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 친구하자던 남자의 검은 제안
거울 앞에서 물었다. "너, 지금 행복하니?" 이 질문의 답은 '사표'였다. 배낭을 멨고, 지구를 한 바퀴 돌겠다며 길을 나섰다. 좌충우돌 세계일주 여행기를 연재한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가장 두려우면서 설레는 나라는 에티오피아였다. 아프리카의 산이라면 대부분 킬리만자로를 떠올리지만, 아프리카에는 킬리만자로만 있는 게 아니다. 에티오피아 하면 가장 먼저 커피가 연상되지만 내겐 아프리카의 지붕으로 일컬어지는 시미엔산이떠올랐다.
에티오피아에 가면 지구에서 가장 더운 지역인 다나킬 등을 둘러볼 생각이었지만,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극진한(?) 대접에 부담감을 느끼고 여행 일정을 대폭 줄였다. 그만큼 에티오피아는 내게 쉽지 않은 나라였다. 아프리카 루트를 북→남으로 계획했다면 남쪽으로 갈수록 여행이 쉬워진다고들 한다. 여행자를 대하는 현지인들의 태도가 바로 그 이유다. 에티오피아는 이집트와 함께 그 정점에 있던 나라다.
에티오피아 여행은 아디스아바바(수도)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10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곤다르로 이동한 뒤 시미엔 트레킹을 준비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미엔을 품에 안은 첫째 날 폭우가 몰아친다. 그리고 난 뒤틀린 배를 부여잡고 폭우 속에 쭈그려 앉는데...
[이야기1] 아디스아바바에 비는 내리고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가는 이집트항공 MS851편에 앉아 있었다. 스튜어디스에게 맥주를 한 병 청했다. 그녀는 무알콜 맥주밖에 없다고 했다. 국제항공편 안에서도 이슬람의 율법은 예외가 아니었다.
이집트부터 시작된 검은 대륙의 여정이 본격 시작되고 있었다. 아프리카는 열악한 환경과 풍토병 등으로 여행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땅이다. 이집트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르는 아프리카 종단계획은 내겐 또 다른 도전이자 설렘이었다.
비행기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날고 있었다. 창밖 풍경은 모두 어둠에 가려 있었다. 앞으로 펼쳐질 모험과 난관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내 신세와 비슷했다. 하지만 난 지금까지의 경험이면 아프리카도 문제없을 거라며 근거없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다.
'에티오피아부터가 진짜 아프리카 여행의 시작이고 종단을 끝내면 내 여행 내공은 일취월장해 있을 거야. 아프리카를 여행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이제 나도 남부럽지 않은 여행가라구. 한국에 돌아가면 다들 날 대단하다며 우러러보겠지. 크크크.'
아프리카는 내게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단지 개척하고 경험해야 할 미지의 땅일 뿐이었다. 자만이었다. 그리고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프리카가 얼마나 크나큰 고통과 상념을 가져다줄지...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종단에서 가장 고민스러운 나라였다. 여행 전 이 나라를 상징하는 내 머릿속 이미지는 기아·가뭄· 빈곤·질병·빈대·UN원조 등이었다. 좋은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에티오피아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이 나라가 6·25 당시 우리나라를 위해 피 흘린 혈맹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급호감이 생기는 나라였다.
무엇보다 시미엔산이 거기에 있었다. 거칠지만 화려한 산세, 그리고 보기 드문 지질 현상이 어우러져 마치 체스판의 말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는 시미엔산은 내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유럽인들 사이에선 오래전부터 환상적인 풍경으로 사랑을 받아온 곳이다. 트레킹을 좋아하는 내가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비행을 시작한 지 3시간 30분 만에 커피의 본고장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도착 비자(20달러)를 받고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시곗바늘은 오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그나마 치안이 괜찮다는 아디스아바바였지만 새벽녘 어둠 속에서 숙소를 찾아 나서기에는 내 간이 그리 많이 부어 있지 못했다. 공항 로비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어느 정도 날이 환해져 공항을 나서려고 보니 뜻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중국·파키스탄·아랍에미리트·요르단·이집트를 거치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비였다. 에티오피아는 우기에 해당하는 계절이었다. 가볍게 점퍼를 걸쳐야 할 정도의 기온이었다. 습도가 높았지만, 중동의 용광로 같은 더위보다는 훨씬 견딜 만했다.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하늘을 보니 쉽게 그칠 비가 아니었다. 고어텍스 재킷을 꺼내 입고 배낭을 둘러멨다. 공항 안에 있던 흑형들의 시선이 전부 나한테 꽂혔다. 아프리카 오리지널 흑형들이었다. 왠지 겁이 났다. 동양인을 보는 그들의 시선은 마치 사자가 먹잇감을 쫓는 눈빛처럼 강렬했다. 마주할 수 있는 눈빛이 아니었다. 그들을 뒤로하고 공항 앞 택시 정류장으로 향했다.
