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창조하는 영화의 힘

홍상수 감독의 ‘소설가의 영화’를 보고

by 오묘미

봄의 문턱에 서면 땅이 녹는다. 단단했던 흙을 뚫고 새싹이 돋아난다. 흙은 품었던 물을 다시 풀어준다. 가장 향기로운 때다. 한참 품에 안겼던 물의 기운은 사계절 중 가장 호기롭고 맑다. 서로 뭉쳤던 물은 곧 식물과 동물, 사람에게 동등하게 흩어질 것이다.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고 땅에서 개미 한 마리가 걸어 나오는 허무한 행동으로 겨울은 끝이 난다.



이야기는 어느 곳에서든 이미 존재한다. 준희의 대사처럼 인물이 구해지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어떤 방식으로든 만들어진다. 수증기가 모여 표면에 맺히듯 이야기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사건은 중력에 의해 표현을 미끄러지듯 타고 흐르는 것. 떨어져 모여 땅에 웅덩이로 고이면 영화가 된다. 스며들어 싹을 틔우면 좋은 것이고 아니어도 과정은 그대로 의미가 있다.


언어는 축적된 모든 것의 내부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행위이다. 언어가 의미를 가지면 관계는 틀어지고 삶의 방향은 복잡해진다. 수어는 가장 보편화될 깨끗하고 단순한 언어이다. 표면의 특수성을 허물면 모호한 경계로 무장한 호기심이 서로를 흥미롭게 만든다. 어떠한 인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잠시 글을 떠나 이미지에 매혹된 소설가 ‘준희’의 여정은 그대로가 이야기이고 언어다. 작은 우연 하나하나가 모이면 준희 안에 이미지가 자연스레 움튼다. 글 만으론 표현 못할 자연의 언어는 기록장치로서의 ‘영화’에 영속성을 부여한다. 영화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중년의 소설가에게 영화는 가장 아름답고 재능이 충만한 시절의 배우를 짧은 영화 한 편에 생생하게 담아내기를 허락한다.


영화의 시간은 증폭 없이도 생명을 증명할 수 있는 혈류이다. 영화의 공간은 이론 없이도 생명을 채워낼 숨이다. 한 인간이자 배우이며 여성인 ‘길수’를 세상에서 가장 투명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창조한 소설가 ‘준희’에게 영화는 그 자체가 생명이고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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