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는이야기 Jun 22. 2016

오일머니의 땅 두바이 여행

[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 렌터카로 국경 넘기, 하지 말았어야 했다

거울 앞에서 물었다. "너, 지금 행복하니?" 이 질문의 답은 '사표'였다. 배낭을 멨고, 지구를 한 바퀴 돌겠다며 길을 나섰다. 좌충우돌 세계일주 여행기를 연재한다.





파키스탄에서 제일 고민스러웠던 건 이란으로 넘어가는 일이었다. 파키스탄에서 이란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언제 나올지 모르는 이란 비자를 기다려야 하고 비자가 나온다고 쳐도 육로 이동의 경우 탈레반 활동지역을 지나야 하는 등의 위험이 따랐다. 이런 현실적 어려움 앞에 아랍에미리트란 대안을 떠올렸다. 애당초 트레킹과는 거리가 먼 나라였기 때문에 루트 제1안에 있던 나라는 아니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초장거리 이동과 트레킹으로 체력이 조금 떨어진 느낌이었다. 여기다 저주받은 혀 탓에 한식에 대한 갈증이 서서히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나라가 바로 아랍에미리트였다. 특히 이 나라에는 운 좋게도 고급 레지던스호텔에 머물며 외화벌이를 하는 든든한 선배가 있었다.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음 행선지를 정하자는 정도였다. 그러다 선배가 오만 여행을 제안했고, 그 과정에서 세계 일주 중 최고의 광분을 맛보게 되는데...

       


[이야기 1] 트레커에게 너무 잔인했던 나라


아랍에미리트 입국수속은 간단했다. 귀티가 잘잘 흐르는 아랍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입국심사관은 한국 여권을 보고 아무 말 없이 30일 동안 체류할 수 있는 도장을 찍어주었다. 옆줄에서 입국심사를 받던 한 아랍인이 공항경찰에 끌려가고 있었다. 가끔은 한국인이라서 여행이 편할 때가 있다.

심사대를 통과해 수화물 찾는 곳으로 갔다. 첫눈에 하이네켄 맥주를 박스째 판매하는 매장이 보였다. 비즈니스 도시 두바이의 이중적인 면모였다.


짐을 찾고 환전을 한 뒤 공항을 빠져나왔다. 두바이는 시작부터 '억' 소리를 지르게 했다. 오일머니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공항 외관은 세련미가 넘쳐흘렀다. 중국과 파키스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초현대적 감각의 건축미가 돋보였다.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소매치기나 호객행위를 겁낼 필요도 없었다. 두바이는 편안함 그대로였다.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목적지를 묻고는 자연스럽게 미터기를 켰다. 깔끔한 제복 차림의 택시기사와 뻥 뚫린 도로는 사악하기 짝이 없는 두바이의 택시요금 만큼이나 내 마음을 놀라게 했다.


     

네팔 출신 택시기사는 친절했다. 그는 내 국적을 묻고는 형과 동생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두바이에서 일하고 있는 대부분의 노동자는 파키스탄, 네팔, 인도, 필리핀 등에서 온 외국인이다. 현지인들은 펑펑 솟는 기름 덕분에 허드렛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택시가 도심 한복판에 들어섰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부르즈 할리파'(828m)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이 빌딩은 우리 기업이 시공을 맡아 건설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제야 두바이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멋들어진 빌딩 숲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이 택시기사는 기름이 없다며 주유소에 가야 한다고 했다.

'맙소사! 리터당 500원.'

분명 두바이에선 물보다 기름이 쌌다. 중형자동차의 연료통을 가득 채워도 3만 원이면 해결되는 수준이었다. 택시 연료로 LPG를 쓰는 건 사치였다. 연비를 따질 필요도 없었다. 택시가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매혹적인 빨간색 페라리가 묵직한 엔진음을 발산하며 총알처럼 도로를 내달리고 있었다. 고속도로는 최고급 자동차들의 경연장이나 다름없었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 위에서 맵시 좋은 자동차를 감상하며 도착한 곳은 두바이 마리나 베이 근처의 JLT. 이곳은 고급 레지던스가 몰려 있는 동네로 두바이에서 내 '꽁 숙소'가 위치한 곳이기도 했다.



