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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는이야기 Jul 13. 2016

요르단 페트라, 여기가 지구라니...

[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 중동의 보석 요르단 여행

거울 앞에서 물었다. "너, 지금 행복하니?" 이 질문의 답은 '사표'였다. 배낭을 멨고, 지구를 한 바퀴 돌겠다며 길을 나섰다. 좌충우돌 세계일주 여행기를 연재한다.


[이야기 1] 세계 7대 불가사의 페트라를 걷다

                                                      

페트라 트레킹 개요

♧ 교통편
와디 무사에서 택시를 이용하거나 숙소에서 제공하는 버스 편을 이용하면 된다.

♧ 트레킹 코스 및 시간
페트라 전체를 꼼꼼히 둘러보기 위해서는 이틀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 코스 분석
페트라는 바위 지대에 세워진 도시로, 방대한 면적을 자랑한다. 하루 만에 이곳을 다 둘러본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전에 지도를 보고 핵심지역을 찾아다니며 골라 보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알카즈네에서 알데이르 방향으로 코스를 잡는 게 일반적이다.

♧ 최적시기
봄과 가을

♧ 난이도


♧ 준비물
식수와 행동식, 선크림 및 모자

♧ 팁
페트라 내부 매점은 모든 게 다 비싸다. 충분한 식수와 간식을 준비하면 좋다. 페트라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매표소에서 개인 가이드를 구할 수 있다. 비용은 100달러 정도 한다.

♧ 전체 평
말이 필요 없는 곳이다! 애초 요르단을 찾은 건 페트라 때문이었다. 암만에서 출발한 버스가 사막 한가운데 놓인 '킹스하이웨이'를 3시간 남짓 달려 페트라의 베이스캠프인 '와디 무사'에 도착했다. 다음날 아랍계 유목민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해발 950m의 산악도시 페트라는 인류 역사에서 다시없을 신비로움과 섬세함을 고스란히 내 앞에 드러냈다.



페트라는 BC 6세기, 나바테아인이 서부아라비아에서 이주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서기 106년경까지 이지역의 무역과 상권을 주도했다. 그러다 106년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점령당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후기 로마시대에는 콘스탄틴에 의해 기독교화되면서 도시의 상업적 역할보다는 요르단과 남부 시리아의 종교적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후 6세기에 있었던 큰 지진으로 도시가 폐허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바위'를 의미한다.

페트라가 세상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뒤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10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젊은 탐험가 부르크 하르트는 카이로로 향하던 중 요르단에 엄청난 유적이 숨겨져 있다는 말을 듣고 아랍인으로 변장한 후 탐험에 나섰다. 1812년 그는 기억 속에서 지워져 버린 도시를 발견했다. 바로 페트라였다.

페트라는 멕시코 치첸이트사, 이탈리아 콜로세움, 페루 마추픽추, 브라질 예수상, 중국 만리장성, 인도 타지마할 등과 더불어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힌다. 특히 이곳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 3편의 무대로 잘 알려져 있다.

요르단 세수 중 20% 정도가 페트라 입장 수입이라고 하니, 이 유적이 전 세계인에게 얼마나 사랑받는지 알 만하다.


                                                              

여행 정보

여행자들의 입에 여행지보다 숙소가 더 많이 오르내리는 경우도 흔치 않다.

페트라의 베이스캠프 격인 '와디 무사'를 방문한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밸런타인인'이 바로 그런 숙소다. 여행 정보를 찾아보면서 이렇듯 극명하게 평가가 엇갈리는 곳도 흔치 않았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기도 했다. 악평의 내용은 이곳 여주인의 불친절이 도를 넘는다는 게 주다. 돈을 너무 밝힌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또 음식이 별로라는 내용 등도 눈에 띈다.

반면 숙소가 전체적으로 깨끗한 편이고 가격도 무난하고 각종 투어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도 많았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내 느낌은 합격점이다. 내가 갔을 때는 여주인이 없었다. 일단 암만의 클리프호텔과 만수르호텔의 위생 상태에 비하면 여긴 청정구역이나 다름없다. 여 사장이 없어서 그런지 남 사장과 직원들의 태도도 나쁜 편이 아니었다. 단 흠이라면 내가 원하는 싱글룸 가격이 그리 착하지 않았다는 것. 와디 무사의 물가를 고려하면 황당한 가격은 아니었다.

도미토리야 가격이 정해져 있어 그런 일이 없겠지만, 싱글룸은 상황에 따라 가격이 다른 것 같았다. 좋게 이야기하면 사람 봐가면서 가격을 탄력적으로 절충하는 듯했다. 네고는 필수다. 방을 보곤 그간 내 안목이 참 많이 떨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이 정도면 그럭저럭 지낼 만한 수준이었다. 일단 화장실이 깨끗했다.

