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힘들었고 미치도록 아름다웠던 JMT 종주기
프롤로그
올 들어 다섯 번의 백팩킹 여행을 다녀왔다. 한참 봄꽃이 만개하던 시기인 4월에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San Francisco Bay 지역에 있는 Point Reyes National Seashore에 있는 Wild Cat Campground로 친구 가족과 2박 3일을 다녀왔고, Ohlone Wilderness로 혼자서 1박 2일을 갔었으며, 5월에는 산악회 분들과 여섯 명이서 Ansel Adams Wilderness로 3박 4일을 다녀왔고 6월 들어서는 나에게 백팩킹을 소개해 주신 분과 1박 2일로 역시 Point Reyes에 있는 Coast Trail을 타고 1박 2일을 다녀왔고 중순에는 남가주와 북가주에서 함께 한 열 한 명의 친구들을 데리고 Ansel Adams Wilderness로 3박 4일의 여행을 또 다녀왔다. 자연과 벗하며 지내는 많은 시간들은 내게 이미 친숙한 내 인생에 생겨난 많은 상처와 아픔들을 치료해 왔고 여기저기 부딪치며 생겨난 내 인격의 모나고 날카로운 면들을 부드럽게 해 주었노라고 말할 수 있다. 자연은 그 누구보다 훌륭한 나의 스승이요, 친구요, 반려자였다. 이렇게 자연 속에 있을 때 나는 세상 그 어느 곳에서보다 더 큰 평온과 고요함을, 순수와 거룩함을, 그리고 위로와 안식을 얻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지난 6월에 갔었던 백팩킹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같은 시기에 John Muir Trail의 다른 구간을 다녀오신 산악회 회원들의 산행기와 친숙한 JMT 사진을 보는 순간, 내 안에는 또 다른 그림이 꿈틀대며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것을 현실로 옮기기 위한 분주한 계산이 이루어지더니 마침내 가능성 있음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제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가능성의 현실적 타진만 남았다. 하지만 염려하지 않았다. 세상에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을 막을 불가항력적인 일들이란 단 1%도 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이렇게 해서 나의 두 번째 존 뮤어 트레일 종주 계획은 탄생하게 되었다.
작년에 정말 뭣도 모르고 다녀왔던 존 뮤어 트레일을 다시 가기로 한 데에는 거기서 얻은 무한 감동의 기억이 내 깊은 잠재의식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생생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걸 자연이 나를 부른다고 해야 하나? 자연이 부르는 소리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은 이미 나의 일상이 된 듯하다.
많은 사람들은 존 뮤어 트레일 종주를 위해 몇 년 전부터 준비를 한다. 그만큼 쉽지 않은 여행이기 때문이다. 시간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돈만 있다고 갈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만큼 잘 준비해야 비로소 다가갈 수 있는 여행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여행을 채 열흘도 안 남긴 7월 첫 주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순전히 작년에 한번 다녀온 경험이 있다는 무모한 패기에서 나온 무리수였던 것이다. 사실 준비된 건 하나도 없었다. 오래전부터 신청해야 얻을 수 있다는 퍼밋도 물론 없었다. 하지만 먼저 온 사람 우선으로 배정되는 퍼밋( First come first base permit)이 몇 장 정도는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것 믿고 날짜를 계획하게 되었다. 7월 4일(금)은 미국의 독립 기념일이라 휴일이다. 그러니 두 번의 주말을 이용하면 일주일만 내가 자리를 비우면 열흘 안에 JMT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 것이다. 산행 중에 먹을 음식들도 그동안 사놓았던 것들이 아직 남아 있고 조금만 더 보충하면 될 것 같고, 9박 10일 안에 220여마일 정도 되는 전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많이 무리가 되는 것이긴 해도 체력이 지난해보다 더 좋아졌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도전해 보기로 했다. 모험으로 사는 인생이라는데 한번 저지르는 것도 내겐 더없이 행복한 모험이었다.
우선 내가 없는 동안에 나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 오피스를 함께 쓰는 분들이 있고 해서 어렵지 않게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또 한 가지는 나를 요세미티까지 데려다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33년 지기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니 기꺼이 응해준다. 참 고마운 친구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어렵지 않게 술술 풀려가는 동안 내 속에서는 지난해의 기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주마등처럼 되살아 났다. 숨이 턱밑까지 차 오르고 무거운 배낭의 무게에 짓눌려 몇 걸음 옮기기도 쉽지 않은 가파른 언덕길을 힘들게 힘들게 올라서면 마치 영화 Matrix에서 문을 열 때마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듯 눈앞에 나타나는 새로운 광경들로 인해 힘들게 오르막을 오르며 흘렸던 땀과 고통을 잊기에 충분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힘든 오르막을 찾는 것 아니던가? 이 언덕 꼭대기에 어떤 신비한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초대교회 시대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이 86세의 나이에 화형대 앞에서 그의 고령을 고려해 형벌을 면해 주려던 총독의 배교 요구에 “하나님은 지난 86년 동안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으신데 내가 어떻게 그분을 실망시킬 수 있겠는가”라며 기꺼이 형장의 이슬로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내가 만난 그분이 만드신 자연과 산도 나를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었다. 나는 거기서 그분을 보았다. 하나님은 내가 거기서 만난 수많은 산봉우리들과 그 사이를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들과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던 호수들과 수십, 수백 년을 한자리에서 그토록 흔들림 없이 자라난 나무들과 그 속에서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동물들과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꽃들과 풀들과 이 모든 것을 즐기기 위해 속세를 등지고 깊은 야생의 삶 속으로 들어온 사람들 속에 계셨다. 어쩌면 이번 JMT 도전도 또 다른 만남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첫째 날(7월 3일 2014년)
( From Happy Isles to Little Yosemite Valley Campground - 4.3Mile)
나의 JMT 출발을 돕기 위해 어젯밤 친구가 집에 왔다. 나름 준비를 잘해 놓았다고 생각했는데도 밤 11시가 넘어서야 침대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이른 새벽에 출발해야 하기에 새벽 3시 5분에 알람을 맞춰 놓고 잠을 청했다. 짧았지만 곤하게 잤던 것 같다. 알람 소리에 일어나 눈을 뜨고 서둘러 출발 준비를 하려다 보니 비즈니스 전화 Call Forwarding을 안 해 놓은 것이 생각났다. 오랜만에 해 보는 것이라 인터넷 뒤져서 방법을 찾아 그것 하느라 허둥지둥...
서둘러 준비를 했는데도 3시 45분이 되어서야 집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새벽 4시인데 요세미티를 향해 가는 방향으로는 별로 없었지만 샌프란시스코 방향으로는 벌써 줄줄이 이어오는 많은 차량 불빛 행렬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이 저렇게도 많은가 놀라울 정도였다. 어두움을 가르고 한참을 달리다 보니 동쪽 하늘이 밝아온다. 어두움이 제아무리 깊어도 밝아오는 아침을 막기에는 얼마나 역부족인가 하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피곤할 텐데도 그 먼 길을 운전해 주는 친구는 어두운 새벽길을 참 차분하게도 운전을 잘해 주고 있다. 세시간여를 달려 요세미티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6시 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화장실에 들를 겸 운전도 교대할 겸 잠시 차에서 내렸다. 요세미티에서 느끼는 아침 공기는 참 맑고도 신선했다. 울창한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다. 가능한 한 빨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어야 우선순위로 주어지는 퍼밋을 받을 수 있었기에 오래 지체할 시간 없이 서둘러 요세미티 밸리에 있는 Wilderness Center로 향했다. 도착하니 7시 20분이 되어간다. 8시에 오픈하지만 벌써 예닐곱 명이 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7월 초이긴 하지만 아직도 그곳 기온은 선선하다. 아침 산책을 나온 사슴 두 마리가 바로 앞에서 사람들의 주의를 끈다. 벌써 몇 사람은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를 누르기에 바쁘다.
바로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백인 젊은이들에게 물으니 자기들은 필라델피아에서 약 일주일 정도의 일정으로 이곳에 백팩킹 하러 왔단다. 요세미티에서 시작해서 Devil's Postpile National Monument로 나갈 거라는 것을 보니 천천히 즐기면서 산행을 하려는 것 같다. 그 멀리서 비행기 타고 와서 일주일의 휴가를 즐기고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난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서너 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 잠시 몇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3,40분이 금방 지나갔나 보다. 어느덧 8시가 지났고 5분쯤 되었을 때 문이 열렸고 젊은 남자 국립공원 레인저가 나와 굿 모닝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바로 오늘 남아 있는 퍼밋이 두 장 있는데 하나는 요세미티 밸리에 있는 Happy Isles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다른 한 장은 Glacier Point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필요한 사람 있느냐고 물었다. 나에게 필요한 Happy Isles에서 출발하는 것은 딱 한 장 남아 있었던 것이다. 기다릴 필요도 없이 손을 들었고 다행히 내 앞에 줄선 사람들 중에는 그것이 필요한 사람이 없어서 최우선으로 어렵지 않게 나를 위해 준비된 단 한 장의 퍼밋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본래 생각으로는 3일에 와서 4일에 출발하는 퍼밋을 받아서 9일 만에 위트니 정상에 올라 거기서 자고 10일째 되는 날에는 하산하여 집에 오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오늘(3일)에 출발하는 퍼밋이 있다니 4일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이 퍼밋에는 조건이 있단다. 이 퍼밋은 오늘 출발해서 4.3마일 거리에 있는 Little Yosemite Valley에 있는 캠핑장에서 반드시 첫 밤을 자고 가야 한다는 거였다. 이것저것 조건 따질 상황도 아니라 그렇게 하기로 하고 제일 첫 순서로 퍼밋을 받게 되었다. JMT의 여러 구간을 몇일만에 통과할 것인지를 묻고는 Whitney Portal에서 최종 나가는 날짜를 언제까지 해 줄 것인가를 묻는다. 7월 13일에 나갈 계획이지만 혹시 모르니 17일에 나가는 것으로 퍼밋을 신청하였다. 일찍 나가는 것은 상관없으나 정해진 날짜보다 늦게 나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니 정해진 날짜를 엄격히 지켜야 한다는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미국에 처음 오던 해부터 요세미티를 찾았으니 그동안 거의 30번 정도는 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직 한 번도 Half Dome엘 갈 기회가 없었다. 항상 여러 사람들하고 같이 오다 보니 거기까지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을 찾기도 어렵고 또 과연 하루 만에 거기를 갔다 올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기회가 없었던 차에 이번 JMT 퍼밋을 얻으면서 해프 돔에도 들러 갈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미 퍼밋을 프린트해서 주의사항을 줄을 그어가며 설명해 주던 레인저는 아, 자기가 미리 물어보지 않아 미안하다며 물론 들러 갈 수 있다고 하며 해프 돔 퍼밋은 8불을 내야 한다고 한다. 옛날에는 해프 돔에 오르는데 퍼밋도 필요 없고 돈도 받지 않았지만 세계에서 몰려오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이제는 등산객들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하루에 일정한 숫자의 인원에게만 퍼밋을 발급해서 통제하고 있다. 그렇기에 퍼밋도 로또 형식으로 돈을 얼마를 내고 추첨을 해서 당첨된 사람들에게 발급을 해주니 그것 얻기도 쉽지가 않다. 그런데 그 퍼밋도 8불만 내고 쉽게 얻을 수 있었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기쁜 마음으로 퍼밋을 받고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으로 돌아와 준비해 온 아침 식사를 위해 피크닉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아름다운 햇살을 만끽하며 요세미티에서 아침을 나누었다.
어차피 LYV에서 오늘 밤 자야만 한다면 일찍부터 서둘러 올라가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요세미티 구경을 시켜주기로 했다. 본래에는 출발할 때 짐을 줄이기 위해 하루치 음식만 배낭에 남겨 두고 약 22마일 거리에 있는 Tuolumne Meadows로 가서 음식을 담은 Bear Canister를 그곳의 베어 박스에다가 넣어두고 돌아와서 가볍게 출발하려고 했지만 그러기 위해 두 시간 가까이를 운전을 하고 가서 음식을 넣어 놓고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하는 번거로움을 친구에게 부탁하기에는 너무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Resupply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필요한 열흘 치 음식을 다 짊어지고 가는 것으로 조금의 편법도 없이 도전하기로 마음을 굳혔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간이 넉넉하기에 친구와 함께 요세미티에 있는 Mirror Lake까지 함께 걷기로 했고 차로 돌아나오면서는 요세미티 밸리내 가장 유명한 장소들인 밸리뷰, 터널 뷰를 거쳐 Glacier Point까지 운전을 하여 구경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해프 돔 바로 아래에 있는 Mirror Lake으로 향하는 트레일은 약 1.5마일 정도 되었다. 그 유명한 어와니 호텔 뒤의 나무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걷는 길은 아기자기하면서 무리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좋은 산책길이다. 미러 호수에 거의 다 이르렀을 무렵 길 옆에 많은 무더기의 돌탑들이 쌓여 있다. 재미 삼아 혹은 자신들의 염원을 담다 주위에 지천으로 놓여 있는 돌들을 쌓아 올려 나름대로 아름다운 조형물들을 세워둔 것이리라. 지난 겨울에 비가 많이 오지 않아 물이 많지는 않았어도 깎아지른 듯 높이 솟아 있는 해프 돔과 그 아래로 흐르는 Tenaya Creek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비경을 우리에게 선사하였다.
Glacier Point를 향해 나가는 길에 내가 항상 요세미티에 가면 몇 군데 사진 찍기에 좋은 포인트를 들렀다. Merced River 가까이에 차를 주차하고 강가로 가서 밸리 쪽을 바라다보면 왼쪽으로는 El Capitan이, 오른쪽으로는 Cathedral Rocks와 Bridalveil Fall이 있어서 그 앞을 흐르는 Merced 강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뽐내고 있는 곳이다. 역시 여러 사람들이 내려서 사진을 찍고 있다. 몇 장의 사진을 찍고 강가에 쓰러져 있는 커다란 나무 위에 올라가 친구와 번갈아가며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리고는 터널 뷰를 향해 차를 몰았다. 그곳에는 어쩌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들러서 사진을 찍고 가는 곳이다. 그곳엔 항상 관광버스에서 내린 관광객들로 인해 복잡한 곳이다. 저 멀리 바라다 보이는 해프 돔을 비롯한 요세미티의 절경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대중적인 곳이다. 많은 인파 속에 우리도 사진을 찍고는 곧바로 글래시어 포인트로 향했다. 30분 넘어 운전해서 도착한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요세미티의 모습은 비록 협소하고 위험한 길로 인해 관광버스가 들어올 수 없는 곳이긴 해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최고의 뷰를 자랑하는 곳이다. 해프 돔과 밸리에 위치한 여러 개의 폭포(Yosemite Fall, Vernal Fall, Nevada Fall)들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 아래 계곡보다 약 2200피트나 높은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요세미티 밸리에 자리 잡은 마을을 돌아 뱀처럼 굽어 흐르는 Merced 강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은 탄성이 절로 나게 하는 최고의 광경이라 할 수 있으니 이곳에 올라와 보지 않고는 요세미티를 제대로 보았다고 하기 어렵다. 몇 년 전엔가는 해프 돔이 마주 보이는 이 곳에서 리무진 몇 대를 끌고 와서 결혼식을 올리는 신혼부부를 보며 최고의 장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밸리가 내려다보이는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삐쭉 솟아있는 Overhanging Rock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 올라가 사진 한 장을 찍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펜스를 올라서는 순간 위험하기 때문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해 보고 싶은 것을 그만둘 수는 없어서 친구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얼른 올라가 발 한번 잘못 디디면 곧장 천국행인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서본다. 난 이곳엘 열 번도 넘게 와보았지만 친구는 몇 번 요세미티를 와보기는 했어도 여기는 처음이란다. 이렇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잘 데려왔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슬슬 밸리로 내려가 대장정을 위한 출발을 준비해야 한다. 내려와 아침을 먹었던 장소로 가서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먹고는 마지막으로 배낭을 점검하였다. 가져온 물품 중에서 가져가야 할 것과 돌려보내야 할 것을 구분하며 마지막으로 배낭을 챙기다가 잃어버린 물건을 발견했다. 이번엔 사진을 찍기 위해 두 개의 렌즈를 가져가기로 하고 24mm 수동 단렌즈와 50mm 자동 단렌즈를 챙겼다. 그런데 작은 소형 카메라 가방에 50mm 렌즈와 Extra Battery와 메모리 카드를 넣어 가지고 다녔는데 그것이 보이지 않는 거였다. 아까 글레시어 포인트로 가는 길에 분명히 들고 갔었던 것은 기억이 나는데 어디에다가 그걸 두고 온 것이 분명했다. Merced 강가의 밸리뷰에서 사진을 찍을 때 어깨에 메고 있던 카메라 가방이 사진에 방해가 될까 봐 나무 위에 걸쳐두었던 것을 사진을 찍고는 그냥 와버린 것이었다. 돌아가 보았지만 가방은 보이지 않고 찾을 길이 없었다. 제일 아쉬운 것은 Extra Battery였다. 메모리 카드도 이 정도면 충분히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고 렌즈도 24mm 하나로도 충분히 찍을 수 있는데 배러리를 다 쓰고 나면 산속에서 충전할 데도 없고 사진을 더 찍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마는 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내릴 수 밖에 없었던 결론은 이번에는 사진도 최소한으로 찍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오프닝 멘트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미국 중부 어느 도시에서 잘 나가는 통신회사에서 인사과 직원으로 6 digit 연봉을 받으며 좋은 차, 좋은 집에 살던 30세의 젊은이 죠슈아가 어느 날 회사에서 감원해야 할 직원 명부를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고는 회사에서 요구한 감원자 명단 맨 위에 자신의 이름까지 추가하여 스스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포기하고는 최소한의 소유로 살아가는 Minimalist가 되기로 선택한 이야기였다. 부자로 살아 본 적 없고, 내 이름으로 된 집이나 땅을 소유해본 적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이민가방 몇 개 들고 온 미국 삶에서 돌아보면 지금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사는 것 같아 적지 않은 인상을 내게 심어준 이야기였다.
그래 이번에는 나도 Minimalist가 되는 거다. 물론 오랜 백팩킹 산행을 하려면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처음에는 이것도 필요할 것 같고, 저것도 필요할 것 같아 배낭에 잔뜩 넣고 갔었지만 그 배낭의 무게는 여행하는 내내 어깨를 짓눌러 발목을 잡고 말 것이기 때문에 몇 번 다니다 보면 정말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떠나야 하는 게 백팩킹 여행이다. 렌즈 하나라도 줄이라고, 욕심 하나 더 던져버리라고 생긴 에피소드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것만 넣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배낭의 무게는 40파운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마켓에 들러 혹 필요할지 모르는 안전핀과 아이스크림을 사서 친구랑 나눠 먹고는 트레일 헤드로 향한다. 입구 마지막 주차장 입구에서 내려서 친구와 작별을 하고는 열흘간의 대 장정을 위한 출발을 하였다.
John Muir Trail의 공식적인 출발지인 Happy Isles는 요세미티 밸리에서 Vernal 폭포로 오르는 트레일 입구의 다리를 건너는 지점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출발해서 미국 본토에서 제일 높다는 Mt. Whitney(14,505 feet (4,421 m)) 정상에 이르는 210.4 miles (338.6 km)의 공식적인 길이를 자랑하는 등산로로 그 전 구간 중에서 약 35%는 10000피트(3000미터) 이상 되는 고도에 위치하고 있다. 위트니 산에서 가장 가까운 트레일 헤드가 위트니 포탈인데 거기까지 내려가는 10.6 마일을 합하면 도합 221마일(356킬로미터)은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한다. 거기에다 몇 군데 들르려면 그것은 프러스 알파... 총 오르막의 합계가 47,000 feet(14,325 m)이고 내리막은 37,000 feet (11,277m) 정도가 된다고 하니 웬만한 체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America's most famous trail" 혹은 "truly world famous"라 불릴 만큼 Sierra Nevada 산맥의 가장 아름다운 절경을 지나도록 디자인된 등산로는 찾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참 아름다운 곳이기에 그 힘들고 고된 등산로를 오르고 또 오르는 것이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안셀 아담스 윌더니스, 잔 뮤어 윌더니스, 킹스 캐년 국립공원, 세코이아 국립공원 등을 지나는 동안 셀 수 없이 아름다운 호수들과 계곡들과 강들과 봉우리들을 지나게 될 것이다.
Happy Isles(4051 ft)에서 약 1마일쯤 오르다 보면 Merced River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나게 되고 다리 위에서는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Vernal 폭포를 볼 수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Vernal 폭포로 가는 Mist Trail과 John Muir Trail이 갈라져서 JMT는 오른쪽으로 꺾어져서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물론 Nevada 폭포에 가면 다시 만나게 되지만 두 길은 각자의 다른 사명을 가지고 갈라서게 된다. Mist Trail의 이름은 Vernal 폭포를 지날 무렵 떨어지는 폭포수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만들어 내는 포말이 짙은 안개비처럼 그 주위를 뒤덮기 때문에 지어진 것이다.
Little Yosemite Valley Camp(6118 ft)까지 오르는 JMT루트는 Mist Trail 보다는 완만하지만 2000피트가 넘는 높이를 짧은 거리에서 올라야 하기에 계속되는 스위치백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왼쪽 편으로 펼쳐지는 네바다 폭포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며 올라가기 때문에 그리 지루하지 않게 오를 수 있는 길이다. 어느 정도 고도를 높여 놓으면 Nevada Fall과 거의 같은 높이에서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게 되는 데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연결되는 Panorama Trail을 만나게 된다. 요세미티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레일 가운데 하나인 Panorama Trail은 Glacier Point에서 출발하여 내리막으로 Illilouette Fall을 거쳐 Nevada Fall에 이르는 트레일이다. 해프 돔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면서 내려갈 수 있어서 참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등산로이다. Nevada Fall에서 휴식을 취한 뒤 Mist Trail을 통하여 밸리로 내려가면 Vernal Fall을 지날 수 있어서 세 개의 아름다운 폭포를 아주 가까이에서 보며 지나갈 수 있기 때문에 정말 괜찮은 코스라고 할 수 있다.
네바다 폭포에 이르면 한 여름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간도 많겠다, 잠시 들러서 물가에 배낭을 내려놓고 등산화를 벗고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해 본다. 오늘은 이번 산행에서 가장 여유로운 날이 될 것이다. 내일부터는 그야말로 강행군을 펼쳐야 하기에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할 것이다.
시간도 어느덧 5시가 넘어가고 있다. 여기서 오늘 밤 숙영을 해야 할 Little Yosemite Valley까지는 약 1마일만 남아 있을 뿐이지만 올라가서 텐트를 치고 저녁 식사를 해 먹으려면 서서히 출발해야 했다.
캠프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깊은 산속에서의 와일드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여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 그 멀리서 여기까지 찾아왔던가? 나도 베어 박스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가장 여유로운 산중에서의 첫 밤을 준비하였다.