순식간에 택시기사들이 날 둘러쌌다.
'휴~ 시작이구나.'
이집트에서 단련된 내공을 앞세워 자신있게 가격 협상에 돌입했다. 하지만 외국인을 상대하며 잔뼈가 굵은 택시기사들의 내공은 만만치가 않았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값싼 숙소가 몰려 있는 피아자까지 150비르를 고수했다. 13달러 정도 되는 금액이었는데 가격 조정이 쉽지 않았다. 담합이었다. 시간을 끌자 100비르까지 가격이 내려갔지만, 현지인들이 3비르에 버스를 이용하는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이었다.
난 공항에서 목적지로 이동할 때 버스를 즐겨 타지 않는다. 현지인들이 가득 들어찬 버스에 75리터짜리 큰 배낭을 안고 타는 건 여러 가지로 불편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택시를 고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버스가 몰려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버스기사와 40비르에 피아자의 타이투호텔까지 가기로 했다.
버스 기사는 중간에 다른 승객들을 내려주고 또 한 무리의 승객을 태워 맨 마지막에 타이투호텔 앞에 차를 세웠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습관처럼 안도와 행복감이 밀려든다. 그리고 활시위처럼 팽팽했던 긴장의 끈이 풀렸다.
침대에 드러눕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데 숙소에선 오전 11시까지 기다려야 빈방이 생긴다고 했다. 힘이 빠졌다. 일단 호텔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가격도 그리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에티오피아의 물가는 파키스탄 다음으로 쌌다. 일단 합격점을 줄 수 있는 조건이었다.
무거워진 눈꺼풀을 힘겹게 지탱하고 있을 때 터키 친구 필리스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필리스는 감기에 걸렸는지 연방 내 앞에서 코를 풀어댔다. 적잖게 여행을 다녔지만,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문화 중 하나다.
그녀는 세 달째 홀로 에티오피아를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에티오피아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에티오피아 북쪽에 위치한 '다나킬'과 우간다를 다녀왔다고 했다. 다나킬은 지구에서 가장 지구답지 않은 땅으로 유명한 곳이다. 난 답례로 그녀가 무척 가보고 싶어 하는 카라코람하이웨이와 파키스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사이 빈방이 생겼다. 하루에 170비르 정도 하는 더블룸을 잡았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동으로 사용해야 했다. 에티오피아에선 머릿수로 숙박비를 계산하지 않는다. 무조건 방 하나당 돈을 받는다. 일행이 있으면 경비를 절약할 수 있는 구조다.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원산지라는 타이틀과 더불어 빈대의 천국으로 악명이 높다. 경험자에 따르면 빈대는 모기와 달리 한 번에 수십 군데에 흔적을 남기는데 가려움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했다. 난 아직까진 빈대와의 동침을 잘 피하고 있었다.
널찍한 더블침대에는 하얀색 시트가 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믿음이 가지 않는 이불이 펼쳐져 있었다. 타이투 호텔이 그나마 괜찮은 숙소라곤 하지만 빈대에서 완전 자유로운 곳은 아니었다. 우기라 그런지 침대 시트는 축축함 그대로였다.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숙소 직원에게 빈대 잡는 스프레이를 달라고 해서 한 통을 전부 써버렸다. 그리곤 이불을 걷어내고 배낭에서 침낭을 꺼내 깔았다. 빈대에 물리면 에티오피아에 오만 정이 떨어질 게 뻔했다. 이런 불상사를 막으려면 나름의 대비가 필요했다.
