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가 너무 성실하다
나는 요즘 나의 게으름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 중이다.
문제는 이 반성조차 귀찮다는 데 있다.
게으름도 재능으로 쳐준다면 난 그 분야의 천재가 아닐까 싶다.
타고나길 이렇게 게으른 성미였던가.
보통 작심삼일은 싫증이 나서 무너지는데,
나는 싫증도 아니다. 그냥 귀찮다.
얼마나 귀찮으면
일기를 쓰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이쯤 되면 성격이 아니라
생활 방식에 가까운 문제다.
부디 나의 아이들만은
이 몹쓸 게으름을 닮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유전이란 건 늘 이런 데서만 성실하다.)
나는 밖에 나가 돌아다니는 건 좋아한다.
문제는 그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씻기’라는 관문이다.
이건 거의 출발선 앞에서 탈락하는 수준이다.
큰맘 먹고 책이라도 읽어보자 하면
세 장쯤 읽는 순간
눈은 이미 다른 세상을 향해 떠나 있고,
손은 책을 들고 있는 것조차 버거워
공중부양템을 찾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독서가 아니라
근력 운동에 가깝다.
한 번 늘어지면
모든 게 같이 늘어진다.
그래서 최대한 늘어지지 않으려 애쓰는데,
요즘은 이상하게
자꾸 더 늘어진다.
이게 다 날씨 탓인가.
그래, 날씨 탓이라도 해보자.
어차피 이유는 있어야 하니까.
내가 이렇게까지 게을러지는 건
지금 저렇게 부지런히 피고 있는
꽃들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저렇게 열심히 피고 있으니,
나는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균형이란 건 원래 그런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