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은 나이에 나를 품고 절에 갔다가 마주친 스님이 엄마 뱃속을 보고 한 말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학교도 1년 일찍 들어간 애가 반에서 국어 백점을 독점했던 시절, 그때가 내 성적의 최고 전성기 인 줄도 모르던 열 살 시절,
엄마는 감질나는 짤막한 칭찬과 이런 말을 했다.
“ 얘는 굴려놔도 서울대 갈 애라는데 정말인가~? “
주변 어른들이랑 호프 한 잔 할 때 노산의 나이가 되어 고생하며 낳은 내 이야기를 할 때에도
” 그래도 막내딸은 굴려놔도 서울대 갈 애라고 걱정 말라대 “
십 대가 되어 성적표가 하향 곡선을 그리던 시점부터는 멘트가 조금 바뀌긴 했지만.
” 굴려놔도 서울대라더니 그 스님 영 엉터리 같아 ”
그 말을 할 때엔 흐뭇한 기대와 애정이 담긴 마음이 느껴지기에 나 역시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중학교 즈음 그놈의 서울대가 더 이상 낭만이 아닌 숫자로 확률을 야기할 수 있을 무렵
그 말이 꼭 짐처럼 느껴지고 현실의 나를 더 작아지게 만들었다.
내가 입학한 대학은 서울에도 밀려난 그 주변 어느 전문대학이었기에 이제 엄마입에서 그 말은 쏙 들어갔다.
내 이십 대의 대부분은 나태했던 과거, 원하던 진로가 아닌 현재, 불 확실한 미래에 관한 불안과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잡념에 허덕이며 순식간 흘러갔다.
그러다 조금씩, 늦었더라도 하고 싶었던 그림을 배우고 관련한 일들로 주변을 채워가며 스스로에게 기어코 솔직해지기로 한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엄마, 예전에 어떤 스님이 나는 굴려놔도 서울대 갈 팔자라고 했잖아.
근데 그건 말이지 얘는 굴려놔도 알아서 잘 살 애다 그런 뜻으로 말한 거 같아. 냅둬도 걱정 없이 잘 살 애라고. 그니까 서울대는 뭐랄까 하나의 상징인 거고. “
요리하다 말고 딸내미 긍정회로에 끄덕이는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