둘째 날(7월 4일 2014년)
(From Little Yosemite Valley Campground to Tuolumne Meadows Backpacker's Camp via Half Dome - 23.1 마일)
힘들었지만 보람된 하루였다. 지난밤 Little Yosemite Valley에서는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캠핑을 하고 있었지만 뭐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전날 밤 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해서였는지 그 어느 때보다 잠도 잘 잔 것 같다. 4시 반쯤 눈을 떴으나 5시쯤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텐트를 걷고 식사를 마친 후 packing을 끝내니 5시 50분이다. 하루 밤 신세를 진 캠핑장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을 위해 아침 일찍 발걸음을 내디뎠다. 해프 돔을 향하여 오르는 가파른 길을 오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만날 수 없어서 ‘오늘, 내가 제일 먼저 해프 돔에 오르는 거 아냐?’ 하는 괜한 걱정을 다 하였다. 한 20분쯤 걷다 보니 트레일 왼쪽 나무 숲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해프 돔에는 벌써 햇볕이 들기 시작한다. 이제 곧 JMT와 갈라져서 해프 돔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타날 것이다. 거기서부터는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물병과 카메라, 그리고 간단한 요깃거리만 챙겨서 2마일 되는 해프 돔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가벼워진 몸으로 오르는 길에 비치는 햇살과 이른 아침 고요한 요세미티 밸리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오르다 보니 저 멀리 해프 돔을 향하여 오르는 가파른 등산로가 눈에 들어온다. 올라오면서 내가 제일 먼저 가게 되는 거 아니냐는 염려는 그저 기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벌써 여러 그룹의 등산객들이 저 길을 나보다 거의 30분 정도는 먼저 오르고 있는 듯했다. JMT에서 갈라지는 지점에서 해프 돔 정상까지의 고도 변화가 거의 1800피트 정도가 나기 때문에 해프 돔이 가까워 올수록 경사는 점점 더 가팔라지고 있다. 해프 돔을 바로 눈앞에 둔 Sub Dome 마지막 언덕을 거의 다 올라갈 무렵, 앞서가던 다섯 명의 등산객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른 새벽 해프 돔을 정복(?) 하기 위해 힘들여 오르고 있었다.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아버지와 이제 겨우 틴에이저가 된듯해 보이는 딸, 그리고 그들 앞에는 열여섯, 일곱쯤 되어 보이는 아들과 이제 20대 초반이 되었을까 말까 한 남녀... 앞서가는 그들을 올려다보다 내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그들 중 열예닐곱쯤 되어 보이던 소년의 오른발은 정상인의 다리가 아닌 철로 된 의족이었던 것이다. 그가 때로는 걸으며, 아주 가파른 곳에서는 기어가며 그 힘든 언덕을 오르고 있는 거였다. 그 아버지에게 물으니 샌디에이고에서 왔단다. 모두가 다 가족이냐고 물으니 다 가족은 아니란다. 어젯밤에 내가 묶었던 Little Yosemite Valley서 자고 오늘 이른 새벽에 여기로 올라왔다는 거였다. 나보다 30분이 아니라 거의 2시간은 먼저 서둘러 출발했으리라 생각하니 그들을 앞질러 가기가 미안하고 망설여졌다. 그들이 마지막 해프 돔 한 덩어리로 된 급경사의 마지막 오르막을 앞두고 숨 고르기를 하는 동안 나는 그들을 앞질러 마지막 급경사 길을 오르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벌써 정상에서 내려오는 몇몇이 5,60도쯤은 되어 보이는 가파른 경사 길을 조심조심 내려오고 있다. 이곳에는 좁은 경사길 양쪽으로 케이블이 설치되어 있어서 그것을 잡고 이동을 해야 한다. 서로 마주치기라도 하면 한쪽으로 비켜서서 기대려 줘야 할 정도로 좁고 가파른 길이다. 내려오는 등산객들을 보내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남은 약 20미터 정도를 오르니 케이블도 끝나고 바로 코앞에 정상이 보인다. 정상에는 나보다 먼저 올라온 세 명의 백인 남자들이 사진을 찍으며 눈앞에 펼쳐진 웅장한 요세미티 밸리의 광경을 만끽하고 있다. 아침에 출발해서 약 2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그토록 오래 벼르고 별렀던 해프 돔은 꽤나 넓고 커다란 바위산이다. 그 높이가 해발 8836피트(2693미터)이니 2750미터로 알려진 백두산의 높이에 버금가는 높은 곳이다. 워낙 유명한 코스이기 때문에 미 전국에서는 물론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방문객들로 인해 하루에 맥시멈 350명에게만 퍼밋을 허용한다고 하고 그 퍼밋을 얻는 것도 용이하지 않으니 가고 싶다고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것 또한 아닌 곳이다. 지금까지 해프 돔 산행에서 죽은 사람이 스무 명이 넘을 만큼 위험하고 조심스러운 산행 코스이다. 그런 곳엘 올랐다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하다. 사방을 둘러보며 그 동안은 이곳을 바라보기만 했던 Glacier Point와 요세미티 밸리 그리고 North Dome, 그리고 어젯밤 묶었던 Little Yosemite Valley를 내려다보았다. 나 자신의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기념사진 하나 안 찍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까 JMT에서 갈라지는 곳에 배낭을 내려놓으면서 정상에 갔을 때 아무도 없으면 사진을 어떻게 찍지 하는 염려에 올라오던 길을 다시 내려가서 챙겨 온 소형 삼각대가 있긴 했지만 먼저 올라와 있는 등산객들에게 부탁하고는 저 아래 밸리가 내려다보이는 천 길 낭떠러지 위에 튀어나와 있는 바위 위로 올라섰다.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부른다. 대한독립 만세! 가 아닌 미국 독립만세! 를 생각하면서... 오늘이 바로 Independence Day 곧 미국의 독립기념일이기 때문이다.
탁 트인 경치가 아무리 좋고 멋있어도 여기서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 우리가 힘들게 정상을 향해 올라가지만 정작 정상에 머무르는 시간은 대부분 올라온 시간의 10분의 1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다. 올라가는 방법만 알고 내려갈 줄 모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행한 결과를 맞닥뜨리게 된다. 오르는 방법을 배웠다면 내려가는 방법은 그것보다 더 신중하고도 자세히 공부해야 하는 법이다. 해프 돔에 올라 채 10분도 머무르지 못한 것 같다. 오늘 나의 목적지는 이곳이 아닌 아직 20마일쯤 저 멀리에 있는 Tuolumne Meadows 이지 않은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캐이블이 있는 급경사 길을 내려가는 것은 올라오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조심스럽다. 케이블을 잡고 중간쯤 내려왔을 때 아까 내가 지나쳐온 샌디에이고에서 올라온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소년은 허리에 안전 캐러비너를 캐이블에 걸쳐가며 가장 가파른 구간을 오르고 있었다. 그 뒤에서는 그보다 조금 나이가 더 먹어 보이는 청년이 구슬땀을 흘리며 그를 도와 캐러비너를 옮겨 걸쳐주고 있다. 그 소년의 이름이라도 기억하고 싶어 물으니 잭이란다. 내 아들보다도 너댓 살은 어린 나이로 보였지만 그가 존경스럽다. 자신의 불행으로 인해 좌절하지 않고 정상인들도 오르기 어려운 그 힘든 길을 오르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땀을 흘리는 모습은 존경을 넘어 경이로워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기시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God bless you! 를 말해주고는 그를 돕는 청년에게 ‘넌 참 좋은 친구구나!’ 해 주었더니 잠시 뜸을 들이다가 친구가 아니라 형이라고 말해준다. 동생의 도전을 돕기 위해 혼자서도 오르기 쉽지 않은 길을 따라나서 그를 돕는, 이제 겨우 두세 살 많아 보이는 그 형의 모습 또한 내겐 지울 수 없는 감동으로 가슴에 각인되어 버렸다. 해프 돔을 오르며 이런 감동을 경험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들은 진정 영웅의 모습으로 내게 남으리라.
저 아래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다. 한참 사람들이 많이 몰릴 시간에는 Sub Dome에서 거의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이른 아침에 올라오니 그런 트래픽이 없어서 또한 좋았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지만 해프 돔을 뒤로하고 본래 나의 목적인 JMT를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내려오다 보니 어젯밤 숙영지에서 퍼밋 검사를 하던 레인저가 올라온다. 내가 JMT 등반객인 것을 확인하고는 여기에 JMT Thru Hicker들이 여러 명 있었다며 용기를 주었던 그다. 해프 돔 퍼밋도 확인한 그가 해프 돔엔 언제 올라갈 거냐고 하길래 내일 아침 일찍 가려고 한다고 했더니 퍼밋 잊지 말고 꼭 가져가야 한다며 그럼 내일 거기서 보자던 그가 만나자마자 내 퍼밋을 보잔다. 그럴 줄 알고 큰 배낭에 꼭꼭 넣어 두었던 퍼밋을 꺼내 주머니에 넣어오지 않았던가! 그가 퍼밋을 확인하는 사이 그에게 너는 날마다 여기를 오르겠구나 했더니 날마다는 아니지만 자주 올라온다며 퍼밋을 돌려준다.
배낭을 놓아둔 곳으로 돌아와 혹이나 산짐승들이 음식 냄새를 맡고 건드리기라도 했을까 배낭이 무사한지를 확인해 보니 아무 이상 없다. 내 배낭 옆에는 다른 배낭이 하나 더 놓여 있을 뿐이었다. 왕복 4마일을 다녀오니 세 시간 반 정도 소요된 것 같다. 이제 다시 본격적인 JMT에 들어서서 아직도 가야 할 먼 길을 오른다.
지난해에는 JMT의 시작 지점인 밸리에서 출발하는 퍼밋을 구할 수가 없어서 Tuolumne Meadow에서 출발해서 위트니 산까지 갔다가 다시 Tuolumne Meadow로 차로 이동을 해서는 못하고 간 구간 21마일을 거꾸로 넘어 요세미티 밸리로 내려갔었다. 아침 6시 반쯤 Tuolumne Meadow에서 출발해서 아직 그리 밝지 않은 새벽길을 한 시간쯤 올랐을까? 등 뒤에서 내리 비치는 청명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흥겨운 기분에 그리 어렵지 않은 오르막을 올라섰을 무렵 무거운 배낭을 메고 반대편에서 넘어오는 동양인 커플을 만났었다. 일본인들로 보이는 그들은 지금 내가 출발한 Tuolumne Meadow로 가고 있단다. 난 지금 거기에서 출발해서 요세미티 밸리로 데이 하이킹을 해서 내려가려고 한다고 했더니 그렇냐고 놀라워한다. 서로 갈 길이 바쁜 것 같이 자세한 이야기 할 틈 없이 돌아서서 가던 길을 가려는데 그가 돌아서서 한 마디 덧붙인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기는 한 것이냐?’ 한다. “Why not? It just 22 miles!" 아마도 그는 밸리에서 출발해서 올라왔을 것이기 때문에 2박 3일쯤은 걸려서 여기를 지나고 있을 것이기에 그렇게 물은 것이었으리라. 밸리에서 Cathedral Pass를 넘으려면 올라오는 오르막이 5652피트(1723미터)나 되니 설악산보다 조금 더 높은 고개를 넘어서야 한다. 그래서 난 지난해 반대쪽으로 내려가는 그래서 오르막이 1200피트(366m) 조금 넘는 쉬운 루트를 택한 거였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의 편법도 없이 밸리에서 출발해서 위트니까지 가려다 보니 지난해 거꾸로 쉽게 내려온 길을 힘들게 올라가야 했던 것이다. 그것도 45파운드(20kg)가 넘는 배낭을 메고 하루 만에 넘어가야 한다. 아직은 초반이기에 룰루랄라 하며 지루한 언덕을 오른다. 30분쯤 올랐을까 백인 아가씨가 천천히 올라가고 있다. 그녀도 JMT를 가고 있단다. 약 4주 일정을 가지고 가고 있다고 하니 거의 한 달은 이걸 위해 시간을 비운 것이다. 조금 앞에는 그녀의 남자 친구가 뒤에 처진 친구를 위해 물가에서 기다리고 있다. 오르는 동안 몇 군데 캠핑할 수 있는 곳에서는 느지막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등산객들을 만나 반가운 아침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지난해 내가 한 것처럼 이 구간을 데이 하이킹으로 뛰어서 내려가는 중국인 친구도 만났다.
아직 고개 길은 끝나지 않았는데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아직 12시 조금 전이지만 흐르는 물가를 만났기에 오늘 점심을 위해 준비해온 냉면을 끓여 먹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무거운 배낭을 쓰러진 고목 옆에 세워두고는 냉면 삶을 준비를 한다. 힘든 고개 길을 올라와 흐르는 땀을 식히며 끓여 먹는 냉면 맛은 비록 거기에 오이채, 삶은 계란을 비롯한 남의 살이 없는 초라한 것이라도 말로는 설명 불가이다.
점심을 먹고 식수를 정수한 후 출발해 올라가려니 열 명도 넘는 젊은 청춘 남녀들이 우르르 몰려서 내려오고 있다. 산에서 만나는 젊은이들을 보면 하나같이 다 예뻐 보인다. 그들의 건강미는 물론이거니와 잠깐씩 이야기를 나눠보면 참 건전한 인격을 갖추고 있는 것이 느껴져서이다.
몇 번의 개울을 지나고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Sunrise camp가 눈앞에 들어온다. 이제 오늘 가야 할 거리의 절반쯤은 온 것이다. 드넓게 펼쳐진 평원을 오른쪽으로 하고 난 트레일을 따라 걷다 보니 참 정겨운 산책로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되면 언젠가 한가하게 이곳에 와서 캠핑 한번 해야겠다.
이제부터는 그리 가파른 길은 없고 완만한 고개를 몇 번 넘으면 오늘의 가장 높은 지점인 Cathedral Pass도 지나는 듯 마는 듯 넘게 되어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지만 나무 그늘에 누워 잠시 쉬기로 했다. 배낭을 멘 채로 배낭에 기대어 누우니 나도 모르게 잠에 스르르 빠져든다. 얼마를 잤을까? 아마도 길어야 10분이었겠지만 그렇게 든 쪽잠은 그 달콤함이 편안한 침대에서 잔 그것에 못지않다.
어느덧 내 발걸음은 Cathedral Pass를 넘고 있었다. 왼쪽으로는 Tresidder Peak이 기도하는 손 모양으로 우뚝 서 있고 오른쪽으로는 Echo Peak 그리고 트레일 정면으로는 대 성당의 종탑처럼 솟아 있는 Cathedral Peak이 가는 길을 멈추게 한다. 길에서 벗어나 좋은 구도를 잡아 사진 한 장은 찍고 가야겠다.
내리막을 조금 더 내려가면 Upper Cathedral Lake이 눈앞에 들어온다. 지난해 6월 처음으로 이곳을 찾으며 함께 오르던 친구에게 ‘이 좋은 데를 왜 이제야 오는 것이냐’며 그 아름다운 경치에 눈을 떼지 못했던 곳이다. 호수에 비치는 Cathedral Peak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언제 봐도 아름다운 호수를 뒤로 하고는 서둘러 내려가야 했다. 다리는 점점 피곤해져 오고 아직도 갈 길은 5마일 이상 남아 있다. 오늘 밤에는 적어도 Tuolumne Meadows에 있는 Backpacker's Camp까지는 가야 했기에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마냥 머물 수만은 없지 않은가!
이곳은 그래도 세 번째 오는 곳이기에 지형이 눈에 많이 익다. 지난해 6월 초, 이 곳을 처음 찾았을 때는 새까맣게 달려드는 모기떼로 인해 홍역을 치렀었다. 세상에 그렇게 모기가 많은 것은 처음이었다. 온몸에 모기 퇴치 스프레이를 뿌렸지만 먹을 것을 찾아 달려드는 모기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팔이고 다리고 얼굴이고 할 것 없이 마구 달라붙어 피를 빨아대곤 했었다. 올해는 지난해만큼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도 모기는 내내 나를 힘들게 할 것이 분명했다.
완만한 내리막을 걷다 보면 Fairview Dome이 눈앞에 보이는 곳에 땅에서 솟는 샘물이 있다. 지난해 처음 이곳을 지날 때 그 물맛을 보니 냉장고에서 꺼낸 것보다 더 시원하고 그 맛이 일품이었다. 그곳이 나오면 물을 리필하리라 생각하고 기다리던 차에 Fairview Dome이 눈앞에 들어오는 걸 보니 샘물이 코앞이다. 아직은 물이 풍성할 거라 생각을 했었지만 올해는 눈이 많이 오지 않았어도 샘물이 제법 많은 양을 뿜어내 시원한 개울을 만들어 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참 반갑고 고맙다. 이 곳에서 샘물이 만들어낸 개울 양옆에 뻗어있는 소나무들과 그 뒤로 보이는 돔은 참 근사한 정취를 지나는 행인들에게 선물한다. 얼음처럼 차가운 시원한 샘물과 산수화 같은 경치, 이만하면 그 어디에 내어놓아도 잠시 쉬었다 가기에 손색이 없지 아니한가!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사진 두어 장 찍고 물병에 조금 남은 물 쏟아 버리고는 시원한 샘물을 리필해서 담았다. 물이 얼마나 시원한지 물병에 금방 습기가 어린다. 이런 샘물이 집 가까이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괜한 욕심을 부려보지만 상상만으로도 입이 벌어진다.
이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오늘의 목적지 Tuolumne Meadows에 도착한다. 거기 가면 가게도 있고 식당도 있어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을 수도 있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하여 도착했지만 아직은 사제 음식(?)이 그리울 만큼 산속에서 오래 생활은 것은 아니라 그런지 막상 마켓에 들어가서도 눈에 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시원한 음료수 한 병, 오렌지 한 개, 사과 한 개 달랑 사들고는 밖으로 나왔다. 싱싱한 과일을 가지고 가기 어려운 백팩킹에서 만난 사과 한 개를 대충 씻어 입에 무니 그 맛이 꿀맛이다.
어느덧 시계는 여섯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캠핑장을 찾아 자리를 잡고 오늘을 마무리해야 한다. 이곳에는 미리 예약해서 올 수 있는 Car Camping장이 따로 있고 그 뒤로 Backpacker들을 위한 캠핑장이 따로 있다. 캠핑장을 찾아가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빈 사이트가 있나 깊이까지 들어가 보았지만 모두 차 있다. 어쩔 수 없이 캠프 사이트를 다른 사람들과 같이 쓰는 방법밖에는 없다. 누군가가 벌써 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공간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는 곳을 찾아 먼저 텐트를 치고 있는 백패커에게 스페이스를 셰어 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문제없다고 한다. 그의 호의로 인해 오늘은 이곳에서 두 번째 밤을 보내게 될 것이다. 텐트를 치고 나니 힘든 길을 오는 동안 간식으로 먹은 에너지 바와 좀 전에 가게에서 사 먹은 사과 때문인지 별로 배도 고프지 않고 저녁 입맛이 없다. 화장실에 내려가 씻고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 요량으로 어둑해져 갈 무렵 씻을 겸 빨래도 할 겸 화장실을 찾아갔는데 키는 작지만 정말 몸에 군살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이태리에서 왔다는 자전거 여행자가 지난 3일 동안 목욕을 못했다며 먼저 와서 씻고 있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를 들으니 자기는 두 달 정도 계획을 잡고 자전거로 미서부 여행을 하려고 왔단다. 며칠 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 요세미티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왔으며 유타를 거쳐 몬타나주의 글래시어 국립공원과 와이오밍주의 그랜드 티톤, 옐로스톤 국립공원 등등을 거쳐 콜로라도에서 자기 나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대단한 열정과 체력이다. 그가 목적한 곳을 무사하게 여행하고 안전하게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해 주고 싶다.
텐트로 돌아와 계산을 해보니 오늘은 거의 23마일쯤은 걸은 것 같다. 오래 기억에 남을 좋은 하루였다. 하지만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니 내일을 위해 푹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셋째 날(7월 5일 2014년)
(From Tuolumne Meadows Backpacker's Camp to Rosalie Lake - 27.5 마일)
지난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몸도 피곤했고 오늘 가야 할 길이 멀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해야 한다는 잠재의식 때문이었을까? 잠결에 소리를 들어보니 벌써 사람들이 일어나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새벽이 가까웠나 보다 생각을 하고는 시계를 보니 시간은 4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좀 이르긴 해도 서둘러 출발을 하려면 슬슬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침낭을 주머니에 말아 넣고 깔고 있던 매트도 말아서 배낭에 고정을 한 다음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밖은 아직 캄캄한 어두움이 지배하고 있었다. 저 건너편에서는 몇 명의 젊은 친구들이 단체로 화장실을 다녀오는지 헤드 렌턴 불빛을 의지해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아직 잠자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소리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베어 박스 문을 열고는 어젯밤 넣어 두었던 음식을 꺼내서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물을 끓여서 붓고 10분만 기다리면 식사대용으로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미국식 음식이었다. 적당량 물을 붓고는 짚을 조여 닫아놓고 기다리는 동안 남은 물로는 커피를 한잔 타서 마셨다. 어차피 10분을 기다려야 하니 그동안 화장실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는 뜨거운 물을 부어 따듯한 음식 봉지를 주머니에 넣고 리필할 물병을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해드 랜턴 불빛에 의지해 어두운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다가 좀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이제 5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간인데도 쭉쭉 뻗어 있는 나무숲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는 아직도 별이 총총한 것을 올려다보았을 때이다. 지금쯤이면 이제는 서서히 동이 터 와야 하는데 그 새벽의 하늘은 어둠이 깊어만 가고 있는 듯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얼른 시계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이 시계는 전자식 시계인데 평소에 귀찮아서 지난 10여 년 동안 손목시계 없이 주머니에서 셀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별 불편 없이 지내다가 지난해 백팩킹을 하다 보니 산중에서는 전화기를 항상 켜놓지 않기 때문에 손목시계가 없으면 시간을 확인하기가 어려워 작년 8월 JMT를 가기에 앞서 월마트에 들러 17불에 세일하는 싸구려 전자식 시계를 하나 장만했었다. 두 가지 다른 시간을 세팅할 수도 있는 데다 알람도 되고 방수에다 불빛 기능까지 있어서 어두운 곳에서도 시간 확인이 가능해서 산에서는 딱이다 싶어 구입한 거였다. 그래서 미국 현지 시간과 한국 시간을 입력해 놓았고 알람까지 설정해서 쓰기에 좋도록 세팅을 마쳐 놓았었다. 그래서 지난해 산에 갔다 온 후에도 그 시계는 내 손목에서 거의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을 만큼 이젠 내 가장 가까운 액세서리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아니 지난밤 뭔가 이상하다 싶어 침침한 눈으로 자세히 뚫어져라 다시 들려다 본 시계는 pm 5시 8분을 지나고 있는 거였다. 내 눈이 의심스러워 밝은 렌턴 불빛 아래 자세히 확인을 해보니 현지 시간으로는 자정을 넘겨 1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고 한국시간으로 그것이 오후 5시 8분이었던 거였다. 지난밤 잠결에 사람들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는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에 시계의 버튼이 잘못 눌려져서 한국 시각이 표시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깨어나 벌어진 에피소드였던 거였다. Oh my gosh! 허탈한 쓴웃음이 나왔다. 우짜다 이런 일이... 난 일찍 잠에 들었다 한 밤중에 깼던 것이고 그 움직이던 청년들은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고 놀다가 이제 잠자려고 준비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부지런한 등산객들로 착각해서 생겨난 해프닝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우스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별 일도 다 있다 생각하고는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텐트로 들어갔다. 오늘따라 부지런을 떨면서 침낭과 매트까지 다 개서 배낭에 묶어놨는데... 다시 풀러 매트를 깔고, 슬리핑백을 펴서 다시 잠을 청하려니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그 밤중에 커피까지 근사하게 한잔 하지 않았던가! 뜨거운 물을 부어 논 아침 식사도 이제 차갑게 식어버릴 것을 생각하니 참 우습기 짝이 없다.
