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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는이야기 May 17. 2016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속
인물 뜯어보기

나무가 되려는 여자, 처제를 탐하는 형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17일 2016년 맨부커상을 받았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이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자신이 원하는 그대로의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가 됐다는 한강.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의 하나인 2005년 그의 단편 <몽고반점>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할 때 한강은 다음과 같은 소감을 말했다. 


"다음의 소설들은 여성의 시각으로 종내에는 인간의 영성에 이를 때까지 탐구해 가려고 한다. 아주 오랫동안, 띄엄띄엄 써나가야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또 다른 인터뷰에서 한강은 "소설을 쓸 때 저도 모르게 어떤 빛이 새어나오는 출구 같은 걸 향해 몸을 뻗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강의 이 두 발언은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힘 같은. 실제로 한강은 "아름다움의 극단을 그리고 싶었다"는 말로 소설 <몽고반점>의 작품 후기를 전했다. 이런 한강의 태도나 시각은 그의 소설 <채식주의자> 속 인물들의 삶에도 고스란히 남았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 또한 자신의 내적 고민을 위해서라면 그 끝에 무엇을 보게 되더라도 주저하지 않으니까.


주저하지 않는 <채식주의자> 속 인물들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으로 이뤄진 연작소설이다. 이 짧은 단편의 화자는 모두 다르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영혜'를 둘러싸고 그와 관계를 맺거나 그를 소비하고 있다. 말하자면,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남편과 형부, 언니 이렇게 세 사람이 쓰는 '영혜에 대한 관찰일지'다.


영혜는 어느 날 동물의 살점을 물어뜯는 꿈을 꾸고 집에 있는 고기를 모두 버린다. 그리고 '채식주의자'가 된다. 종교적인 이유나 윤리적인 이유도 아닌 단지 꿈을 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기를 입에 대지 않게 된 것이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영혜의 완강한 거절은 그녀가 해주던 고기반찬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남편이나 가족들에게 교정해야 할 무엇이 된다. "채소만 먹는 건 몸에 나쁘기 때문"에 채식주의를 그만두라며 그녀를 위하는 듯했던 가족들은 결국 그녀의 입을 억지로 벌려 폭력적으로 고기를 쑤셔 넣는다. 


영화 <채식주의자> 스틸컷


하지만 영혜는 아랑곳하지 않고 끝없이 무언가를 향해 내달린다. <채식주의자>의 에너지는 파국으로만 끝맺지 않는다. 인간의 폭력이 너무 싫어서 더 이상 인간이고 싶어하지 않다며 극한을 향하는 영혜는 고기만이 아니라 다른 식단도 거부한다. 그리고 이내 나무가 되길 꿈꾼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영혜의 내적 완결성이 도달한 결말은 인간으로서 나무가 되는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이었다. 


네가! 죽을까봐 그러잖아! 영혜는 고개를 돌려, 낯선 여자를 바라보듯 그녀를 물끄러미 건너다보았다. 이윽고 흘러나온 질문을 마지막으로 영혜는 입을 다물었다. …… 왜, 죽으면 안 되는 거야?


자신의 동생을 걱정하는 언니에게 "왜 죽으면 안 되냐"고 묻는 동생. 여기서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질문은 별로 의미가 없다. 그녀의 삶이 그렇게 하기로, 끝까지 가기로 결정한 것이므로. 그것이 그녀가 자신만의 삶을 사는 방식이다. 


<몽고반점> 역시 마찬가지다. <몽고반점> 속 남자는 처제 영혜와의 정사를 꿈꾸고 있다. 그가 금단을 꿈꾸기 시작했던 건 아내에게 영혜의 엉덩이 위에 아직까지도 몽고반점이 남아있다는 말을 들으면서부터다. 


배가 나온 중년의 형부는 처제와의 정사를 꿈꾸는 '추한' 사람이지만, 작가는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듯 윤리적 세계를 무시하거나 잠시 접어둔 채 예술혼을 성취하는 것에만 온 힘을 기울인다.


화가인 형부는 꽃이 피고 지는 장면을 육체로 표현하길 원했고, 그것은 곧 처제와의 정사를 뜻했다. 파국을 예상하면서도 끝내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얻기 위해 그는 앞뒤 가리지 않는다. 한강이 말한 "아름다움의 극단"이다. 


"더럽혀지지 않는 인간의 투명함에 관심"


채식주의자 책을 들고 서 있는 한강. ⓒ연합뉴스


한강 작품의 결말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는 근원적 폭력이나 근본적인 소통, 윤리적 고민과 같은 고귀함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건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이 이처럼 끝없이 도달하고 싶은 무엇인가를 향해 손을 뻗기 때문이다. 


5.18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폭력에 맞서 스스로 윤리적 선택을 하려는 소년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 역시 마찬가지다. 한강 작품 속 인물들은 끝내 인간이 어떤 종류의 고귀함을 성취해낼 수 있을 거라 믿게 만든다. 끝에서 이들은 무엇을 발견할 수 있나. 한강은 무엇을 발견했나. 한강의 작품은 이제 어디로 나아갈까. 


한강은 지난 10일 KBS <TV책>에 나와 "아주 밝고 눈부시고, 아무리 더럽히려고 해도 더럽혀지지 않는 인간의 투명함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또한 6월에 나올 자신의 소설도 이에 대한 내용이라고 한다. 


그가 그리는 인간은, 늘 내면 깊숙이 침잠하다가 내면으로 또 내면으로 나름대로 정한 원칙의 뿌리를 드리우고 만다. 10년 전 한강이 말한 것처럼, 한강이 그리는 소설 또한 이들처럼 "영성에의 차원까지" 고집 있게 파고 들어갈지도 모른다. 한강이 닿으려는 그 차원이 어디든, 무엇이든 계속 쫓아가고 싶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유지영 기자가 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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