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에 도착하는 한 줄
아침 회의가 끝난 뒤,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데
생각이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 찾아온다.
아이디어도, 문장도, 결론도
어디선가 늦게 오는 날.
예전 같으면 나는 이 시간을 쫓아냈다.
커피를 한 잔 더,
빠른 영상 하나,
새 탭을 몇 개 더.
그렇게 소음을 끌어와
정적을 덮어 버렸다.
지루함은 사라져야 할 감정이 아니라
지나가야 할 물결이었다.
파도가 잦아들 때 바다 밑바닥이 보이듯
마음의 바닥도 그런 식으로 드러난다.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안 되는’ 나를 견딘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숨을 조금 길게 내쉰다.
창밖의 구름이 아주 느리게 옮겨 가는 동안
머릿속도 아주 느리게 정돈된다.
급한 자극은 금세 취하고,
느린 휴식은 나중에 깨어나게 한다.
점심 무렵,
메신저 알림을 전부 끄고
손에 쥔 펜을 내려놓는다.
아무 말도 적지 않는 10분.
아무 결론도 내지 않는 10분.
그 10분이 지나면
메모 한 줄이 저절로 떠오른다.
기다림이 준 선물처럼.
우리는 늘 ‘지금’이 되길 바라지만
좋은 것들은 대개 ‘나중’에 도착한다.
술처럼 빠르게 오르는 들뜸은
금방 가라앉고
느리게 스며드는 고요는
뒤늦게 나를 바꾼다.
해가 기울 무렵,
어느새 오전의 잔물결이 사라졌다는 걸 안다.
움직이지 않던 생각이
조금씩 방향을 잡는다.
나는 오늘 배운다.
조급함은 발전처럼 보이지만
인내가 변화의 실제 속도라는 것을.
지루함을 내쫓지 않고
잠시 앉아 맞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깊이를 통과한다.
견딘 뒤에 오는 즐거움은
오래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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