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여행 ④] 히말라야 동쪽 끝 은둔의 나라 여행
다시 파로로 가는 날이다. 유딘과 도지는 아침 일찍 부탄 전통복인 '고'를 챙겨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전통복장을 입어보고 싶다는 내 말 한 마디에 고맙게도 도지가 자신이 가진 옷 중에서 가장 깨끗한 옷을 빌려줬다. 보기보다 입기 복잡한 '고'를 낑낑대며 입은 뒤 남은 일정을 소화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메모리얼 초르텐. 이곳은 젊은 나이에 요절한 제 3대국왕인 지그메 도르지 왕축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 1974년 세워졌다. 3대 국왕은 부탄을 외부세력으로부터 지켜냈으며 국제 사회에서 하나의 나라로 인정받게 한 강력한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왕을 기억하기 위해 왕의 어머니인 왕비가 지었다는 불탑, 메모리얼 초르텐에서 난 부탄사람들의 평안을 보았다. 마치 동네 공원 같은 메모리얼 초르텐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마니차를 돌리며 연신 무언가를 빌고 있었다. 그 옆에서 오체투지에 집중하는 사람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탑 주위를 끊임없이 돌고 있었다. 살며시 그 흐름에 스며들었다.
"유딘, 뭘 위해 빌어야 해?"
"인류의 평화와 안녕 그리고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빌면돼."
이곳에서 종교가 무엇인지는 그렇게 중요치 않았다.
다음 행선지는 전통 직물 공장. 한 땀, 한 땀, 부탄 여인들의 정성어린 손끝에서 아름다운 부탄의 전통무늬가 탄생되고 있었다. 내가 입고 있는 '고' 역시 그녀들의 손에서 만들어졌다고.
100% 핸드메이드로 이뤄지는 이 작업은 하나의 무늬를 만들기 위해 길게는 6개월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부탄 정부는 이런 고유문화를 이어가기 위해 공공장소 등에서 전통복장 착용을 의무화 하고 있다. 또 가이드 유딘과 드라이버 도지가 여행 내내 전통복장을 입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상상해 보라, 서울 한복판에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모습을.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가 바로 이게 아닐까. 난 부탄 여행 중 단 한 번도 부탄 왕족이 서양 의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없다.
파로로 가는 길에는 특이한 '철다리(Tachogang Lhakhang Bridge)'가 놓여있다. 파로와 팀푸 고속도로 중간에 위치해있는 이 다리는 15세기 초에 한 건축가가 부탄 전역에 만든 철 다리 중 하나다. 타초강은 '말 언덕 위 사원'이란 뜻이며, 철제 다리 장인인 탕통 갈포가 이곳에서 명상하는 동안 말의 기운을 느꼈다고 해 이름 지어졌다.
다리 위에는 탕통 갈포의 후손들이 사원을 짓고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전통 스타일의 철제 다리는 지난 2005년 탕통 갈포의 후손들에 의해 복원된 것이다. 강 바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철제 다리는 부탄식 놀이동산 같았다.
본격적 파로 여행은 키추라캉 종(Kyichu Lhakhang Dzong)에서 시작됐다. 키추라캉 종은 부탄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티베트를 최초로 통일한 송첸감포 왕이 659년에 세웠다고 한다.
이 사원에는 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송첸감포 왕이 중국 공주를 왕비로 맞으면서 혼인 지참물로 작은 불상을 받게 된다. 그런데 불상을 옮기 던 중 불상이 꼼짝도 하지 않게 된다. 이유를 알아보니 악운을 물리치기 위해 하루아침에 108곳에 사원을 건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송첸감포 왕은 하루아침에 108곳에 사원을 세웠고, 불상을 무사히 옮길 수 있었다고 한다. 과거 이 사원은 화재로 대부분 소실됐는데 지난 1968년 부탄 3대 국왕의 왕비 아쉬 케상 왕축의 후원으로 복원됐다.
다음 행선지는 파로종(Paro Rinpung Dzong). 1644년 티베트 사람들이 대군을 이끌고 부탄을 침략하던 때 부탄의 영웅 삽드룽은 파로종 건축을 지시한다. 파드마삼바바가 상주한다는 사원의 양식대로 파로종을 건설했고, 그 결과 파로종은 티베트의 침략으로부터 파로계곡을 굳건히 막아내는 구심점이 됐다. 파로종은 건축 당시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1897년에 발생한 진도 8.7의 강진에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부탄 전통건축양식이 가장 잘 반영된 파로종은 다른 주요 종들과 마찬가지로 행정기관으로 사용하는 부분과 사원으로 사용하는 쪽이 나눠져 있다. 특히 파로종에서 내려다 본 파로시내는 목가적 형태의 부탄 생활상을 잘 보여준다.
