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키통크맨’이 고통을 다루는 현명한 방법
“형, 저 00랑 헤어졌어요.”
유독 주변의 친한 동생들은 나에게 이런 고백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했던 말은 “그렇구나. 어쩌겠어! 그냥 잊어.” 였다. 굉장히 고심해서 꺼낸 말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이 행동은 고통이란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한심한 인간의 오만하고 어리석은 이해심이었다.
평소에 조용하고 말수가 적어서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고 항상 군중 속에서 동떨어져 있던 나였기에 몇 친했던 사람들은 조금 대화가 진행되면 현재 고민하는 문제나 고통받고 있는 감정을 털어냈다. 고통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그만큼 나약하다고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말을 타인에게 꺼낸다는 것은 아주 큰 용기이자 그 고통의 크기가 자신이 감당하기엔 너무 크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최대한 이빨과 입술로 꽉 깨물고 있다가 아무도 없는 자기만의 방에서 한순간에 참고 있던 모든 걸 펑펑 터뜨려내는 것이다. 나는 그때의 그들에게 시멘트벽처럼 아무리 때리고 고함을 내지르고 붙잡고 엉엉 울어도 아무 소리 없이 가만히 그 자리에 묵묵하게 서 있어둘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치 화양연화의 앙코르와트씬처럼 말이다.
그때 나는 그들이 원했던 반응을 보여주고 제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한참 잘못된 오류였다. 손이 피범벅이 되도록 벽을 치며 고통을 토로하던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벽은 아주 두껍고 딱딱한 것이란다. 아무리 쳐도 절대로 부서지지 않으니 마음껏 때리렴, 하지만 그래도 이 벽은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다는 걸 명심하고 충분히 쳤으면 뒤돌아 방문을 나가 너의 삶을 온전하게 되돌려 살아가렴.’
홍키통크맨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1982년도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내가 처음 이성과 이별을 한 뒤 한 달 동안 살갗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을 겪고 난 뒤에 본 첫 영화였다. 내가 이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듣게 된 순간은 대형음반사의 녹음 제안을 받은 ‘레드 스토밸’(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결핵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녹음하는 장면이었다. 당장에 노래를 멈춰야 할 정도로 몸이 망가진 상태의 레드 스토밸은 음반을 녹음하다가 기침을 토해내며 스튜디오 벽 쪽에 몸을 기댄다. 그가 진행되는 녹음에 방해가 되지 않게 피해있는 동안 다른 연주자가 급하게 노래를 부른다. 노래가 진행되는 동안 기침하는 레드 스토밸을 유리밖에서 지켜보는 그의 조카 ‘윗’. 레드 스토밸의 등 위로 음악이 계속된다.
이렇게 슬픈 적도 이렇게 우울한 적도 없었어요
우리 서로의 감정은 같아요
아마 우리들은 강하지 못했나 봐요
나도 당신도 우리는 사랑을 잃었나 보네요
누구의 잘못인지 그 누가 알겠어요
난 기타도 있고 꿈도 가지고 있어요
당신의 두 팔로 날 안아주세요
당신의 두 팔로 홍키토크맨인 날 안아주세요
우리 이 밤을 함께 보내요
이 아픔이 죽음이 다가오면
내가 이별로 정신을 못 차리고 고통스러워할 때 부산에 사는 친한 형에게 전화가 왔다. 무슨 일 있냐고. 나는 고백을 했고 형은 가만히 듣더니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그것은 내가 그전까지도 그렇게 인터넷에서 찾아다닌 글들과는 아주 다른 관점의 이야기였다. 아직 헤어진 것이 아니라고 믿는 것과 헤어진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갈림길 앞에 선 내게 형은 나의 모습을 타이르지 않고 어떻게 하라고 조언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형은 부산으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 이틀 동안 나를 부산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니며 함께 고통을 나눴다. 오직 그 뼈저린 고통을 이겨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위로였다.
‘윗’은 ‘레드 스토밸’과 긴 여정을 함께 하며 그의 곁에서 어른인 그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가 결핵으로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노래를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앞서 레드 스토밸은 윗의 부모님 앞에서 윗의 기타에 대한 재능을 인정하고 밀어주었던 삼촌의 죽음. 레드 스토밸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죽음의 길로 걸어가는 순간에 윗은 오히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확고히 한다. 레드 스토밸의 고통은 윗에게 조언도 강요도 하지 않는다. 다만 더 고통스러운 모습을 끝까지 보여줄 뿐이다. 윗은 그 옆에서 끝까지 함께 한다.
그동안 나는 고통받아 내 앞에 찾아오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이겨내는 법을 가르치고 조언했다. 고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말과 행동에 그들은 더 상처를 받고 내 곁을 떠났을 것이다. 늦었지만. 그때 피떡이 된 손으로 벽을 치고 있던 그와 같이 아주 요란하게 부서져 줬으면. 무의미한 희망을 심어주는 것도 아니고 조언을 해주는 것도 아닌. 함께 손을 잡고 묵묵히 따뜻한 위로의 눈물을 흘려줬으면 어땠을까 후회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순간. 난, 끝까지 고통을 공부해야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