특히 암만 만수르호텔에서 화장실 바닥에 바퀴벌레 3마리가 기어 다니는 걸 보고 깨끗한 숙소가 더 절실히 다가왔다. 난 정말 더러운 것하고는 잘 안 맞는 사람이다.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 아놔! 그렇게 큰 바퀴벌레는 난생처음이었다. 변기 뚫는 펌프를 갖고 사정없이 바퀴들을 찍어 눌렀다. 바퀴들은 우사인 볼트 급 달리기 실력으로 필사적으로 내 공격을 피해 다녔다. 아차 하면 놓치게 된다. 바퀴벌레가 크다 보니 최후를 맞는 모습도 처참하기 그지없다. 이후 묘사는 생략.

아무튼 그런 환경에 비하면 밸런타인인은 반도체 공장 수준의 청결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빨래터에 시트와 수건이 많이 널려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여행을 오래 하다 보니 숙소를 고를 때 빨래터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빨래터에 시트나 수건 등이 널려 있지 않은 곳은 99% 더러울 확률이 높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발레타인인의 뷔페식 저녁을 맛봤다. 일부는 돈값 못한다고 하고 일부는 먹을 만하다고 하고 답이 안 나오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확인에 들어갔다. 일단 요리의 가짓수가 상당했다. 호텔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어디까지나 게스트하우스 수준에서다. 단 육류가 들어간 요리는 닭고기 볶음밥이 전부다. 다른 건 모두 야채요리다. 또 같은 야채를 갖고 다른 소스로 요리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호텔 뷔페처럼 몇 번 갖다 먹을 정도는 아니다. 5.5디나르면 8000원이 조금 넘는 돈인데 딱 그 수준이다.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 욕심이다. 매일 새로 만든 요리가 나온다고 생각한 것도 오산이었다. 뷔페이다 보니 일부 남은 음식이 다음날 나오기도 했다. 이 부분은 정말 우연히 주방을 보고 확인했다. 한마디로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오랜만에 포만감을 맛보고 싶다면 뷔페를 추천한다. 또 돈을 무척 많이 밝힌다는 부분은 사실 애매하지만 '밝힌다'는 편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런 논란 말고도 밸런타인인은 분명 장점이 있는 숙소다. 페트라까지 셔틀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곳에서 암만이나 아카바행 버스를 바로 탈 수 있고, 와디람 사막투어를 손쉽게 신청할 수도 있다. 




[이야기 2] 사진으로 보는 영화 <마션> 촬영지 '와디럼'


                                        

여행 정보

요르단을 찾는 여행자들은 페트라를 본 뒤 베두인족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와디 럼 투어를 하는 게 보통이다. 아랍어로 '와디'는 계곡, '람'은 높다는 뜻이다.

와디 럼 투어는 사막의 별빛 아래서 베두인식 식사와 밸리댄스를 감상하며 하룻밤을 보내는 낭만적인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다. 하룻밤을 보내는 게 부담이라면 짧게 지프 투어를 할 수도 있다. 투어 신청은 와디 무사의 게스트하우스 등을 통하면 된다. 네고는 필수다.

와디 럼은 암만에서 남쪽으로 320km 지점에 위치한 사막지대로 곳곳에 거대한 바위산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2011년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됐다. 와디 럼은 오래전부터 아라비아 상인들의 교역로 역할을 했던 곳으로 당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또 이곳은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의 무대가 된 곳으로 유명하다.




[이야기 3] 코발트 빛 홍해 건너 황토빛 이집트로


페트라를 본 다음날 숙소에서 만난 대학생 준섭이와 아카바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카바는 요르단의 유일한 항구로 재미있는 사연을 갖고 있다. 이곳은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요르단 땅이 아니었다. 요르단은 바다로 나갈 수 있는 항구가 없는 나라였다. 항구는 요르단 사람들에게 절박함이었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켜 바다를 차지할 형편도 못됐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홍해의 동쪽 해안선을 다 갖고 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협상에 나서게 된다. 협상 결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카바를 넘겨주고, 요르단의 황무지를 받게 된다. 얼핏 보면 사우디아라비아가 무척이나 불리한 협상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사우디아라비아가 받은 땅에서 석유가 펑펑 난다는 사실이다. 누가 알았겠나? 황무지 밑에 엄청난 석유가 매장돼 있을 줄.



2시간 남짓 걸려 아카바에 도착했다. 우린 먼저 이집트행 페리 티켓 사무실을 찾아야 했다. 아카바에서 페리를 타면 홍해를 건너 이집트로 넘어갈 수 있다. 요르단을 빠져나 가는 수단으로 이만한 방법도 없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돈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들이 몰려들었다.

