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오호리 공원 남쪽 출구로 나와서 조금만 걸으면, '비미'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다. '비미'는 일본어로 아름다울 미(美)에 맛 미(味). 즉, 아름다운 맛이라는 뜻이다. 아담한 창 너머로 보이는 커피 로스터와 고풍스런 실내 장식에 이끌리듯 걸어들어갔다.
1층은 커피 원두를 판매하는 공간이다. 들어간 순간 느껴지는 커피 원두의 고소한 향과 빼곡하게 진열된 원두들은 곧 맛보게 될 커피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킨다. 한켠에는 로스터가 자리잡고 있다. 직접 로스팅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로스팅을 하는 시간에는 더욱 진한 커피향이 매장을 가득 메우리라.
2층엔 어떤 공간이 펼쳐질까 설렌 마음으로 올라왔는데 생각보다 아담한 공간에 놀란다. 조금은 어두운 1층과는 달리 시원하게 난 채광창이 싱그럽게 우거진 나무 전경과 함께 밝은 빛을 선사한다. 아담하지만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이 채광창 때문일 것이다. 마스터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바 테이블과 몇 개의 원형 테이블이 있다. 목재를 사용해 과하지 않게 단아한 멋을 낸 내부 장식과 이질감이 없이 잘 어우러진다.
카페 비미의 스페셜티는 '융 드립' 커피이다. 융 드립은 플란넬 필터를 사용하여 추출한 커피로, 종이 필터를 사용하여 추출하는 핸드드립 커피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존재했던 핸드드립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플란넬 필터는 종이 필터에서는 통과하지 못하는 커피의 유분을 통과시키기 때문에 더 깊고 다양한 향과 맛을 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필터의 관리가 까다로워 요즘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방식이기도 하다.
지금은 타계하신 카페 비미의 주인 모리미츠 무네오(森光宗男) 씨는 1977년 처음으로 카페를 차린 뒤 40년이 넘게 융 드립을 고집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융 드립 방식에 대한 믿음과 애정으로 한결같이 융 드립으로 커피를 냈고 또 융 드립을 전파했다. 지금은 모리미츠 씨 생전에도 같이 일해오셨던 부인이 2대 주인이 되어 융 드립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융드립 방식은 매우 섬세하기 때문에 내리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카페 비미는 아무에게나 드립을 맡기지 않고 언제나 마스터가 직접 내린다. 고급 스시야(寿司屋)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철학과 자부심이다. 뿐만 아니다. 커피 주문을 받고 원두를 갈 때에는 (그나마) 조금 못난 원두를 골라내어 그라인더에 넣고 갈아내고 버린다. 커피 비미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싱글오리진 원두와 블렌디드 원두로 내린 커피를 내기 때문에, 이전에 갈아서 사용한 원두가 그라인더에 남아 새로 갈 원두와 섞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커피 한 잔을 내기까지 완벽을 추구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에 묻어난다.
다양한 원두의 커피를 제공하는 반면, 커피와 곁들일 수 있는 디저트는 담백한 맛의 파운드 케이크 하나 뿐이다. 파운드 케이크 사이에 박혀있는 과일은 럼주와 브랜디에 절인것이라고 하는데 은은한 단맛이 나서 커피를 먹는 중간 중간에 입을 개운하게 한다. 커피가 주인공인 만큼 커피 맛을 음미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는 느낌이다.
미국식 핸드드립(Pourover)에 더 익숙한 나에게 진한 풍미의 융드립 커피는 다소 낯설었지만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집해온 커피에 대한 철학과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 이미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려버렸다. 커피의 세계에는 정말 다양한 맛의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또 맛에 대한 평가는 본질적으로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커피를 마시는 과정은 커피 그 자체 이상으로 카페에 들어서 커피를 마시는 순간 까지의 경험과 그 안에 담긴 스토리가 중요하다.
한 사람이 인생과 열정을 바쳐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그 자체로 경외심이 드는 일이다. 그게 커피든, 서비스든, 회사든, 무엇이든 말이다. 일본을 자주 드나들며 느끼는 점 중에 하나는 자신의 일이 무엇이든 장인정신을 갖고 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작은 식당 부터 큰 회사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긴 시간을 두고 어떤 경지에 오르는 것을 많이 보았다. 지금 나에게, 또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런 진득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