푹신한 침낭에 들어가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떠보니 시간은 오후 7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빈대의 소리 없는 습격을 확인하기 위해 몸 구석구석을 더듬었다. 다행스럽게 빈대의 흔적은 없었다.
피아자 거리는 온통 흑형들로 득실댔다. 한밤중 거리를 배회하는 흑형 무리는 날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거리 한쪽에서 낯선 동양인을 발견한 여자들이 하루 일당을 채우기 위해 감정 없는 웃음을 흘렸다. 내 피부색과 거리 풍경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여행 정보
우리나라에서 에티오피아로 가는 직항 노선은 없다. 보통 방콕이나 두바이를 경유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여행자금이 넉넉하다면 대한항공의 케냐 나이로비행 직항편을 이용한 뒤 케냐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게 가장 손쉬운 루트다.
장기여행 중이라면 에티오피아 북쪽 수단 국경을 넘어 육로로 입국할 수 있고, 남쪽으로 케냐국경을 넘을 수도 있다. 치안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 수단을 거쳐 육로로 넘어올 경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고, 남쪽이나 북쪽 모두 험난한 길을 장시간 달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공항으로 입국하는 경우 도착 비자(미화 20달러)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에티오피아는 말라리아 위험지역으로 말라리아 예방약을 복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식수는 끓여 마시거나 생수를 사 마셔야 탈이 없다.
[이야기2] 피아자의 밤거리 풍경
"아무도 믿지 마라."
이집트에서 만난 한 여행자는 피아자에서 영어를 하는 사람은 다 사기꾼이라고 했다. 에티오피아를 떠올린 그의 얼굴에선 피로감이 묻어났다. 반면 누구는 아프리카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곳으로 주저없이 에티오피아를 꼽겠다고 했다. 과연 난 이곳을 떠날 때 어떤 쪽에 속해 있을까?
피아자의 밤거리를 어슬렁거리던 중이었다. 정체불명의 남자 한 명이 날 쫓아왔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이 사내는 무엇이든 날 돕겠다며 내 옆을 맴돌았다. 난 "줄 돈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은 것 뿐"이라는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날 현혹시켰다. 사내는 집요했고, 난 부담스런 피아자의 밤거리를 안내해줄 현지인이 필요했다.
일단 본고장의 커피를 맛보고 싶었다. 커피 하면 많은 사람이 콜롬비아를 떠올리지만 사실 커피는 아프리카에서 퍼져 나갔다. 에티오피아에서 예멘의 모카항으로 수출된 커피가 지금 우리가 말하는 '모카커피'의 유례다. 난 그에게 유명 커피숍의 위치를 물었다. 사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일단 우리는 서로를 이용하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했다.
그를 따라 레스토랑 겸 커피숍으로 향했다. 식당 종업원은 즉석에서 숯불을 피워 커피를 볶고 작은 호리병에 물을 끓였다. 본고장 커피는 믹스에 길들여진 싸구려 혀로도 대번에 그윽한 향과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에티오피아 커피는 쓰지도 달지도 않은 맛에 깊은 향까지 더해져 단숨에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설탕을 조금 넣자 더 맛이 좋았다. 사실 커피보다 내 마음을 더 기쁘게 한 건 에티오피아의 물가였다. 내 옆에서 갖은 정성으로 날 구워삶고 있는 사내와 나눠 마신 커피의 가격은 14비르였다.
커피를 마신 뒤 사내는 근처에 좋은 클럽이 있다며 날 꼬드겼다. 일단 수중에 갖고 있던 돈이 그리 많지 않았다. 털려도 개털 되는 수준도 아니었고 아프리카 클럽에 급호기심이 발동했다. 사내는 내가 묵고 있는 타이투호텔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라며 고민하는 날 안심시켰다. 사람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물론 그에게 내 마음을 0.0001%도 열지 않았지만, 그는 능수능란하게 날 클럽으로 인도했다.
