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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일 Jun 06. 2024

# 3

사람 이야기

1.

토요일 새벽, 길을 나섭니다. 홍천에서 인제로 들어서자 폭우가 내립니다. 오늘도 빗속 산행이 될까 불안합니다. 오색에 도착해 김밥 한 줄, 물 한 통 그리고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8시에 대청봉을 향합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습니다. 한 달 전, ‘성중종주’ 후 ‘화대종주’가 내내 머릿속을 떠돕니다. 첫걸음 내디디면 개고생이야 하겠지만 결국 날 바뀌기 전 대원사에 도착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습니다. 오늘 산행은 가능성에 대한 점검입니다. 물론 무릎에는 양해를 구했습니다. 대청봉은 구름 속입니다. 아무런 풍경도 내놓지 않아 카메라는 쓸모 없는 물건이 되었네요. 다시 하산길, 더하고 덜할 수는 있어도 역시나 모든 산은 힘이 드네요. 그것이 산의 존재 가치이고 등산의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조용히 버킷리스트에서 ‘화대종주’를 지웁니다. 12시 25분, 산행을 마칩니다.


2.

일요일 아침 일찍 아버님과 같이 영랑호로 산책 갑니다. 속초 본가에서 영랑호는 야산 너머 1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습니다. 36년 생이신 아버님 걸음이 저보다 빠릅니다. 마사토 길이라 미끄러워 제가 부축합니다. 아버님 팔에 힘이 들어갑니다. 생각해 보니 아버님 부축하며 나란히 걷는 게 처음인 것 같네요. 좀 더 일찍 그러지 못한 후회가 듭니다. 40대에 아들 둘 객지로 떠나보내고 40년 동안 두 분이 속초에서 생활하십니다. 주말이 되면 따로 사는 두 아이의 부재가 종종 그리움이 됩니다. 부모님의 40년 세월은 어떠했을지 가슴이 저며옵니다.


3.

모든 게 빨랐던 친구가 있습니다. 군 제대하면서 학교를 중퇴하고 일찍 사업을 시작한 친구입니다. 가장 먼저 귀향해 고향에 자리 잡고, 가장 먼저 결혼하고, 가장 먼저 아이를 낳은 친구가 무엇이 그리 급했던지 가장 먼저 세상과의 작별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나 친구 아들의 결혼식이 있는 날입니다. 살아 있었다면 많은 친구로 북적거렸을 결혼식에 몇몇 친구들만 보입니다. 원주에 사는 친구 데려다주고 늦은 귀갓길, 1박 2일의 속초행이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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