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vs. 블록버스터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2016년 넷플릭스(Netflix)가 한국에 진출한 이후 어연 1년 반이 흘렀다. 'House of Cards', 'Narcos' 등 오리지널 컨텐트를 내세워, Early Adopter 들을 중심으로 구독자 층을 조금씩 늘려나가다가 최근 영화 '옥자'를 극장과 동시 개봉함으로써 조금 더 대중적인 시장에서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성공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사실 본 글은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잘하고 있는지 여부를 다루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는 이제 시가총액 약 90조(2017년 7월 19일 현재)에 달하는 세계 굴지의 IT 기업이 되었지만, 그들도 당장 다음 달의 자금을 걱정하던 초기 스타트업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아직 스타트업이었던 바로 그 시절에는 그들의 경쟁자였던 '대기업'이 있었다. 바로 그 대기업과 싸워 이긴 스타트업 넷플릭스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주: 필자는 그 당시 넷플릭스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것이 아니므로, 넷플릭스에 관해 자세히 다룬 단행본 "넷플릭스, 스타트업의 전설 (원제: Netflixed)"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되 당시에 다루어진 뉴스들을 더하여 정리하여 작성하였다.)
블록버스터(Blockbuster)는 1985년도에 창립되어, 199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의 거대 비디오 대여점 체인이다. 이 회사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2004년에는 약 7조원($5.9 billion)의 매출을 창출했고, 시가 총액이 약 6조원($5 billion)에 달했을 정도이니 단순 비디오 대여점 체인이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의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어릴 때 동네에 있던 비디오 대여점과 비교하시면 안된다. (주: 어느 정도 규모의 회사인지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해 한국 대기업들의 시가총액과 비교해보면, 2017년 7월 22일 현재 카카오의 시가총액이 7.3조원, 이마트의 시가총액이 6.6조원이다.)
이렇게 한 때 거대 제국을 건설했던 기업은 결국 2010년 파산보호신청(Bankruptcy Protection)을 제출하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되는 수모를 겪게 되는데, 그 뒤에는 1997년에 창업된 스타트업 넷플릭스가 있었다. 넷플릭스는 어떻게 거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을까?
아직 사람들이 집 근처 비디오 대여점에 직접 방문하여 비디오를 대여하던 시절, 넷플릭스는 DVD를 우편으로 대여하는 서비스로 비디오 대여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넷플릭스는 DVD에서 어떤 기회를 본 것일까?
DVD는 비디오 테이프(VHS)에 비해 더 가볍고 얇기 때문에 배송원가를 큰폭으로 절감할 수 있었다.
아직 시장에서 DVD가 완벽한 표준으로 자리잡지 않았기 때문에, 비디오 테이프를 취급하는 사업자들이 DVD를 함께 취급하기 위해서는 재고에 대한 부담을 두 배로 져야했다. 즉, 새롭게 성장하는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물론 말처럼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배송원가를 줄였다고 했지만 어쨌든 배송비는 들었다. 사용자들에게 익일배송 서비스를 제공했을 때 마법과 같은 입소문(Word-of-Mouth)이 발생하는 것을 발견하자, 성장세를 가파르게 유지하기 위해 익일 배송을 제공할 수 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이 배송비와 배송에 드는 인건비 등을 그대로 사용자에게 청구하기에는 너무 비쌌다는 것이다. 초기 넷플릭스는 고객의 주문 건당 $4의 손해를 보았다고 한다. 게다가 DVD와 DivX가 서로 업계 표준이 되기 위해 전쟁을 치르는 것을 고스란히 견뎌야 했다. 만약 DivX가 표준이 되었다면 오늘의 넷플릭스는 없었을 것이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힘든 상황이었지만, 넷플릭스는 매장 내 재고 부담으로 인해 인기작품만을 위주로 제공할 수 밖에 없었던 블록버스터의 약점을 적극 공략하여 기존 비디오 대여점에서 취급하기 어려운 희귀한 작품들 - 주로 인도, 일본, 중국의 영화라던가 - 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서서히 만들어 나갔다. 아마존(Amazon)이 도서에서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전형적인 Long Tail을 공략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또한 블록버스터는 고객들에게 반납 연체시 연체료를 부과했는데, 넷플릭스는 과감하게 연체료 없는 정책을 도입하여 이를 PR에 적극 활용하였다. 연체료는 블록버스터라는 거인의 '횡포'가 되었고 넷플릭스는 부당한 연체료 정책에 맞서 싸우는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된 것이다. 결국 꾸준히 사용자 수를 늘리는데 성공한 넷플릭스는 2002년 상장에 성공한다.
