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하나는 거짓말

이중 하나만 거짓말일까.. 하나도 거짓이 아닐까..

by 조고즈넉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문학동네, 2024


일종의 청소년 성장소설.

주인공들은 더없이 해맑고 싱그러울 나이지만 역시 인생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그 나름의 무게가 함께 하기에 전반적은 분위기는 생각보다 진중하다. 중학생인 주인공들에게 하나씩 가슴저린 죽음을 안겨 놓고 시작하기에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출발선에 긴장되게 서 있는 모습을 아슬하고 위태한 시선으로 보는 느낌이다. 그 시선이 공감으로, 응원으로 변하게 되는게 이 책을 읽는 주요 즐거움이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 하나만 거짓말일까.

그 거짓은 진짜 거짓일까.

진실의 깊이는 얼마일까.

진실의 껍데기를 벗겨도 그 안에 진실이 있다는 보장은 아무도 할 수 가 없다.



#1_그러니 다른 사람들 삶에는 또 얼마나 많은 기만이 있을까?

이 문장이 바로 이 소설의 주제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짓과 진실이 혼용된 기만. 그 기만에 기인한 오해와 갈등. 그러한 오해와 갈등이 해소되어가는 결말이 이 소설의 기본 뼈대이다.

남을 속이는 기만은 그나마 자기 보호라는 변명이라도 있다. 살다보면 나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도 자주 생긴다. 현실의 비루함 속에서 그만큼 편한게 또 없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이 짧은 기간 반복된다면 경계해야 한다. 기만에 잡혀먹지 않도록. 기만의 유혹과 싸워 이겨내는 일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수신'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 진짜로 언어 공부가 하고 싶은지 물었다. 여전히 이곳을 떠나고 싶은지, 간다면 어디로 갈 건지, 그저 소문과 아버지가 없는 땅이면 되는지, 정말 그거면 되는지.
'그동안 내가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속인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재작년 축구 훈련 중 채운은 일부러 부상을 유도했다. 그러고 담당의로부터 더이상 운동선수로 살기 어려울 거란 진단을 받은 뒤 남몰래 안도했다. '적어도 내가 그만둔 게 아니니까. 내가 의지가 약해서, 실력이 안 돼서 못하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겉으로는 모든 걸 잃은 양 어두운 표정을 짓고 다녔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신에게 좀더 너그럽고 친절하게 대해줬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 삶에는 또 얼마나 많은 기만이 있을까?' (p170)



#2_ 인간은 앉는 법과 서는 법, 물 삼키는 법까지 일일이 배워야 하는 존재였다. 어느 건 배워도 안 지키고, 알고도 실천 못 하는.

인간이 동물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태어나자 마자 걸음마를 하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최소 만2년은 보호자의 완벽한 의식주 돌봄이 필요하다. 보호자의 보호와 통제는 인간의 성장과 독립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그 갈등이 폭발하는 시점이 청소년 시기이고 사춘기이다. 부모들이 사춘기 자녀와 갈등을 빚을 때 흔히 하는 레파토리가 '저게 이제 다 크고 나니 지 혼자 큰 줄 알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아닌가? 인간은 모든 것을 보호자로부터 배워야만 혼자 오롯이 설 수 있게 성장한다. 사춘기 채운에게 그 사실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 듯 하다.

다만 가정시간에 인간의 발달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다 "인간은 기기 시작할 무렵 비로소 깊이에 공포를 갖는다"는 말을 듣고 놀란 기억이 났다. 채운은 깊이나 높이에 대한 공포처럼 단순한 감각도 날 때부터 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그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인간은 앉는 법과 서는 법, 물 삼키는 법까지 일일이 배워야 하는 존재였다. 어느 건 배워도 안 지키고, 알고도 실천 못 하는.(p23)



#3_ 나는 그 사람이 나와 마주 앉았을 때 활짝 벌어지던 동공과 꼿꼿이 선 척추가 좋았어. 그 반듯한 태가.

