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은 처음입니다만

3. 육아는 코미디, 살림은 스릴러

by 충청도 여장사람

1. 아침 – 강제 리셋


아침부터 강제 리셋이다.

분명 어제 끝난 것 같았는데, 눈뜨니 다시 영화 시작.

비교적 조용하게 오프닝이 걸렸다.


고요함은 아이들이 기상하는 순간 사라지고,

나는 흐린 눈으로 베란다 넘어 산을 본다.

아, 시작이구나.


육아는 코미디고, 살림은 스릴러가 따로 없다.

둘 다 내가 주인공인데, 관객은 없다.

가끔 누가 내 인생을 찍어줬으면 싶다가도

편집자를 떠올리면 그만둔다.


오늘도 멀쩡한 척, 사람 흉내 내며 하루를 시작한다.

커피는 미지근하고, 마음은 백도씨 이상.

그래도 다행인 건, 아직 웃음은 남았다.

비록 영혼은 없지만.



2. 오전,오후 - 평화 유지법


아이들이 밥을 먹는다.

남편은 조용히 출근 준비를 한다.

‘조용히’— 이것이 우리 집의 평화 유지법이다.

잘못 건드리면 하루가 아주 시끄럽다.


시계를 가리키며 서둘러 먹으라고 말한다.

말투는 상냥하지만, 눈에서는 불이 난다.

‘빨리빨리’를 순화해서 ‘서두르자’, ‘어서’, ‘조금만 더’ 같은 단어로 둘러대지만,

이미 내 입에서는 랩처럼 다다다다닥 쏟아지고 있다.


매일매일의 반복.

하루가 이렇게 성실하게 리셋되는 걸 보면

신은 꽤 부지런한 개발자인가 보다.


그래도 다시 한다.

밀린 빨래를 돌리고, 건조기에서 말라비틀어진 옷을 꺼내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밥을 하고, 애들을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또 잊는다.

어차피 리셋될 하루라면, 버그 하나쯤은 남겨둬도 괜찮다 싶다.



3. 밤 – 강제 종료


아이들이 잠들면, 그제서야 찾아오는 고요함.

BGM은 김범수, 또 하루가 지나가네요~

할 일은 남았고, 집 밖의 도로와 내 머릿속은 여전히 시끄럽다.


나는 침묵으로 강제 종료당한다.


내일도 강제 리셋되어,

같은 장면, 같은 대사, 같은 내가 반복되겠지만

그래도 재생 버튼은 누를 거다.


되돌려 보면, 꽤 웃기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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