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을 나오며
나의 대학생활은 흔하디 흔한 공대생의 삶이었지 않았나 싶다. 처음 느껴보는 듯한 달콤한 자유에 취해 책임을 저버리고 내일이 없는 듯 놀다가 불현듯 다가오는 국방의 의무를 열심히 수행하고 전역 후 넘치는 고무감에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이 의기양양했지만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학문의 높이에 진땀을 흘리다 중간고사에 좌절하고 취업의 문턱을 뼈저리게 느끼는 그런 삶 말이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녀를 만난 건 하늘이 높고 생각보단 더웠던 가을제주의 한 게스트하우스였다. 상당히 작고 꽤나 미인이었으며, 성격이 쾌활하고 운동을 좋아했던 그녀였다. 그 당시에는 여느 스쳐가는 인연들처럼 가을제주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이듬해 어느 날, 그녀와 나는 사랑을 키워나가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근데 이쯤 되면 아마 여러분들은 '엇? 근데 이거 스타트업 이야기 아니었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맞다 스타트업 이야기. 조금만 더 기다려보라.
그런데 열심히 사랑하던 그 당시의 나에게는 한 가지 큰 고민거리가 있었다. 바로 취업이었다. 먼저 나의사랑 그녀의 직장은 서울이었다. 서울중에서 가장 번화한 강남 한복판에 자리 잡은 '스타트업'이었다. 반면에 나는 공대생, 그중에서도 기계공학과 학생이었다. 따라서 그 당시의 내가 취업을 할 경우 높은 확률로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에 취업을 하게 될 것이고, 또다시 높은 확률로 나의 사랑 그녀와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게 나의 큰 고민거리였다.
따라서, 그때부터 나의 취업 목표는 남들이 원하는 대기업도 아니고 공기업도 아닌 서울, 서울중에서도 특히 강남에 있는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스타트업에 다니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스타트업을 다니는 그녀의 영향도 컸던 것 같다.
물론 그녀만이 스타트업을 목표로 하는 계기는 아니었다. 일단 그 당시의 나는 거대한 시스템에 속하기보다는 나만의 작은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 했다. 아무래도 불안이 높은 성격이라서 나만의 작고 하찮은 재주를 갈고닦아 먹고살 정도만큼은 만들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나 보다. 또한 내가 진짜로 대기업이나 공기업과 같은 크고 안전한 시스템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다. 정말 힘들고 어렵게 준비하여 대기업, 공기업에 들어갔다가 실망하고 나올까 봐 걱정했던 것도 있었고 과연 대기업과 공기업이 나라는 사람을 필요로 할까에 대한 의문 또한 있었다.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는데 말이다.
여하튼 위와 같은 이유로 스타트업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이제 구인구직 사이트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웬걸, 서울에는 제조업 기반의 스타트업이 정말 없는 것이었다..!! 그 당시 기준으로 내가 원하던 직군으로 열린 공고는 정확히 2개였으며, 그마저도 모두 5년 이상의 경력자를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실무경험도, 인턴십도, 하다못해 졸업장도 없던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골똘히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이 회사들이 나를 바라봐줄까? 그에 대한 답은 무모함과 패기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XX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재학 중인 Chilly Sky입니다.
귀사의 아이템을 보고 저도 꼭 귀사와 같은 혁신적인 회사에서 일원으로서 함께 일하고 싶어 연락드립니다.
무급으로 일해도 좋으니 인턴을 검토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