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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쌍바 Nov 14. 2023

원작의 힘을 알아버린 이작가의 오늘

2028년 11월 10일 금요일, 맑음

“컷!”


감독의 우렁찬 목소리에 흠칫 놀라 마시던 커피에서 입을 뗐다.


“원빈씨 다시 한번 갑시다 액션!”


감독의 지시대로 배우는 신명나게 연기를 시작했고 나는 마시던 커피를 다시 홀짝거렸다.

그렇다. 오늘 내 시야에 펼쳐진 풍경은 나의 첫 소설, ‘반듯한 남자의 가을 살인’ 이 드라마화 되고 있는 촬영 현장이었다.

오랜 공백기를 깨고 나온 배우 원빈, 영화 ‘아저씨’ 이후 들어가는 그의 첫 작품이 나의 소설이라니!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살짝 손을 아래로 뻗어 허벅지를 꼬집어 보았다 ‘아팠다’


톡톡 누군가 나의 어깨를 두드려 돌아보니 낯익은 여자가 서있었다. 계약할 때 만났던 드라마 제작사 팀장이었다.

'아, 그냥 모른채 지나가시지’

“왜 이렇게 구석에 계세요?” 라는 그녀의 말에 뜨끔했다.

사실, 이 자리는 초대 받아서 간 자리가 아니다. 내 소설이 어떻게 영상물로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궁금증.... 도 있지만 남자 배우 실물영접이라는 극히 사심을 채우러 간거라서 뜨끔했나보다.

민망함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나의 모습이란... 나이를 헛먹었나보다.


"원빈씨를 18년만에 촬영장에서 보게됐네요. 다 작가님의 원작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각색을 더 잘해주셨어요”


어색한 덕담을 몇마디 주고 받고 그 곳을 빠져나왔다.




파주 출판단지로 향해 달리는 나의 애마 마이바흐, 오늘따라 융단 위를 달리듯 부드러웠다. 그렇게 느끼는 건 나의 따끈따끈한 신간을 받으러 가는 길이라 그랬을 것이다.


“이 작가님, 나오셨어요? 저희가 댁 근처로 가도 되는데..” 라며 늘 상냥한 미소로 반겨주는 출판사 직원들.  

“내 애기 제일 먼저 업어가고 싶어서요” 라는 댓구에 그 마음 이해해요의 표정을 지어준다.


미팅룸 창으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따스했다. 그 온기 만큼 따끈한 나의 신간이 책상 위에 놓였다.

이 많은 책이 오늘 다 필요하냐는 직원의 물음에 내 얼굴에 흐믓한 미소가 번졌다.


“네 오늘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이 좀 많네요”


핸드백에서 손에 익은 펜을 꺼냈다. 그리고 신간 표지를 넘겨 정성스레 싸인을 하고 감사의 메시지를 적었다.


‘나의 슬초 브런치 2기 동기들, 사랑합니다. 함께 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어요. 감사합니다. 2028년 11월 10일, 작가 쌍쌍바’


가슴이 벅차올랐다. 글을 쓰고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모였던 2기들, 5년 동안 각자의 속도로 하나 둘 작품을 내놓더니 지금은 여러 곳에서 인정받는 작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 드라마 촬영장의 나도 지금 내 앞에 놓인 따끈따끈한 신간도 없었을 것이다.

50권의 책에 싸인을 하다보니 시간이 금방 가버렸다.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아 서둘러 짐을 싸는데 출판사 대표가 들어왔다.   

인사차 들어왔다면서 '다음 작품도 저희와 계약 부탁드립니다' 라는 정중한 멘트를 남겼다.

인사치레인지는 모르겠지만 깨나 설레이게 했다.

더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어서 서둘러 파주를 빠져나와 자유로를 달렸다. 잠실까지 가려면 서둘러야했다.



'롯데시그니엘 그랜드볼룸 컨벤션'

모임 장소에 들어서자마자 왁자지껄 열기가 대단했다. 다들 바쁜 활동으로 한동안 모임이 힘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느라 홀이 쩌렁쩌렁 울렸다.

오늘따라 동기들의 건배사는 낭만적이고 샴페인은 달콤했다.

모임의 끝자락에 나의 신간을 한권씩 들고 나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5년 후의 나를 상상해 보았다.

그때도 이 자리에 이들과 함께 할 수 있겠지? 생각만으로도 짜릿한 기쁨이다.


11시가 넘어서야 한남동 집으로 향했다. 강북으로 넘어가는 다리 위에서 반가운 메시시가 도착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한달에 한번, 주말 외출이 가능한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인지 부쩍 전화나 메시지를 자주 한다.

내용은 대부분 비슷하다. '공부가 힘들다, 기숙사 친구가 코골이가 심하다, 급식이 맛없다' 등등

그 중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자신이 집에 오는 날에는 꼭 엄마가 집에 있기를 바란다는 신신당부이다.

그동안 취재하고 글쓰고 미팅한다고 아들과의 한달에 한번 그 약속을 못지키곤 했다. 이달에는 아들을 위해 모든 시간을 비워두려고 한다.


집에 도착하니 여기에도 코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대자로 누워 잠든 남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들아~ 이 엄마는 20년째 코골이와 함께 하고 있단다, 그깟 3년.. 잘 이겨내길 바란다'

몇잔의 샴페인에 달뜬 두 뺨을 식히기 위해 테라스로 나갔다. 11월의 한강 바람은 뺨이 아니라 내 온몸의 열을 내리기에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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