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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플랜트 해외영업(B2B) 직무 이해하기

내가 직접 정리해보는 해외영업 업무 A to Z

by Ohms

필자는 플랜트 산업의 해외영업 부서에서 5년 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해외영업이라고 할 수도 있고, 수주영업이라고 할 수 있으며, B2B 영업의 한 종류라고도 할 수 있는 업무이다. 해외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해외영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동차, 반도체, 식품과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B2C와는 차이가 있고, B2B 내에서도 기계, 장비, 원재료를 판매하는 제조영업과도 일부 차이가 있다. 오늘은 해외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해외영업들 중 작게는 수백 억불에서 크게는 수십 억불의 공사를 수주하는 수주영업이 어떤 업무를 하게 되는지에 대해 개괄적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수주영업의 기본적인 특징이 있다면


하나의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한 업무주기가 다른 산업에 비해 긴 편이다. 프로젝트의 진행 단계, 대상물 특징,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리고 한 개 프로젝트의 공사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유전 개발부터 발전소 건설까지 다양한 대규모 플랜트 공사들이 여기에 포함되며, 아래 캡쳐한 Kitimat LNG 개발 프로젝트의 경우 플랜트 cluster 건설에만 총 40억불의 금액이 투입될 것으로 보임을 알 수 있다. 40억불의 돈을 받아서 얼마의 비용으로 얼마의 기간 동안 어떤 파트너와 어떤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모든 내용을 제안서에 담기 위해서는 1년이라는 시간이 부족한 경우도 많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수시로 대응하며 솔루션을 찾아낼 수 있는 끈기가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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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트 산업은 sole player 로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위 기사를 예시로 본다면, 미국Louisiana에 800만 톤의 LNG를 년마다생산하게 될 대규모 LNG 플랜트 설비 개발권을 한국의 SKE&C와 KBR이라는 두 회사의 JV를 갖게 되고, 이들이 바로 해당 공사의 주문주(or 발주처)가 된다. 한화 기준으로 4~5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공사의 세부 Scope에는 설계부터 구매, 제작(+설치)까지 포함되는데, 발주처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field 개발을 위해 각 scope을 어떤 식으로 분리/통합해서 발주를 하게 될 지를 고민하게 된다.


내가 근무했던 플랜트 산업에서는 주로 이런 field development의 '설계 일부 + 제작' scope의 입찰에 참여했으며, 삼성Engineering 이나 현대Engineering 같은 회사가 '설계' scope 입찰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일관된 공사수행이라는 전략적 강점을 어필하기 위한 목적으로 '삼성Engineering + 삼성중공업'과 같이 설계사와 제작사가 Consortium이나 Joint Venture를 구성하여 입찰에 참여하기도 한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별도로 설명하도록 한다.)


프로젝트 하나의 규모가 워낙에 큼직하다보니 한 회사가 독자적으로 모든 capacity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공사 참여 요건 자체에 미달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때문에, 경쟁력 있는 입찰 참여를 위해 좋은 partnership을 찾게 되는 것은 이 시장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두 회사가 한 편이 된다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고, 엄청난 업무로드를 야기한다. 그래서 또 끈기가 필요하다.


EPC 산업이란?
여기서 잠깐. 플랜트산업이라하면 아마 관심 없는 사람들도 들어봤을만한 단어가 있을 것이다. 바로 EPC(Engineering, Procurement,Construction)이다. 플랜트 분야에서의 핵심역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EPC 역량이 필요하다는 말을 밥 먹듯이 외쳐대고 있지만, 실상은 여러모로 역량이 부족하여 주문주(or 발주처) 측에서도 '제작(Construction)' 부분만 한국 업체들에게 분리하여 발주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죽어라해도 잘 안 되니까 어떻게든 하고 싶어서 EPC를 연일 외쳐대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겠다. 무튼 한국은 EPC의 강자가 아니라 'C'의 강자이고, 안타깝게도 'C'는 주문제작에 불과한 value chain 단계로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사실과는 달리 부가가치 창출이 거의 없다.


플랜트 수주영업 단계를 알아보자

1. Pre-Qualification Issue

발주처는 자신들의 개발계획을 토대로 입찰 참여 대상 회사들을 list-up하고, Pre-Qualification(PQ, 사전자격심사)을 시작하게 된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이런 대규모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 회사들이 전세계에 많지는 않겠지만 여러 업체들 중 player들을 추리기 위한 단계라고 보면 된다. 취업으로 보자면 소위 '서류전형'이다.

모든 업체들로부터 견적을 받아보면 좋겠지만 견적을 받고 valuation을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manpower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기업의 reference, technology, financial status, capacity 등과 같은 요소들을 대략적으로 파악하여 역량 미달의 업체를 걸러낸다.


2. Pre-Qualification 완료

내가 재직했던 플랜트 제조업체의 경우 PQ 문의를 받은 뒤 정해진 시일 내에 주문주 측에서 요구한 양식에 맞추어 당사의 자료를 준비해서 주문주 측에 송부하게 된다. 주문주는 모든 업체들로부터 자료를 접수하면 일정 기간 동안 평가를 거친 뒤PQ에 통과한 업체들에게 PQ 통과를 통보하게 된다. (PQ에서 떨어지면 재앙이 일어난다. PQ에서 떨어지는 일은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주 종종 일어남으로써 사내의 어르신들을 놀라서 펄쩍 뛰게 만든다.)