북유럽 못지않은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두바이에선 선배 잘둔 덕분에 꽁 숙식을 제공받게 됐다. 그것도 수억 원을 호가하는 수영장 딸린 레지던스가 내 숙소였다. 배낭여행자에게는 너무나 사치스러운 숙소였다. 금방이라도 살을 태워버릴 것 같은 두바이의 열기는 레지던스의 성능 좋은 에어컨 앞에선 추풍낙엽이었다.

선배는 나를 위해 냉장고와 찬장에 각종 음식을 빵빵하게 채워주었다. 선배는 아침 일찍 회사에 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왔다. 난 그동안 그간의 여행을 정리하고, 몸을 추스르며 시간을 보냈다. 쉬어가는 타이밍으로는 안성맞춤인 환경이었다.

무엇보다 카라치에서부터 슬슬 좋지 않았던 속을 다스릴 시간이 필요했다. 두바이에 도착한 뒤부터 설사가 시작됐다. 장염 증세가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이런 상태라면 죽을 먹어야 마땅했지만 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식탐에 이끌려 인스턴트 식품을 폭풍 흡입했다. 여기다 중동 최고의 비즈니스 도시답게 손쉽게 알코올을 들이켤 수도 있었다. 더없이 좋은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두바이 도착 나흘째 날 처음으로 여행을 위해서 레지던스를 나섰다. 두바이의 여름 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도시 전체가 벌겋게 달아오른 숯가마 같았다. 태양은 이글거리다 못해 모든 걸 말려버릴 기세였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메트로까지 걷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숙소를 나서자마자 순식간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냈다. 애써 바른 선크림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몸을 던지듯 메트로 안으로 뛰어 들었다. 한국 같으면 필시 과냉방으로 단속 대상이었을 엄동설한의 북풍한설이 순식간에 열기를 식혀주었다. 두바이는 이런 과냉방이 생활인 곳이다. 원유생산국의 부러운 현실 중 하나다.



무인운전으로 움직이는 열차 내부의 냉방도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고, 시설은 쾌적했다. 목적지에 가려면 환승을 해야 했다. 환승 거리도 짧고, 표지판도 알아보기 쉬웠다. 환승을 하고 다시 열차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

"저, 실례합니다." 

옆자리에 앉은 어여쁜 중동의 미녀가 말을 걸어왔다. 여행 중 제대로 로맨스가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하늘에서 온 천사처럼 자체발광하며 영롱한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예뻤다.

"네~에?"

목소리가 약간 떨리기까지 했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도도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녀가 다음 말을 이어갔다. 난 귀를 쫑긋 세웠다. 그리고 현실 속의 그녀는 순식간에 내 환상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인정이라고는 찾아볼 수없는 매서운 한마디였다.

"이 열차 칸은 여성전용 칸이에욧!"
"웁! 웁! 웁스!"

가만 보니 모든 승객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여자였다. 잠시 두바이의 세련미에 얼이 빠져 이슬람국가라는 걸 망각한 참담한 결과였다. 날 보고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리는 웃음도 들렸다.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진짜! 몰랐어요. 죄송합니다욧! 절대로 고의가 아니랍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채 그녀에게 목례를 하고 옆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녀칠세부동석만큼은 확실한 것이 이슬람 국가다. 공항에서 하이네켄을 박스째 파는 두바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파키스탄에서는 미니버스를 타면 한 줄에 여자들이 몰려 앉는 식이었다. 여성전용 칸이 있는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여행 중 로맨스는 절대 쉽게 찾아오지 않는 법이다.

                                                      

여행 정보

할리파는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의 이름인 할리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에서 따온 말이다. 부르즈는 아랍어로 '탑'이란 뜻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부르즈 할리파는 개장되기 전까지 버즈 두바이(Burj Dubai)로 불렸다.


   

부르즈 할리파는 두바이 신도심 지역에 건설된 초고층 건물로 전체 높이가 828m다. 2004년 9월 21일 착공해 38개월 만인 2008년 4월 8일 지상 높이 630m에 도달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공 구조물로 등극했다.

