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몸·말을 익히는 조용한 시간
보온밥솥이 조용히 말한다.
“지금부터 맛있는 밥을 위해 뜸을 시작합니다.”
뚜껑을 덮은 채 남은 10분.
소리도, 움직임도 크게 없지만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
겉이 아니라 속이 익는 시간.
몸이 여기저기 뻐근한 날은
한의원 치료대에 누워 뜸을 뜬다.
짧게 타오르는 불, 오래 남는 온기.
뜨거움이 아니라 따뜻함이 고친다.
바쁘게 달려온 하루가 그제야 제자리를 찾는다.
생각이 많은 친구는 말을 시작하기 전에
늘 잠깐 뜸을 들인다.
우리는 답답해하며 “빨리 말해”를 외치지만
그가 꺼내는 한 줄은 대개 정확하다.
빠름은 결과를 서두르고, 뜸은 의미를 익힌다.
왜 우리는 뜸을 들이고, 뜸을 뜰까.
맛있는 밥을 기다리고,
나을 몸을 기다리고,
아직 굳지 않은 말을 기다리기 위해서다.
기다림은 때로 답답하고, 가끔은 화가 나지만
기다림 뒤에는 반전이 온다.
서둘러서는 얻을 수 없는 결이 생긴다.
나는 요즘 문장에도 뜸을 둔다.
보내기 버튼 위에서 한 박자 쉬고,
핵심 두 문장을 남긴다.
눈앞의 일을 닫기 전에
심호흡 세 번으로 마음의 뚜껑을 덮는다.
김이 가라앉아야 모양이 보인다.
오늘의 첫밥처럼,
오늘의 몸처럼,
오늘의 말도 뜸이 필요하다.
익히고 나서 건네는 것.
그게 품격이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해가 뜸.
세상도 지금, 익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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