평소에 난 선입견 갖는 것을 싫어한다. 그것이 사람에 대한 것이든 학문에 대한 것이든 종교에 관한 것이든 공연한 선입견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새벽 난 잠결에 깨어서 들리는 소리를 확인도 하지 않고 부지런한 등산객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움직이는 소리라고 단정을 해버리는 실수를 하고만 것이다. 그런 선입견은 나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고 오늘 같은 어이없는 해프닝이 일어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에 어떤 생각이나 결정을 하고 나면 다른 의견이나 객관적인 사실에 눈을 감고 귀를 막아버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미리 그어 놓은 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손해를 치러야 했는지 얼마나 많은 희생자들이 고통을 당해왔는지는 역사의 페이지 몇 장만 들춰보아도 쉽게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시 가운데 김원호의 “자”라는 시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마음속에 자를 하나 넣고 다녔습니다.
돌을 만나면 돌을 재고
나무를 만나면 나무를 재고
사람을 만나면 사람을 재었습니다.
물 위에 비치는 구름을 보며
하늘의 높이까지 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내가 지닌 자가
제일 정확한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잰 것이 넘거나 처지는 것을 보면
마음에 못 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확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몇 번이나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가끔 나를 재는 사람을 볼 때마다
무관심한 체하려고 애썼습니다.
간혹 귀에 거슬리는 얘기를 듣게 되면
틀림없이 눈금이 잘못된 자 일거라고
내뱉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번도
내 자로 나를 잰 적이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부끄러워졌습니다.
아직도 녹슨 자를 하나 갖고 있지만
아무것도 재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습니다.
잘못된 자로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재단하고 선을 긋지 말 것이다. 그 죄는 고스란히 내가 돌려받을 것이니....
한참을 뒤척이다 가져온 책도 몇 페이지 읽고, 어제 피곤해서 미루어 두었던 일기도 보충하다 보니 잠이 들었고 선잠을 자다가 다시 깨어보니 이제는 진짜 4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좀 더 버티다가 다섯 시쯤 일어나 출발 준비를 하였다. 이미 물을 부어 놓아 차갑게 식어 버린 아침 식사에 뜨거운 물을 조금 더 부어 찬기를 가시게 해서 끼니를 때우고 텐트를 철수하여 짐을 꾸리고 준비를 마치니 5시 40분이 된다. 동쪽 하늘은 그제야 밝아오고 숲 속에 짙게 내리웠던 어둠도 물러가고 있다.
신선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오늘 지나게 될 구간에서 맞이할 아름다운 광경들을 상상하며 내딛는 발걸음은 지난밤에 있었던 웃지 못할 황당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가볍고 경쾌하다. Backpacker's Camp에서 나와 120번 도로를 만나 다리를 건너니 바로 John Muir Trail 표지판이 나타난다. 이른 아침 산책을 나온 백인 여성이 앞서가다 마주치니 반갑게 아침 인사를 한다. 어디 가느냐고 묻길래 위트니 산까지 JMT 종주를 하고 있는 중이라 하니 놀라워한다. 그녀와 작별 인사를 하고 조금 앞질러 가다 보니 왼쪽으로 Ranger Station이 나타난다. 지난해에는 바로 이곳에서 JMT를 위한 첫 발걸음을 시작했었다. Tuolumne Lodge를 지나다 보니 어느새 부지런한 해는 3000미터가 넘는 산을 넘어와 그 싱그러운 햇살을 비추고 있다. Tuolumne River로 합류되는 Lyell Fork의 다리를 건널 무렵에는 저 위 초원 사이로 흘러내려오는 강물 위에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아침 햇빛을 받아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완만한 경사를 가진 푸른 초원과 그 사이에 흘러내리는 좁고도 긴 강물, 거기에는 급할 것도 없고 두려울 것도 없는 고요, 평화 그것만이 존재하는 듯하다. 한 20분쯤 더 올라갔을까? 부지런한 커플 등산객 두 쌍이 맞은편에서 내려오고 있다. 싱그러운 아침 햇살과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내려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경쾌하기만 하다.
Tuolumne Meadows에서 Lyell Canyon으로 올라가는 길 약 10마일 정도는 큰 오르막 없이 완만한 경사를 오르는 아주 편안하고 쉬운 산책로다. 지형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강을 끼고 올라가면서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는 길이다. Vogelsang Trail로 갈라지는 곳이 가까워오니 강가에서 캠핑을 하는 한 그룹의 사람들과 몇 군데 다른 텐트들도 볼 수 있었다. 저들은 이곳에서 참 편안한 밤을 보냈을 거라 생각을 하며 이런 한가하고 여유로운 산행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8시가 넘어갈 무렵 맞은편에서 벙거지 모자를 쓰시고 홀로 산행을 하며 내려오고 계시는 중년의 여성 하이커를 만났다. 머리 색깔로 보아 연세가 꽤 되어 보이셨고 메고 계신 배낭과 장비를 보니 장거리 산행 중이신 것 같아 어디까지 가시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캐나다까지 가신다고 하신다. Pacific Crest Trail을 걷고 계신 거였다. 두 달도 전에 멕시코 국경에서 출발하셔서 요세미티까지 오셨고 앞으로도 한 4개월 이상 더 이 산길 걸으셔야 목적하신 캐나다까지 가실 수 있으시단다. PCT 등산객들은 Trail Name을 가지고 여행들을 한다. "Thumps Up"이라는 이름을 가지신 연세가 58세 이신 할머니, 2650마일이 넘는 이 길을 나서셨다는 것이 이 아침 나를 놀라게 한다. 나는 두 엄지를 높이 치켜올려 "Two thumps up"을 표현해 그분의 PCT 도전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 빌어 드렸다. 그분과 헤어진 지 불과 1마일쯤 더 올라왔을까? 또 다른 여성 하이커가 내려오고 계시다. 이분도 캐나다까지 가신다고 했다. 얼굴까지 가려지는 모자를 눌러쓰고 계셨지만 모자 사이로 보이는 흰 머리카락을 다 가릴 수는 없었다. 연세를 여쭈니 67세라 하신다. “할머니 지금 저 놀리세요?” “아니, 정말이야. 나 너 놀리는 거 아니야.” 하시며 자기 남편이 지난 3월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남편 장례식 치르고 4월에 PCT 하러 캘리포니아로 와서 출발하신 거란다. 어디 사시느냐고 물으니 북부 시애틀에 집이 있으시단다. "그럼 할머니는 지금 걸어서 집에 가시는 거군요?" 물으니 그렇단다. 자기는 지금 집에 가시는 중이시라며 웃으신다. 이 할머니의 트레일 네임은 Blue Butterfly이시다. 너무나 감동을 전해 주신 할머니와 헤어지며 "Good Luck! & God Bless You!"라 마지막 인사를 해드렸더니 할머니 눈이 동그래지시면서 정말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이번 PCT 여행을 하시면서 여러 차례 느끼신다며 고마워하신다. 정말 이 할머니가 캐나다까지 무사히 가셨으면 좋겠다. 백팩킹을 하면서 가장 좋은 것 가운데 하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더 굳어진다. 몇 명의 PCT 하이커들을 만난 것은 내게 커다란 용기를 주었다.
Donahue Pass(11073피트-3375미터)를 향한 본격적이 고개 길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완만하게 펼쳐진 초원과 나무숲 그리고 호수 물인지 강물인지 구분하기 힘들 만큼 유속이 느린 강과 어우러져 참 평화스러운 풍경을 보여준다. 그런 강을 옆으로 끼고 걷는 내내 마음이 평온하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아무리 완만하지만 쉬지 않고 세 시간쯤 걸었으니 오르막에 앞서 배낭을 내려놓고 숨을 좀 돌리고 쉬어 가기로 했다. 얼마 안돼 몇 명의 동양인 데이 하이커들이 뒤에서 쫓아온다. 중국사람 두 명과 한국사람 한 명이다. 오렌지 카운티에서 왔다는 그는 자기는 한국말을 잘 못한다면서도 반가워한다. 그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 보니 지난해 묵어갔던 곳이 나타난다. 오르막이 시작되어 한 1/3쯤 오르면 나타나는 Lyell Forks라는 곳인데 작은 다리를 건너기 전 오른쪽 언덕 위에 텐트를 치고 하루 밤 쉬어 갔었다.
당시 요세미티 밸리에서 출발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겨 Tuolumne Meadows에서 출발하게 되니 이틀 치나 되는 음식이 남았다. 베어 캐니스터 두 개에도 다 들어가지 않아 남는 음식은 자루에 넣어 높은 나무에 매어 달아 놓기로 하고 적당한 나무를 찾았다. 텐트에서 15미터쯤 떨어진 바위 뒤에 높다란 나무를 발견하고는 줄을 돌에 묶어 4미터쯤 되는 나뭇가지 위로 던져 음식 자루를 매달았다. 이만하면 제 아무리 곰이라도 훔쳐 먹지 못할 거라고 생각을 하고는 텐트로 돌아와 정리하고 잠을 잤었다. 이른 아침잠에서 깨어 제일 먼저 한 일은 나무에 매달은 음식의 안전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텐트 주위를 살피니 곰이 다녀간 흔적이 없었다. 안심하고 매달아 은 음식도 괜찮겠지 하고 바위 언덕을 넘어가 보니 나무에 매어단 음식 자루가 보이지 않는다. 나뭇가지는 부러진 채 바닥에 나 뒹굴고 있고 음식 자루는 찢어져 쓰레기만 남긴 채 말끔히 비워져 있었다. 곰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 그렇게 가늘지 않은 나뭇가지를 부러트려 사람의 음식을 터는데 완벽한 성공을 거둔 거였다. 지난밤 사이에 일어난 곰의 재주가 사람의 꾀를 넘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그 안에 넣어 두었던 사과와 복숭아가 아깝긴 했어도 곰에게 고마워해야 했다. 우리에게 넘치는 음식의 무게를 줄여줬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아니 너무도 자주 필요에 충분하고도 남는 것을 알면서도 버리거나 누구를 주지 못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움켜쥐고 그것 지키느라 허덕이고 살았던가? 곰이나 줘버릴 일이다.
아니 아니, 내가 말을 잘못했다. 사실 곰에게는 음식을 주어서도 안되고 곰이 사람의 음식을 훔쳐가도록 해서도 안 되는 것이 야생의 룰이기 때문이다.
나를 앞서가던 친구들이 바로 그곳에 있는 다리 앞에서 멈춰서 다른 동료를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도나휴 패스를 향하여 부지런히 발길을 옮긴다. 10000피트를 넘어서니 나무의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아마도 수목 한계선을 넘어서인가 보다. 힘든 길을 오르다 보면 자주 쉬어갈 수밖에 없는데 길가에 앉기 좋게 세워진 바위들이 그렇게 고마울 데가 없다. 30초만 잠시 앉았다 일어나도 훨씬 수월해진다. 저 멀리 북동쪽 그늘로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들이 눈앞에 가까이 다가오고 길가에 피어있는 작은 야생화들이 지친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 높은 곳에서도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우는 것들을 보면 그 생명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다. 드디어 도내휴 패스 정상에 올랐다. 시계를 보니 11시 58분이다. 6시간 15분 만에 14마일을 걸어 오늘 일정 중에 가장 높은 곳(해발 3373미터)에 오른 것이다. 도나휴 패스 정상에 올라서면 Yosemite National Park이 끝나고 Ansel Adams Wilderness에 접어든다는 것을 알리는 나무로 만들어진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정상에 올라서니 반대편에서 올라왔다는 중국인 커플들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점심을 먹고 있다. 그들에게 기념사진을 부탁해서 찍고는 나도 간단한 점심을 거기서 먹기로 하였다. 에너지바 하나에 현미 누룽지로 요기를 하고는 고개 너머로 새롭게 펼쳐진 아름다운 전경을 바라보며 하산을 시작한다. 고개 길을 다 내려와 다시 Island Pass로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될 무렵 South Carolina에서 오셨다는 58세 부인과 60세 남편 부부를 만났다. 그 멀리에서 21일 일정으로 JMT 종주를 하시기 위해서 오셨단다. 그들에게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며 격려하고 행운을 빌어주니 고마워한다.
Island Pass(10205 피트-3110미터)는 그리 높지는 않으나 하루에 두 개의 Pass를 넘으려니 힘이 부쳐온다. Santa Barbara에서 왔다는 젊은 친구는 31일 퍼밋을 받고 JMT 종주를 하는데 시간이 많으니 몇 군데에 베이스캠프를 차려놓고 들르고 싶은 데 있으면 들러 가면서 천천히 가려고 한단다. 아일랜드 패스를 넘어 하산 길에는 오른쪽으로 펼쳐진 만 이삼천 피트급 Ritter Range 산맥을 배경으로 이름도 알 수 없는 작은 호수들이 좌우로 놓여 있어 내려가는 등산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런 경치를 보고 그냥 지나쳐 가려면 여기 올 이유가 없지 아니한가! 잠시 들러 경치 감상과 사진 몇 장을 찍고는 또다시 길을 나선다.
이제 조금 더 지나면 Mt. Ritter를 배경으로 수십 개의 작은 섬들을 간직하고 있는 웅장한 모습의 Thousand Island Lake이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작년에 이 곳을 알고 JMT 할 때 처음 와 보고는 올해에만 벌써 세 번째 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높은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올해만 이 호수에서 두 번 캠핑을 했으니 이번에는 패스다.
Thousand Island Lake에서는 JMT와 PCT가 잠시 갈라선다. 그리고 다시 Devil's Postpile앞에 가면 다시 만나 Whitney Junction까지 함께 가게 된다. Thousand Island Lake에서 시작된 호수의 행렬은 끝이 없어 보인다. Emerald, Ruby, Garnet, Shadow, Rosalie, Gladys, Trinity Lake 등으로 이어지는 호수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지나는 행인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코스이다. 오늘 최대한 가 주어야 이번 JMT 하이킹을 통하여 해 보고 싶은 몇 가지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고개를 넘고 호수를 지난다. 지난해에는 Thousand Island Lake과 형제 같아 보이는 Garnet Lake에서 쉬어 갔었다. 거기까지만 가도 오늘 23마일을 넘게 걷는 것이지만 오늘은 Rosalie Lake까지는 가야 할 것 같다. Garnet Lake에서 그리 높지 않은 고개를 넘어서면 오른쪽으로 Minarets이라 불리는 병풍 같은 산맥이 나타나고 그 아래로 시원하게 흐르는 Shadow Creek을 만나게 된다. 때로는 완만하게 때로는 급류가 되어 흐르는 계곡을 끼고 한참을 내려가면 Shadow Lake을 만나게 된다. 거기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Agnew Meadow를 거쳐 Mammoth Lakes 쪽으로 빠지게 되며, JMT는 호수 오른쪽을 지나 가파른 스위치백을 넘어야 한다. 벌써 27 마을 이상을 걸어오지 않았던가! 다리는 점점 무거워오고 해는 기울어 가는데 Rosalie Lake까지 남은 1.5마일은 왜 그렇게 힘이 드는지...
하지만 몇 번을 쉬어가며 주머니에 챙겨 온 Trail Mix를 먹어가며 있는 힘을 다해 고개에 올라섰다. 이제 조금만 내려가면 오늘 자려고 했던 Rosalie 호수가 나를 반겨줄 것이다. 이 호수는 그 크기는 작지만 여러 가지 입지 조건이 참 아름다운 호수이다. 주위에 나무도 많아서 산속에 숨어있는 호수의 모습이 참 정겹다. 호수에 도착하니 몇 개의 텐트가 보인다. 지친 몸을 이끌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았다. 달려드는 모기떼 때문에 머리에는 모기 망을 뒤집어쓰고 텐트를 치고 나니 벌써 넘어간 해가 지친 나에게 붉은 노을을 선사한다. 굿 나잇! 인사라도 하려는 듯이...
넷째 날(7월 6일 2014년)
(From Rosalie Lake to Fish Creek -27.3마일)
아침 일찍 잠에서 깨었다. 아직은 캄캄하기에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출발을 준비하기보다 가져온 책을 꺼내 읽기로 했다. 생각 같아서는 하루에 한 챕터 정도는 읽으려고 했으나 무리한 일정을 하루에 소화하려다 보니 저녁에 도착하여 일과를 마무리하려다 보면 이미 피곤하여 텐트 안에 들어가 밥 생각이 없고 책 읽고 일기 쓰는 것도 미뤄지기 마련이었다. 오늘은 일찍 일어난 김에 몇 구절 책도 읽고 어제 미뤄 놓았던 일기도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문을 열고 밖에 나와 보니 동이 터 호수는 고요히 아침 맞을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아침 먹고 호수와의 이별 준비를 마치니 어느덧 6시다.
오늘은 가는 길에 Reds Meadow Resort에 들러서 샤워라도 하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뭐라도 하나 사 먹고 가야 할 것이다. 거기까지도 8마일 이상은 가야 한다. 하지만 비교적 내리막이고 길이 험하지도 않으니 비교적 룰루랄라 하며 갈 수 있는 길이다. 깊은 숲에 내리비치는 햇빛은 그 싱그러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을 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가슴까지 시원하게 하는지를... 하늘에는 흰 구름도 함께 두둥실 흘러간다. 오늘도 날씨는 A〸이다. 처음에는 약간의 오르막이 있지만 아침에 오르는 이 정도의 오르막이라면 식은 죽 먹기다. 제일 처음 마주친 호수는 작년에 여기를 지나다 들러서 수영도 하며 잠시 쉬어간 Gladys Lake이다. 아주 작고 아담한 호수였지만 물이 차갑지 않아서 물속에 들어가 놀다가기에는 딱이었다. 오늘은 잠시 들러 사진만 찍고는 고고...
마음도 가볍고 몸도 가벼워 울창한 숲을 잰걸음으로 내려갔다. 비교적 쉽고 안전한 곳에서는 가볍게 뛰기도 하면서 내려가다 보니 한참을 내려왔나 보다. 어느덧 Johnston Meadow를 지나고 있다. 이제 조금만 더 내려가면 JMT와 PCT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고 Devil's Postpile로 갈라지는 길도 지나게 될 것이다.
지난해에는 그곳에서 빠져서 Devil's Postpile National Monument를 들러서 구경을 하고 Reds Meadow로 넘어갔었다. Devil's Postpile은 주상절리라고 일컫는 돌기둥들이 집단적으로 쌓여 있는 곳이다. 화산 활동에 의해 분출된 용암이 냉각, 수축의 과정을 겪으면서 약 60피트 높이의 6 각형으로 형성된 돌기둥들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지질학계에서 원주 현무암으로 세계 최고의 사례로 평가받기 때문에 1911년 National Monument로 지정된 곳이다.
하지만 정식 JMT는 이곳을 거치지 않고 우회하여 서쪽으로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트레일을 벗어나지 않고 따라가면서 멀리서 내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Reds Meadow resort에 도착하니 9시를 조금 넘었다. 생각 같아서는 한 30분 만에 샤워도 하고 필요한 것 준비해서 떠나고 싶었지만 마켓에서 전화기도 충전하고 샤워하고 빨래도 하고 드라이기에 옷도 말리고 필요한 것 사기도 하다 보니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이제 곧 몸은 다시 땀으로 젖게 될 것이지만 거금 7불을 투자해서 따듯한 물에 머리도 감고 몸을 씻고 나니 날아갈 기분이다. Reds Meadow는 트레일에서 가깝기 때문에 많은 JMT, PCT 등산객들이 들러서 Resupply도 받고 쉬었다 가는 곳이다. 가까운 곳에 잘 정비된 캠핑장도 있어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다. 올해에 벌써 두 번이나 이곳에서 캠핑을 하고 백팩킹을 떠났었다.
나는 처음부터 열흘 치 음식을 다 지고 왔기 때문에 특별히 필요한 것은 없었지만 복숭아 두 개와 사과 두 개, 스낵 두 개를 샀다. 복숭아는 그 자리에서 다 먹고 단단한 사과와 스낵은 배낭에 집어넣었다. 산에서 제일 그리운 것은 신선한 과일이다. 마른 음식만 먹다가 신선한 과일을 먹으니 뱃속도 즐거워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오늘 가려고 했던 목적지까지 가려면 아직도 18마일 이상을 더 걸어야 한다. 리조트에서 나와 트레일로 들어서니 하늘에 구름이 좀 더 많아졌다. 드문드문 빗방울도 떨어진다. 하지만 지난해처럼 스톰이 올 것 같지는 않다. 리조트에서 가까운 곳에 Rainbow Fall이라고 있는데 그 높이가 101피트에 이르는 30미터가 조금 넘는 근사한 폭포이다. 봄에는 꽤 많은 수량의 물이 떨어져서 햇빛을 받아 그 포말에 무지개를 일으키기에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을 것이다. 그 지역에는 1992년에 Rainbow Fire라고 이름 붙여졌던 커다란 화재가 발생해서 약 8000 에이커의 아까운 삼림을 태운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그곳을 지날 때면 타다 남은 나무들의 잔해가 흉물처럼 남아 있어서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이 산불은 번개에 의해 발생했다고 하는데 당시에 있었던 큰 가뭄과 강한 바람 때문에 그 넓은 땅의 수십에서 수백 년 된 나무들이 다 타버리고 말았다 한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자연 복구력으로 어느새 새로운 숲이 자라나고 크고 작은 식물들과 동물들의 서식처로 회복되고 있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오늘 지나는 구간은 거리는 좀 멀어도 그리 힘든 고개도 없고 위험한 구간도 없어서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완만하게 오르는 동안 몇 개의 초원과 개울을 건너고 하다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다. Reds Cone에서 만난 개울가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는 또 앞으로 나아간다. 간간히 뿌리던 빗방울도 잦아들고 날씨가 좋아지고 있다. 다행한 일이다. 반대편에서 젊은 백인 아가씨들이 활기찬 발걸음으로 다가온다. 차림새와 얼굴을 보니 PCT 하이커임에 틀림없다. 너희들 캐나다 가느냐고 물었더니 워싱턴까지 가려고 하지만 할 수 있으면 캐나다까지 가려고 한단다. 뉴욕 북부 쪽에서 왔다는 대학생들인 저들은 고등학교 친구들이란다. 학기를 마치고 출발을 하다 보니 늦게 출발을 할 수밖에 없어서 처음 몇 구간은 스킵해서 지나왔다며 너무 아름다운 곳엘 와서 즐기고 있다고 한다. 지금 지나온 구간들은 너무 아름답다며 멋진 소개를 한다. 나도 지난해에 JMT를 해봐서 이 곳 경치를 알고 있다고 했더니 자기들도 2년 전에 JMT를 했었다며 반가워한다. 여기서 마켓이 있는 동네까지 얼마나 되냐고 묻길래 한 6마일 정도면 Reds Meadow Resort에 갈 수 있을 거라며 거기 가면 Hot shower도 할 수 있고 식당도 있어서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다고 하니까 굉장히 반가워한다. 그러면서 사실은 오늘이 함께 온 친구의 생일이란다. 오늘 거기 가서 친구 생일 축하를 해 주어야 한다고... 그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Happy Birthday! 축하의 인사를 전하니 자기는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며 고맙다고 한다. 햇빛에 노출된 어깨와 코가 이미 까맣게 그을려서 허물이 벗어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모습이 참 건강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져서 화장을 한 그 어떤 젊은 여성 못지않게 참 예뻐 보였다.
