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말금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영화 리뷰

by 오묘미


어느 밤,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본 배우에 매혹돼 집으로 돌아와 잠을 설쳤다. 고립된 작은 몸에서 뛰쳐나오려고 발버둥 치는 에너지. 조명을 받아 백색의 목련꽃처럼 환하게 빛나던 미소. 올곧은 발음과 정직한 톤에서 느껴지는 인간에 대한 신뢰. 연극이 배우라는 인간에게 심어주고자 했던 여러 목표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려고 힘쓰는 몸짓.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인터넷에 배우의 이름을 검색했다. ‘강말금’. 많은 정보는 없었지만 어떤 매체와 나눈 인터뷰에서도 무대 위 모습 그대로의 인상을 받았다. 본명은 강수혜. 시인인 친구가 쓰다가 버린 닉네임 말금을 예명으로 지었다. 공기 좋은 산속 어딘가에서 졸졸 흐르는 맑은 시냇물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우연히 단편영화 <자유연기>를 봤다. 무대를 옮겨도 강말금의 존재는 청명했다. 어떤 이는 연극과 영화의 연기가 다르다고 말한다. 연극에서 하던 연기의 발성과 움직임 등을 매체(방송, 영화)에서는 다르게 표현해야 자연스럽게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분야가 얼마나 차이가 있든지 간에 배우를 보는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일맥상통한 방법은 딱 하나 바로, 진정성에 있다. 강말금은 진정성이라는 태도를 자신의 삶과 연기에 가장 우선순위에 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배우와 카메라에 대한 거리감으로 불안해하기보다 나와 캐릭터의 거리를 조정하는데 온 힘을 다 하고 그 주도권을 스스로가 쥐려고 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강말금, 배우, 캐릭터가 일체화되는 신기한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예술을 넘어 어떤 분야의 좋은 작품은 감상하는 자의 삶에 크든 작든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그 낯섦을 죽을 때까지 간직하며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도 한다. ‘강말금’은 작품에서 연기하는 배우보다 연기하는 인간, 작품 그 자체라고 설명해도 과언이 아니다.





찬실이는 말한다.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다.” 꿈에 목말라 앞으로 달리기만 했던 자신을 돌아보니 정작 있어야 할 나는 이곳에 없다. 꿈을 잡으려고 집착하면 꿈은 한 걸음 멀어진다. 남들이 걷는 속도와 방향을 순리로 믿고 힘차게 흘렀던 찬실이가 절망의 끝에 놓이니 믿고 지냈던 사람이 나에게 모욕감을 준다. 낭떠러지 끝에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사람의 부재는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허무하게 만든다. 그렇게 달려왔던 찬실이는 나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럽지만, 좌절보다 점점 떠오르는 희망을 본다. 타인에 얽매여 끌려다녔던 족쇄를 끊어버리고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스스로 선택하는 찬실이의 모습에서 배우 강말금의 모습이 또다시 오버랩된다. 100분 남짓 찬실이의 이야기가 끝나 아쉽지만, 배우 강말금은 계속되리라 생각하니 다시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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