"페리 티켓 사무실이 어디죠?"
"위치는 내가 알고 있으니 일단 차에 타세요."


뭘 믿고 덥석 택시에 오른단 말인가. 요르단은 내게 믿음의 땅이 아니었다. 우린 탑승을 거부했고 택시기사는 입맛을 다시며 사라졌다. 길을 가던 행인들에게 페리 티켓 사무실의 위치를 물어봤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어디로 갈지 막막하기만 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 기사에게 페리 티켓 사무실의 위치를 묻지 않은 게 결정적 실수였다.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허둥지둥하고 있는 사이 한 젊은 사내가 눈앞에 보이는 컨테이너 건물이 페리 티켓 사무실이라고 귀띔해주었다. 아니 조금 전 택시기사는 차를 타라고 했는데 도대체 누굴 믿어야 할지...

손해 볼 게 없어 일단 옆에 보이는 컨테이너 건물에 가보기로 했다. 준섭이도 미심쩍은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뭐 마땅히 물어볼 곳도 없었다. 작은 컨테이너로 된 사무실 안에는 빈 책상과 소파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여기 맞니? 이상하지 않아?"
"그러게요. 70달러 날리는 거 아닐까요?"

우리에게 티켓 사무실을 알려준 청년은 1분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한참만에 한 중년 남성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우리를 사무실 안 작은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방 안에는 페리탑승권이 뭉치로 꽂혀 있는 프린터 한 대가 놓여 있었다. 가격을 물으니 알고 있던 가격 그대로였다. 의심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여기가 택시기사가 데려다 준다고 한 장소였던 셈이다. '된장할 놈들!'

그런데 티켓 사무실 직원은 배 시간이 따로 없다고 했다. 대충 사람이 차면 떠나니 서둘러 항구로 가보라는 말뿐이었다. 미니버스가 이런 형태로 운행하는 건 대충 이해가 되지만 수백 명이 타는 페리에 운행시간이 없다는 건 상식이 아니었다. 아카바 페리터미널에 도착해 출국수속을 밟았다. 요르단에서 나가려면 출국세를 내야 했다. 8디나르짜리 출국인지를 사서 2층 이미그레이션으로 갔다. 간단하게 수속을 마치고 타는 목을 축이기 위해 음료수를 한 잔 마시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준섭아, 그런데 도대체 배는 몇 시에 떠나는 거지?"
"잠깐만요. 형."


준섭이는 출국장 매점 주인에게 출발시각을 물었다. 매점 아저씨는 배가 지금 출발한다고 했다. '헉!' 그는 우리보다 더 놀란 눈으로 어서 뛰어가라며 성화였다. 미친개에 쫓기듯 배낭을 메고 선착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배는 선착장에 껌처럼 붙어 있었다.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2층 선실로 올라가려던 우리를 승무원이 막아섰다. 그는 짐을 짐칸에 실으라며 한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손가락 끝엔 컨테이너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짐을 어디다 보관하라는 뜻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

"이런 오웃!"



컨테이너 안에는 여행용 가방·배낭·손가방 심지어 비닐봉지까지 온갖 짐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었다. 쓰레기통을 보는 것 같았다. 컨테이너 안에 질서란 없었다.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짐칸이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준섭이가 컨테이너 안으로 올라갔다. 그리곤 배낭을 힘껏 가장자리로 던졌다. 준섭이의 힘은 배낭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이 배에 먼저 탄 사람들과 똑같이 쓰레기처럼 아무렇게나 배낭을 던져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의 분위기가 한눈에 파악되는 순간이었다.

2층 선실은 이집션들로 북새통이다. 출발시각도 없는 페리에서 이 사람들은 언제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단 말인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며칠만 있으면 라마단이 시작된다고 했다. 승객들 대부분은 사우디아라비아나 요르단 등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라마단에 맞춰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선실 좌석은 이미 부지런한 이집션들이 모두 점령을 한 뒤였다. 우리가 발붙이고 있을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우린 떠밀리듯 3층 갑판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난 그대로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눈앞에 펼쳐진 홍해는 마치 맑은 청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했다.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바다였다.

"아름답다..."


사람과 풍경이 이렇게 조화롭지 못할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페리 안의 이집션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바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집트로 넘어가는 이동수단으로 페리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바다 속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꿈틀댔다. 그 사이 배가 서서히 항구를 밀어냈다.

여행에도 편식이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먹고 싶은 것만 먹고, 가고 싶은 곳만 찾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내 뇌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조차 모른다는 데 있다. 세계 일주는 내가 그동안 보지 못한 것, 보지 않으려고 한 것을 마음껏 풀어냈다. 내겐 바다가 그런 대상이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김동우 시민기자가 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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