자신은 본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왔는데 지금은 하와이에 산다는 40세의 백인 여성을 만난 것은 그들과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혼자서 비교적 늦은 5월에 시작했는데도 벌써 여기까지 올라왔다. Rain Cover를 씌워서 그런지 35-45파운드를 왔다 갔다 한다는 그녀의 백팩은 굉장히 커 보였는데도 씩씩하게 잘 올라오고 있었다. 트레일 네임이 뭐냐고 물으니 새털 모양의 귀걸이를 보여주며 Two Feathers라고 밝게 웃는다.
나와 같은 방향으로 JMT 하이킹을 하는 젊은 청년 둘도 만났다. LA에서 왔다는 그들은 좀 전에 내가 Reds Meadow에 샤워하러 들렀을 때 그 앞에서 출발 준비를 하며 쉬고 있던 친구들이다. 이제 갓 스물을 넘겼을 것 같은 청년들은 나보다 키도 크고 젊어서인지 그들이 쉴 때 내가 앞서갔지만 내가 잠깐이라도 쉬면 금방 나를 따라잡아 앞서간다. 작년부터 백팩킹을 시작했는데 이런 긴 백팩킹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본래는 세 명이 같이 왔었는데 한 친구가 독감에 걸려 Reds Meadow에서 돌아갔는데 그 친구 태워줄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느라고 오늘 늦게 출발하게 되었단다. 젊은 청년들이 이렇게 깊은 산을 찾아 힘든 하이킹을 한다는 것이 참 기특하고 이쁘다.
Duck Pass로 빠지는 길 전에 물을 리필하기에 좋은 곳이 있다. 거기서 잠깐 쉬며 그리 긴 것은 아니지만 시작될 오르막을 위해 잠시 숨을 돌렸다. 이제 이 고개를 올라서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그 물 색깔이 마치 보라색 같이 푸르고 맑다 하여서 붙여졌을 Purple Lake이 나타난다. 좌우로 높이 솟아있는 봉우리 아래 위치한 이 호수는 그 풍광이 그냥 지나칠 수 없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작년에 이곳을 지날 때는 곰에게 음식을 털렸어도 넉넉하게 음식이 남아 있었는 데다 Reds Meadow로 보내 놓은 음식 패키지들을 찾아서 채워왔었기에 90리터짜리 내 배낭이 꽉 차서 아마도 50파운드는 족히 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곳을 지날 즈음에는 그야말로 파김치가 되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 아름다운 퍼플 레익을 보고도 너무 힘들어 겨우 사진 한 두장 형식적으로 찍고는 2마일 거리에 있는 Lake Virginia로 넘어가는 고개를 겨우겨우 넘어갔었다. 한 열 발자국 걷고는 털썩 주저앉았다가 크게 한숨 쉬고는 또 일어나 걷기를 얼마나 했는지...
올해는 작년에 비해 비교적 짐도 가볍고 체력도 좋아진 것이 틀림없다. 작년보다 거의 두배를 많이 걷고 있는데도 올라 갈만 하다. 하지만 해가 서산을 향해 넘어가려는 시각인 데다가 퍼플 레익까지만 해도 22마일 이상 걷고 있는 거니 다리는 천근 반 만근 반이다.
레익 버지니아를 넘어가는데 배낭의 어깨끈에 매단 작은 Pillsbury 인형을 보여주며 자신의 트레일 네임을 알려줬던 아가씨도 캐나다까지 간다며 넘어오고 있다. 작년에 JMT를 처음 하면서 느꼈던 것인데 여기서는 여성 Solo 하이커들을 굉장히 자주 만난다는 것이다. 그 깊은 산속을 짧게는 몇일부터 시작해서 길게는 수십, 수백 일을 걸어야 하는 트레일을 여자 혼자의 몸으로 가기로 결심했다는 것이 50대 동양인 남자인 내게는 참 신기하게 다가왔었다.
하긴 작년 기진맥진하며 레익 버지니아에 도착했을 때 만났던 작은 체구의 Elle라는 중국인 약사 아가씨는 24살이라며 9일간 백팩킹을 혼자서 왔다고 해서 놀랐었다. 여기 백팩킹을 혼자서 오려고 했을 때, 겁나거나 무섭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이곳에 있는 야생 동물들 중에 그리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다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은 두려움 같은 것을 몰랐는데 정작 자기 주변의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걱정이 되어서 많이 염려했노라고 했다. 아직 solo 하이킹을 하는 한국 여자는커녕 혼자 가는 한국 남자도 나 빼고는 만나보지 못했는데 중국인 아가씨의 용기가 참 대단하다 느꼈었다.
Lake Virginia에는 주변으로 텐트를 칠만한 곳에 많이 있어서인지 꽤 많은 사람들이 캠핑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를 앞서가던 젊은 친구들도 여기서 자리를 잡으려는 것 같다. 요세미티 밸리 윌더니스 센터에서 퍼밋 받을 때 나를 봤다며 자기들은 퍼밋이 없어서 Tioga Pass 쪽에서 들어오는 퍼밋을 받고 가는 중이라던 젊은 커플들도 여기서 캠핑을 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어서 내가 작년에 자고 갔던 좋은 곳을 알려주니 고맙다며 인사한다. 벌써 해는 거의 서산을 넘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호수를 지나 2마일을 넘게 더 내려가서 캠핑을 하련다며 그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800피트 이상을 가파르게 내려가는 스위치백 트레일은 McGee Creek과 어우러져 석양의 은은한 빛 아래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어둑해져 가는 고개 길을 혼자서 내려가고 있었지만 이 아름다운 광경을 나 혼자 즐긴다는 기쁨에 내 입에서는 찬송이 절로 새어 나온다. 어느덧 해는 넘어가고 어두워져 갈 무렵, 거의 9시가 되어서야 오늘 밤 잠 잘 자리를 만나게 되었다. 시냇가 가까운 곳에 텐트 칠 수 있는 좋은 곳을 발견한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 세계에서 멀리 떠나와 아무도 없는 이 심심산골에 홀로 텐트를 치고 잠자는 기분을 그 누가 알랴?
오늘도 거의 27마일을 걸었다. 다리는 피곤하지만 점점 목표를 이루어 간다는 생각에 기분은 최고다.
다섯째 날(7월 7일 2014년)
(From Fish Creek to Muir Trail Ranch - 29 마일)
지난해 JMT를 하면서 다음에 또 JMT를 하게 되면 꼭 하고 싶은 몇 가지가 생겼었다. 첫째는 JMT를 요세미티 밸리에서부터 정식으로 시작하는 거였고, 둘째는 기왕이면 해프 돔도 거쳐서 가고 싶었고, 셋째는 중간 기착지인 Muir Trail Ranch에서 하루 밤을 머물다 가고 싶은 거였고, 넷째는 Muir Pass에 있는 Muir Hut에서도 한번 자보고 싶었고 , 마지막 다섯 번째는 위트니 정상에서 일몰과 일출을 보고 싶은 거였다.
처음 두 개는 벌써 이루었다. 이제 세 번째 위시를 이루려면 오늘은 두 개의 패스를 넘고 30마일 조금 넘는 거리를 걸어야 뮤어 트레일 랜치에 들어갈 수 있다. 지난밤 어둑해질 무렵에 도착한 McGee Creek에서는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너무 편안히 잘 잘 수 있었다. 오늘도 여섯 시 거의 다 되어서 출발 준비가 끝났다. 한번 가본 길이기 때문에 대충 여기를 지나면 무엇이 나오고 또 여길 넘으면 누굴 만났었는지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JMT 종주를 하는 하이커들은 대부분 높은 패스를 앞두고 캠핑을 하도록 계획을 잡는다. 늦은 오후 지친 시간에 높은 고개 길을 넘는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밤에 잘 쉬고 기운을 회복한 아침 시간에 힘든 고개 길을 넘도록 일정을 잡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하루에 20마일 이상씩을 가려면 그렇게 일정을 잡기가 곤란해진다. 오늘도 두 개의 높은 고개를 넘어야 하기에 오전에 한 개 오후 저녁 무렵에 또 다른 하나의 패스를 넘어야 한다.
처음에 오르게 되는 Silver Pass를 넘는 길은 어젯밤 캠핑한 곳에서 고개 길을 1마일 정도 내려가다가 오르막이 시작된다. 하지만 1700피트 정도의 오르막이라 그리 부담되지는 않는다. Fish Creek에 있는 철제 다리를 지나서 조금 더 내려가니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어 피어있는 아름다운 초원지대가 나타난다. 이제 한창 만개한 꽃들은 조금의 오염도 없는 깊은 산속에서 피어나서인지 더 청초하고 예쁘다. 실버 패스를 거의 다 넘어갈 동안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길가에 피어난 꽃들을 친구 삼아 그들에게 말도 붙여보고, “너희들 참, 예쁘다!”라고 칭찬도 하다가 힘들 땐 꽃들을 향해 “고맙다. 너희들 때문에 힘 난다”고 감사의 말도 전하고 하다 보니 어느덧 Squaw Lake이 가까워 오고 있다. ‘지난해 저 바위 언덕길을 돌아갈 무렵 의자 모양의 바위가 있었지!’ 하며 굽이를 돌아 찾아보니 그 바위가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살피니 밑 둥만 보이고 등받이가 동강 나 나뒹굴어져 있다. 부러진 돌을 다시 집어 올려 맞춰보니 다행히 잘 들어맞는다. 여기에 앉아서 사진이라도 한 장 찍고 갈 요량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어른이 앉기에는 좀 작다. 아쉬운 마음에 금이 간 채로 다시 올려 맞춰진 의자 모양 돌 사진만 찍고 올라갔다. Squaw Lake에 도착하니 텐트 서너 개가 보이고 물가에서 정수를 하며 세수를 하고 있는 남녀 그룹을 만날 수 있었다. 손짓으로 아침 인사를 하고는 실버 패스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패스 정상에 오르기 전에 몇 개의 호수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재미있는 이름들이 지어져 있다. 조금 전에 지나온 Squaw 호수의 이름은 북미 인디언 여자를 뜻하고, Papoose는 인디언 갓난아기를 뜻하며, Lake of the Lone Indian 은 이름 그대로 독신 인디언 호수, Warrior(전사), chief(추장) 등의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인디언과 관계있는 어떤 전설이 서려 있는 곳 같기도 하다.
Silver Pass(10754 피트-3278미터)는 그리 힘들이지 않고 넘을 수 있었다. 패스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뷰는 여전히 멋지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지만 저 너머에 높이 솟은 봉우리들은 내가 가야 할 곳을 보여주고 있다. 내리막길 오른쪽에는 호수라고 하기에는 작고 연못이라고 하기엔 좀 큰 호수가 있다. 이름도 알 수 없지만 호수에 비친 봉우리의 모습이 나를 부른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제법 큰 Silver Pass Lake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진 능선 아래 자리 잡은 이 호수는 그리 비경을 간직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여유로움, 편안함이 잠시 들러 갈만 하다. 작년에는 이곳엘 들러 점심을 먹고 간 곳이다. 점심을 먹고 출발 준비를 하는데 그리로 지나던 Ranger 두 명이 다가왔었다. 모두들 수염을 더부룩하게 기른 모습들이다. 등에는 묵직한 배낭을 메고, 손에는 커다란 삽을 든 그들은 트레일을 따라가며 길도 보수하고 등산객들의 안전 여부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반갑게 인사를 하였더니 아무런 문제가 없느냐고 묻는다. 그러고는 우리가 퍼밋을 가지고 있는지를 묻고는 보자며 확인한다. 퍼밋이 없을 경우에는 퍼밋 없이 여행한 날짜를 계산해서 벌금이 부과된다고 한다. 그들은 9개월 동안은 국립공원에서 Ranger로 일하고 3개월 동안은 쉰다고 했다. 그럼 그 3개월 동안은 뭐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주로 여행을 하노라고 한다. 와 그거 참 좋다. 농담 삼아 “너희에게 잡 오프닝이 없냐?” 고 물으니 웃으며 안전한 여행이 되라고 인사하고는 떠나갔었다.
이 호수를 지나쳐 내려가는데 저 아래서 두 명의 남녀 하이커들이 올라오고 있다. 오늘 맞은편에서 오는 첫 번째 등산객들이다. 가까이 다가왔을 때 자세히 보니 동양인들이다. 날이 잔뜩 흐려서인지 비올 채비를 위해 판초로 머리부터 배낭까지 뒤집어쓴 복장의 그들은 일본에서 왔단다. Too Young이라는 트레일 네임을 가진 작은 체구의 남자는 52세라는데 멕시코 국경에서 요세미티까지 PCT Section Hiking을 하고 있단다. 쯔끼꼬라는 여자는 위트니에서 출발하여 JMT를 하는 중이라고 하였다. 같은 동양인이고 이웃 나라 사람을 이 깊은 산중에서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가. 아직 한국에서 이곳을 찾아온 등산객들을 만난 적은 없지만 일본 사람들은 제법 만나게 된다. 작년에도 몇 명을 만났던 기억이 있다.
그들과 헤어져서도 한참을 내려갔나 보다. Mono Creek Trail을 지나쳐서 조금 더 내려갈 때 커다란 개를 데리고 올라오는 아마도 한 가족인 듯한 백인 세 명도 만났다. 힘들게 오르면서도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니 자기들은 가까운 곳으로 며칠 동안 백팩킹을 하는 중이라며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JMT 대부분의 구간에서는 Pet과의 동행이 금지되지만 이곳은 허용되는 것 같다. 작년에도 Silver Pass Lake에서 개를 데리고 왔던 등산객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산에서는 개들도 자기들의 먹을 것을 등에다 메고 다닌다. “너희 개가 하이킹을 좋아하느냐?”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며 웃는 그에게 개도 한 가족임이 틀림없다.
길가에 피어난 많은 꽃들을 그냥 지나쳐 가기에는 아쉬운 마음에 이번 여행에서 배러리를 아껴야 해서 최소한으로 사진 찍는 것을 아껴야 했지만 카메라에 손이 간다. 이 길을 조금만 더 내려가면 트레일은 Vermillion Valley Resort로 내려가는 길과 갈라지게 된다. Lake Thomas Edison이란 커다란 호수가 있는데 작년에만 해도 물이 많이 줄어 배를 타려면 2,3마일을 더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올해는 너무 가물어서 배를 타지 않고도 호수가를 우회해서 VVR로 갈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가뭄이 심각하긴 한가 보다. 작년에 만났던 중국인 약사 아가씨는 Tuolumne Meadows에서 시작해서 VVR로 나간다며 이곳에서 헤어졌었다.
갈라지는 지점에는 강을 건너는 제법 큰 다리가 있고 그 너머에 작년에 캠핑을 하고 갔던 곳이 있다. 추억을 되새기며 물가에 짐을 내리고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백팩킹을 준비할 때 가장 어렵고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다. 다른 캠핑 장비들이야 있는 것 필요한 대로 담아오면 되지만 음식은 백패킹 하는 날수에 맞춰서 세 끼를 준비하고 또 간식으로 먹을 것도 챙기고 하다 보면 세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사실 산에서 먹는 음식을 집에서처럼 다양하고 맛있게 조리해서 먹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시간상으로도 그렇고 백팩의 무게를 줄여야 하는 문제도 있고 해서 가능하면 싱싱한 재료를 가지고 오지는 못한다. 그래서 주로 한국 사람들은 라면같이 가볍고 즉석요리가 가능한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라면은 부피를 많이 차지해서 그것도 넣어가는 데에 문제가 많다. 지난해에 읽은 JMT 종주기를 보니 그들은 거의 날마다 다양한 종류의 라면만 먹으며 간 것 같던데 어떻게 라면만 먹고 이 힘든 길을 갔는지 참 궁금했었다. 최근 들어서는 뜨거운 물만 부어서 10분 정도 기다리면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동결 건조식품들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미국 음식으로도 여러 가지가 스포츠 전문 샵에 가면 나와 있고 한국 마켓에서도 한국식 동결 건조 비빔밥을 판매하고 있어서 백팩킹을 위해 박스채로 사 오기도 했었다. 이번에는 라면은 출발할 때 한번 이번에 한번 해서 두 번 밖에는 먹지 않고 비빔밥 8개 정도 미국식 건조 음식 두 봉지 정도, 그리고는 야채 수프, 양송이 수프, 잣죽 분말 등과 현미 누룽지를 사 가지고 와서 함께 끓여 먹으니 아침 식사대용으로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리고 간식으로는 다양한 트레일 믹스들과 에너지 바 혹은 젤, 그리고 비프 저키 등을 준비하였었다.
끼니를 해결하고 나니 오늘의 두 번째 패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후에 넘어야 하는 Selden Pass를 넘으려면 3000피트는 올라야 한다. 지그재그로 만들어진 길을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올랐을까 이제는 좀 쭉 뻗은 길이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스위치백은 끝나지 않았다. 드디어 첫 번째 오르막인 Bear Ridge 트레일을 넘어섰나 보다. 이제 다시 내리막이다. 역시 내리막에서 내려다보이는 산맥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 이곳에는 Aspen 군락지가 몇 군데 있는데 가을 단풍이 들 때 오면 참 예쁘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리막이 거의 끝나고 Bear Creek에 접어들 무렵 늘씬한 체격에 백발이 무성하신 백인 할머니가 백팩을 메고 앞서 걸어가고 계신다. 무게를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그리 작지 않아 보이는 배낭을 메고 가시는 것을 보니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였다. 연세가 무려 72세시란다. 빠르게는 가지 못하지만 6일짜리 백팩킹을 하고 계시다며 앞에서 기다리시는 할아버지에게로 조심스럽게 걸어가신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자기 그룹에 72세짜리 노인이 또 계시다고 하신다. 그 연세에도 건강하셔서 이 높은 산을 오르실 정도이시면 그분들은 참 인생을 즐길 줄 아시는 분들이라 생각된다. Bear Creek에 도착하니 할아버지 한분이 기다리고 계시다가 뒤에 오시는 분들의 안부를 물으신다.
Bear Creek으로 흐르는 시원한 계곡물은 너무나도 맑고 깨끗하며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데 겨우 소수의 사람들만이 들어와서 맛만 보고 가니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약 2000피트를 올라왔다가는 1000 정도를 내려왔고 다시 2000피트 정도를 더 올라가야 Selden Pass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한 세 시간 정도를 더 오르니 드디어 정상 밑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인 Marie Lake에 다다를 수 있었다. 물론 그동안 몇 명의 PCT 하이커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두가 한결 같이 행복한 표정들이다.
지난해에 메리 호수를 지날 때에는 비가 오고 우박도 내리고 했었다. 오늘도 잔뜩 찌푸린 하늘은 건드리기라도 하면 툭 터져 빗방울이 쏟아질 것 같은 날씨이다. 하지만 다행히 아직은 커다란 비 소식은 없다. 그 아름다운 호수를 지나쳐 오는 동안 날씨만 좋았으면 멋진 사진을 담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에 자꾸 뒤를 되돌아보게 된다. 이제 하늘도 점점 밤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1마일도 채 남지 않은 정상을 향하여 절반쯤 올라갔을 때 호리호리한 체구에 선한 눈매를 가진 백인 하이커가 뛰어 내려오고 있다. “넌 하이커가 아니라 트레일 러너구나?”라고 물으니 말하자면 그렇단다. 그는 21일 전에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해서 하루 평균 43마일 정도씩 뛰어 오늘 Selden Pass를 넘고 오고 있는 거였다. 그의 바쁜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 조금 미안하기까지 했지만 내가 너의 사진을 좀 찍어야겠다고 하니 그는 친절히 포즈를 취해주고 자신의 이야기까지 상세히 들려주었다. 시애틀에 살고 있는데 할 수 있으면 PCT 기록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소원도 피력하며 발목과 무릎에 시작된 통증과 햄스트링 때문에 처음 일주일이 자기에게는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String Bean"이라는 트레일 네임을 가진 그를 바라보며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 기꺼이 그것에 방해되는 것을 버리고 희생할 줄 아는 삶을 선택한 그가 존경스러웠다. 정말이지 이런 젊은이야 말로 정말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작년에 PCT 협회에 보고된 바에 의하면 두 명의 PCT Thru Hiker가 종전에 가지고 있었던 기록을 경신했다고 한다. 이미 2005년에 PCT 종주 경험을 가지고 있는 Heather Anderson이란 여성이 지난해 6월 8일 6시 30분 멕시코 국경에서 출발하여 60일 17시간 12분 만에 마쳤다고 보고했다. 하루에 평균 44마일을 거리를 주파한 대단한 것으로 2011년 Scott Williamson이라는 사람이 세웠던 64일 11시간 19분의 기록을 약 4일이나 앞당긴 시간으로 경신한 것이었다. 그것도 여성의 몸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기록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다음 날 Josh Garret이란 사람이 6월 10일 정오에 출발하여 59일 8시간 14분 만에 종주를 마쳤다고 보고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하루 45마일의 속도로 두 달 가까이를 달려온 것이다. 하지만 Heather의 기록은 여전히 여성 최고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PCT 협회는 공식적인 기록을 측정하기 위한 어떤 것도 수행하지 않고 또 공식적인 기록을 인증해주지도 않지만 당사자들이 보고한 기록에 대하여 인정을 하고 공시를 한다고 한다.
아마도 String Bean이라는 친구도 가장 힘들고 어려운 구간을 지나온 지금까지의 속도라면 충분히 기록 경신에 도전할만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기록을 세우느냐보다 도전하기 위하여 여기 있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니냐며 웃는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의 사고방식은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착하는 우리네 삶에 커다란 교훈을 준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나도 내 인생에서 가장 먼 거리를 걸어야 하는 날이기에 진심으로 그의 도전이 아무런 사고 없이 잘 마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God bless you on your trail! 란 말로 기원해 주며 그를 보내주어야 했다. 그도 역시 나의 JMT가 무사히 마쳐지기를 같은 말로 기원해 주고는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다.
Selden Pass를 넘으면 사람의 심장 모양처럼 생긴 Heart Lake을 지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서로 마주 보듯 붙어 있는 Sallie Keyes Lake이 나타난다. 이제 해는 넘어가고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이 내려다보이는 두 호수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 시간쯤에 이 호숫가에 도착해서 캠핑을 하고 쉬어갔었지만 오늘은 약 7마일 정도 더 떨어진 Muir Trail Ranch까지 가야 하기에 야간 산행을 대비한 옷과 해드 랜턴을 준비해서는 부지런히 내려가야 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9시 무렵 되니 길은 점점 희미해지고 안전을 위해서는 랜턴을 켜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트레일 주위에 솟아있는 나무들 사이로 올려다보니 하늘에는 구름이 물러가고 아직 차지 않은 상현달이 떠올라 어두운 밤하늘을 비추고 있다. 이 깊은 산중에서 동료도 없이 혼자 이 험한 산길을 내려가고 있지만 그래도 한번 가봤었다는 경험이 내 마음에서 두려움을 몰아내 준다. 셀든 패스에서 뮤어 트레일 렌치까지는 3000피트나 되는 고도 차이가 있다. 그래서 어떤 구간은 완만하지만 또 어떤 구간에서는 상당히 가파르기에 조심해서 길을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랜턴의 불빛에 의지해 내려가는 동안 아무런 문제나 사고 없이 깊은 산중의 고요한 적막을 홀로 만끽하며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내가 가야 할 뮤어 트레일 렌치가 있는 계곡이 눈앞에 들어온다. 거기서도 한 시간 이상을 내려가서야 JMT에서 갈라지는 Cut Off Trail을 만났고 약 1마일을 더 내려가니 뮤어 트레일 렌치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나를 반긴다. 야영할 곳을 찾기 위해서 온천으로 향하는 길로 꺾어져 강가에 이르니 시계는 10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다. 다른 텐트 하나가 보이기에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소리를 죽여 텐트를 치고는 모든 것을 내일로 미루고 내 생애 가장 긴 30마일의 거리를 걸은 하루를 조용히 덮는다. 작년에 세웠던 26.5마일을 넘어서는 새로운 기록을 갖게 되었다는 뿌듯한 마음과 함께...
