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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로 Nov 13. 2023

부정적인 감정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

울다가 웃어보기

"기분을 순식간에 바꿀 수 있을까?"


이 단순한 질문에서 나의 실험은 시작되었다.


몇 년 전, 불현듯 자취를 선언하며 엄마와 갈등을 겪은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서른이 넘었었고, 머지않아 결혼할 남자친구가 있었으며, 살림도 할 줄 모르고 심지어 수입도 안정적이지 않았다. 누가 봐도 자취하기에 적합한 상황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반대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나 역시 독립해서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몇 번의 고성이 오간 후 나는 방으로 들어와 책상 앞에 앉아 울고 있었다. 엄마가 원망스러웠지만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동시에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혼자 잘 살 수 있을까?

월세나 낼 수 있을까?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내 직감은 이게 옳은 길이라고, 이제 혼자 살 때라고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직감을 신뢰하는 사람이다. (물론 엄마에게 '내 직감이 이제 혼자 살아야 한다고 한단 말이야!!!'라고 하지는 않았으니 안심하시길.)


눈물이 쉬지 않고 흘렀다. 어지러웠다. 엄마와의 신경전이 지긋지긋했다.


바로 그때였다. 여전히 흐느끼고 있었는데, 내 속에서 갑자기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왜 계속 울고 있는 거지?'


그 목소리는 계속해서 말했다.


'계속 이렇게 불행한 느낌을 갖고 싶은 거야? 왜 계속 울고 있는 거야? 싫으면 그냥 지금 멈추면 되는 거잖아?'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목소리의 말이 맞았다. 이런 기분이 싫으면 그냥 멈추면 되는데 나는 왜 계속 괴로운 생각들을 물고 늘어지고 있는 걸까? 나는 왜 계속 울고 있는 걸까?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계속해서 불행한 생각을 하도록 부추기고, 나를 울게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냥 멈추면 되는 거야. 그냥 이 감정을 여기서 놓아버리면 되는 거야. 그건 네가 선택하는 거야. 계속 괴로워할 필요 없어.'


이 슬픔을 당장 놓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계속 느끼고 싶었다. 깊은 좌절감 속에 뭔지 모를 희열감이 있었다. 마음은 양쪽을 오가며 어쩔 줄 몰라했다. 내 안에서 압력이 계속 커져갔다.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마. 내가 끝내버리면 되는 거야. 지금!!'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이 감정을 바로 끝낼 수 있을까? 이 지긋지긋한 슬픔을 끝낼 수 있을까?


그 순간,

난 결심을 했고,

내 감정을 끝냈다.


"흑흑... 흐흑.... (울음 뚝) 아~ 노래나 들어볼까?'


난 한순간에 울음을 그치고는, 다소 뻔뻔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러곤 노래를 틀었다. 내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었다면 돌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행히 난 방 안에 혼자 있었다. 기분이 바로 괜찮아졌다. 난 눈물 자국 가득한 얼굴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마치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한참을 울다 '컷!'소리와 함께 바로 웃으며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하는 비련의 여주인공. 나 역시 내 슬픔을 컷! 하고는 감정 모드를 바꿔버렸다.


몇 분 후, 엄마가 들어와 또다시 속을 긁는 몇 마디를 하셨지만 난 더 이상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아까의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온통 방금 했던 경험에 대한 놀라움으로 꽉 차 있었다. 기분을 이렇게 순식간에 바꿀 수 있다고? 상황이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이전까지 한 번도 이렇게 극적으로 내 감정을 바꿔본 적은 없었다.


나는 매 순간 내 감정을 선택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왜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사람에게는 묘한 습성이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기 싫어하면서, 동시에 그 감정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누군가에게 화가 났을 때, 그 분노를 집까지 끌고 와 계속 곱씹는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술의 힘을 빌려 끝없는 침울함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때, '뭐 하나 걸리기만 해!'라는 생각으로 그 사람을 예의주시한다.

누군가를 짝사랑해 가슴이 미어지면서, 슬픈 짝사랑 노래에 심취한다.


