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최선을 다해봐!
지하철역까지 태워주겠다던 아버지는 출근하는 사회 초년생인 아들의 어두운 낯빛을 보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 그만두자.'
그렇게 얼마 남지 않은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일을 그만뒀다.
신체와 정신을 괴롭혔던 직장에 갈 필요가 없어지니 마음이 훨씬 편했다. 다시 일상을 되찾았고 공원을 산책하며 햇볕을 쬐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소소한 것마저도 행복했다.
시간이 흘러 30대가 되었다. 이력서를 작성하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수십 번 면접을 보고, 입사를 하고, 밤새워 일하고 터득하고, 월급으로 사고 싶은 것을 사고, 은혜를 갚았다. 그리고 여지없이 정확한 시기에 고비가 찾아왔다.
입사 초기, 주말에도 출근해 일했던 나는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노래도 듣지 않은 채 창밖을 보며 수많은 생각 중 부정적인 것만 끈질기게 붙잡았다.
'그만두는 게 속 편하겠어.'
그렇게 정확한 시기에 찾아온 고비를 넘지 못하고, 나를 인정해주는 회사를 내 발로 걸어 나왔다.
오랫동안 백수로 시간을 축내다 굶주림에 지쳐 다시 어렵사리 회사에 들어갔다. 백수 생활 중 나의 현실적 위치를 냉철히 파악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 정확한 시기에 찾아오는 고비의 원인도 파악했다.
입사 초기엔 하나를 시키면 셋을 해내려고 나의 뇌와 팔다리를 쥐어짰다. 매번 깍듯이 인사했고, 또박또박 말했다. 일을 온몸으로 습득해 기계처럼 완벽히 해내려고 노력했다.
3개월쯤 지나면 권태기가 찾아왔다. 일과 직장에 대한 열기가 조금 사그라들었을 때쯤. 슬슬 긴장이 풀리고 부정적인 면들이 눈에 보였다.
'이게 맞는 걸까? 내가 계속하고 싶은 일이 맞나? 빨리 다른 곳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입사 후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구직 앱을 켜고 다른 직장을 찾아봤다. 그동안 낚싯바늘처럼 걸렸던 회사의 단점들을 제거하자 갈 수 있는 직장이 없었다. 앱을 삭제하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6개월... 1년...
가까스로 채운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버틴 것이 뿌듯했다. 그래도 불안은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계약 기간이 만료되고 새로운 계약서를 작성해야 할 시기가 돌아오니, 아주 깔끔히 그만둘 수 있겠다는 희망이 차올랐다. 반면, 처음엔 어렵고 힘들었던 일들이 이제 몸에 배어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다는 만족감이 움텄다.
계약서를 앞에 두고 회사에 추가 요구 사항을 용기내 말했다. 그럭저럭 성실하게 일해서 평판은 나쁘지 않았던지 몇 가지 요구를 흔쾌히 들어줬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대한민국 30대 직장인 남성의 평균적인 현실을 되새기고 다짐을 세웠다.
'나가라고 하지 않는 이상 끝까지 있어 보자.'
순탄히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쯤, 사랑하는 사람이 혼자 품고 있던 고민을 꺼냈다. 일하는 곳에서 문제가 있어 그만둘지 고민이라는 것이었다.
한참 사연을 듣던 난 대답했다.
"힘들면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
그녀의 고민을 단순하게 치부했기 때문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대답이었다. 고민하는 게 마음이 아팠고, 걱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만두면 그 고민에서도 말끔히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상대에게 필요한 대답이었다. 전화를 끊고 혼자 오랫동안 생각에 빠졌다. 20대 초반 사회 초년생이었던 내가 떠올랐고, 아버지가 하셨던 똑같은 대답이 떠올랐다. 그 말을 내가 똑같이 하고 있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마음 깊이 아끼기 때문에 그랬는데.
아버지도 그런 마음이셨을까?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아끼기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을지 않을까.
사실은 좀 원망스러웠다. 그때 좀 만 더 버텨보라고 하셨더라면, 지금쯤 어느 정도 한 직장에 자리를 잡고 통장에 돈도 꽤 쌓이지 않았을까. 지금보다 더 안정적인 상황이지 않았을까. 금방 그만두는 습관도 없어 높은 위치에 올라서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다음 날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남은 시간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만두라고 했던 말보다 그 말에 더 힘을 얻었던지 목소리에 다시 생기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그냥 정답이... 있었던 걸까...
나중에 아이를 갖고, 나의 자식이 이런 상황에 놓여 어두운 낯빛을 하고 있으면 어떤 말을 하게 될까.
'배짱 있게 버텨봐!'라고 말할 것이다.라고 쓰고 싶지만...
그때 가봐야, 아버지가 되어봐야 그 마음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