시행사는 두바이의 에마르이고, 한국의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시공사로 참여해 3일에 1층씩 올리는 최단 공기 수행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총 공사비는 15억 달러가 소요됐으며 2009년 10월 완공됐다.

부르즈 할리파 전망대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공식 홈페이지(www.burjkhalifa.ae/en)에서 꼭 예약을 해야 한다. 만약 예약을 하지 않고 현장에서 티켓을 살 경우 3배가 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특히 가장 인기 있는 일몰 시간대는 수주 전에 예약이 마감된다.



[이야기 2] 귀여운(?) 소매치기



'올드쑥'은 단군신화에 나올 법한 오래된 쑥을 말하는 게 아니다. '쑥'은 '시장'을 뜻한다. 올드쑥에 가기 위해선 앨 구바이바 마린역에서 내려 1디르함짜리 배를 타고 반대편 선착장에 내리면 된다. 메트로에서 빠져나와 선착장으로 가기 위해 작은 상점골목에 들어섰다. 기념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었다.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잠시 기념품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정체불명의 남자가 다가와 순식간에 내 모자를 벗겨 상점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잠시 멍하니 허전해진 머리를 쓰다듬었다. 모자를 찾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상점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난생처음 당해 보는 고도(?)의 호객기법이었다.

상점 주인은 당연히 여기로 올 줄 알았다는 듯 의기양양한 웃음으로 날 반겨주었다. 그는 내게 아랍 사람들이 머리에 두르고 다니는 터번을 250디르함에 사라고 했다. 기가 막혔다. 250디르함이면 7만 원이 넘는 돈이었다. 난 모자를 돌려달라고 했다. 상점 주인은 요지부동이었다. 모자도 주지 않았고, 날 보내 주지도 않았다. 배짱도 이런 똥배짱이 없었다.

상점 주인은 파키스탄 사람이었다. 내가 만난 파키스탄 사람은 이런 식으로 여행자를 괴롭히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파키스탄인이라 게 의심쩍어 출신 도시를 물었다. 상점 주인은 카라치가 고향이라고 했다. 불길한 육감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카라치는 파키스탄에서도 가장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치안이 불안하기로 정평이 난 곳이다. 또 갱들이 지역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어 불법·편법이 판을 치는 도시다. 두바이로 넘어오기 전 카라치에서 며칠을 보냈기 때문에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몇 번의 협상 끝에 터번 가격은 30디르함까지 떨어졌다. 상점 주인은 더는 값을 싸게 부르지 못했다. 마지노선인 듯했다. 아무리 싸도 필요 없는 물건을 살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물건을 사지 않으면 날 보내 줄 것 같지 않았다. 핑계를 찾아야 했다. ATM에서 돈을 찾아 오겠다는 거짓 멘트를 날렸다. 주인도 돈이 없다는 날 보고 더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눈치였다. 무사히 땀 냄새 나는 모자를 돌려받고 상점을 나왔다. 그리곤 빠른 걸음으로 앨 구바이 마린역으로 향했다.

배 위에는 몇 명의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한 50대 남자와 눈이 마주쳐 눈인사를 건넸다. 남자는 내 눈인사에 반응이 없었다. 잠시 뒤 그늘 쪽에 앉아 있던 이 남자가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자는 두바이의 열기가 성에 차지 않는지 큰 엉덩이를 내게 바짝 붙이며 끈끈한 체온으로 내 몸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타죽을 것 같은 더위도 모자라 내 체온까지 느껴보려는 냉기 가득한 이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난 반대편으로 엉덩이를 움직여 수족냉증에 걸렸을지 모를 이 남자와 거리를 두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남자는 다시 내 엉덩이를 쫓아 한 번 더 엉덩이를 들썩였다. 나도 한 번 더 엉덩이를 움직였다. 예감이 좋지 못했다.

배가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두바이 베이의 모습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냈다.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르고 있을 때였다. 순간 바지 건빵주머니의 지퍼가 열려 있는 걸 발견했다. 지갑이 들어 있는 주머니였다.

'이상하네. 분명 지갑을 넣고 지퍼를 닫았는데...'

