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라짜로> 영화 리뷰
살다 보면 수많은 잘못을 저지르지만,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적다. 분명히 내 잘못인데도 지적받은 뒤돌아서면 왜 나한테만 뭐라 그러는가 싶다. 이런 심리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잘못은 종종 복합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잘못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변명을 내세울 수 있고 오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또, 상대에게 자신의 잘못을 전가해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행복한 라짜로>는 인비올라타라는 시골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지주에게 사기와 착취를 당하면서도 연고 없는 인간인 라짜로를 순수하게 착취하는 과정을 그린다. 라짜로는 그 흔한 사랑이라는 감정도 갖지 못한 채 마을 사람들의 부름에 무조건적인 응답으로 자신의 행복한 얼굴을 유지한다. 외부의 도움으로 지주의 착취 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나며 마을 사람들은 해방되지만, 세월이 지나고 시내에서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은 어떠한 기술도 없이 근근이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던 중 마을의 해방 전에 죽은 줄만 알았던 라짜로가 찾아온다. 라짜로의 등장에 놀란 마을 사람들은 굶주린 처지에 식구가 느는 걸 원치 않을뿐더러 돈 버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 라짜로를 오히려 떠나보내려고 한다. 과거 지주의 아들이자 인비올라타에서 라짜로의 단 한 명뿐인 친구였던 탄크레디는 우연히 라짜로를 다시 만나게 되고 변함없는 모습에 놀란다. 점차 삶의 저 밑바닥에 밀어두었던 그들의 암울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인비올라타의 주민들은 과거에 삶을 망가뜨린 지주의 가족을 용서할 수 없지만 이제는 벌을 받고 궁핍하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비싸게 산 작은 빵으로 자비를 베푼다. 라짜로는 탄크레디의 처절한 삶을 보고 다시 그의 삶을 찾아주려고 탄크레디의 말마따나 은행에 찾아가지만, 은행강도(탄크레디가 우정의 표시로 준 물건이 원인이 된다)로 오해를 받게 되고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처절하게 맞아 죽는다. 지난 과거 자연 속에서 나 홀로 죽었음에도 부활하였던 라짜로가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곳은 행복이 떠도는 자연 속이 아닌 불행으로 어지러운 피조물 속이었다.
한 사람의 자비가 여럿의 복수심을 충족시킨다면 라짜로라는 존재가 그랬던 것일까. 한때 행복한 표정으로 모든 이들의 부탁을 들어줬건만, 그들의 과거를 기억하는 라짜로는 환멸의 대상일 뿐이다. 누구나 사연이 있고 그것을 모두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착한 사람이 나쁜 짓 하나쯤은 꼭 했고, 악한 사람도 진실이 담긴 약속 하나쯤은 했다. 라짜로는 단지 인간과 맺은 우정을 믿었다. 라짜로를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만든 것은 라짜로 자신이 아닌 시기에 찌들어버린 주변의 인간들이었다. 해방 전 인비올라타를 떠나면서 라짜로를 두고 온 마을 사람들은 새 삶을 살기 위해 내 모든 과거를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라짜로가 그곳에서 죽어버렸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남아있을 이들에게 라짜로의 죽음은 자비가 잉태한 선한 복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