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스토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설정하면 길을 안내한다. 차가 막혀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길로 돌아가거나 사고가 나서 우회한다고 해도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게 돼 있다. 인생 또한 어느 정도는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 돌더라도 예상보다 1, 2분 늦지 결국 꿈꾸던 곳에 도착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그 목적지란 것. 내 인생에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순전히 내 마음에서 떠오른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은밀히 설정된 것일까. 내가 선택한 목적지 또한 오류가 아닐까.
인생에는 어느 정도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장래 희망란에 직업, 꿈, 목표를 적어 넣으면 나이가 들고 성장하면서 목적지는 조금씩 세밀해지고 결국 그곳에 도착할 거라고 믿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몇백 킬로미터에서 몇 미터로 좁혀진다. 목적지에 꽂아 놓은 바늘을 다음 날이면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다시 꽂는다. 오늘 날씨가 좋으면 저쪽으로 옮기고, 어제 먹었던 밥이 소화가 안 돼 얹히면 다시 원래대로 옮겨 놓는다. 시험에서 떨어지면 조금 더 멀리, 면접을 잘 보면 아주 가까이.
인생에는 답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오만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유튜브로 자기 암시 영상을 틀어 놓는다. 눈을 뜨면 그곳에 한 발짝 가까이 있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오늘은 어제의 반복이다. 미래는 과거의 반복으로 쌓아 올려진다. 젠가의 꼭대기 위에 위태롭게 선 자인 ‘나’는 중간에 잘못 놓인 것들로 인해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 있다. 하지만 목표치에 올라간 나를 죽이는 것은 내 옆에 동시에 세워진 성공한 ‘나’다.
성공한 자의 말마따나 성공을 꿈꾸고 미친 듯이 노력한다면 언젠가 꿈이 이루어진다는 말하고 싶지만, 한편으로 그렇지 않다고 믿기 시작한다. 인간의 오만함은 나태함을 품고 실패를 잊고 반복한다. 실패의 반복은 성공의 힘을 기를 수 있다지만, 인생이 지닌 허망함을 행복함이라는 것으로 속이고 규정하고 치장하기 위해 알록달록한 페인트칠을 할 뿐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엄마와 딸의 평범한 스토리다. 다만 메타버스라는 소재를 활용해 모녀의 근원적인 관계를 끌어들이고 인간이 처한 딜레마 속에서 해답을 찾아 사투를 벌인다. 영화의 강렬한 이미지에 빨려 들어 놓칠법한 이야기 흐름은 엔딩을 향할수록 메타버스와 가족의 구조 덕에 이해하기 수월해진다. 수많은 대사가 정곡을 찌르고 숨을 멎게 한다. 엄마이자 아내이고, 딸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인 ‘에블린’. 그 복잡하고 수많은 캐릭터의 인생을 양자경이라는 배우의 삶과 동시에 보여준다. 어렸을 때부터 홍콩영화와 양자경의 엄청난 팬이었다. 현재의 양자경과 과거의 양자경을 나란히 두고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팬에게는 큰 행복이다.
성공한 스토리에 비해 실패한 스토리는 현저히 적다. 실패는 성공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고 말한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영화 속 실패는 성공의 지름길이 아닌 하나의 삶이다. 실패를 인정함은 ‘나’라는 존재를 완성하는 중요한 루트이다. 타인이 닦아 놓은 성공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도 '나'는 그와 같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세운 기준 위에 서면 '나'는 넘어지기 일쑤다. 다른 사람이 성공했던 과정을 따르지 않고 나의 길을 찾는다. 나만의 길을. 나에게 가장 적합한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