여섯째 날(7월 8일 2014년)
(From Muir Trail Ranch to Muir Pass - 22.1마일)
이번 JMT 여행에서 이루고 싶었던 세 번째 위시를 지난밤에 이루게 되었다. 여유 있게 이곳에 도착해서 한가로움을 맛볼 정도는 아니었으나 중간 기착지라고 할 수 있는 뮤어 트레일 렌치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싶은 소망을 이루긴 한 것이다. 여기서 꼭 하루 밤 묶고 싶었던 이유는 이곳이 전체 구간 중 딱 절반에 해당되는 곳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서 쉬어가면서 나머지 구간을 위한 음식 Resupply를 받는 곳이기 때문에 여기에 오면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이유는 이곳에서는 온천욕을 할 수도 있다. 꽃들이 피어난 초원에 자리 잡은 노천 온천이 몇 곳 있어서 피곤에 지친 몸의 피로를 풀기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기에 꼭 들러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밤에 너무 늦게 도착해서 온천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지난밤 한 두 번 잠에서 깨긴 했었지만 비교적 잘 잤다. 아침에 옆 텐트 사람들이 일어나 움직이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6시가 넘었다. 며칠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자마자 세면도구와 수건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온천으로 가려면 강을 건너야 하는데 지난밤에 강가에다 텐트를 쳤기에 바로 강을 건너 온천이 있는 곳으로 물을 건넜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킹스 캐년을 흐르는 강물은 내 속마저 씻어 내려갈 듯 차갑고 깨끗하다. 이른 아침 풀숲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거기에 온천이 있음을 내게 알려 준다. 몇 군데 들러보니 사람이 들어갈 만한 온천이 세 곳쯤 있다. 그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물속에 몸을 담근다. 나의 독탕이 되어버린 온천에 나의 영혼마저 담그고 나니 몇 마리 사슴이 아침 식사를 하러 온다. 인기척에 경계하는 눈빛을 보이지만 이내 풀 뜯기에 여념이 없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흘러가고 아침 햇살을 받은 산봉우리들은 그렇게 파랄 수 없는 하늘과 조화를 이루어 마치 낙원이 따듯한 온천물 위로 내려앉는듯한 느낌이다. 이런 분위기를 맛보고 싶어 어제 그 멀 길을 달려오지 않았던가!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안락함, 모태에 있을 때의 평안함이 이런 것이었을까? 따듯한 온천수는 그렇게 나의 피로를 씻어주었다. 생각 같아서는 한 시간쯤이라도 있고 싶었지만 아직 식전이라 그런지, 2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허기가 지고 몸이 쳐진다. 하는 수 없이 물에서 나와 몸을 씻으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풀숲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몇 군데 온천을 들러보고는 다시 텐트로 돌아왔다. 옆 텐트에는 두 명의 여자들이 야영을 하고 있었는데 벌써 떠날 준비를 거의 마쳐간다. 지난밤에 내가 늦게 와서 당신들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느냐고 물으니 자기들은 내가 왔는 줄도 모르고 잤다며 아무 문제없었다고 한다. 자기들은 Northbound로 JMT 하이킹을 하는데 벌써 여러 차례 이곳을 다녀갔기 때문에 오늘은 Florence Lake으로 나갔다가 Mono Hot Spring을 거쳐 Vermillion Valley Resort를 통해 다시 JMT로 들어설 거라면서 서둘러 길을 나선다. 나도 아침을 준비하면서 빨래도 좀 하고 떠날 준비를 하였다. 따듯한 음식이 들어가니 몸도 따듯해지고 허기진 느낌도 사라지니 힘이 난다. 배낭을 메고 뮤어 트레일 랜치에 들르니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썰렁하다. 오늘도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한데 사람들이 모여들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출발할 때 배낭 무게를 재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얼마쯤 되나 재어보니 카메라 포함 아직도 37파운드나 나간다. 하지만 그래도 며칠 동안 음식을 먹어치웠으니 몇 파운드는 가벼워졌으리라. 8시 10분 전쯤 렌치를 떠나 Muir Pass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 가는 길에도 너무나 아름다운 곳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에 부푼 기대를 안고 가벼운 마음으로 고고...
약 1.7마일을 남쪽으로 난 길을 걸어가면 JMT에 합류하게 된다. 거기서 약 2마일 정도를 더 올라가면 Piute Pass 트레일을 만나게 되는데 그 앞에 있는 다리를 건너면 거기서부터는 Kings Canyon National Park 경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Kings Canyon을 통과하려고 해도 Forester Pass까지 약 3일 동안 꼬박 80마일을 걸어야 하는 넓은 지역이다. 미국에 처음 와서 세코이야와 킹스 캐년을 들렀을 때 그 웅장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킹스 캐년에 내려와 보니 포장된 도로를 따라 끝까지 가보았어도 너무 짧고 작다는 느낌을 가졌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뭐 이런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왜 세코이야 국립공원에 포함시키거나 하지 따로 킹스 캐년 국립공원이라고 분리시켰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었다. 그런데 그건 몰라도 너무 모른 무식의 극치였음을 작년 JMT 종주를 하면서 느끼게 되었다. 그 총면적이 제주도 전체보다 조금 더 넓은 461,901 에이커에 달하니 그 한 면만 보고 섣불리 생각한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나. 작년에 이곳을 지나는 동안 내게는 너무도 잊을 수 없는 경험들을 했기에 올해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기대에 John Muir Wilderness를 뒤로하고 다리를 건넜다.
그 무렵에 만난 "Shigi"라는 트레일 네임을 가진 PCT 하이커는 42일째 걷는 중이라며 먹을 것이 떨어져 가기 때문에 뮤어 트레일 렌치에서 음식 좀 얻어가야 한다고 한다. 그 정도 일정에 여기까지 온 것은 꽤 빠른 속도로 올라온 것임에 틀림없다. 하루에 20마일 이상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쳐난다. 앞으로 또 얼마를 더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근심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San Joaquin River를 오른쪽으로 끼고 오르는 트레일은 너무나 시원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오르는 내내 보여주기에 지루함 없이 오를 수 있는 길이다.
지난해 이곳을 지날 때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캔달이라는 백인 여성 솔로 하이커를 만났었다. 그녀를 앞서가며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내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Emeryville에서 왔다고 했다. 그녀를 앞서서 얼마쯤 가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쉬다 보니 그녀가 나를 앞서갔고 또다시 내가 앞지르고 하면서 가고 있는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불과 한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화창하고 푸른 하늘을 자랑하던 날씨가 갑작스레 검은 구름으로 덮이며 어두워지기 시작한 거였다. Goddard Canyon Trail과 갈라지는 곳을 지날 무렵에는 우박까지 동반한 Thunder Storms이 시작되어 도무지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 판초를 뒤집어쓰고 나무 밑으로 피했지만 쏟아지는 우박과 천둥을 동반한 비를 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가야 하나 아님 뒤로 돌아가야 하나를 망설이다가 조금 뒤에서 올라오고 있을 캔달이 생각났다. 그녀가 걱정스럽기도 하고 나도 어찌할 바를 정하지 못해 일단 올라오던 길을 내려가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를 맞으며 씩씩하게 올라오고 있는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벌써 레인 커버로 배낭을 잘 감싸고 방수 재킷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조금도 망설이거나 걱정하는 기색 없이 걸어오고 있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어떻게 할 꺼냐? 넌 괜찮냐? 고 물으니 자기는 백팩킹 나와서 이런 날씨 너무나 좋아한다며 비 오는 상황 봐가며 계속 갈 거라고 한다. 땅바닥에 떨어져 튕겨 오르는 우박들이 흩어지며 소복이 쌓여간다. 한 동안 세차게 내리치던 비가 좀 잦아들기를 기대하며 큰 나무 밑에 피하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캔달이 가진 용기가 참 대단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는 Peets Coffee에서 일하는데 JMT를 오기 위해서 보스에게 한 달 휴가를 달라고 했더니 그렇게 길게는 휴가를 줄 수 없다고, 그렇게 오래 일을 안 나오려면 일을 그만두라고 하더란다. 그러면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마지못해 그녀에게 무급 휴가를 허락하였다고 하였다. 자기가 정말 가고 싶은 것은 PCT인데 그걸 가기 위해 올해 JMT를 연습 삼아 온 것이라 했다. 그녀가 진 배낭을 보니 나보다 더 무거워 보인다. 사실 당시 내가 쏟아지는 스톰 때문에 주저한 것은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 뮤어 트레일 랜치까지 동행했던 장로님과 헤어질 때 함께 쓰던 텐트도 보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계속 비가 오면 비를 피해 잠을 잘 수가 없기 때문에 마음 한 구석에서는 걱정이 떠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동행이 생겼으니 그나마 조금은 안심이 된다. 비록 험한 날씨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갈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비가 조금 줄어 다시 발걸음을 시작해 오르다 보니 앞서가던 몇 명의 등산객들을 더 만날 수 있었다. 그들도 비를 피해 가며 동행들을 의지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겨 가던 길을 올라갔다.
고개 길을 거의 다 올라오니 Evolution Creek이 눈앞에 나타난다. 여기서는 다리가 없어 깊이가 낮은 곳을 찾아 강을 건너야 한다. 등산화를 벗어 목에 달고 강을 건너 조금 더 올라가니 McClure Meadow가 나타나고 그곳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준비하는 한 그룹의 등산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비는 부슬부슬 오지만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을 지나쳐 초원 지대를 가로지르는 Evolution Creek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고 나오다 보니 그 일행 중 한 여성이 오늘 어디까지 갈 꺼냐며 다가와 말을 걸다. 오늘 더 멀리 갈 예정이었는데 비가 이렇게 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은 텐트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잠자리를 구하는 것도 걱정이라고 했더니 그러냐며 여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왼쪽으로 Ranger Station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오니 거기 가서 도움을 구해보라며 친절히 알려준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트레일로 들어섰다. 정말 100미터도 가지 않아 Ranger Station을 지시하는 안내판을 발견했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다리오라는 레인저 할아버지가 삽을 들고 일을 하다가 나를 맞는다. 사정 이야기를 하며 도움을 구할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나 같은 등산객들을 위하여 국립공원 관리소에서 준비해 놓은 텐트가 있으니 저 아래 캠핑장에 가서 기다리면 자기가 준비해 가지고 가서 나를 위해서 텐트를 쳐주겠다고 한다. 얼마 전에도 미주리에서 온 한 등산객이 무슨 캘리포니아에 한 여름에 비가 오냐며 찾아와 도움을 구해서 역시 텐트를 쳐 주었었노라고 하면서 걱정하지 말라 신다. 한시름 놓았다.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알려준 곳으로 내려가니 먼저 온 사람들이 텐트를 쳐놓고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조금 기다리니 다리오 할아버지가 작은 부피의 텐트를 들고 오시더니 좋은 자리를 잡아 직접 쳐주신다. 그러면서 나의 인적사항을 받아 적으시고는 오늘 밤 네가 여기서 자고 나면 너도 이 텐트를 좋아하게 될 거라면서 내일 아침에는 네가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 텐트를 그냥 놔두고 마음대로 떠나도 된다고 하신다. 나중에 해가 좀 나서 텐트가 마르고 나면 자기가 와서 걷어갈 거라면서... Wow...
미국에 와서 살면서 이 나라가 참 고맙다고 생각할 때가 몇 번 있었지만 이번처럼 이렇게 나에게 직접 와 닿을 만큼 그랬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직도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데 배낭에서 짐을 꺼내 텐트 안에 넣고 곰 통에서 먹을 것을 꺼내 저녁 준비를 하였다. 그날은 기분도 너무 좋아 가져온 작은 김치 캔을 꺼내고 마지막 남은 쌀로 밥을 해 먹기로 했다. 밥이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강물이 흘러가는 초원 지대에는 저녁 식사를 나온 사슴 가족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그날 저녁 비록 찬은 김치 하나밖에 없었지만 따듯한 밥을 놓고 드린 나의 기도에는 그 깊은 산골에서 비를 맞으며 잠들게 하지 않도록 내가 알지 못하는 깊은 산중에 나를 위해 길을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감동이 얼마나 간절히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던지...
식사 후에도 그 기쁨과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어서 그림처럼 펼쳐진 강가로 내려가 시원한 강물을 발을 담그고 McClure Meadow의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었다.
그런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되새기며 이 계곡을 지나는 동안 행복한 기분을 억누를 수 없었다. 이번에는 좀 더 상류로 가서 물을 건너기로 하고 강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강도 좁아지고 유속도 빠르지 않으며 물고 깊지 않은 곳에서 강을 건너고는 바로 점심을 해 먹기로 하였다. 따듯한 햇빛을 받으며 어젯밤에 젖어 있던 텐트도 꺼내서 말리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나니 다음엔 정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이곳에 와서 쉬었다 가면 좋겠다는 소망이 마음속에서부터 밀려온다.
여기서부터 오늘 저녁에 자고 가기로 한 Muir Pass까지는 11 마일 정도를 올라가야 한다. 아마도 여섯 시간 정도는 쉬지 않고 가야 할 길이다.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2시간 정도는 늦게 출발한 데다 점심도 1시간 이상을 쓰다 보니 그곳에 해가 넘어가기 전에 도착하기는 힘들 것 같다.
5마일 정도를 올라가면 North Evolution Lake과 South Evolution Lake이 나오는데 10870피트나 되는 높은 곳이 이렇게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는 것이 신기할 만큼 병풍처럼 둘러싼 거대한 암봉들 아래 자리 잡고 올라오는 사람들을 환영하고 있다. 벌써 텐트를 치고 야영을 준비해 놓고는 수영복을 입고 호수로 내려가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호수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는 트레일을 따라 걸으며 그 아름다움을 마음에 오랫동안 담아본다. South Evolution Lake을 지나면 트레일은 방향을 틀어 오른쪽으로 향하여 호수로 흘러드는 강을 건너야 한다. 아마도 JMT에서 가장 긴 징검다리가 놓여 있는 곳이다. 제법 덩치가 큰 돌들로 튼튼하게 놓여 있어서 불안감 없이 건널 수 있도록 잘 만들어 놓았다. 이 다리를 건널 때마다 그 정겨움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다보곤 했다.
오늘은 피로가 더 빨리 몰려오는 것 같다. 오늘 등산 거리는 약 20마일 정도밖에 잡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지치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힘든 트레일을 혼자 걸을 때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것은 나만의 이야기일까? 지쳐서 주저앉고 싶을 때, 내가 나에게 이야기한다. “광수야 힘내!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돼! 광수야 너 정말 대단하다!” 때로는 주문처럼 “힘내라 힘!, 힘내라 힘!”하며 내가 나를 응원하고 내가 나를 격려한다. 그러고 보니 50이 넘는 인생을 살아오며 내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나를 응원했던 적이 드물었던 나를 발견한다. 아무도 나를 응원해 주지 않을 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외로운 투쟁을 해야 할 때, 아니 온 세상이 나에게 화살을 겨누고 나를 조롱할 때, 내가 나를 격려하고 내가 나에게 용기를 주고 내가 나를 막아서서 스스로 방패가 되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숨고, 내가 피할 수 있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John Muir의 큰 딸 이름을 빌려다 명명했다는 Wanda Lake이 나오면 거의 다 온 것인데 아직도 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오르다 보니 왼쪽으로 호수가 보인다. 어, 이상하다. 완다 레익은 오른쪽에 있었는데... 힘이 들 땐 “얼마나 남았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 거야?” 하며 자주 지도책을 꺼내게 된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역시 완다 레익이 아니다. 비록 몸은 지쳐 힘들지만 수 천 년을 그 자리를 지키며 보석 같은 비경을 간직해왔을 Sapphire Lake이다. 힘들고 지쳤다는 이유로 살짝 그의 존재를 망각했던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해는 기울어 호수의 절반쯤은 벌써 어두움이 내려앉고 있다. 아직도 2마일 정도는 더 올라가야 완다 레익이다. 그리 가파르고 힘든 길이 아닌데도 다리는 천근이다. 하지만 태산이 아무리 높다 해도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는 법, 때로는 노래를 부르며 때로는 스스로에게 말을 걸며 때로는 길가에 피어난 싱그러운 꽃들을 사진에 담으며 오르다 보니 완다 호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는 아직도 이 호수의 물빛을 잊지 못한다. 바람에 흔들리며 작은 파도를 일으키던 호수의 물빛은 그것이 남태평양 어느 섬나라의 바닷가라고 해도 믿을 만큼 그렇게 푸르고 투명하다. 오늘 호수는 이미 그늘에 잠겼고 저 멀리 뮤어 패스 쪽 산에는 아직 햇빛이 남아 있다.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하니 힘이 난다. 가능하다면 뮤어 패스에서 넘어가는 일몰을 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건 아무래도 무리이다.
부지런히 발을 움직여 마지막 고개 길에 들어선다. 뮤어 패스에서 밤을 보내려면 충분한 물이 있어야겠기에 완다 레익으로 흘러들어 가는 시냇물에서 마지막으로 정수하여 두 병 가득 물을 채웠다. 소리 없이 어두움이 내려와 온 계곡을 내려 덮을 무렵 뮤어 패스에서 한 명의 PCT 하이커가 쓸쓸히 내려오고 있다. Sprinkler라는 트레일 이름을 가진 독일에서 온 친구이다. PCT 하이킹을 위해서 6개월을 비우고 이 먼 나라로 날아온 것이다. 나는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길래 난 한국 사람이지만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살고 있다고 하니 자기가 JMT 하이킹을 하고 있는 한국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며 아마도 내일쯤엔 너도 그 한국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꺼란다. 나는 그의 대단한 열정에 박수를 보내주며 안전한 여행이길 기원해 주었다.
이제 한 10여분이면 뮤어 패스에 도착할 것이다. 네 번째 위시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비록 일몰의 태양을 이곳에서 볼 수는 없었지만 곱게 물들어가는 석양의 아름다움마저 놓쳐버리지는 않았다. 뮤어 패스 정상에는 매우 상징적인 Muir Hut이라는 석조 건물이 세워져 있다. John Muir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가 생전에 창설했다는 Sierra Club의 멤버들이 1930년에 이 곳에 세운 건물로 이곳을 지나는 등산객들이 스톰이 올 때 피할 수 있도록 만든 쉘터이다. 오늘은 이곳 신세를 져야겠다. 좀 전에 만난 독일 친구의 말처럼 내가 도착하니이 역사적인 건물 안 아무도 없다. 이미 해는 지고 어두움이 짙게 깔려오는데 혼자 이 건물에서 밤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어느 일류 호텔의 Suite Room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다.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마지막 석양빛을 감상하며 내가 존경하는 John Muir의 숨결이 남아 있을 것 같은 Muir Pass 정상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려니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 오더라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일곱째 날(7월 9일 2014년)
(From Muir Pass to South Fork -25.7 마일)
뮤어 헛에서 홀로 잠든 지난밤,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에 대한 설렘 때문이었을까? 잠이 깊이 들지 않았다. 선잠을 자며 뒤척이는데 밖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이 캄캄한 밤중에 도착한 것임에 틀림없다. 아니나 다를까? 웅성 웅성 하는 소리가 들리며 렌턴 빛으로 안을 들여다보더니 문을 열고 네 명의 남녀가 들이닥친다. 잠결에 깨어서 일어나 앉으니 잠을 깨워서 미안하다며 오늘 밤 여기서 함께 자야겠노라 한다. 시계를 보니 10시 20분... 네 명 모두 PCT 하이커들인데 어제 아침 Mather Pass 넘어에서 출발해서 오다 보니 늦었다고 했다. 모두들 분주히 잠자리를 준비하느라 부산하다. 그중에 한 백인 여성은 일본에서 2년째 살고 있는데 PCT를 위해서 왔다고 한다. 모두들 각기 다른 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렇게 산에서 만나 동행하며 행복을 공유하는 것을 보니 참 좋아 보인다.
10월 말쯤에 캐나다에 도착하려고 한다는 그들은 아직도 거의 넉 달 가까이 더 걸어야 한다. 하지만 한결같이 PCT가 너무 좋다며 모두들 자랑한다. “도대체 PCT를 하면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니 시애틀에서 왔다는 젊은 아가씨가 조금도 지체 없이 “Community.”라고 대답한다. PCT 종주를 함께 하면서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란다. 나도 백팩킹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다고 동조하니 정말 그렇다며 웃는다. 그동안 여기까지 오면서 정말 많은 PCT 하이커들을 만났다며 혹시 올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PCT Thru Hike을 신청했는지 아느냐고 물으니 중가주에 있는 Visalia에서 왔다는 젊은 친구가 자기가 듣기로는 올해 1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청했고, 구간별 PCT 장거리 하이킹을 신청한 사람들 숫자도 거의 400명이 된다고 한다. 지난해까지 듣기로는 일 년에 2-300명 정도가 도전을 하고 그중에 절반 정도가 성공한다고 들었는데 올해는 1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청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나도 2년 후에 도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니 꼭 하라며 격려한다. 비록 밤늦게 찾아온 손님들로 인해 잠은 설치게 됐지만 그들에게서 어떤 에너지를 받은 것 같아 기분 좋은 밤이었다.
한 동안 들락날락하며 잘 준비를 하는 그들을 놔두고 잠을 청해 본다. 추울까 봐 옷을 입고 잤더니 갑갑하다. 결국 입고 있던 바지도 벗고 침낭 지퍼도 내리고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이번 산행에서 별 사진을 하나 찍고 싶었는데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Muir Hut을 배경에다 넣고 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별들을 찍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초저녁에 만월을 향해 한참 차오르는 달빛이 너무 환해 별들은 기를 피지 못하였기 때문에 새벽녘 달이 지고 나면 찍어보겠노라 생각하고 잠을 자다가도 몇 차례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어젯밤에는 달빛을 받아 훤하게 보이던 밖이 희미하게 보이는 걸로 보아 달은 진 것 같은데 너무 어두워 보인다. 아마도 구름이 짙게 껴서 별들이 다 숨었나 보다 하고는 자는 사람들 방해를 할 수도 없고 해서 포기하고 잤다.
이제 날이 밝아오나 보다. 누군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하나 둘 일어나더니 밖으로 우르르 몰려 나간다. 나도 침낭에서 좀 더 버티다가 일어났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창문을 내다보았다. 새벽녘 밖이 희미하게 보였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유리창은 밤새 그 안에서 잠자던 사람들이 품어낸 숨으로 인해 뿌연 김이 서려 있었던 것이다.