건빵주머니에 물건을 넣고 지퍼를 채우는 건 내가 여행 중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었다. 절대로 지갑을 넣은 주머니를 열어둘 리가 없었다. 다시 지퍼를 잠그고 옆에 앉은 남자를 슬쩍 쳐다봤다. 행색으로 봐서는 두바이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내 시선을 피해 동행과 열심히 수다를 떨고 있었다.

온 신경이 허벅지에 쏠렸다. 검은 선글라스 안에 감춰둔 두 눈으로 유심히 남자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왼쪽 새끼손가락이 건빵주머니 지퍼를 까닥거리고 있는 걸 포착하기 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참 애쓴다.'


                                                                                         

남자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동행과 이야기하는 척하며 왼쪽 새끼손가락으로는 딴짓을 하는 삼류 페인팅모션을 구사 중이었다. 놀라기도 했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다. 순간 허벅지를 한 번 들썩거려 봤다. 지퍼를 내리려고 안간 힘을 쓰던 새끼손가락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갔다. 남자는 내 행동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동행과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한 번씩 날 보고 거짓 웃음을 날려주는 앙증맞은 애교도 잊지 않았다.

소매치기나 도난분실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지만 여긴 두바이 아닌가. 아랍에미리트는 범죄에 대한 형량이 무척센 나라다. 이 때문에 치안도 매우 좋은 편에 속한다. 그래서 두바이에서는 약간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불길한 기운이 여지없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난 계속 딴청을 부렸다. 그러다 순간 고개를 돌려 한 번씩 옆자리 남자를 노려봤다. 먼저 장난을 걸었으니 나도 좀 재미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쯤 되면 포기할 만도 한데 이번에는 허벅지가 아니라 내 등 뒤로 손을 뻗어 내 배낭을 노리는 게 아닌가.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다리를 꼬고 그 위에 배낭을 올려놓았다.

배가 반대편 선착장에 닿았다. 고질적인 장트러블 덕에 한껏 가벼워진 몸을 날려 육지에 착지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찰을 찾았지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는 법이다. 주객이 바뀐 것 같았지만 죄 없는 난 올드쑥을 향해 줄행랑을 쳤다.

그리고 얼마 못 가 더위 먹은 강아지처럼 숨을 헐떡이며 과냉방 카페를 찾기 시작했다. 두바이 날씨는 미쳤다는 말로밖에는 표현이 안 됐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결사반대한다!"

                                                        

여행 정보

배낭여행자들에게 두바이는 정말 쉽지 않은 도시다. 무엇보다 살인적인 물가가 문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길게 있을 곳이 못 되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배낭여행자들이 흔히 이용하는 싸구려 게스트하우스 자체가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두바이를 방문하는 여행자 중에는 유스호스텔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이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호텔비용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불해야 잠자리를 구할 수 있다.

두바이유스호스텔은 스타디움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도미토리와 싱글룸 2가지 형태의 방이 있다. 도미토리는 회원가 90디르함, 비회원가 100디르함이다. 100디르함은 한국 돈으로 3만 원 정도다. 싱글룸은 회원가 200디르함, 비회원가 220디르함이다. 예약은 필수다. 데이라 지역의 호텔 밀집지역의 값싼 호텔도 최하 200디르함은 줘야 한다.




[이야기 3] 오만 여행 계획 그리고 절규


아랍에미리트에서 비교적 국경이 가깝고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오만 여행을 계획했다. 두바이에서 버스를 타면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까지 갈 수 있지만 난 걸프만의 꼭짓점 카삽(Khasab)으로 목적지를 잡았다.

여행 전날 숙소 근처 인디고란 렌터카 업체를 찾아가 오만여행에 대해 문의했는데 여기 직원들은 한국인이 비자 없이도 오만에 입국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일단 렌터카 업체에서 사실을 확인한 후 다음날 오전 차량을 빌리기로 했다.

오만 카삽에서는 따로 숙소를 잡지 않고 해변에서 야영할 생각이었다. 야영 준비를 위해 두바이의 더위를 무릅쓰고 한인슈퍼를 찾아가 소고기·고추장·라면 등을 챙기고 맥주를 얼려 놓았다.



