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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오소리 Mar 23. 2020

당근 스프를 만들자

집밥요정 오소리의 요리하는 글쓰기 (2)

가끔은 정신수양을 위해 요리를 한다. 하나의 요리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내가 들이는 시간은 농부의 땀과 땅의 결실에 비할 바 아니지만, 채소를 다듬고 매만지는 과정, 썰고 가열하고 갈아내며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계속 애를 쓰는 시간 속에서 겸허함을 배우곤 한다. 아주아주 단촐하고 기초적인 자취생의 요리도구만으로 그럴듯한 결과를 만들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것은 이 수고로움을 이겨낸 스스로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처럼 정성이 많이 드는(이라고 고상하고 우아한 어휘를 쓰기엔 과다한 노동력이 투입되는 사실상 쌩 노가다임에도 또다시 해먹고 싶어지는) 요리 중 하나가 바로 당근스프다.




준비물: 당근(2-3개), 양파(큰것 1개 이상), 마늘 1-2쪽 (다진마늘로 대체하거나 생략 가능) 올리브유, 우유(최대 500ml), 소금과 후추, 치즈(생략 가능) 파슬리 등.

버터와 감자, 고구마, 단호박을 곁들일 수 있다면 더없이 좋다. 분량은 과감하게 생략한다. 모양과 맛이 날 때까지 적당량을 투하한다.

재료도구: 칼과 도마, 감자칼, 믹서기, 냄비, 주걱, (치즈 그라인더) 그리고 인내심. 인내심이 없다면 푸드프로세서(도깨비방망이)를 준비할 것.


1. 당근과 양파는 씻어 껍질을 제거한 뒤 채썰거나 다져 준다. (감자, 고구마, 단호박이 있다면 함께 다듬는다. 당근의 1/3 분량이면 충분하다)

이 때 당근을 자르는 이유는 부피가 작아야 빨리 익기 때문이며, 이후에 모두 갈아버려야 하기 때문에 균일하게 썰기 위해 집착할 필요는 없다.


2. 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둘러 예열한 다음 양파를 갈색이 될 때까지 볶아 풍미를 살린다. 이 과정을 캐러멜라이징이라고 한다. 카레를 만들 때에도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중불 이상에서 바닥에 눌지 않도록 1) 수분을 날리고 2) 갈색으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열심히 팔 근육을 단련해 보자.

마늘이 있다면 타지 않도록 주의한다. 재가 된 마늘은 건강에도 좋지 않을 뿐더러 당근스프의 색도 망치고 쓴맛까지 난다.


3. 데워진 후라이팬에 버터를 적당량 녹인 다음 손질한 당근을 중불에서 볶는다. 마찬가지로 태우지 않도록 잘 섞으면서 당근의 숨이 죽을 때까지 볶는다. 마음이 급하다면 소금을 조금 쳐 준다.

버터가 없을 경우 올리브유로 대체 가능하며 가급적 당근과 양파를 따로 볶는 것을 추천한다. (순서는 상관 없다)

감자, 고구마 등을 함께 넣을 경우 당근과 같이 볶아준다. 기존에 쪄 놓은 것이 있다면 그대로 써도 무방하다. (볶은 감자와 찐 감자 중 어느 것이 더 맛있을지는 취향차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4. 2~3에서 볶아낸 당근과 양파 외 모든 야채를 믹서기에 넣고 우유를 조금씩 부어 가며 덩어리가 보이지 않도록 곱게 갈아낸다.

푸드 프로세서가 있다면 스프를 끓일 냄비에 야채를 넣고 우유를 부어가며 갈아준다.

인간은 문명이 주는 혜택을 누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시간과 노동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래서 시간이 돈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5. 4에서 곱게 갈린 야채+우유 혼합물을 중-약불에서 저어주며 끓인다. 3번 단계에서 소금간을 하지 않았을 경우 다시 간을 보고 소금과 후추로 간한다.

좀 더 녹진한 크리미함을 원한다면 치즈를 그라인더로 갈아 뿌려주거나 마법의 가루인 파마산치즈 가루를 적당량 뿌려도 좋다. (아무 치즈나 넣으면 안된다)


6. 예쁜 식기에 담아내고 파슬리와 오레가노 등으로 꾸며준다.


당근스프, 연어덮밥, 스테이크 그리고 연어와 방어 배꼽살


요리가 주는 기쁨은 그 수고로움을 겪고도 맛을 음미하면서 비로소 보람을 느끼는 데에 있다. 그래서 순식간에 다 없어질 걸 알면서도 정성을 들이게 된다.


보드랍게 녹아드는 버터와 양파의 풍미와 당근의 포근포근함이 어우러져 몸도 마음도 따스하게 데워주는 할머니 담요같은 폭신한 맛, 너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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