(참고로 나는 짝사랑할 때 윤하의 '기다리다'를 많이 들었다. '아홉 번 내 마음 다쳐도 한 번 웃는 게 좋아.' 가사가 어떻게 이렇게 주옥같은지! 이 노래를 들으며 내가 얼마나 애달픈지 계속해서 재확인하곤 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기 싫다고 하면서 내심 그 감정을 유지하길 원하고, 계속 재생산하는 것일까?


'정말 짜증 나는 감정이지만 난 이 감정의 끝을 봐야겠어!!!'라는 이 심보는 도대체 왜 생기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알게 모르게 부정적인 감정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에 중독되어 있다.


사람이 슬픔, 분노, 두려움, 죄책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마다 몸에서는 아드레날린, 코르티솔 등의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된다. 스트레스 호르몬은 원래 우리를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분비되는 것이지만,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황에서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출되면 우리 몸은 불균형 상태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서서히 이 상태에 중독된다.


즉, 부정적인 감정에 중독되는 것이다. 이제 분노라는 감정을 느끼기 위해 나를 화나게 하는 상황과 사람을 찾아다녀야 할 판이다. 이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엇이 나를 화나게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정 상황, 사건, 사람에 대해 '과거에 이미 프로그램되어 있는 대로'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며 감정을 만들어낸다. 당신이 싫어하는 누군가를 떠올려보라.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된 최초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때 이후로 당신은 그 사람과 '미움' 혹은 '분노'(그 외에 당신이 느끼는 바로 그것)의 감정을 연결시켰다.


이제 당신은 출근해서 그 사람이 무슨 말만 해도 자동 반사적으로 기분이 나빠진다. 기침만 해도 짜증이 난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 사람이 매번 당신을 화나게 하는 일을 저지르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어쩌면 당신은 그 사람과 연결시킨 부정적인 감정에 중독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행인 것은, 이 중독에서 벗어날 길이 있다는 것이다.


감정을 알아차리고,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나는 '감정'이 아니다.

나는 '감정'을 알아차리는 자이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의식적으로 좋은 감정을 선택할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미워하거나 감정에 저항할 필요는 없다. 그 역시도 나에게 소중한 감정이므로. 저항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다. 그저 모든 감정은 내 마음속에 잠시 피고 지는 연기와 같은 것임을 알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리에 머무르면 된다.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질 때, 이를 알아차리고 잠시 그 감정을 온전히 느껴보라. 허용하는 것이다. 감정이 나를 지나갈 시간을 주어야 한다. 엄마와 다투고 울던 시기에 나는 감정을 허용하는 것에는 미숙했다. 그때 이 방법을 알았다면 훨씬 수월하게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을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통과해 지나가는 것이 느껴지면, 이제부터는 습관적으로 반응하던 것을 멈추면 된다.


내가 흐느껴 울다가 갑자기 웃은 것은 너무 극단적인 사례일지도 모른다. 그저 조금씩 감정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에게 익숙한 감정을 알아차리고, 허용하고, 의도적으로 다른 선택을 해보는 것이다. 출근해서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과 마주쳤을 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아, 또 미워하는 마음이 올라오려고 했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래도 저 사람이 지금 나한테 뭘 잘못한 건 아니잖아? 계속 이렇게 반응할 필요 없지. 오늘은 조금 덤덤한 마음으로 대해볼까?'


작은 순간부터 시작해 보자. 버스를 놓치고, 차가 막히고, 옷에 김치국물이 튀고, 점원이 불친절한 이 모든 사소한 상황에서, 우리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선택할 수 있음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경험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감정을 선택하는 연습을 계속해오고 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허용하고, 새로운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다. 상황에 따라 잘 되기도 하고 어려울 때도 있다. 그저 반복해서 연습할 뿐이다.


중요한 건 내가 더 이상 예전처럼 심하게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 좀 더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 훨씬 자유로워진다. 외부 상황에 따라 내 감정이 요동친다면, 그건 전혀 자유로운 상태라고 할 수 없다. 외부의 모든 요소를 내가 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선택권이 나에게 있음을 아는 것, 의식적으로 내가 원하는 감정을 선택하는 것. 이게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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