블록버스터는 넷플릭스의 등장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들의 사업은 순항하고 있었고, 아직 넷플릭스는 희귀한 영화를 볼 수 있는 틈새시장을 장악한 스타트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시장조사업체들이 발표한 자료들은 온라인 DVD 우편배달 사업은 결코 주류가 될 수 없다는 그들의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본인의 생각에 부합하는 증거들만 찾으려하는 이른바 확증 편향에 빠진 것이다.
그렇다고 손을 완전히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블록버스터의 CEO가 직접 넷플릭스의 대표 및 임원들을 만났고 약 600억원($50 million)에 넷플릭스를 인수할 수 있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물론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았던 그들에게, 600억원은 터무니없는 가격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거래는 무산되었다.
넷플릭스의 가입자가 100만명을 돌파하자, 블록버스터도 본격적인 시장 진입을 위해 넷플릭스의 경쟁사인 후발업체를 인수하고 '블록버스터 온라인'을 출시하게 된다. 그러나 인수 합병을 통해 얻게 된 실제 사업 운영 데이터들은 대여 주문 건 당 몇 천원의 손해를 볼 수 없는 불완전한 사업 모델이라는 사실을 더욱 부각하게 되며 블록버스터 내부의 호응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하게 된다. 블록버스터의 가장 큰 강점은 미국 전역에 포진된 오프라인 대여점 네트워크와 소비자에게 널리 알려진 브랜드 파워였는데 초기 온라인 사업은 이러한 시너지를 전혀 살리지 못하는 반 쪽짜리, 아니 반 쪽보다 못한 모델이었다.
Clayton Christensen demonstrates how successful, outstanding companies can do everything “right” and yet still lose their market leadership – or even fail – as new, unexpected competitors rise and take over the market. (Source: Wikipedia)
혁신기업의 딜레마는 한 때 혁신적인 기술로 성공한 기업이 자사의 성공 방정식을 철저히 지키다보면, 오히려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미 크게 성공한 회사 입장에서 회사의 주력 사업 모델, 주요 고객을 지키기 위해 자원과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와해성 기술이나 사업 모델이 처음 출시될 즈음에는 기존 기술에 비해 열등한 것이 사실이나, 이 기술이 S자 곡선을 그리며 진보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기존 기술과 모델을 뛰어넘게 되는데 이 때는 이미 대응이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기존 대기업들에게 큰 난제가 된다.
블록버스터는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보여준 매우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회사 내 대부분의 매출을 발생시키는 오프라인 사업부는 그 나름의 경영 계획들을 갖고 있었고, 여기에 쏟을 자원과 역량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사업부의 (정치적) 견제는 온라인 사업의 실행을 어렵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사업과의 통합 전략을 소원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온라인 서비스 가입용 컴퓨터를 숨기거나, 온라인 서비스의 이용을 명시적으로 비난하는 등의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났다고 한다. 결국 온라인 서비스 출시 후 3년이나 지난 2007년에 출시된 '온오프라인 통합 회원제'가 무서운 인기몰이를 하며 넷플릭스를 궁지에 몰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안타까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록버스터는 나름 저력이 있는 회사였다. 온라인 서비스 운영에 대한 보다 깊은 수준의 노하우를 습득하기 시작했고, 사용자 재주문율은 오르고 고객 유치 비용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7년 출시한 온오프라인 통합 회원제는 넷플릭스의 신규 회원가입자 증가 속도를 급감시키는데 성공했다. 혁신기업의 딜레마로 인한 핸디캡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전한 것이다.
블록버스터가 한창 넷플릭스와의 전쟁을 치르기 시작한 2004년, 행동주의 헤지펀드 매니저로 유명한 칼 아이칸이 블록버스터의 지분을 대량 매수하여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는 블록버스터의 주가가 고점 대비 많이 하락한 것을 보고 매수하였는데, 매수 이후에도 주가가 계속 곤두박질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경영진과 크고 작은 충돌이 있곤 했다. 당시 CEO 였던 존 안티오코(John Antioco)는 조금 늦긴 했으나 온라인 사업을 조금씩 궤도에 올려기 시작했고 2007년 마침내 그 결실을 보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딱 그 시점에 칼 아이칸과의 갈등이 심화되어 스스로 CEO 자리에서 사임한다.
문제는 새로 부임한 CEO가 온라인이라면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소매업계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세븐일레븐 출신 짐 키스(James W. Keyes)는 블록버스터의 핵심 사업을 오프라인 매장을 기반으로 한 소매사업으로 정의하고, 온라인 사업에 대한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게 된다. 온라인 사업에 대한 투자가 줄고,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한 웃지 못할 전략들이 실행되자 (차마 여기서 일일이 소개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온라인 사업을 마치 자신의 사업처럼 일구어가던 핵심 인력들이 이탈하고 결국 혁신기업의 딜레마라는 늪을 영원히 탈출하지 못하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행운을 맞이하였지만, 넷플릭스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경쟁에 임했다. 블록버스터의 가격 정책 및 마케팅 계획을 꼼꼼하게 살피고, 재무 상황과 연결하여 봄으로써 블록버스터가 현재의 출혈 전략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예측하고 또 이에 따라 자사의 전략을 수립했다. 그리고 온라인 DVD 대여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의 전환을 매끄럽게 해냈고, 그다음은 모두가 알듯이 90조의 회사로 성장한다.