갑분싸 문장. 평범한 결혼생활을 하는 대한민국의 누구라도 공감이 갈 문장이다. 소설의 주내용과 큰 상관없는 문장이다. 하지만 채운의 엄마가 채운에게 쓰는 고백적 편지 속의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내 눈은 저절로 커졌다. 내 속의 바람(=바램)을 들킨듯이. 나를 향해 집중해주는 기운, 아직 너는 주인공이다라고 말해주는 눈빛. 이 맛에 바람나고 이 맛에 사기당하는 거 아닌가 싶다.

그 사람은 나를 늘 존중해줬어. 나는 그 사람이 나와 마주 앉았을 때 활짝 벌어지던 동공과 꼿꼿이 선 척추가 좋았어. 그 반듯한 태가. 왜 우리가 성당에 들어가거나 콘서트홀에서 교향곡을 들 때 자세를 바로 하게 되잖아? 그 사람은 마치 자기가 그런 데 들어오기라도 한 양 나를 대했어. 그즈음 나는 집에서 늘 긴장했는데 그 사람 앞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어. 어느 땐 옆에 있으면 한없이 잠이 쏟아졌지. 며칠이고 함께 긴 잠을 자고 싶을 만큼.(p179)



#4_ 눈 앞에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온 힘을 다해 다른 선택지를 찾는 건 도망이 아니라 기도니까.

인간에게 기도가 필요한 이유를 찾았다. 이 문장을 역으로 해석하면 기도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온 힘을 다해 다른 선택지를 찾는 거니까. 어렸을 때는 누구나 나이가 먹고 당연히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한 해 한 해 삶을 거듭해나갈수록 성숙하고 현명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혜안이 생기기 보다는 반투명 셀로판지가 눈 앞에 한장씩 추가되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답답하고 캄캄한 그 기분. 출구도 선택지도 뿌연 안개 속에..

문득 네 어릴 때 생각이 난다. 네가 막 걷기 시작했을 무렵 뿅뿅 소리 나는 샌들을 신고 아장아장 동네 골목으로 들어가던 모습이. 그럴 때면 나는 뿌듯한 감정이 들면서도 왠지 네가 그대로 영영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 가슴이 저렸지. 부모들은 한 번쯤 다 겪는 감정이고.
그런데 이제 나는 네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눈앞에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온 힘을 다해 다른 선택지를 찾는 건 도망이 아니라 기도니까. 너는 너의 삶을 살아, 채운아. 나도 그럴게. 그게 지금 내 간절한 소망이야. 이건 희생이 아니란다, 채운아. 한 번은 네가, 또 한번은 내가 서로를 번갈아 구해준 것뿐이야. 그 사실을 잊지 말렴.(p182)



#5_ 어째서 삶이 누구나 먹고 싶어하는 탐스러운 과일이라도 되는 양 굴었을까? 내가 원했으니까?

이 문장도 일종의 기만을 표현한다. 내가 원한다고 남도 원할 거라는 그 당연함은 일종의 무례이기도 하다. 옛말에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 말도 비꼼과 악담 속에 이런 의미를 숨긴 말이라 생각한다. 엄마가 죽지 않기를 바라던 소라의 간절한 마음은 간병이라는 매서운 현실 속에서 딱 한번 배신의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스스로를 벌하듯 자신을 긴 터널로 몰아넣었지만 뺨을 맞듯 엄마의 진심을 알게 된다. 너무 다행이다. 누군가에게 뺨을 맞더라도 진실을 알고 기만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소라는 누군가로부터 뺨을 맞은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그토록 엄마가 열렬히 삶을 원한다고 단정했을까? 어째서 삶이 누구나 먹고 싶어하는 탐스러운 과일이라도 되는 양 굴었을까? 내가 원했으니까? 매일 아침 엄마가 또렷이 보이길 누구보다 바랐으니까?(p194)


#6_ 삶은 가차없고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 마지막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의미있는 이야기 속에 머둘다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말 中)

김애란 작가는 작가의 말마저 너무 멋있다.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의미있는 이야기 속에 머물 수 있도록 나도 오늘 무언가를 해야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과민한 대장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