옷을 입고 밖을 나가보니 동이 터오는 Muir Pass의 아침은 청명하고 고요했다. 잔별들은 아직도 희미하게 그 빛을 발하고 있었고 동쪽 하늘은 이미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먼저 나와서 새로운 아침 맞을 준비를 하며 이야기하는 친구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다 보니 한 명이 더 있다. 어젯밤 자정 즈음에 올라왔다며 인사한다. 다들 밤늦게 올라와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피곤할 텐데도 뮤어 패스 정상에서의 일출을 놓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아무런 인공적 공해가 없는 깊은 산중에서의 일출을 보는 특권은 걷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호사라는 생각이 든다.
일출의 장관을 잠깐 맛보고는 서둘러 들어와 떠날 준비를 하였다. 물을 부어 비빔밥을 해 먹고는 짐을 챙겨 나오니 6시... 이렇게 해서 모두 다섯 명의 PCT 하이커들과의 짧은 동거는 밝아오는 아침과 함께 아쉬운 이별을 맞았다.
내려오는 길에 처음으로 나를 반긴 것은 John Muir의 둘째 딸 이름을 붙여지었다는 Helen Lake이었다. 아침 햇살을 받아 신비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는 봉우리와 푸르디푸른 하늘을 모두 자기의 넓은 품에 안은 헬렌 호수에 비친 반영은 바삐 내려가던 나의 가는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Le Conte Canyon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계곡이 가파르게 펼쳐진다. Medium Lake 즘을 지날 때 길가에서 야영을 하던 백인 할아버지가 지나가는 나를 부르신다. 무슨 일이신가 했더니 자기가 본래는 Piute Pass로 넘어와 Kearsarge Pass로 나가려고 계획을 세우고 왔으나 마음이 바뀌어 Bishop Pass로 나가려고 하신다며 그러다 보니 이틀 치 음식이 남게 되었으니 필요한 음식이 있으면 가져가서 자기 짐 좀 덜어달라고 하신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음식도 충분할 것 같지만 할아버지가 준비해 오신 트레일 믹스 한 봉지와 에너지 젤 몇 개를 집어 드니 자기 짐을 가볍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하신다. 산타로사 근처의 시골 마을에서 솔로 산행으로 오신 할아버지는 참 건강해 보이셨다.
한두 시간쯤 내려왔을까? 길가에서 출발 준비를 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다섯 명의 동양인 등산객들을 만났다. 가까이 다가가 말소리를 들으니 귀에 익은 언어이다. 어제 독일 친구가 얘기해 주었던 한국분들 인가보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리니 LA에서 오셨다는 이 분들은 LA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Backpacker's Club 회원들로 정규적으로 한 달에 두세 번 LA 근처의 좋은 산들로 백팩킹을 하시고 활동하시는데 이번에 Mammoth Lake에서 시작해서 Kearsarge Pass로 빠지시는 산행을 하고 계시단다. 홀로 JMT 종주를 하는 한국 사람은 처음이라며 반가워하신다. 이 분들이 캠핑하신 곳에는 커다란 물고기 모양으로 절단된 바위가 있는데 거기에다가 사람들이 이빨 모양을 내기 위해 뾰쪽한 돌들을 세워놓고 눈 모양도 내기 위해 돌을 얹어 재미있게 만들어 놓았다. 사진을 부탁해서 한 장을 찍고는 서둘러 작별을 하고 자리를 떠야 했다.
내려가는 길에 앞서가는 두 젊은 청년들은 배낭 한쪽에 기타를 메고 간다. 이 깊은 산중에 자기가 좋아하는 악기를 들고 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삶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젊은이로 내겐 비친다.
또 다른 여성 솔로 PCT 하이커가 능숙한 포스로 배낭을 메고는 올라오고 있다. 5월 10일에 멕시코 국경에서 출발했다고 하니 상당히 빠른 걸음으로 올라온 것이다. 하루에 평균 몇 마일씩 걸었느냐고 물으니 나보다 두 살 많은 그녀는 25-30마일씩 걸었다고 한다. 등산 경험이 굉장히 많은 여성임이 틀림없다. 사실은 처음에 9일을 목표로 시작했다가 전반부를 마칠 때까지 온 속도 정도라면 8일 만에도 들어갈 수 있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사실 전반부보다 후반부에 있는 산들은 더 높고 더 힘든 곳이 많기 때문에 9일 만에 마치는 걸로 생각하고 있던 차에 그녀의 이야기는 ‘그 먼 길도 여자의 몸으로 하루에 그렇게 많이 올라오고 있는데 나도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야?’ 하며 내 마음에 도전의 불을 지피고 말았다.
내려오는 길에는 지난해 비를 피해 하루 밤 자고 갔던 경사진 바위도 지나간다. 비가 들이치지 않을 만큼 삐쭉 튀어나온 바위 안쪽으로 한 사람 정도 누울 만한 땅아 골라져 있어서 나에겐 피를 피해 잠을 잘 수 있는 장소로서 최고의 자리였었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밥도 해 먹고 빨래도 하고 잘 준비를 했을 무렵 잘 참아왔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었다. 경사진 안쪽에 다리를 깔고 누웠기에 비는 다행히 들이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다가 아래로 떨어지던 빗방울이 점점 내가 누워있는 곳으로 가까이 흘러내려온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나에게 튀지 않도록 돌을 세워 막고 점점 안으로 밀려들어가고 하며 빗방울과 싸움을 하다 보니 어느새 비가 잦아들었다. 참 다행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빨아서 바위 위에 널어놓았던 양말 한쪽이 보이지 않았다. 양모로 만들어진 양말은 산짐승들의 월동준비에 최고의 옵션이었으리라. 결국 나머지 기간 동안 양말 세 개를 가지고 한쪽씩 빨아가며 갈아 신어야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거의 4000피트 정도를 내려오면 오늘 넘어야 하는 Mather Pass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정상까지는 또 4000피트를 올라야 하니 쉽지 않은 하루이다. JMT 중에 가장 어려웠던 구간이 Mather Pass를 넘는 곳이다 싶을 만큼 나에겐 힘든 곳이었다. 아침부터 가파른 고개 길을 내려오다 보니 왼쪽 다리에 무리가 되었나 보다. 작년에 위트니에서 내려오다가 시작되었던 Shin Sprints가 이번에도 시작되는 것인가 보다.
Deer Meadow를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가팔라지기 시작하는 고개 길은 쉴 새 없이 스위치백을 돌게 만들지만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밸리의 모습은 모든 피로를 잊게 만들 만큼 아름답다. 한참 가파른 바위 길을 오르는데 맞은편에서 한 청년이 내려오고 있다. 샌디에이고에서 왔다는 참 착하게 생긴 이 청년도 PCT 하이킹을 하고 있었다. Palisade Lake까지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으니 미안한 표정으로 2마일은 더 올라가야 한다고 말해 준다.
처음에 나타나는 Lower Palisade Lake까지 오르면 그다음에는 비교적 완만한 길을 지나게 된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이곳에서 트레일을 보수하는 젊은 친구들이 각종 도구를 들고 땅을 파고 돌을 옮기고 하며 일을 하고 있다. 약 두 달 동안 10000피트가 넘는 높은 이곳에 와서 배낭에 캠핑 도구들을 지고 다니며 일을 한다고 한다. 그중에 거의 절반은 젊은 여성들이다. 작년에 만났던 친구의 말을 빌리면 여기서 일하는 대부분이 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가려고 하는 학생들이란다. 자기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학자금 대출 융자한 돈을 갚기 위해 여기 와서 일하는 거란다. 한 달 반 정도 일하면 4000불 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그 깊은 산중에 들어와 야생의 삶을 살면서 트레일을 보수하는 일을 해서 자신들의 미래를 위한 학비를 마련하는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힘들어하며 그들이 일하는 곳을 지나치니 일하던 한 젊은 친구가 말을 건넨다. 힘든 고개를 올라왔는데 이제 다음 Mather Pass로 오르는 고개 길에는 쉬웅--엘리베이터가 있으니 걱정 말란다. ㅎㅎㅎ
마지막 힘을 쏟아 올라가는 트레일 옆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다. 정수된 물도 거의 떨어져 가고 해서 눈을 파헤쳐 깊은 곳에 있는 깨끗한 눈을 한 줌 집어 입에 넣었다. 입안이 얼얼해지며 내 몸을 식혀주니 갈증이 눈 녹듯 사라진다(ㅎㅎ).
힘들어도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다 보니 그 높게 보였던 Mather Pass도 이제는 내 발아래에 놓여 있다.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아득하기만 하다. 그 끝은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내가 넘어서 가야 할 길을 내려다보니 역시 아득하다. 하지만 내일은 여기서 마주 보이는 저 아득히 먼 산을 넘어 지금은 보이지도 않는 곳을 가고 있으리라.
고개를 막 넘어가려는데 맞은편에서 한 쌍의 커플이 올라오고 있다. 한눈에 보아도 경력이 많아 보인다. 너희들도 캐나다를 가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JMT를 하고 있단다. 그러면서 여자가 남자를 가리키며 2년 전에 PCT 마친 사람이라고 한다. 2년 전에는 눈이 많아서 PCT Thru 하이킹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서 자기도 겨우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 아래 작게 내려다보이는 두 호수 곁에 좋은 캠핑 장소가 있으니 거기서 자고 가면 좋을 것이라고 안내도 해준다. 그들과 헤어져서 한참을 스위치백으로 만들어진 가파른 길을 내려가니 호숫가에서 캠핑을 준비하는 커플들도 눈에 들어오고 서산으로 넘어가는 햇빛을 받아 빛나는 봉우리들도 나의 하산 길을 축하라도 하려는 듯이 아름답게 물들고 있다. 오늘도 내가 갈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이 가야 한다. 하루에 평균 26마일 이상을 걸어야 하는데 어제는 20마일 밖에 걷지 못했기 때문에 남은 며칠 동안 나눠서라도 더 걸어야 8일 만에 위트니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해는 벌써 넘어갔지만 남아있는 노을은 내가 가는 방향에서 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내일 넘게 될 Pinchot Pass 쪽으로는 희미한 쌍무지개까지 피어올라 지친 나그네의 발걸음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이 있기에 그 힘든 고개 길을 넘고 물을 건너며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더냐?
날은 점점 어두워 오기에 이제부터는 슬슬 오늘 잠 잘 곳을 찾아야 했다. 한참을 더 내려와서 South Fork Kings River로 합쳐지는 개울을 건너 멀지 않은 곳에 텐트를 칠만한 장소를 발견했고 오늘 밤을 쉬어 가기로 했다. 물도 멀지 않으니 이만하면 최상의 선택이라 할만하다. 짐을 내리고 텐트를 치려 하는데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짐을 다 정리하고 텐트에 들어가 누웠다. 오늘도 거의 28마일을 걸은 긴 하루였지만 나름 너무나 많은 씨에라 산맥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든 하루였기에 뿌듯한 보람이 있다. 피곤한 몸이 잠에 빠져들 무렵 빗줄기는 굵어지고 있다. 텐트를 때리는 빗방울 소리를 자장가 삼아 깊은 꿈나라 여행을 떠나야겠다.
여덟째 날(7월 10일 2014년)
(From South Fork to Upper Vidette Meadow -28.6 마일)
황홀했던 일몰의 여운이 남았기 때문이었을까? 불편한 잠자리이지만 한 동안 내리던 빗소리를 들으면서도 너무도 깊은 숙면을 취하고 다른 날 보다 한 30분은 늦게 일어난 것 같다. 비는 그치고 날씨는 맑아졌지만 텐트는 지난밤 내린 빗방울들을 머금은 채 흠뻑 젖어 있다. 맺혀있는 빗방울들을 털어내었어도 축축함을 다 없앨 수는 없다. 하는 수 없이 말아서 넣을 수밖에... 아침밥을 해 먹고 물을 떠다가 정수를 하고 짐을 다 정리하고 생리적인 필요까지 다 해결하고 나니 6시 30분이 지나가고 있다. 싱그러운 아침 공기를 들이키며 JMT 종주 8일째 하루를 시작한다. 어젯밤에 내리막길을 거의 다 내려와서 캠핑을 했기 때문에 약 1마일도 못 가서 Pinchot Pass로 오르는 South Fork Kings River를 만나게 되었다. 이제부터 또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하지만 아침 시간이고 비교적 고도차가 많지 않은 2000피트 정도만 오르면 되기 때문에 그리 큰 걱정은 되지 않는다. 다만 어제부터 시작된 정강이 통증이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지지는 않을 텐데 하는 염려는 된다. 애드빌 몇 알을 챙겨 먹기는 했지만 찌르는 듯한 통증이 쉽게 없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너무나 청명한 하늘과 그야말로 오염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맑고 깨끗한 자연은 그곳을 힘들게 찾은 사람들에게 허락된 축복이 아닐까?
지난해 초부터 주말이면 산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 무렵 내게는 피곤함 때문이었는지 조금만 노래를 불러도 목이 자주 쉬고 가래가 생기는 등 기관지가 상당히 약해 있었다. 몇 개월 동안 산을 찾고 자연을 벗 삼아 지냈어도 그게 없어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John Muir Trail Thru Hiking을 하게 되었는데 13일 동안 220여 마일을 이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은 산속에서 지내고 난 다음에 내게서 그런 증상이 말끔히 없어진 걸 발견하였다. 자주 생기던 가래가 거짓말 같이 싹 사라졌다. 노래하다 2절쯤 부를 때면 목이 잠기고 금방 쉬어버리던 목소리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사실 백팩킹을 떠나면 그리 건강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신선하고 좋은 음식을 먹을 수도 없다. 과일이나 채소를 먹는다는 것은 출발지에서나 혹은 간혹 들르게 되는 두세 군데 정도의 Resupply 할 수 있는 곳에서만 한 두 끼 정도 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환경 가운데서 매일 걷고 땀 흘리고 좋은 공기 마시고 깨끗한 물 마시면서 내 몸에서 좋지 않은 것들이 빠져나가 버렸는지 몸무게가 15파운드 가까이 빠지고 힘들었는데도 몸은 가벼워지고 훨씬 건강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니 몸도 따라서 춤을 추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니 자연스레 내 몸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겨진다.
얼마 전 한국에서 제작된 몇 개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산으로 가서 암과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현대 의학의 한계를 인식한 대부분의 환자들이 산으로 들어가 거기서 생활하며 날마다 걷고 거기서 난 것들을 먹고살면서 현대 의학이 선언한 사망선고를 딛고 생명을 연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결같이 좋아진 사람들의 희망적인 이야기를 보면서 나도 그 사실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숲이 사람을 치료한다. 굳이 어떤 나무들에서 나온다는 피톤치드의 효과가 어떻느니 하는 것을 과학적인 통계를 가지고 설명하지 않는다 해도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연이 주는 보답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값지다 할 것이다.
기분 좋은 산행을 시작하여 오르다 보니 앞서가는 백인 할아버지가 보인다. Frank라는 이 할아버지는 아이다호 주에서 오셨단다. 자기가 사는 곳에서도 백팩킹을 자주 가시는데 씨에라 네바다 산맥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그래서 지난해에 친구와 함께 시작해서 두 번에 나누어서 JMT를 하고 계시다며 활짝 웃으신다. 67세의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맘이 맞는 친구와 함께 Wilderness 산행을 하실 수 있는 것은 노년에 가질 수 있는 그 어떤 축복보다 가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테네시주 채터누가에서 솔로 산행으로 오셨다는 60세의 백인 할아버지, 조금 더 올라가서 만난 Frank 할아버지의 친구 Dick Ross란 할아버지 모두 이 산행을 즐기며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뻐짐을 부인할 수 없다.
Lake Marjorie를 지나고 이름 없는 작은 호수 몇 개를 지나 가파른 바위 길을 조금 더 오르니 그리 어렵지 않게 9시 30분쯤 Pinchot Pass에 오를 수 있었다. 정상에는 먼저 올라 휴식을 취하고 있는 대 여섯 명의 등산객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모두가 서로 다른 어딘가에서 출발해서 또 다른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지만 등산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처음 만나는 사이들인데도 마치 오래된 친구마냥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문제가 있으면 서로 도와주려고 하는 모습들이다.
지난해에 이곳을 올랐을 때에는 해가 넘어가던 늦은 오후였다. 그날도 4일째 계속되던 스톰이 오후 늦게까지 계속되어 어쩔 수 없이 두 개의 Pass를 넘어야 했다. Mather Pass를 힘겹게 넘어왔지만 비가 그치지 않아 당시 텐트가 없던 나에겐 비가 그칠 때까지 걷는 수밖에 별 다른 방법이 없어서 Pinchot Pass도 오를 수밖에 없었다. 지친 걸음으로 너무너무 힘들게 정상에 올랐을 때 고개 너머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며 “I did it!"이라고 큰 소리로 외쳤던 기억이 새롭다. 사람이 무언가를 힘들게 얻었을 때 얻는 기쁨과 감격이 그것을 쉽게 손에 넣었을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클 것이다.
오늘은 아침에 올라서인지 쉽게 느껴졌고 또 정상에서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지만 지난해 비를 맞으며 홀로 여기를 올랐을 때의 감격만큼은 못하다. 하지만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여러 개의 작은 호수들이 줄지어 모여 있는 아름다운 광경은 또 다른 기쁨으로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
오늘도 두 개의 패스를 넘어야 한다. 아침에 넘은 패스는 그런대로 쉽지만 오후에 넘게 될 Glen Pass는 3500피트 정도를 내려갔다가 다시 3500 정도를 올라야 하기에 쉽지 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벌써 세 번째 넘는 곳이고 조금은 익숙한 곳이기에 큰 염려는 하지 않는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처럼 꾸준히 걷기만 하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언젠가는 그 고개를 넘을 것이고 오늘 가고자 한 곳까지 가게 될 것이다.
Pinchot Pass를 넘어서 내려가는 길은 조금 멀기는 해도 그리 가파르지 않은 길로 Woods Creek을 흐르는 시원한 물줄기를 따라 7마일 정도를 내려가면 킹스 캐년의 Cedar Grove로 갈라지는 트레일을 만나게 된다. 거기서부터 100미터쯤 가면 Wood Creek을 건너는 다리가 나오는데 케이블에 의해 지지되는 현수교 형식의 출렁다리이다. 바닥에는 좁은 나무 판들을 깔아 놓았지만 몇 군데 빠진 곳도 있고 다리 아래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어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좀 무서워할 수도 있는 다리이다. 하지만 다리에 올라서서 흔들거리는 다리를 양쪽 와이어를 잡고 약간의 짜릿함 정도 느끼면서 건널 수 있다. 다리 건너편에는 철제 베어 박스가 준비되어 있는 캠핑장이 왼쪽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쉬었다 가기에 참 좋은 곳이다. 몇 사람들이 지나는 나에게 인사한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Glen Pass까지 약 8.5마일 정도 되기 때문에 다섯 시간은 족히 걸리게 될 것이다. 익숙한 길이기에 그리 힘들지 않게 오르지만 지금쯤이면 어디가 나오겠지 짐작하며 발걸음을 옮겨보아도 생각보다 짐작한 곳에 도착하는 것이 늦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내 몸은 지금 나의 한계를 넘어가고 있는 것인 게 분명하다. 오늘은 진통제를 두 번이나 먹었는데도 점점 더 심해져가는 것 같다.
몇 번을 쉬어가며 오르고 또 올랐을까 드디어 Baxter Pass Trail 표지판이 나오고 Dollar Lake이 눈앞에 들어온다. 여기서부터는 그림 같은 호수들이 Glen Pass까지 오르는 동안 내 눈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트레일을 따라 호수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서면 호수에 비친 나무들과 뒤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에도 담고 카메라로도 담고는 다시 한번 물을 정수해서 Rae Lake까지 비교적 완만한 고개 길을 향하여 올라간다. 화살촉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이름 붙여진 Arrowhead Lake은 트레일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여길 지날 때마다 멀찍이서 바라만 보고 지나게 된다.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지만 갈 길이 머니 일부러 가까이 찾아가게 되지 않아서이다. 어쩌면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면 어쩌면 그가 감춰진 비경의 선물 보따리를 내놓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관계를 맺은 것도 아닌데 안 맺은 것도 아닌 그런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하는 사이가 제법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는 사이이긴 하지만 정말 그 사람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은 없는 그런 관계 말이다. 과거 어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얻은 실망, 혹은 상처로 인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스스로 마음의 벽을 쌓아 놓고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람들과의 관계는 쉽게 가까워지지 못한다. 그렇게 어정쩡하게 다가가지 못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살다가 어쩌면 우리는 발견할 수 있는 보석을 놓치게 되는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 쌓아놓은 장벽 때문에 다가설 수 없었던 그 누군가가 정말 나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엉뚱한 데서 도움을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엔 레이 레익 근처에서 캠핑할 기회를 만들어서 그 호수도 자세히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Arrowhead Lake을 지나서 조금 더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Fin Dome을 가슴에 품고 있는 Rae Lake이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세 개의 호수가 연결된 듯 끊어진 듯 이어진 호수는 10500나 되는 높은 곳에서 그 크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한 채 지나는 방문객들을 따듯하게 맞이하고 있었다.
중간에 있는 Middle Rae Lake을 지날 때 즈음엔 왼쪽으로 Ranger Station이 있는데 거기서 누군가가 나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는 앞으로 걸어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호수 가까이로 와서는 두 바퀴를 선회하고는 착륙을 한다. 아마도 누군가가 비상 상황을 맞아서 Ranger Station에 도움을 요청해서 헬기가 온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뒤로 돌아가서 확인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세 번째 호수를 향해 내리막을 내려갔다. 세 번째 호수는 왼쪽으로 나타나는데 그 뒤로는 Painted Lady라 불리는 아름다운 봉우리가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고 호수에는 작은 두 개의 섬까지 있어서 참 평화로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다. 그 맑은 호수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송어를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시간은 어느덧 6시를 넘기고 있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고 몇 장 찍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다. 얼굴을 보니 왠지 익숙한 모습이다. 한국 사람이시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그럼 혹시 “기수 아빠”님이 아니시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며 놀란다. 내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의 얼굴을 알아차리고 그의 닉네임까지 알게 된 데에는 얼마 전에 가입하여 몇 번 같이 산행을 했었던 샌 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있는 한인 산악회 때문이다. 산악회에서 같이 가는 산행에서는 못 뵈었지만 산악회의 웹사이트에서 그의 얼굴을 몇 번 보았고 그도 나보다 하루나 이틀 뒤에 JMT 하이킹을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나와 같은 방향에서 오는 줄로만 생각하고 그를 이번 여행에서 만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와 반대 방향에서 시작하여 요세미티를 향하여 북으로 올라가는 길을 선택하여 여기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조금 있으니 그의 뒤를 따라서 “산바람”님까지 오신다. 그래서 우리 세 사람은 비록 초면이기는 했지만 서로 악수를 나누고 인사를 하며 사진을 함께 찍고 서로의 안부와 안전한 여행을 빌어주며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서로의 갈 길을 가야 했다. 그분들은 약 20일의 일정으로 시작해서 지금 5일째에 글랜 패스를 넘어오셨다고 하니 아직은 초반부이고 난 8일째에 내일이면 위트니에 올라갈 계획이니 거의 종반부인 셈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렇게 깊은 산속에서 서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도 만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도 있구나 생각하니 참 재미있는 세상이다.
