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요정 오소리의 요리하는 글쓰기 (3)
#1
배고플 때 장 보는 것만 위험한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배고플 때 요리하는 건 더더욱 위험천만했다. (사실 지금도 배가 고파서 글이 써지지 않는다 안 써지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퇴근하고 간만의 혼밥이라 우아하게 파스타를 해 먹을 계획을 하고 있었으나 그저 헛된 꿈이었다. 인생에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 없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다 싶을 만큼, 직접 만든 파스타조차 계획과는 다른 엉뚱한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처음에 계획한 것은 집에 있는 에그파스타 면, 통마늘, 방울토마토와 블랙올리브를 활용한 심플한 오일 파스타였다. 부가재료로 무엇을 넣을지 생각하면서 퇴근시간을 기다렸고, 바질/새우/새송이버섯 등을 생각하다가 집에 사들고 간 것은 오리가슴살 훈제와 양송이버섯. 거기까지도 좋았다.
너무 배가 고팠던 나머지 이성을 잃고 요리를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냄비에 물을 올리고 곧바로 버섯을 호다닥 물에 헹궈 내어 썰었다. 후라이팬을 데워서 오리가슴살 훈제를 익히고, 여기서 나온 오리기름에 야채를 볶을 요량이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지방이 적은 오리가슴살에선 기름이 별로 나오질 않았으며, 오리가슴살에 버섯만 실컷 익히다 보니 5분(에그파스타 기준으로 알단테)이 후딱 가 버렸다. 썰려고 꺼내둔 통마늘은 건드리지도 못한 터라 급한 대로 얼려둔 편마늘을 후라이팬에 투척해 슬쩍 굽기는 했지만, 면이 퍼지는 건 아닌지 그 와중에도 조마조마한 나머지 면을 후라이팬으로 옮기다가 자신있게 면을 체에 받쳐 면수를 홀딱 싱크대에 부어버렸고… 결국 방울토마토와 통마늘, 올리브는 냉장고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조금의 당분이라도 사전에 섭취했더라면 이런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을.. 나의 접시에 있는 것은 오리훈제의 향이 배어 있어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결코 맛있지는 않은, 남에게 대접하기엔 난감한 퀄리티의 드라이한 파스타였다. 오늘의 후회를 바탕으로 내일은 반드시 같은 재료로 더 맛있는 걸 만들어야지! 다짐하며 못다 넣은 다른 재료를 싹 다듬어 파스타 밀키트를 싹 만들어 두고, 내일 저녁을 기다리며 잠들었다.
#2
다음 날. 또 이성을 잃고 요리를 빙자한 실패를 하지 않도록 퇴근길에 두유 한 팩을 들이켰다. 집에 남아있는 건강한 맛의 통밀 파스타를 녹진하게 푹 삶아서, 이번에는 면수를 결코 버리지 않으리! 다짐하며 짭짤하게 간을 했다. 나의 파스타 2라운드를 관전하러 온 프로 다이어터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전날 손질해 둔 재료를 잽싸게 꺼냈다. 훈제된 오리 가슴살은 가늘게 썰어 베이컨처럼 바싹 구웠고, 일일이 까서 얇게 저민 통마늘과 양송이, 블랙올리브, 반 갈라둔 방울토마토까지 중불에서 살살 노릇해질 때까지 볶은 다음 후라이팬 뚜껑을 덮은 상태에서 약불로 가열했다. 이제 면을 넣고 면수도 자작하게 부었으니 어제보다 더 보들보들하고 맛있는 파스타가 될 것을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비주얼만으로는 건강하고 맛있는 맛의 파스타임에 분명했으나, 워낙에 간이 잘 배지 않는 통밀파스타이기에 방심하면서 2차로 소금을 신나게 친 것이 화근이었다. 전날의 파스타가 대접하기 난감한 정도였다면, 이 파스타는 그야말로 대접했다가는 손절을 부르는 맛이랄까… 정말이지 짜다 못해 쓴 맛이었다. 울고 싶었지만 꿋꿋하게, 면을 제외한 재료를 치즈와 함께 바게트에 얹어 에어프라이어에 구워 먹었다. 역시 비주얼만은 훌륭했다.
#3
오늘은 요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요리로 상처받은 나에게 당분간 휴식을 선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