다음날 오전 국제운전면허증 등을 제시하고 차량을 인수했다. 렌트한 차량은 도요타 야리스(1800cc)였고, 24시간 사용 비용은 120디르함이었다. 우리 돈으로 4만 원이 좀 안 되는 가격이었다. 

그런데 한국과 달리 운행거리가 170km를 넘으면 4km당 1디르함의 추가비용을 물어야 했다. 오만 카삽까지 왕복을 하려면 추가비용이 불가피했다. 이런 계약조건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렌트비용이 그리 비싸지 않았고 기름 값이 싼 나라여서 오케이를 했다. 그런데 나중에 추가 요금까지 정산을 하고 보니 그리 싼 것도 아니었다.

"혹시 렌트카로 오만에 입국할 때 필요한 서류가 있나요?"

내 질문에 '노만'이란 직원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했다. 

"그냥 가세요. 괜찮을 거예요.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우린 책임 못 져요." 

이 한마디가 헛발질 오만 여행의 단초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값비싼 차량이 즐비한 두바이에서의 운전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자칫 한 번의 실수가 내 세계 일주를 끝내버릴 수도 있었다. 페라리 같은 차와 사고라도 나면 평생 일을 해서 돈을 갚아야 할 위험성도 있었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일이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덩치 큰 고급차들이 보기 좋게 날 앞질러 나갔다. 순간 노란색 람보르기니 한 대가 미끄러지듯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웃!"



규정 속도를 지키며 방어운전·안전운전 모드를 유지했다. E11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오만까지 다이렉트로 연결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지도상으로 말이다. 두바이의 널찍한 도로에 적응하자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은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간 미니버스에 너무 시달린 탓에 나만의 공간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운전하는 맛은 남달랐다.

두바이를 빠져나오자 '샤르자 국제공항'이 보였다. 북동쪽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동쪽으로 길을 잘못 들어선 거였다. 30분을 헤맨 끝에 약간 둘러가는 고속도로를 다시 잡아탔다. 도로 양옆으로 끝없이 사막이 펼쳐졌다. 중간 중간 낙타들이 사막 한가운데 듬성듬성 나 있는 풀을 뜯고 있었다. 창문을 내리자 끓어오를 듯한 사막의 열기가 순식간에 에어컨 바람을 집어삼켰다.

오만 국경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안내판이 보였다. 잠시 뒤 아랍에미리트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나왔다. 여권과 차량등록증을 내밀었다.

"렌터카?!"
"넵!"
"렌터카는 오만을 다녀와도 된다는 회사의 증빙서류가 있어야 국경을 넘을 수 있습니다."
"서류라니요?"
"회사 직인이 들어가 있는 서류가 있어야 해요."

'책임이 없다는 게 결국 이거였구나! 지금 이걸 어떻게 구하나. 된장.'

난처함을 숨기지 못하자 출입국사무소 직원은 렌터카 회사에 전화해 팩스로 서류를 받으면 된다고 조언해 주었다. 초조한 눈으로 렌터카 계약서류에서 회사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하지만 내겐 결정적으로 전화가 없었다. 출입국사무소 직원은 전화를 쓰라며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회사 전화번호로는 통화가 되질 않았다.

몇 번씩이나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연결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없는 번호라는 메시지가 나온다고 했다. 대략 난감이었다. 다시 서류를 천천히 훑어보는데 차량을 인수할 때 차량검사를 담당했던 직원의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다시 이 번호로 전화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출입국사무소 전화기는 휴대폰 발신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난감함의 연속이었다. 어쩔 수 없이 휴대폰 앵벌이에 나섰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게 전화를 빌리는 일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전화가 있는 사람들에게 한 통화만 하자고 부탁하길 네 차례. 어렵게 직원과 통화가 됐다.

"오만에 가려고 보니 회사 서류가 필요하다고 하네요?"
"나는 지금 밖이고, 지금은 런치타임이어서 사무실에 아무도 없어요. 통화하고 싶으면 한 시간 뒤에 사무실로 해주세요."