위에서 소개한 넷플릭스와 블록버스터의 이야기를 통해, 스타트업이 대기업과 경쟁하여 승리하기 위해 참고할만한 팁들을 뽑아보았다.
기존 경쟁자가 아무리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기존 사업 모델과 기술의 특성상 놓치고 있는 시장이 있을 것이다. 이 틈새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여 열렬한 지지층을 만들고 인접 시장으로 확대해나가라. 넷플릭스는 일반 비디오 대여점에서 찾기 힘든 희귀한 타이틀을 취급하는 방식으로 초기 고객을 확보했다. 페이팔(Paypal)의 공동 창업자이자, Zero to One 의 저자인 피터 티엘(Peter Thiel) 또한 같은 조언을 한 바 있다.
넷플릭스는 비디오 대여 업계의 오랜 관행이었던 연체료 제도를 폐지함으로써, 블록버스터와의 경쟁에서 고객들들의 지지를 받아낼 수 있는 '명분'을 획득했다. 그리고 이 명분을 PR 등의 활동을 통해 적극 활용했다. 사람들은 대기업을 볼 때 실제와는 조금 다를지라도, 불가피하게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이미지를 연상하곤 한다. 반면 작은 스타트업일수록 혁신적이고 또 유연하다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는 스타트업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레버리지 중 하나인데, 실제 고객에게 주는 가치와 결합이 되었을 때 폭발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그 유명한 애플(Apple)의 '1984' 맥킨토시 광고는 IBM을 빅브라더로 묘사하고, 애플을 이에 맞서는 혁신가로 포지셔닝시켰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이 공략하고 있는 시장에 진입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과연 동요하지 않을 수 있는 스타트업 경영자가 있을까? 하지만 그들에게는 혁신기업의 딜레마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고, 또 적극 활용해야 한다. 가장 먼저 그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진출 소식을 전해 들었다면, 당신에게는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2년의 달아날 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서비스의 외형은 복제할 수 있겠지만 그 뒷단에 존재하는 기술 및 운영 역량을 복제하는 것은 긴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게다가 기존 주력 사업 부서로부터의 정치적 견제를 견뎌야 한다. 결국 블록버스터의 경우 궤도에 오르기까지 3년 이상 소요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따라서 스타트업의 강점인 속도를 무기삼아 최대한 멀리 달아나야 한다. 아울러 더욱 과감하게 베팅하라. 과감한 의사결정일수록 실패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대기업 내부에서는 "주력 사업도 아닌데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라는 의문과 비판에 부딪힐 것이다.
경쟁하는 상대가 상장 대기업, 혹은 적어도 재무제표의 전자공시의무가 있는 기업이라면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손쉽게 획득할 수 있다. 비즈니스 모델이나 서비스 자체가 유사하다면 상대방이 진행하고 있는 마케팅 프로모션이 건 당 어느 정도 규모의 손실을 가져다줄지 계산해내는 것이 가능한데 이 정보를 재무제표에 공개된 현금흐름과 결합하여 마케팅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를 예측해낼 수 있다. 넷플릭스는 블록버스터 온라인의 비용 소요 및 현금 흐름에 대한 예측을 매우 정교하게 준비했고, 이를 바탕으로 대응 전략을 수정하고 최적화했다. 적의 곳간에 쌓인 군량미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야 한다는 손자병법의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위의 모든 것들을 잘한다 하더라도 기존 기업이 갖고 있는 자원과 역량이 너무나 강력하다면, 또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가까스로 이겨낸다면 스타트업은 궁지에 몰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크고 복잡한 기업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역전의 기회를 얻어낼 수도 있었던 블록버스터를 한 순간에 쓰러뜨린 것은 넷플릭스가 아니라 칼 아이칸이었다. 꾸준히 제품과 고객에게 집중하며 버텨낸다면, 예기치 못한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이상으로 넷플릭스와 블록버스터의 경쟁 이야기를 토대로, 스타트업이 대기업과 경쟁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을 정리해보았다. 경쟁 양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다보니, 넷플릭스가 고객과 제품을 위해 기울였던 세세한 노력들을 담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결국 제품과 고객 중심으로 끊임없이 혁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거듭 강조하고 싶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넷플릭스는 혁신기업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고,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의 비즈니스 모델 전환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것이다. 블록버스터와의 단기적 출혈 경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중장기적 미래를 미리 준비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과연 넷플릭스도 혁신기업의 딜레마에 빠지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