바 겸 클럽의 시설은 보잘 것 없었지만,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을 타며 흔들거리는 청춘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그 공간 안에 동양인은 나뿐이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어딜 가도 숨을 곳이 없었다. 클럽의 열기가 버겁게 느껴져 시원한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주문했다.
맥주를 마시던 사내는 둘만의 대화가 식상했는지 자신의 친구라며 20대 초반의 여자를 테이블에 합석시켰다. 얼핏 봐도 동양인으로는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아프리카 특유의 탄력 넘치는 몸매의 미인이었다. 여자의 몸에선 싸구려 향수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사내는 여자를 위해 맥주를 한 병 시켜달라고 했다.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아 흔쾌히 주문해주었다. 셋이 맥주를 한 잔하며 한 시간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사내가 눈빛을 바꿔 조용히 내게 귀엣말을 했다. 합석한 여자와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해주겠다는 은밀한 제안이었다. 아주 구체적인 가격과 함께... 사내의 본업은 여행자와 길거리 여성들을 연결하고 중간에서 수수료를 챙기는 포주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렇게 여행자에게 뜯은 돈은 대부분 포주의 몫이 되고 여자들은 이용만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에티오피아는 커피 말고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으로 악명이 높은 나라다. 그는 이런 인식을 알아챘는지 걱정말라고 강조했다. 끈질긴 설득 작업에도 내가 반응이 없자 그는 내 숙소에서 마리화나를 피자는 또 다른 제안을 해왔다. 바꿔 이야기하면 내 짐을 몽땅 털어가겠다는 소리였다. 숙소털이까지 겸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디스아바바에선 아무도 믿지 말라는 말이 떠올랐다. 뭘 보고 내 방문을 열어준다는 말인가. 맥주에 약을 타지 않은 이상 그 정도 사리판단은 가능했다. 사내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가 마성(魔性)을 드러냈다.
"너 때문에 옆에 앉은 여자가 한 시간 정도 일을 하지 못했으니 어느 정도 돈을 줘야 해."
정말 참신하고 기막힌 한마디였다. 이 정도 영업력이면 세계 굴지의 기업에 취업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억양은 부탁이었지만 내 귀에는 협박처럼 들렸다. 황당무계한 소리에 난 뒷목을 잡았다.
"내가 여자를 불러 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무슨 돈!"
이 한마디가 핵심을 찔렀다고 생각했다. 난 여자에 대해서 책임을 질 하등의 언행을 한 적이 없었다. 대법원에 가더라도 100전 100승 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었다.
"그건 그렇지만 돈은 내야 해!"
막무가내 대답이 돌아왔다.
"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게 한 이집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극강의 철면피였다. 이 친구의 무논리는 무쇠처럼 단단했다. 그 앞에서 내 빈틈없는 논리는 추풍낙엽처럼 힘을 잃었다. 차라리 적선해 달라고 하면 생각해 볼 용의가 있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내겐 이 친구를 당해낼 재주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더 버티다가는 흑형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는 아찔한 상황까지 갈 것 같았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주고 자리를 떴다. 강도가 꼭 흉기를 들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한 서양인 커플이 흑형과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얼굴이 시뻘게진 서양인 여자는 시비 끝에 흑형의 얼굴에 최후의 일갈을 날렸다.
"뻑큐!"
국경까지 가서 손가락 욕을 날리기는 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다. 흑형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빈정거리는 얼굴로 "뻑큐~투! 애솔!"이라며 여자의 약을 더욱 바짝 올렸다. 여자는 남자친구의 손을 잡고 분을 삭이지 못한 채 뒤돌아섰다. 에티오피아 여행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았다.
여행 정보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기원지다. 커피라는 이름은 에티오피아의 도시 카파(Kaffa)에서 유래됐다. 에티오피아의 많은 커피 생산지 중에서도 예가체프 산 커피를 최고로 꼽는다. 커피는 에티오피아 경제의 절대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전체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에 가면 '커피 세리모니(ceremony)'란 말을 듣게 된다. 커피를 볶고 달이는 과정을 의식의 일부로 생각해서 생긴 말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김동우 시민기자가 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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