Sixty Lakes Trail을 지나니 백인 할머니 두 분이 나란히 텐트를 치시고는 저녁 식사를 하시고 계신다. 모기떼들이 이렇게 높은 데에서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지만 행복한 표정의 할머니들은 날 보고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으신다. 글랜 패스를 넘어갈 수 있는 데 까지 가야 한다고 하니 곧 해가 넘어갈 텐데 어찌 저렇게 가려하는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신다. 지금이 6시 반이니 7시 반 정도면 글랜 패스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하니 날 보고 스트롱하다고 하신다. 오르는 길에는 몇 개의 작은 개울을 지나기 때문에 그곳에서 물을 정수할 수도 있다. 마지막 개울에서 물을 리필하고는 부지런히 정상을 향하여 올라간다. 샌디에이고에서 왔다는 젊은 여성은 혼자서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내가 자기보다 빠른 것 같으니 앞서 가라며 길을 양보한다.
부지런히 올라왔지만 7시 반까지 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이다. 몇 번을 쉬어가며 정상 가까이 가니 거기에도 눈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 사람들이 빠지지 않도록 눈 위에 징검다리처럼 돌들을 얹어 놓아 그것을 밟고 넘으니 이제 곧 정상이다. 정상에 좁고 뾰족한 바위 위에 올라서면 양쪽 모두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관이 펼쳐진다. 올라온 쪽으로는 Rae Lakes와 올라오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개의 작은 호수들이, 반대편에는 물 색깔이 에메랄드빛으로 정말 아름다운 호수와 산봉우리들이 힘들게 올라온 등산객들을 맞는다. 해는 기울어 서산에 걸려 있고 아쉬운 듯 남은 햇빛은 호수 넘어 산등성이를 비추고 있는 모습은 땀 흘려 정상에 오른 이가 맛볼 수 있는 행운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오르고 또 오르는 것일 게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또 누군가도 그럴 것이다.
세상 그 누구라도 거기에 오래 머무르기 위하여 정상에 오르는 사람은 없다. 정상의 자리는 그 감격을 느끼고 더 넓고 멀리 보려고 오르는 것이지 거기에 오래도록 머무르고 독차지하려고 오르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가 높을수록 우리는 거기서 빨리 내려와야 한다. 하늘에서 제일 가까워서 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에 오르려고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10만 불 가량의 돈을 들여 그곳을 찾는다. 하지만 거기서 오래 머무르려 목숨 걸고 거길 오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거기서는 10분을 버틸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정상은 오래 머무르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그것이 산이든 권력이든 부이든 명예이든 상관없이...
오늘도 나는 두 개의 정상을 넘었다. 정상을 정복했다거나 정상을 차지했다거나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곳에 잠시 올라 넘었을 뿐이다. 그 누구도 정상을 정복한 사람은 없다. 정상은 그 누구에게라도 그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저 올랐을 뿐이고 잠시 거처 갔을 뿐인 것이다.
내리막길은 마사토로 이루어진 스위치백을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한다.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한참을 굴러야 한다. 거울 같은 작은 호수에 석양을 받은 얼굴을 비치고 있는 봉우리는 그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제 해는 산을 넘어가고 길가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준비하는 한 아가씨는 눈짓으로 굿 나잇 인사를 보낸다. 내일을 생각해서 오늘은 어두워도 최대한 많이 가야 하기에 부지런히 내려간다. Charlotte Lake으로 갈라지는 곳까지 오니 이제는 어두워서 랜턴을 꺼내야 한다. 표지판 아래 누군가가 작은 가스통 하나를 놓아두고 갔다. 내가 쓰던 가스통에 남은 양이 모자랄 듯하여 뮤어 렌치에서 쓰던 거라도 누가 남겨놓은 것이 있으면 집어오려고 했으나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무것도 내어 놓은 것이 없어서 그냥 오면서 약간 불안했는데 여기서 얻을 수 있었으니 이것이 꼭 필요할지는 모르겠으나 챙겨 넣었다. 무게는 좀 늘어도 마음이 편한 것이 더 나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작은 가스통 하나가 가져다준 평안함... 그 누군가는 이 무게가 무담이 되어 내려놓았을 텐데 나는 그것을 집어 들므로 불안함을 내려놓을 수 있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암튼 그는 부담을 내려놓았고 나는 불안을 내려놓았다.
고개 길을 향하여 가는 길에 머리에 헤드램프를 켜고 올라오는 한 하이커를 만났다. 산타 바바라에서 왔다는 케빈이라는 친구는 Kearsarge Pass를 통해 올라와서 오늘은 Charlotte Lake에서 야영을 하련다며 밤 산행에 나선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Buffs Creek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너무도 아름답지만 이미 해는 넘어가서 그저 음영으로만 그 형체를 알아볼 뿐이었다. 나무숲으로 들어서니 길은 더 어둡고 스산함마저 느끼게 한다. 이런 데서 두려움을 느끼는 타입은 아니지만 깊은 숲으로 들어가니 긴장이 되는가 보다. 어릴 때 가로등도 없는 밤길을 걸어 교회 갈 때 부르던 찬송이 생각난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그야말로 태산을 넘고 험곡을 홀몸으로 내려가고 있었지만 내게 두려움이 들어오려다가도 사라지는 것은 그분이 지켜주시리라는 믿음 때문이리라.
Kings Canyon의 Cedar Grove로 내려가는 트레일을 지나서 조금 더 가니 몇 개의 텐트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볼 수 있었지만 여기에다가 텐트를 치고 자기에는 조금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 좀 더 올라가기로 했다. 지도를 꺼내서 보니 약 1.5마일 거리에 베어 박스가 있는 캠핑장이 있다. 벌써 시계는 9시 반이 지났지만 거기까지는 가야 조금이라도 내일이 편할 것 같다. 결국 오늘도 10시 20분이 되어서야 Upper Vidette Meadow 캠핑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아무도 없어서 누구에게 방해가 되지 않고 나의 하룻밤 거쳐를 준비할 수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텐트 없이 잘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좀 더 편히 자려면 텐트를 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아침에 젖은 채로 집어넣었던 텐트를 꺼내보니 아직도 텐트는 축축이 젖은 그대로이다. 대충 물기를 닦아내고 잘 준비를 마치니 피곤이 몰려온다. 이제 내일이면 JMT 완주를 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으로 텐트에서의 마지막 잠을 청한다.
아홉째 날(7월 11일 2014년)
(From Upper Vidette Meadow to Mt. Whitney -27.5 마일)
지난밤 11시는 넘어서 잠이 들은 것 같은데 일어나니 아직 어두운 4시 30분, 오늘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일찍 잠이 깨어났나 보다. 밤사이에 약간의 바람이 불었는지 일어나 보니 젖어 있던 텐트가 완전히 말라 있었다. 이렇게 좋을 수가... 오늘 텐트를 걷으면 집에 갈 때까지는 다시 펼 일이 없을 텐데 잘 말라 주어서 중간에라도 다시 꺼내서 말리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그분께서는 이러한 세세한 것 까지도 신경을 써주신다 생각하니 감사가 절로 나온다.
오늘은 5시 20분에 짐을 챙겨 하루 밤 묶었던 캠핑장을 나섰다. 물도 별로 없는 데다가 아침 식사를 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이른 것 같아 가다가 적당한 데가 있으면 잠깐 밥을 해 먹기로 하고 출발을 했다. 밝아오고는 있었지만 아직 사방에는 어두움이 남아 있어서인지 새벽 나무숲을 걷자니 시각보다는 후각이 먼저 잠에서 깨어 나의 뇌를 자극한다. 그 숲에서 풍겨 나는 나무 냄새며 흙냄새에 생명의 기운이라도 담겨 있는 듯하다. 이 아침의 신선함을 모르고 콘크리트 벽속에서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은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시간쯤 올라 Center Basin Creek에 이르러 잠시 쉴 겸 아침 식사를 위해 짐을 내렸다.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나니 너무너무 시원하고 상쾌하다. 기분 좋은 아침 식사를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아침 노래를 부르는 새소리를 들으며 먹으려니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동결 건조 비빔밥으로 준비한 아침 식탁이 너무나 초라하지만 왕의 진미가 부럽지 않다.
아마도 오늘의 일정은 거의 살인적 수준이 될 것이다. 오늘은 JMT 중에서 가장 높은 두 패스를 올라야 한다. 아침에 넘게 되는 Forester Pass는 13118피트(3998미터) 높이로 멕시코와 캐나다를 잇는 Pacific Crest Trail 중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며 John Muir Trail 중에서도 마지막 골인 지점인 위트니 산(14505피트-4421미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고개이다. 거리로도 27.5마일(44킬로미터)이 넘는 길이고 고도 변화도 많아서 약 8000피트(2438미터) 정도를 올라야 하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출발했지만 해지기 전에 위트니 정상에 오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마지막 위시가 위트니 정상에서 일몰과 일출을 보는 것이었는데 그중에 하나는 포기해야 하나보다. 내가 이런 마지막 위시를 갖게 된 데에는 작년에 이 길을 걷다가 만났던 맨포드라는 독일인 친구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아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페닌슐라에서 왔단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Mather Pass가 시작되는 Middle Forks Trail을 지날 때였는데 앞서가던 나를 잰걸음으로 앞질러가는 그와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네 번째 JMT를 하는 중이란다. 하지만 그의 배낭이 너무나 작고 가벼워 보이기에 어떻게 그렇게 짐이 작아 보이느냐, 너도 텐트를 안 가지고 왔느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자기 텐트는 10온즈(283그램) 밖에 안 나가는 가벼운 것이란다. 네 번쯤 오다 보니 산에 와서 필요 없는 것을 알게 돼서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 오기 때문에 가볍다며 자기의 배낭을 한번 들어보겠느냐며 내려 준다. 정말 내 배낭 무게의 절반도 되지 않을 만큼 가볍다. 텐트가 어떻게 그렇게 가벼운 게 있느냐고 물으니 브랜드 네임과 가격을 알려준다. 값이 무려 600불이나 주고 샀단다. 하지만 그럴 만한 값어치가 있다면서 2파운드 더 무거운 것을 20일간 메고 다녀야 한다면 총 40파운드의 무게를 더 메고 다니는 꼴이라며 자기와 와이프가 잘 쓰고 있어서 아깝지 않다고 했다. 그런 그를 여러 차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만났었다. 하지만 워낙 빨라서 내가 그와 그의 친구를 따라가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마지막 날 아침 위트니 산을 거의 다 올라 약 1마일쯤 남겨 놓았을 때였다. 그는 내려오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마침내 해냈구나 하며 반가워하고 축하해 주었다. 자기와 친구는 어제저녁에 위트니에 올라 일몰과 오늘 아침 일출을 모두 보았는데 비록 정상 날씨가 춥기는 했지만 너무 아름다웠고 좋았다며 자랑한다. 그러고 보니 주변의 모든 산들과 땅들이 다 내려다보이는 미국 본토에서 제일 높은 산에서 일몰과 일출을 볼 수 있다면 그 광경은 상상만 해도 멋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에 여길 다시 온다면 나도 그때는 위트니에서 일몰과 일출을 보리라 다짐했었다.
지난해에는 오늘보다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자고 아침 일찍 출발해서 위트니 산 밑에 있는 기타 레익까지 가서 잠을 자고 다음날 이른 아침에 정상을 향해 올라갔는데 올해는 좀 더 먼 거리에서 시작해서 정상까지 가야 하니 그야말로 별 보고 시작해서 다시 그 별이 뜨고도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할 참이다.
이렇게 갈 길이 먼데 밥을 먹고 설거지도 하고 양말이랑 셔츠 하나 빨아서 배낭에 매달고 하며 준비를 마치니 40분이나 지체하였다. 아픈 다리 때문에 진통제까지 챙겨 먹고 출발하여 30분쯤 올랐을까 Center Peak 아래로 펼쳐진 평원에 올라섰다. 아침에 넘어야 할 고개의 절반쯤은 올라온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힘이 드는 고갯길이다. 고도는 점점 더 높아지는 데다 나무도 없고 메마르고 가파른 흙길, 돌짝밭 길을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높은 곳에도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푸르다 못해 검어 보이는 맑디맑은 호수와 바위틈 그늘진 곳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피어 있는 야생화들이 있어 힘을 얻을 수 있다. 저 멀리 앞서가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내가 지쳐서 쳐진 동안 그들은 벌써 Forester Pass에 도착해서 넘는 것이 보인다. 지난해에는 거의 정상 가까이 갈 동안에는 아무도 따라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정상을 한 500미터쯤 남겨 놓고 뒤에서 한 사람이 점점 가까이 쫓아오길래 그에게 따라 잡히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올해는 그렇게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조금은 느긋하게 오르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정상에 오르니 10시 25분, 출발한 지 5시간 만에야 겨우 오른 것이다. 이제부터는 Kings Canyon 국립공원의 경계를 지나 Sequoia 국립공원에 들어서는 것이다. 이 고개 넘어 한참을 내려가면 왼쪽 어딘가에 오늘의 최종 목적지 위트니 산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거기까지는 아직 20.7마일이나 남아있다. 찍어줄 사람은 없지만 기념사진을 찍어야겠기에 공원 경계 표지판 위에 아슬아슬하게 카메라를 올려놓고 타이머를 이용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곤 또 쏜살같이 내리막을 향해 발을 옮긴다.
몇 명의 등산객들이 반대편에서 넘어온다. 그중에 PCT를 하고 있다는 한 젊은 친구를 만났다. 내가 살고 있는 이웃 동네에서 왔다고 해서 더 반가운 마음에 악수를 청하였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샌프란시스코 베이의 일몰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내가 가끔 가는 Las Trampas라는 공원에 자기도 자주 간다며 반가워한다. 그를 기억해 주기 위해 그의 트레일 이름을 물으니 Medicine Man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럼 너 의사냐? 고 물으니 아니란다. 자기는 뮤지션이란다. 내 아들도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한다고 했더니 자기는 작곡을 하는데 악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산을 자주 찾는단다. 그런데 왜 네 별명이 Medicine Man이라고 했느냐고 물으니 음악도 약이 되지 않느냐며 나에게 되묻는다. 맞다. 음악이 없는 인생은 상상하기도 어렵다고 대답을 해주니 맞다고 응수한다. 내가 왼쪽 다리에 통증이 있어서 걷는 것이 어렵다고 했더니 자기도 다리가 아파서 고생했다면서 자기에게 간에 부담을 주지 않는 진통제가 있다고 하며 이것은 삼키지 말고 혀 밑에다 한 시간에 한 알씩 넣고 녹여서 먹어야 한다는 자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알을 꺼내서 챙겨 준다. 그의 인상만큼이나 따듯한 마음씨가 참 고맙다. 그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너무나 많이 남았지만 무사히 목적한 여행을 마치기를 기원하며 그를 보냈다.
가파른 고개 길을 1마일쯤 내려오면 그때부터는 쭉 뻗은 완만한 내리막을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 좁고 길게 뻗어 있는 길이 나를 위해 만들어져 있는 것이 고맙게 느껴진다. 5마일쯤 내려오다 오르다가 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다. 오늘은 휘트니에 오르기 전에 날씨도 맑고 공기도 건조하니 그동안 밀린 빨래도 할 겸 Tyndall Frog Ponds에서 흘러 내려오는 개울가에 점심도 해 먹을 겸 자리를 잡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음식을 잘 배분해서 모자라지 않도록 계획을 짜고는 점심으로는 야채수프에 누룽지탕을 준비했다. 밥을 먹고 빨래를 해서 배낭에 매달고 출발 준비를 마치니 여기서도 거의 한 시간을 소비했다.
몇 번의 작은 고개들을 넘어서면 또 내리막이고, 이제는 오르막인가 싶으면 또 내려가고 해서 마지막 위트니 산으로 올라가는 고도를 까먹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지만 어쩌겠는가? 이러다가 언젠가는 정상에 오르겠지...
점심을 먹고도 7마일을 더 오니 JMT와 PCT가 갈라지는 지점에 도착했다. PCT를 하는 사람들은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야 하고 나는 위트니 산을 향해 동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일 년에 위트니를 찾는 사람들이 어림잡아 2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곳에서 10시간 이상 데이 하이킹을 하거나 오버 나잇 캠핑을 하기 때문에 한 번쯤은 생리적인 배설을 해야 한다. 다른 산에서처럼 그 많은 사람들이 큰 문제를 산에서 자연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버리면 이 산은 온통 사람들의 배변으로 뒤덮여 버릴지도 모른다. 더구나 위트니 산꼭대기에는 흙도 별로 없고 그저 돌 뿐이니 흙으로 덮어 처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위트니로 오르는 입구에서는 Wag Bag이라는 비닐로 된 봉투를 나눠줘서 그것을 펴서 그 위에다 해결한 다음 잘 밀봉해서는 싸가지고 내려가서 위트니 포럴에 있는 전문 처리 쓰레기통에다 버리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Crabtree Junction 즈음에 가면 플라스틱 박스가 있고 그 위에 안내문이 있어서 위트니를 오르는 사람들이 그 안에 준비되어 있는 봉투를 하나씩 가지고 올라갔다가 필요할 때 쓰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요세미티에서 출발할 때 미리 주길래 위트니에 가면 거기 있지 않느냐 했더니 거기에는 다 떨어져서 요세미티에서부터 가져가야 한다는 거였다. 그 먼 거리를 담아 왔지만 확인해 볼 요량으로 박스를 열었더니 그 안에 충분히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무거운 것이 아니기에 화까지 나진 않았지만 200마일을 담아왔다는 것이 조금은 억울했다.^^
Timberline Lake에 도착하니 6시 반이 되어간다. 배도 고프고 하니 여기서 저녁을 해 먹고 올라가기로 했다. 그 동안은 오후에 간식으로 무엇을 좀 먹으면 힘도 든데다 입맛도 떨어지고 해서 저녁은 거의 먹지 않았는데 오늘은 밤늦게까지 올라가야겠기에 에너지를 충분히 보충해 놓아야 해서 저녁 식사를 잘 해먹어야 했다. 비빔밥과 미소스프를 만들어 먹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오르기 시작했다. 잘하면 오늘 밤 자정이 되기 전에 위트니 산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기타 모양처럼 생겼다 해서 Guitar Lake이란 이름이 붙여진 호수에 오르니 어느덧 8시다. 이후에는 정수할 물을 구하기가 어려우니 잠시 쉴 겸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는 물병 두 개에 물을 가득 채워 넣고는 정상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해는 서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길가에 텐트를 치고 야영 준비를 하고 있던 중년의 백인 여성이 여기까지 온 걸 환영한다며 가까운데 텐트 칠 자리가 있다며 거기서 자고 올라가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하지만 나는 아직 다 온 게 아니라 오늘 밤에 정상까지 가려고 한다고 했더니 랜턴은 있느냐고 묻는다. 길 반대편에 있는 남자는 올라가는 길에 좁은 길도 있고 트레일이 무너져 내린데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석양을 온몸에 머금고 편하게 누워있는 기타 레익을 뒤로하고 다시금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 완전히 해는 넘어가서 어두워졌다. 아직은 길이 보이기에 랜텐을 켜지 않고 올라가는데 저 위에서 한 사람이 랜턴을 켠 채 내려오고 있다. 올라가고 있는 나에게 정상까지 갈 거냐고 묻더니 지금 정상에는 두 아버지와 그들의 아들들 총 네 사람이 있는데 쉘터 안에는 네댓 명 정도 잘 수 있다고 알려준다. 랜턴을 켜고도 한참을 올라 10시 15분을 넘어서는 시간이 되어서야 기타 레익에서 올라가는 길과 위트니 포럴에서 올라오는 길이 만나는 Whitney Junction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가 1.9마일이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거의 바위길이기 때문에 어두운 밤길에 더 조심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선은 최대한 짐을 줄이기 위해서 무거운 Bear Canister와 필요 없는 짐은 그곳에다 내려놓고 가기로 했다. 오늘 밤 정상에서 자고 내일 아침 요기할 것만 남기고 나머지 필요 없는 것들은 베어 캐니스터에 집어넣고 그곳에 내려놓으니 배낭이 제법 많이 가벼워졌다. 마지막 남은 트레일을 위해 간식까지 챙겨 먹고 나니 10시 30분이 넘어서고 있다. 12시 전에 도착하려면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된다. 조금은 가벼워진 배낭을 메고 다시금 오르막을 오른다. 때로는 아픈 다리가 바위 사이에 끼어서 부러지는 듯한 통증을 가져다주기도 했지만 다행히 커다란 문제없이 만월이 되어 훤히 비춰주는 달빛의 안내를 받아가며 위트니의 밤을 음미하며 올라갔다. 쉬다가 올라가다를 셀 수 없이 반복하다 보니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희미하게 드러나는 정상이 저 멀리 눈에 들어온다. 겨우겨우 지치고 아픈 다리를 끌고 정상에 올라서서 시계를 보니 시간은 11시 59분을 가리키고 있다. 자정 1분 전에 도착한 것이다. 마침내 내 생애에 가장 힘들었지만 감동적인 여행의 목적지에 도달한 것이다. 제일 먼저 쉘터 앞에 있는 방명록에다 이름과 어디서 왔는지와 “방금 JMT 종주를 8일 3시간 만에 마쳤노라”는 소감 한마디를 남겼다.
7월 초순이긴 하지만 정상의 날씨는 제법 바람도 쌀쌀하고 추웠다. 지체할 것도 없이 쉘터의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까 만난 친구가 말한 대로 두 부자가 좁은 쉘터 안에서 양쪽으로 갈라져서 자고 있었다. 문 여는 소리에 잠에서 깬 그들에서 미안하다며 가운데 있는 작은 공간을 함께 써도 되겠느냐고 묻고는 그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 짐을 내리고 슬리핑백을 꺼내 자리에 누웠다. 마침내 8일 만에 JMT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내가 해냈다고 하는 자부심이 내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내 생애에 가장 힘들고 긴 날이었지만 오늘처럼 내가 자랑스럽고 고마운 날도 또한 없었으리라. 위트니 산 정상에서 장엄한 일몰을 볼 수 있는 소망은 놓쳤지만 내일 아침 일출의 감동으로 대신 위안받길 기대하며 잠을 청한다. Thank God!
열째 날(7월 12일 2014년)
(From Mt. Whitney to Whitney Portal -11 마일)
너무 힘들고 고단해서인지, 아니면 좁은 자리에 끼어 자느라 불편해서인지 몇 차례나 잠에서 깨었다. 몇 번을 돌아눕고 자리를 고쳐 잡고 하며 잠을 청했지만 깊은 잠은 들지 못했다. 아마도 고도가 높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새벽녘 아직도 밖은 어두운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온다. 서너 명의 등산객이 아직 해가 뜨기도 전에 산을 올라와 정상을 밟은 것이다. 날씨가 춥고 하니 피할 곳을 찾아 우리가 자고 있던 쉘터의 문을 여는 바람에 우리도 잠에서 깨어 새벽에 찾아온 손님들을 맞았다. 쉘터 안에는 겨우 우리 다섯 명이 누울 만한 공간이 있을 뿐이어서 그들은 다시 문을 닫고는 밖에서 좀 더 머물다가 하산을 하기로 한 것 같다.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이제 여명도 조금 밝아올 무렵 또 다른 등산객들이 찾아와 쉴 곳을 찾는다. 이번에는 문쪽에서 잠을 자던 아빠가 이제 자기들은 일어나 나갈 테니 이 쪽으로 와서 쉬라며 아들을 깨워서 떠날 준비를 한다. 먼저 왔던 사람들이 잠시 추위를 피해 쉬다가 떠나고 조금 있으니 밖에 또 다른 사람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귀에 익은 언어가 들리는 것을 봐서는 한국 사람들이 틀림없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밖을 내다보니 밝아오는 여명에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마지막 위시를 즐기기 위해 카메라를 챙겨서 동쪽이 잘 보이는 곳으로 나갔다. 산 아래로는 어젯밤 불빛을 밝히고 있던 Lone Pine 도시의 불빛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고 거대한 씨에라 네바다 산맥의 줄기들이 서서히 그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서쪽 쉘터 넘어로는 아직 지지 않은 만월이 그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서산에 걸려있다. 이제 곧 동쪽 산 넘어에서는 찬란한 빛을 가진 태양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실처럼 가느다랗게 산을 넘어온 그 엷은 빛줄기가 내뿜는 강렬함은 순식간에 그가 접촉한 모든 것들을 다 금으로 만들어 버렸다던 마이다스의 손 마냥 그 빛이 닿은 모든 봉우리들과 바위들을 모두 붉은빛으로 물들여 버렸다. 난 일찍이 이렇게 강렬한 힘을 가진 일출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과연 위트니에서의 일출은 그 장엄함에 있어서나 강렬함에 있어서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감동을 이 아침 나에게 선물한다.
