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로 장사하는 한국 영화의 자충수 <대홍수>

영화 보기의 변화와 영화 마케팅 전략 변화의 절실함

by 오묘미

"기대를 안 해서 그런지 볼만해."

"기대한 것보다 별로였어."


요즘 영화를 다 본 후 주변의 평가는 대체로 이러하다. 좋은 영화의 등장보다 중요한 건 영화의 생활 속 중요도가 급격히 낮아졌다는 것이다. 극장에서 OTT로 기울어진 영화 보는 환경의 변화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활에 퍼져버린 양상이다. 영화는 이제 TV처럼 언제든 켤 수 있고, 언제든 끌 수 있다. 오직 영화가 끝날 때까지 봐야 한다는 극장의 강제성은 사라지고, 시청자의 주체성과 자유가 보장됐다. 단지 영화관에서 OTT로 넘어갔다,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볼 돈으로 OTT를 구독해 수십 편을 감상할 수 있다는 개념이 다가 아니다.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고 언제든 종료할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은 영화의 큰 본질이 흐려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라고 특정할 수도 있다.) 영화를 왜 굳이 극장에서 봐야 하냐는 물음에 직면한다. 더군다나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도 없을뿐더러 작품성 떨어지고 저급하며, 매번 똑같은 영화만 만든다고 한다. 분명 이러한 부분에 영화를 제작하는 관계자들의 책임이 아주 크다. 그러나 이 글에서 내가 집중하고 싶은 부분은 영화 보기의 방식이 천지개벽처럼 변화하였음에도, 영화의 성패를 크게 좌지우지하는 첫인상을 만드는 '마케팅'에 어떠한 깨달음과 시대에 맞는 변화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이 아닌 생뚱맞은 말들로 현혹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자기들 마음대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놓고 영화를 만들어 놓고, 투자금 회수를 위해 사기 치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이는 건 나뿐일까. 영화는 도박처럼 한탕 쳐서 부자가 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 1000만 영화는 왕좌에 올라야 할 성과가 아닌, 빈부의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게 벌이고, 산업 생태계를 흙탕물로 만드는 미꾸라지이며, 영화 꿈나무들에게 자본주의성 환상을 품게 만드는 계략이나 다름없다. 이런 환경에서 그 누가 좋은 영화에 투자할 것이며, 누가 좋은 영화를 쓸 것이며, 누가 좋은 영화를 만들려고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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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관객에게 선을 보이기 전의 모든 외형을 포장하는 것이 마케팅이라면, 극장이 문을 닫아가는 시대에 OTT를 보러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려면, 영화의 본질과 진정성, 영화라는 매체가 갖고 있던 매력과, 극장이라는 공간의 황홀한 기능성에 대해 다시 한번 되짚어봐야 할 때가 (이미 늦었지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들이 어필했던 것과는 달리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려고 한다. 스포일러일 수 있지만 말이다. 이상하게 이 영화가 가진 진짜 반짝이는 매력은 숨겨두는 것이 너무 의아하다. <식스센스>와 같은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영화는 <해운대> 같은 재난 영화가 아니다. 지구가 소행성 충돌로 물에 잠기는 설정은 일종의 낚시성 플롯이다. <대홍수>는 <엣지 오브 투모로우>처럼 타임루프 영화다. 게임처럼 단계를 통과하기 위해 같은 지점에서 죽고 사는 걸 반복하는 내용이다. 지하철역 벽에 도배되고, 예고편에서 보여주는 짤막한 영상에서 엄청난 홍수로 인류가 멸망 직전에 다다른다고 대중을 현혹한다. 그러나 <대홍수>의 본질은 인간의 마음과 윤리를 학습하기 위해 시간을 반복시키며 모성애를 깨달아가는 꽤 괜찮은 기획 의도를 가진 영화이다. 그리고 이 같은 행위와 시간의 반복에서 자기만 주체성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인간의 이기심이 드러나고, 타인의 생명성과 주체성을 깨달아가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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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설명하면 조금은 다르게 포장될까. 아이의 땡깡과 행방불명이라는 진부함과 답답함에 가슴을 치며, 10분 만에 영화를 꺼버린 시청자가 다시 넷플릭스를 켜고 나머지 1시간 30분 남짓을 끊지 않고 감상하게 할 수 있을까. 이미 영화를 끝까지 보고 망작이라고 결론 내린 관객에게 이거 당신 생각과는 좀 다른 영화라고 설득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전혀 그럴 생각도 그럴 의도도 없다. 이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건 다시 말해, 여태껏 '기대'로 장사하던 자들이 이제는 그 배부른 오만함에서 벗어나, 영화 보기의 변화와 현실을 깨달았으면 하는 것이다.


'기대를 안 해서 그런지 볼만한 영화야.'가 아닌, '기대에 충족시켜 주는 명작이야., '직장 동료한테 추천해야겠다.'와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 '기대'라는 환상으로 장사하지 말아야 하며, 영화가 가진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연출자와 제작자가 수십수백억을 들여 만들 정도의 대단한 기획 의도로 관객을 어필하고 설득해야 한다. 눈에 뻔히 보이는 현혹성 포스터와 멘트들로 사기를 치고 오히려 기대를 벗어나 실망으로까지 나아가 한국 영화를 더 이상 거들떠보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 영화가 가진 매력을 당당히 어필해야 한다.


이렇게 장황한 말로써 이 영화를 칭찬한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이 영화는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모로 허접한 영화다. 그런데 '기대 없이' 눈 뜨고 있으면 그냥저냥 또 볼만한 영화다. 또한 이 영화는 현시대의 영화 보기의 변화와 마케팅 전략의 후진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영화이기 때문에 <대홍수>는 얼마간은 두고두고 설전을 벌이고 토론의 주제가 되어야만 하는 영화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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