3. Instruction to Bid Issue

이렇게 PQ를 통과한 업체들을 대상으로 본입찰이 시작된다. 그리고 Instruction to Bid(ITB)라는 것이 PQ를 통과한 업체들에게 issue 된다. ITB는 소위 말하는 입찰 설명서라고 보면 된다. 자신들이 수행하고자하는 공사가 어떤 공사인지, 너희(제작업체)들이 수행해줬으면 하는 업무 scope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수행해야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ITB의 분량은 공사의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단 엄청나다. 계약서+업무범위 설명만도 수백 페이지가 넘고, 각종 기술사항 문서까지 합치면 수천 페이지가 넘어간다. (관리는 막내 몫이다. 제길..)

무튼, PQ를 통과한 플랜트 제작업체들은 ITB를 열심히 보면서, 견적을 준비하고, 프로젝트 실행(제작) 계획을준비하게 된다. 당연히, 업체마다 manpower의 숙련도, 노무비,공법(construction method), capacity 등등의 resources가 같을 수 없기 때문에 견적 및 공사 수행 계획들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각자 업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계획과 견적을 열심히 준비한다. 신기한 사실은 준비 기간이 3개월이어도 시간이 빠듯하고, 6개월이어도 빠듯하고, 1년이어도 빠듯하다는 사실이다. 주어진 time frame에 관계 없이 엄청난 강도의 빡근과 야근은 정해져 있는 듯하다. 수주영업인에게 체력보다는 초수퍼울트라 멘탈이 더 필수적이다. 적극 어필해 볼 것.


4. Proposal 제출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최종 제출하게 되는 결과물을 입찰서 or Proposal 이라고 부른다. 보통 ITB가 issue되고 입찰서를 제출하는 시점까지 3개월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짧은 기간이 주어지기도 한다. 작은 규모의 공사인 경우 그렇다.) 그렇게 빡세게 입찰서를 준비해서 주문주에 Proposal을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최종 계약자 선정 전까지 주문주와의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진다. 주문주는 자신들이 받은 입찰서를 기준으로 Commercial 과 Technical 사항을 나누어 일일이 검토하면서 궁금한 사항들 내지는 변경요청사항이 있는 경우 수시로 메일을 보내기 시작한다.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순간 나가리 되는 만큼 발빠른 대응이 중요하다. 남들 퇴근할 때 몰아 닥치는 메일을 접수하고, 유관 부서에 업무협조전을 날리고 회신을 기다리기를 반복하는 로테이션의 시작이다.


5. Shortlisted & Negotiation

주문주는 업체들로부터 접수한 Proposal을 싸그리 모아서 evaluation에 들어간다. 어느 업체의 가격이 저렴한지, 공법은 어디가 좋은지, 공기는 어디가 짧은지, 실현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계획은 촘촘한지 등등 자신들이 정한기준에 맞추어 각 업체들의 입찰서를 평가하게 된다. 그리고, 통상 2~3개 업체를 1차면접 통과자로 선정하여 부르게 된다.

주문주 입장에서 궁금한 것들도 많고, 가격을 깎고 싶은 부분도 있을수 있다. 그러려면 당연히 경쟁자들을 2~3명 데리고 가는게좋기 때문에, 2~3개 업체로 협상대상자를 추린 뒤에negotiation에 들어가게 된다. 괴로움의 시작..서로 경쟁시키면서 끝까지 좀 더 자신들(발주처)에게유리한 방향으로 끌어가는게 당연하다. 우리가 더 잘할게, 우리가더 잘할게, 업체들간의 끊임없는 제살깎기도 여기서 많이 일어난다. 앞서 EPC를 설명할 때 언급했지만 Construction은 아무리 실력이 좋아서 value를 add하기가 어렵다는 점 때문에 그렇다. 슬프다.


6. Contract

그리고 이 빡센 단계를 거치고, 최후의 1인으로 살아남게 되면 수주에 성공하게 된다. 주문주가 깎을 대로 가격을 깎고 난 뒤 '우리는 너네로 하겠어!!'라고 하면, 이제 계약서를 마무리 할 준비가 시작된다. 영업, PM, 설계, 생산 등등 각 부서의 담당자가 모두 모여 주문주와 최종 협의를 진행하게 된다. 공사 금액 자체가 조 단위에 이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대부분 계약식 행사는 성대하게 치러지는 편이고, 최종 계약서의 사인은 다 차려진 계약서 밥상에 사장 내지는 부사장이 직접 출동하여 사인을 한 뒤 정면을 향해 계약서를 들고 주문주의 Head와 함께 씨익 웃으면서 전방을 응시하며 계약식이 마무리된다.




플랜트 영업의 전반적인 프로세스는 이러하다! 물론, 중간 중간 생략된 부분들도 많고, 위에 작성한 전형적인 프로세스대로 진행되지 않는 부분들도 많다. 그래도, 플랜트산업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수주영업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많이 도움 될 거라고 생각한다. 피곤에 쩌들지 않는다면 시리즈로 글을 써보도록 하겠다.



Oh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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