무슨 놈의 런치타임이 오후 2시 30분부터 3시 30분까지인지 납득이 안됐다. 순간 울화가 치밀었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불러주는 사무실 번호를 받아 적기 바빴다. 그런데 막상 받아 적은 번호는 서류에 적혀 있는 번호와 똑같았다.

한 시간을 기다린 뒤 출입국사무소 직원의 도움으로 다시 전화를 시도했다. 회사 전화번호는 역시나 먹통이었다.

'젠장! 아 진짜!'


또 한 번 휴대폰 앵벌이를 시작했다. 남자·여자·애·어른 할 거 없이 휴대폰을 들고 있는 사람이면 보는 족족 부탁을 했다. 심지어는 청소를 하는 방글라데시 청년에게까지 한 통화만 쓰자며 애걸을 해야 했다. IT세계 최강국 코리아에서 온 휴대폰 없는 여행자의 암담한 현실이었다. 그렇게 전화를 빌려 어렵사리 노만이란 직원과 통화를 했다.

"내가 말했잖아요. 문제 있으면 우리 책임 없다고욧!"
"그건 알겠는데, 여기서 서류 한 장만 있으면 된다고 하니까. 직인이 들어가 있는 서류 한 장만 보내주면 안 될까요?"
"매니저와 통화해 볼 테니 10분 뒤 다시 전화하세요."

'이런 게맛살! 지금 어떻게 통화가 된 줄 알고 다시 전화하라 그래!'


참고 있던 욕이 가슴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혀는 별일 아니라는 듯 "오케이"라고 나불대고 있었다. 약자의 비애였다. 10분 뒤 어렵사리 다시 통화가 됐다. 그는 "그런 서류가 없다"는 무심하기 짝이 없는 답변을 늘어놓았다. 구걸한 휴대폰으로 길게 통화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아~ 내가 돈 좀 아끼고, 몸 좀 편하겠다고 쥐꼬리만한 회사에서 렌트한 죄다! 100m만 가면 오만인데 못 넘어가는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그런데 오만으로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했다. 내 두 발로 걸어가면 간단히 문제가 해결되는 거였다. 게다가 한국인은 무비자 입국 아닌가. 여길 넘어가는 차들은 거의 다 카삽으로 가는 차들이기도 했다. 그냥 돌아간다는 건 무의미했다. 출입국사무소 직원은 걸어가는 건 언제든 오케이라고 했다.

'걷자, 걸어. 누구 하나 태워주는 사람이 없겠어?'

수속을 하고 배낭을 챙겨 오만 출입국사무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미 오만 땅이었다. 오만 출입국사무소에 닿기 직전이었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나온 지 몇 분 만에 심경에 변화가 일어났다. 살인적인 중동의 열기는 삽시간에 날 태워죽일 것만 같았다. 여행에 대한 투지도 좋지만 일단 살고 봐야겠다는 생존욕이 발동했다. 순식간에 오만 여행에 대한 열정은 재가 돼 타들어 가고 있었다. 렌터카 회사를 뒤집어 놓고 싶었지만 살아 돌아가야 싸울 수 있었다. 뒤도 안 돌아 보고 발길을 돌렸다.


두바이를 출발한 지 8시간 만에 다시 숙소의 안락한 에어컨 바람 앞에 섰다. 그리곤 이를 갈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렌터카회사를 찾았다. 나는 내가 극도로 흥분해야 영어가 잘되는 사람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여행 정보

두바이에서 오만 여행을 계획했다면 버스를 타고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로 바로 갈 수 있다. 오만은 다행히 한국인에게는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 무스카트 지역에선 재래시장과 돌고래 투어 및 스노쿨링, 알 알람 왕궁, 오만 박물관, 그랜드 모스크 등이 볼 만하다. 또 수르 지역의 거북이 산란장, 외디 계곡, 쟈발 샴스 정상(3000m), 쟈발 악다르, 와히바 사막 등이 가볼 만하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김동우 시민기자가 쓴 기사입니다.

* 모든 시민은 기자입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바로 ‘뉴스’입니다. (☞ 시민기자 회원 가입)




매거진의 이전글 지옥길, 살짝만 밀려도 난 죽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