드룩겔 종 역시 파로를 대표하는 '승리의 상징'이다. 이 종은 티베트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장소로, 1951년까지 행정관의 사무실로 사용했으나 그 뒤 화재로 전소돼 지금은 폐허의 성으로 남아 있다. 드룩겔 종은 전쟁 때 요새 못지않은 역할을 했는데, 티베트와의 전쟁에선 비밀공간을 십분 활용해 티베트 군인들을 혼란에 빠뜨려 결국 승리할 수 있었다고 유딘이 설명했다.
다음날 이번 부탄 여행 중 가장 고난이도인 '탁상곰파(타이거 네스트;Tiger's Nest)'에 오르기로 했다. 가파른 수직 절벽에 자리 잡은 탁상곰파는 부탄을 상징하는 아이콘. 부탄에 불교를 전파한 파드마삼바바가 호랑이를 타고 와 이곳에서 3년 3개월 3주 3일 3시간 동안 명상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 카규파(Kagyupa)의 성자 밀라레파, 테르텐 페마 링파, 부탄 독립의 아버지 삽드룽과 같은 당대의 위대한 스승들이 이곳을 찾았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타이거 네스트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등산화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유딘과 함께 발걸음을 내딛었다. 유딘은 나를 걱정했고, 난 유딘을 걱정했다. 내 트레킹 경력을 전혀 모르는 유딘은 내 첫 번째 타이거 네스트 도전이 심히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숨이 어느 정도 차오르자 중턱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도착했다. 타이거 네스트가 바라보이는 카페테리아는 부탄 정부에서 운영하는 쉼터다. 커피 한 잔과 비스킷으로 한 숨 돌린 뒤 다시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길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차가 있지만 마부들이 내 옆을 스쳐지나간다. 힘이 들면 말을 타고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유딘은 진정으로 타이거네스트를 느끼려면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 산을 올라야 한다고 했다. 트레킹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매력을 유딘은 불교적 맥락에서 이야기 했다.
오르막이 끝나고 산허리에 길게 이어진 평지 같은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조망이 터졌다. 절벽 위에 위태롭게 자리 잡은 타이거네스트가 지척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를 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타이거네스트를 방문한 여행자들이 줄을 서서 인증사진을 남기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마치 지리산 천왕봉 앞에 늘어선 줄 같았다.
이곳에서 내리막이 내리꽂듯 절벽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이어졌다. 머리 위로 수십 미터 길이의 룽다가 펄럭였다. 다시 고개를 바짝 세운 길을 힘겹게 오르자 기다리던 타이거네스트 입구가 나왔다.
깎아지는 절벽에 세워진 사원, 그 안에 벽을 따라 만들어 놓은 석상들. 안타깝게도 이 사원은 1951년 화재로 일부 소실됐고, 1998년 대화재로 완전히 파괴됐다고. 지금 사원은 지난 2000년 복원공사가 끝난 모습이다.
참고로 부탄에서는 사원 안 불상 등의 사진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불상은 마음으로 섬겨야할 대상이지 구경의 대상이 아니란 이유에서다. 이해는 하지만 사원 내부 모습을 보여줄 수 없는 안타까움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사실 장난기가 발동해 푸나카 종과 파로 종에서 사원 내부를 촬영하려는 자세를 잡았는데 그때마다 유딘은 눈을 왕방울만 하게 키우며 절대 안 된다며 손사래 치기 바빴다. 그런 유딘의 모습이 재미있어 난 키득키득 웃으며 몇 번이나 그녀를 놀려 먹었다.
4시간 반의 타이거네스트 트레킹을 마치자 부탄 전통방식의 핫스톤 목욕이 기다리고 있었다. 핫스톤 목욕은 나무로 된 욕조에 물을 채우고 불에 달군 큰 돌을 넣는 부탄 전통 목욕법이다. 또 여기에 로컬 허브 잎을 넣기도 한다. 돌멩이를 넣을 때마다 '치익~' 하는 소리를 내며 욕조물이 데워졌다.
몸을 담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우리나라 목욕탕의 열탕 정도 되는 온도였다. 사실 처음 온도가 적당했는데 유딘은 사람을 시켜 돌멩이 몇 개를 더 넣게 했다. 자신을 놀려 먹던 내게 하는 소심한 복수 아니었을까. 결국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탕을 빠져나왔다. 유딘은 목욕이 어땠냐고 물었다. 난 유딘을 보고 소리쳤다.
"내 피부색이 핑크빛으로 바뀌었어, 이거 어떻게 할 거야!"
부탄여행은 전통과 이들이 삶을 대하는 불교적 태도를 통해 우리가 잊고 지낸 감사와 양보가 무엇인지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운전할 때 소 떼와 야크 떼가 차 앞을 지나가면 차를 멈춰 세우고 가만히 기다려 줄 줄 아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부탄이다. 또 길에 사는 강아지들을 위해 음식을 내주고, 그들의 편안한 낮잠을 배려하는 게 부탄 사람들의 마음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히는 부탄, 이곳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행복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김동우 시민기자가 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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