자 NPC.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고, 알려주고, 뭔가 뚝딱거리긴 하지만 영화 속 조력자의 역할을 게임의 NPC 특성을 부여해 삽입한 것이 인상 깊었다. 또, 영화에서 퇴장할 때 주인공 에드긴이 "앞에 돌이 있는데 피해서 갈까?"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일자로밖에 걷질 못해서 돌을 그대로 넘어가는 장면도 특유의 게임 캐릭터의 이동 방식인 것 같아 소소한 웃음을 주었다.
3. 게임 퀘스트 같은 전개 - 영화 전체 스토리가 '몇 개의 서브 퀘스트와 메인 퀘스트 깨기' 같은 느낌으로 전개된다. 개인 퀘스트도 있고, 팀 퀘스트도 있다. 미션이 주어지고 힘을 합쳐 팀플레이를 펼치고 나면 다음의 문제가 또 닥쳐온다. 어려움이 있지만 결국 성공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게임 퀘스트의 특성이 있다 보니 어느 정도 예측이 가고 뻔하게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지루한 방식은 아니었다.
4. 게임 속 주인공으로서의 영화 관람 - “이것은 당신의 모험이다”, "실패를 거듭해도 계속 도전하라"는 게임 세계관을 관통하는 대사는 영화를 관람하는 이들이 실제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일인자의 주인공처럼 느끼게 해 준다. 원작을 모르는 이들도 충분히 무리 없게 보게 하면서도, 게임 원작 팬들에게는 아는 만큼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