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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일 Nov 01. 2024

비극의 시작, 비무극

역사 이야기

오자서 - 1

 

기원전 540년, 초나라 공자 위는 조카인 초왕 웅균을 죽이고 왕위에 올라 초영왕이 됩니다. 왕은 진(陳), 채 두 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변 여섯 나라를 무력으로 병합합니다. 전국시대와는 달리 춘추시대는 계절존망(繼絶存亡, 종묘와 국통을 이어줌)이라하여 약소국의 존속을 보장하는 것이 강대국의 책무가 되던 시기입니다. 모든 나라가 초나라를 남쪽 오랑캐라며 비난합니다.   

  

패권을 노리던 왕은 신흥 오나라를 공략하기 전에 오와 친한 서나라를 침략합니다. 패권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는지 왕은 겨울철에 출병하는 우를 범합니다. 초나라는 남쪽 나라인지라 추위에 취약합니다. 병사들이 추위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습니다. 왕이 무심결에 춥다는 말을 하자 신하인 정단이 말합니다. “왕께선 막사 안에서 두꺼운 가죽옷을 입고도 추우신데, 쇠로 만든 투구와 갑옷을 걸치고 거센 바람과 폭설 속에서 싸워야 하는 병사들의 고통은 어떻겠습니까? 도성을 너무 오래 비우면 변란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철군하십시오.” 왕은 오히려 전장에 궁궐을 지으며 물러날 뜻이 없음을 확고히 합니다. 

    

왕의 동생인 공자 기질이 진(陳)과 채의 병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도성을 지키고 있던 왕의 두 아들을 죽입니다. 두 아들의 죽음을 전해 들은 왕이 온몸을 뒹굴며 오열하다 묻습니다. “자식 잃은 슬픔은 누구에게나 같을까?” 정단이 답합니다. “한낱 짐승도 새끼를 사랑하는데 어찌 사람이겠습니까!” 왕이 탄식합니다. “과인이 수많은 누군가의 자식들을 죽였으니, 내 자식 죽인 것도 탓할 게 못 되는구나!” 왕이 반란군을 진압하려 했으나 많은 군사가 탈영합니다. 왕이 포기하고 자살로 삶을 마감합니다. 

    

기원전 529년, 반정에 성공한 공자 기질이 초평왕이 됩니다. 왕이 진(陳)과 채 그리고 여섯 나라를 복권합니다. 세상이 초나라를 칭송합니다. 왕은 장자 건을 태자로 책봉하고 오사를 태자의 스승인 태사로 비무극을 소사로 삼습니다. 초평왕 2년, 왕이 열다섯 살이 된 태자 건의 혼사를 위해 비무극을 진(秦)나라로 보내 청혼합니다. 진나라와 통혼해 점점 강성해지는 오나라와 월나라를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진애공이 초나라의 청혼을 받아들여 동생 맹영을 출가시킵니다. 맹영은 절색의 미모를 지녔다고 합니다. 맹영의 미모를 본 비무극이 왕의 신임을 얻을 호기로 이용합니다. 왕을 충동질해 맹영을 취하게 합니다. 태자에겐 맹영의 시녀 중 한 명을 골라 공주라 속이고 혼인시킵니다.  

   

초평왕 6년에 왕이 태자 건을 변방인 성부라는 곳으로 보냅니다. 왕이 본처를 쫓아내고 맹영을 본부인으로 삼아 진을 낳습니다. 왕은 진도 태자로 임명해 한나라에 두 태자라는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비무극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태자 건이 왕위에 오르면 죽을 목숨이니 생사를 걸고 태자 건을 몰아내야 합니다. 비무극이 반복해서 태자 건을 음해하자 처음에는 믿지 않던 왕이 태자 건을 폐위합니다. 그러나 건의 존재가 비무극에겐 여전히 위협이 됩니다. 비무극은 혹시 있을지 모를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폐태자 건과 그의 세력을 일소하려 합니다.     


왕이 태자를 폐하기에 앞서 건의 스승인 오사를 불러들여 건의 반란에 대해 묻습니다. 강직한 오사가 대답합니다. “애초에 자부(子婦)를 취하신 것부터가 잘못이었습니다. 어찌 하찮은 인간의 참소만 믿고 태자를 멀리하려 하십니까?” 약점을 직격당한 왕이 분노해 오사를 가둡니다. 이어 성부에 있는 분양이란 신하에게 밀지를 내려 건을 죽이라 명령합니다. 분양이 건을 만나 왕의 밀지를 보여줍니다. 건은 시녀 출신인 아내와 아들 승을 데리고 송나라로 달아납니다. 건을 살려 보낸 분양은 스스로를 결박하고 도성에 있는 왕에게로 가 태자를 놓아주었다고 자백합니다. 왕이 분양에게 죽음이 두렵지 않냐고 묻습니다. 분양이 대답합니다. “목숨이 아까워 달아난다면 두 번 죄짓는 일입니다. 태자가 무고한 것을 알면서도 태자를 죽인다면 그 또한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왕께서 신을 성부에 보낼 때 과인을 섬기듯 태자를 섬기라 했습니다. 왕명을 이행했을 뿐입니다. 이제 폐하의 아들을 살렸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왕이 분양을 살려주고 원직에 복귀시킵니다. 

    

(사기의 오자서 열전엔 이 과정이 조금 다르게 설명돼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정사인가를 규명하는 것보다 처절했던 한 인간의 삶을 엿보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다소 부풀려진 것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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