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내 것이 아닌 꿈 <여행과 나날>
미야케 쇼 감독의 영화 <여행과 나날>(2025)은 각본가 '이'(심은경)가 창작의 고비를 겪고 즉흥으로 떠난 여행지의 산속 오래된 숙소에서 묵으며 진행되는 이야기다. 영화는 세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이'가 쓴 글로 만들어진 영화, 그걸 보는 자신의 현실, 여행지에서 벌어진 일이다. 영화 속에 영화(픽션)가 있고, 또 그 속에 영화(여행)가 있다. 초반엔 현실과 허구를 쉽게 구분할 수 있지만, 후반부에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르게 된다. '꿈속에서 꿈을 꾸는 상태'인 몽중몽처럼, 꿈이 너무 선명해 꿈인지 모를 때처럼. <여행과 나날>은 꿈과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나누고 벽을 허문다.
그 의도에 제대로 낚였는지, 영화관을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꿈은 내 것이 맞을까. 2, 3시간 남짓 영화관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끊김 없이 단번에 감상하는 영화의 특수성은 마치 꿈의 구조와 비슷하다. 잠자는 동안만 경험할 수 있으며 깨면 다시 돌이킬 수 없고, 되돌아볼수록 현실에 맞춰 변화하는 꿈과 같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는 영화를 놓았다. '이'가 쓴 영화가 손에서 벗어난 무언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조차도 여행지에 떨어뜨려 놓는다.
물론 각본가의 글은 감독에게 넘어가는 순간부터 내 것이 아니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각본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기도 한다. 영화에서 시나리오라는 것은 작가의 창작품이라기보다 영화의 설계도 정도로 치부되기도 한다. 이것은 좋지 않다. 그러나 감독 또한 자신이 만든 영화를 세상에 내보이는 순간, 내 것이 아닌 게 되는 것은 매한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의 몇 주년 기념 상영회에서 감독은 영화를 몇 년 만에 다시 보게 돼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고 말한다. 그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실망이 큰 말일지 모르나, 그들의 입장에서는 뼈 빠지게 만들어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너무 많이 봐 지겨워서 그럴 수도 있겠다. 모든 영화감독이 그렇지만은 않겠지만, 창작자를 통틀어 자신이 만든 작품에 극진한 애정을 갖는 것은 당연하며, 오히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으로 세상에 투척하는 마음은 쉬이 따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생각보다 짧은 이 영화는 세 편의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듯하다. '이'의 영화-> '이'의 실제 삶-> '이'의 여행. 89분이라는 러닝타임은 여타 영화에 비해서 짧은 편이지만, 세 개의 이야기를 담기에도 짧게 느껴진다.(시간이 금방 간다라고도 볼 수 있다)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영화이며, 주목받고 있는 일본의 젊은 감독의 작품이라기에는 이야기 구조가 단편적이고, 인물과 사건에 더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도 든다. 하지만, 오래된 일본 전통 가옥에 눈발이 날리는 이미지, 한밤의 실내의 분위기, 얼어붙은 강을 걷는 장면만으로도 끔찍하게 아름다운 숏에 전율을 느낀다. 차치하고 영화를 내 것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 손에서 놓아버린다는, 그 초연함 만은 젊은 나이에 이미 거장에 도달하지 않았나 싶다.
최근 한국과 일본의 영화적 교류가 잦다. <굿뉴스>(2025)에서 일본 배우 야마다 타카유키가 출연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할을 연기했고, <드라이브 마이 카>(2021)에서는 한국 배우 박유림이 매력적인 모습을 뽐내며 동시에 세계 영화제 무대에 함께 올랐다. 일본 영화 <여행과 나날>에서의 한국 배우 심은경의 출연과 한국인 캐릭터 설정 또한 한국과 일본의 영화적 교감이 얼마나 밀접한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양 국가의 역사적 사회적 간극과 접점은 영화라는 몽환의 꿈과 시대성에 의해 변해간다. 지금만큼 젊은이들이 문화적으로 가까웠던 적이 있을까. 이것은 한낱 꿈일지, 현실일지, 아니면 픽션인지... 알 수 없지만 어찌 됐든 영화가 소멸해 가는 암담한 현실에서 서로 의지하고 새로운 힘이 되는 좋은 교감임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