샌디에이고에서 오셨다는 한국분들과 인사도 나누고 서로 사진도 찍어주며 정상에서의 아침을 만끽하노라니 날씨가 제법 차가워 손이 시려진다. 쉘터에 잠시 들어가 쉬다 보니 새로운 손님들이 계속 찾아온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오셨다는 75세의 백인 할머니와 73세의 중국인 할머니 모두들 얼마나 건강하신지 밤을 새워 산을 올라 이 아침에 정상까지 올라오신 것이다. 다시 한번 밖에 나가 사방을 둘러가며 떠오르는 태양빛에 따라 변해가는 만물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정상을 향해 올라오고 있고 저마다 정상에서 기쁨을 동료들과 나누느라 여념이 없다. 내가 들락날락하는 사이에 쉘터 안에도 손님이 계속에서 바뀐다. 이제는 나도 아침을 먹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하기에 들어가 보니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와 있다. 그들 중에 와이오밍 주에서 왔다는 중년의 여성 린다는 미 본토에서 제일 낮은 곳이며 기상관측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기온을 기록하였던 데스 밸리 국립공원 안에 있는 Bad Water(해저 282 피트-85.5미터)에서 출발해서 제일 높은 Mt. Whitney(14505 피트-4421미터)까지 135마일을 달리는 세계에서 가장 힘든 마라톤을 하였다고 한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다. 나는 겨우 산길을 걸어서 200마일 좀 넘게 온 것뿐인데 그 뜨거운 사막 길을 달려 이 높은 곳까지 달려온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생각이 든다.
그녀와 함께 올라온 일행 중에 플로리다에서 왔다는 레베카는 내가 여기 오는 동안에 왼쪽 다리에 Shin sprint(정갱이의 뼈와 근육 사이에 염증이 생겨서 붓는 증세)가 생겨서 고생하고 있다고 했더니 자기가 가지고 온 진통제를 나누어 주고는 집에 돌아가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효과가 있으니 양배추를 갈아서 그것을 아픈 다리에다가 붙여두면 빨리 좋아질 수 있다며 친절하게 그들의 비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나의 JMT 종주 이야기를 듣더니 축하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지난해에 위트니 정상에 올라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그 옆에 쉘터 안을 들여다보고 나오려니 한 젊은 동양인 여자가 옆을 스쳐 지나갔었다. 내가 정상 쪽으로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그곳에 있던 백인 할아버지들께 사진도 좀 부탁하고 하다 보니 동양인 여자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아마도 그분들과 함께 올라온 듯싶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보니 한 할아버지가 그녀는 일본에서 왔다고 하며 소개를 한다. 나보다 먼저 올라온 그들은 먼저 내려가고 나는 더 머물다가 나중에 내려왔는데 위트니 포럴에 거의 다 내려올 때 다시 그들과 동행을 하게 되었다. 산을 다 내려오니 요세미티 쪽에 산불이 나서 120번 도로가 막혔고 나를 데리러 오던 친구도 먼 길을 돌아서 오는 바람에 늦게서야 도착을 하게 되었다.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자기는 간호사인데 자기가 일하던 병원이 갑자기 문을 닫게 되어서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전에 John Muir Trail을 하기 위해 약 한 달간의 일정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요세미티로 들어왔고 거기서 기다렸다가 퍼밋을 받고는 20일 넘게 200 마일이 넘는 깊은 산길을 걸어서 오늘 새벽에 위트니까지 올라왔다는 거였다. 이제 자기는 요세미티로 돌아가서 거기서 며칠 더 머물며 구경을 더 하다가 출국 날짜에 맞춰서 샌프란시스코로 나올 거란다. 그러면 우리가 가는 길이고 나도 JMT를 시작할 때 빼먹고 지나온 구간을 마저 마쳐야 했기 때문에 요세미티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스물여섯의 젊은 아가씨가 무슨 용기를 갖고 미국까지 혼자 와서 20일이 넘는 솔로 하이킹을 했는지 50대의 남자인 나로서도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었다. 그녀의 용기와 열정에 감동을 먹었을 정도였다. 나중에 요세미티에서 헤어지면서 베이 지역으로 나오게 되면 내가 하루는 구경시켜 줄 테니 연락하라며 이메일 주소를 알려 주었다. 젊은 시절 내가 못한 것을 하고 있는 그녀가 가상스럽고 기특하기도 하여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의 일주일 뒤쯤 연락이 왔다. 요세미티에서 해프 돔도 가고 마리포사 그로브도 가고 여기저기 다니며 실컷 구경했다며 언제 버클리 쪽으로 나올 거라면서... 사실은 그녀가 그렇게 오래 요세미티에 머무른 것은 경비를 절약하기 위한 것이란 것을 알고 있는 나는 미국에 관광 온 사람들이 가지 못하는 샌프란시스코 베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때마침 노동절 연휴가 있어서 그녀를 위해 하루 시간을 내었다. 아침에 그녀가 묵고 있다는 모텔 앞에서 픽업해서 티뷰론으로 가서 훼리를 타고 Angel Island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약 7마일 정도 걸리는 섬을 한 바퀴 돌아 그곳에서 제일 높은 Mt. Livermore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등산 코스가 있는데 샌프란시스코 베이의 아름다움을 구경하는 데에는 거기만한 곳이 없다. 산 정상에서 골든게이트 브리지와 샌프란시스코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벤치에 앉아 준비해 간 도시락을 먹고는 돌아 내려와 다시 티뷰론으로 나가는 훼리를 타고는 골든게이트 브리지로 가서 절반쯤 다리를 건너다 돌아나와 그녀를 데리고 Hawk Hill을 넘어가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를 거쳐 로데오 비치까지 구경시켜 주었었다.
그녀가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자기 친구에게 여행 계획을 이야기했더니 “너 미쳤구나!”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나도 네가 미쳤다고 생각한다”라고 웃으며 말해 주었다. 그러면서 한국말에는 “미치다”는 동사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첫째는 그야말로 미쳤다는 것이고 두 번째 뜻은 어딘가에 도달하다는 뜻이라고. 그래서 우리가 어떤 목표나 하고 싶은 일을 이루려면 미쳐야 하는 것이라고...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너는 미쳤기 때문에 네가 원하는 그 무언가를 이루게 된 것이라고...
이번에 셀든 패스를 넘어 뮤어 트레일 렌치를 향해 가고 있을 때 만났던 "FM"이라는 트레일 네임을 가지고 있던 PCT 하이커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농담 삼아 그에게도 “너 미쳤구나!”라고 말을 걸었었다. 뭐 그 말을 부정하기도 뭐한 지 어깨를 으쓱하더니 “하지만 하루 종일 사무실에 갇혀서 컴퓨터와 씨름하며 평생을 보내는 것은 더 미친 짓이 아니냐?”라고 오히려 내게 반문한다. 그러면서 양손을 수평으로 펴서는 좌우로 기울이며 “우리는 삶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라고 나름대로 자신의 소신을 주장하였다. 나는 그의 의견에 100% 동감한다. 그렇다. 평생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나도 못하면서 돈 벌기 위해 죽도록 일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정말 미친 것이다. 그것이 돈이든 명예든 권력이든 종교이든 상관없이 그 하나만을 얻기 위해 다른 것은 돌아보지도 못한 채 삶의 전부를 써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야 말로 진짜 미친 것이다.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종교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완전히 미친 것이다. 우리는 그런 미친 짓 그만해야 한다.
이번 여행이 내게는 죽도록 힘들었고 미치도록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그동안 외골수적으로 살아왔던 진짜 미친 삶에서 벗어나 균형을 잡아보려고 자연스럽게 자연을 찾다 보니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미치도록 아름다운 것들이 내 메마른 삶에 다가왔다. 난 정말 요즘 내가 깨달은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삶이 미치도록 아름답고 좋다. 사람은 무언가에 미쳐야 한다. 그러나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이제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꼬박 10마일에 6200 피트 정도의 내리막길을 내려가야 한다. 작년에도 이 길을 내려가다가 왼쪽 다리에 Shin sprint가 생겼었는데 올해는 벌써 3일 전에 시작해서 통증이 많이 심해진 상태이니 내려갈 때 고생을 할 것이 불을 보듯 빤하다. 하지만 어쩌랴? 레베카가 준 애드빌 네 알을 먹고 배낭을 챙겨서 쉘터를 나오니 시계는 8시 20분을 지나고 있다. 다리를 찔룩거리면서 내려오다 보니 더 많은 사람들이 정상을 향한 마지막 고비를 열심히 오르고 있다. 그들에게 나는 그들보다 앞선 경험자이기에 만나면 주로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는 경우가 많아 거의 다 왔다는 말로 그들을 격려하지만 힘들어하는 모습들이 역력하다. 하지만 그들도 조금 있으면 나처럼 정상에 발을 디디고서는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이 길을 내려가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무리 높은 고개라 할지라도 꾸준히 오르면 누구나 오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만일 내가 넘지 못했으면 그것은 내가 중도에 포기했기 때문이지 그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힘들지언정 오르지 못할 고개를 가진 인생은 없기 때문이다.
Whitney Portal Junction에 이르러 어젯밤에 올라오다가 무게 때문에 내려놓았던 베어 캐니스터를 픽업하려고 하니 내가 내려놓고 온 것 외에는 하나도 없던 물건과 배낭들이 여기저기 잔뜩 놓여 있다. 벌써 이 아침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올라가면서 짐을 내려놓고 간 것이다. 무게는 다시 좀 무거워졌지만 이제부터는 무게와의 싸움이 아니라 다리와의 싸움이다. 약 기운 때문에 조금은 덜 아픈 것 같지만 왼쪽 발목 위 정강이에서 시작된 날카로운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조금씩 날도 더워지기 시작하고 나무도 없는 길을 내려가다 보니 속도 편하지 않은 것 같고 이래저래 아프고 힘이 들지만 몇 시간만 참고 내려가면 끝이라 생각하니 마음은 평화롭다.
몸이 아프면 내리막길도 힘들기 마련이다. Physically 내 인생도 이젠 고개를 넘은 것이 분명한데 삶의 무게로는 아직도 오르막이 끝나지 않은 것 같다. 나이로 오르막과 내리막이 정확히 양분되는 인생이 어디에 있으랴만, 그리고 오르막만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내리막만 지속되는 인생도 어디 있으랴만 내 인생의 후반부가 그리 많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힘들게 올라왔는데 남은 삶에서도 그래야 한다면 내가 인생을 잘못 산 것이 분명할 테니까! 지금까지 병들고 비정상적이며 균형 잃은 삶을 살았다면 앞으로는 좀 더 지혜롭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서 전반부보다 더 아름다운 후반부를 살고 싶다. 자기 인생의 시작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하지만 자기 인생의 마지막은 자기의 선택에 의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본다. 내 인생의 일출이 화려하지 못했다고 불평하지 말자. 내 인생의 황혼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내가 컨트롤하고 선택할 수 있을 테니까...
내려가다가 중간쯤에서 아침에 쉘터에서 만났던 린다와 레베카를 또 만났는데 다리를 좀 어떻냐며 안부를 확인한다. 정강이만 아픈 게 아니라 무릎도 통증이 시작되었다고 했더니 애드빌 네 알을 더 꺼내서 주며 나중에 먹으란다. 위도 편치 않다고 했더니 린다는 나에게 혹시 소금을 먹었느냐고 묻는다. 아마도 오늘 날씨도 덥고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 증상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자기는 항상 소금 캡슐을 가지고 다니면서 먹는다면서 나에게도 두 알을 꺼내 준다. 지금 한 알 먹고 두 시간 있다가 또 한 알을 먹으란다. 그러면 속도 좀 편안해질 거라면서... 끝에 내려와서 다시 그들을 만났는데 내가 잘 내려온 것을 보고는 또 다시 안부를 물으며 그렇지 않아도 잘 내려왔는지 걱정되었단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JMT 완주한 것을 축하한다며 너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란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토록 친절하고 따듯하다. 도시에서 만났으면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스쳐 지나쳤을 사람들이 이렇게 자연과 어우러진 곳에서는 그들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마음을 터치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한국말에 자연스럽다는 말의 의미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자연은 억지로 우리에게 무엇을 주지 않는다. 그들을 찾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모든 것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것들뿐이다.
이제 긴 여행의 마지막이 가까워 온다. 이 여행에서 얻은 고통은 영광의 상처가 될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교훈과 감동은 내가 겪은 역경과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하고 값진 것이 될 것이다. 이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아물고 사라지겠지만 이번 여행에서 얻은 기쁨과 감동과 행복은 두고두고 그 여운을 남길 것이다.
다행히 위트니 포럴까지 무사히 내려왔다. 아픈 다리 때문에 작년보다 두 시간 이상 일찍 정상에서 출발했지만 도착한 시간은 똑같았다. 이제 집에 까지 가는 일만 남았다. 바로 집으로 가는 교통편을 구할 수 있을지, 아님 어디를 돌고 돌아 집에 갈 수 있을지 그분은 아시겠지...
비록 다리는 아팠지만 비교적 다른 몸의 컨디션은 지난해에 비교해서 그리 힘들거나 지치지 않았다. 지난해에 비교해서 나의 체력이 더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리한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산행을 끝마칠 수 있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등산을 시작해서 올라가고 있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하산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완주의 기쁨을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열흘만에 시원한 음료수도 사 마실 수 있었고 사제(私製 ㅋㅋ) 음식으로 주린 배를 채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차편을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위트니 정상에서 만난 우리 이웃 동네에서 왔다는 백인 친구는 내가 라이드를 찾는다고 했더니 자기는 여기서 좀 쉬다 내려갈 테니 먼저 내려가서 연락하라며 전화번호까지 줬지만 깊은 산 중이라 씨그날이 좋지를 않아서였는지 내려와서 아무리 전화를 해도 통화가 되지를 않는다. 샌프란시스코 방향으로 가는 차편을 구하기는 어렵다고 생각이 되어서 엘에이로 가는 차편은 구할 수 있겠지 했으나 역시 쉽지 않았다. 모두들 가까운 론 파인까지는 데려다줄 수 있다고 했지만 장거리 교통편은 찾을 수 없었다. 엘에이 쪽에서 왔던 몇 한국 사람들을 만났지만 모두들 핑계를 대며 난색을 표할 뿐이었다. 파킹장 입구에서 나가는 차량들마다 손을 들어 세워 라이드가 가능한지를 물어보았지만 만석이라 도움을 줄 수 없던지 방향이 맞지를 않던지 가까운 곳으로 가는 사람들뿐이었다. 시간이 점점 흘러 해가 어두워지려고 하니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너무 쉽게 생각한 나의 판단이 잘못이었다는 결론이 내려지자 이제는 가까운 론 파인에 내려가서 거기서 자고 집으로 가는 차편을 구해야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모데스토에서 와서 11일 만에 JMT종주를 마쳤다는 두 젊은 친구들을 만났는데 론파인에 가면 백패커들을 위한 유스호스텔이 있다기에 그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다행히 거기까지 가는 차를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보스턴에서 비즈니스 미팅 때문에 라스베이거스에 출장 왔다가 주말에 렌터카를 몰고 와서 당일로 위트니 정상을 오르고 내려와서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돌아가는 두 백인 젊은이들이 기꺼이 나를 뒷좌석에 태워줘서 론파인까지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어렵지 않게 찾아 들어간 호스텔에서 리셉셔니스트에게 방을 구하고 집으로 가는 대중교통편을 물으니 당연히 바로 샌프란시스코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맴모스로 올라가서 거기서 요세미티까지 갈 수 있는 버스는 탈 수 있으나 그다음에는 자기도 모른다는 거였다. 로스 엔젤레스로 가는 것도 버스를 타고 릿지 크레스트라는 곳으로 내려가서 갈아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히치 하이킹을 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할 수 없이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자 생각하고 안내를 받아 하루 밤에 25불 하는 호스텔 방으로 들어갔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잘 수 있도록 이층짜리 벙크 베드가 여러 개 있는 호스텔 방에 들어가니 한 아시안 젊은 친구가 먼저 침대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서 인터넷을 하고 있었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내가 누울 침대를 정한다는 짐을 내려놓고 가서 물으니 베트남계 아메리칸인 Jason이라는 친구가 로스 엔젤레스 근처인 산타 모니카에서 왔단다. 내일 아침 일찍 해뜨기 전에 일어나 근처에 있는 Alhambra Hills로 가서 Mobius Arch를 찾아 사진을 찍고는 집으로 갈 거라 한다. 그럼 내일 네가 집에 갈 때 나를 태워서 가는 길에 North Hollywood에 내 딸이 살고 있으니 그 근처에다 내려줄 수 있느냐고 물으니 문제없다며 기꺼이 응해 준다. Wow! 그러지 않아도 이곳에 오면 나도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그 모비우스 아치였는데 아마추어 포토그래퍼인 제이슨을 호스텔에서 만나 그와 함께 그곳 사진도 함께 찍고 로스앤젤레스까지 라이드도 구할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이보다 더 완벽하고 환상적인 여행 마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이처럼 놀라운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계셨다고 생각하니 감사가 절로 나온다.
짐을 정리하고 씻기 위해 샤워실로 향했다. 얼마 만에 쳐다보는 내 얼굴이던가. 비록 팔과 다리에는 온통 모기에 뜯긴 자국으로 볼썽사납고 허리에는 오랫동안 무거운 배낭을 멘 흔적으로 인해 멍이 들어 있고 왼쪽 다리는 퉁퉁 부어서 쩔룩거리고 양 발바닥에 생겼던 물집들은 터지다 못해 거의 다 말라 들어가서 살과 분리될 정도로 영광의 상처 투성이었지만 일찍이 난 내가 이렇게 자랑스럽고 고마운 적이 없을 만큼 그 힘든 산행을 큰 사고나 다친 곳 없이 마칠 수 있게 해 준 나의 모든 지체들에게 감사하였다. 핫 샤워를 마치고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지난 한 열흘 동안 만났던 감격적인 씨에라의 산과 강과 호수들과 스치고 지나며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참 고마운 시간들이었다. 내일 걱정하리라던 내일 일도 오늘 해결되어 편안히 잠들 수 있으니 편안한 침대가 아니라도 단잠을 잘 수 있으리라.
에필로그
그것이 어떤 종류의 여행이든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설렘과 기대를 동반한다. 그것이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일 때는 약간의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가야 할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떠나지 않으면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없다. 안주하지 않으려면 떠나야 한다. 모든 역사와 문명과 과학과 학문의 발전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떠나는데서 시작하지 않았던가
과거에 나는 여행을 사치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를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세계 속에 가두어 두고 살았었다. 나의 행동반경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경계를 넘어서지 못했고, 나의 사고도 그동안 내가 학교에서 배우고 주입된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었다. 그 울타리를 넘어선다는 것은 기존에 갖고 있는 신념에 대한 배반이요 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타락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지금까지 내가 배우고 확신해 왔던 선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고집스러운 집착은 나 스스로를 폐쇄적이고 외골수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갈 뿐이었다. 무엇을 하든 지금까지 내가 옳다고 믿어왔던 신념을 옹호하고 고수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의 사고와 삶의 방식은 점점 좁아져만 갈 뿐이었다. 나의 행동반경, 사고반경을 나 스스로 정해 놓고 넘어서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기둥에 묶어둔 염소처럼 무엇을 찾아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나의 경계는 점점 더 좁아지는 것을 발견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울타리를 넘어설 줄 알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내 코뚜레를 묶어서 그 무언가에 나를 옭아매고 있는 그 줄을 끊을 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의 주인께서 내 사슬을 풀어주셨다. 운명처럼 내 삶에 들이닥친 고통스러운 사건을 통해 나 스스로 정해 두었던 경계의 끈을 자르시고 나를 내 모셨다. 비로소 나는 쫓겨나듯 새로운 땅을 밟게 되었고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비로소 눈이 떠지고 굳게 닫아 두었던 내 마음의 빗장이 열리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울부짖으며 떠난 나의 여행은 어느새 나를 치유하고 있었고 내 속에 작은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울타리 안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선하고 가장 옳은 곳이란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를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분은 나를 가르치려 하지 않으셨다. 그저 나를 풀어주셨을 뿐이다. 비로소 나는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디뎠고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그것은 사치가 아니었다. 내몰리듯 떠난 그 여행은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바꾸어 놓았다.
떠나라. 새로운 세계에 익숙하지 않아서 넘어지고 깨어질지라도 떠나야 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상처로 인한 고통이 싫어서 안주하기에는 울타리 너머에 있는 세상은 너무도 넓고 아름답고 자유롭다. 익숙하다는 이유 때문에 그것이 가장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길들여지고 그렇게 믿도록 강요받고 주입된 결론일 뿐이지 그것만이 꼭 전부요 진리는 아니다. 푹신한 침대가 가장 편안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내가 누운 자리에 울퉁불퉁 놓여 있는 돌들이 내 등을 누르고 자극할지라도 거기서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안식을 경험할 수도 있는 것이다. Wilderness 곧 인생의 광야로 여행을 떠나본 사람이라야 외로움과 고통을 알 수 있다. 외로워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사랑을 알 수 있으며,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역사상 가장 길고도 먼 여행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수일 것이다. 그분이 계시던 하늘에 비하면 그가 그 먼 길을 떠나 찾아온 세상은 광야요 황무지였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똥 냄새 가득한 마구간이요, 딱딱한 말구유였을지라도 그는 세상으로의 여행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이 여행이 얼마나 그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여행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여행을 통하여 그가 얼마나 냉대와 멸시를 받게 될 것인지도 그의 마음을 바꾸지 못했다. 그분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생의 길을 보여주시려고 하는데 그 중요한 가치에는 관심도 없이 얄팍하고 표면적인 이익을 위해 구름 떼처럼 그를 따르는 군중들 속에서 느끼게 될 고독이나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며 사랑한 사람들로부터도 외면당하고 배신당하게 될 아픔이 그가 나선 길을 막지 못했다. 그러나 이 여행이야말로 그분을 그분 되게 만드는 여행이 될 것이었다. 아니 그분이시기에 떠나야 했던 여행이었다. 우리가 떠나는 여행은 그 유익이 대부분 우리에게 돌아온다. 하지만 그분이 떠난 여행은 그 온전한 축복이 그분 자신이 아니라 순전히 우리에게 돌아오게 하셨다는 데서 차이가 있다. 그분이 하늘 보좌를 떠나셨기에 우리에게 희망이 생겼다. 그분이 고난의 길을 오르셨기에 비로소 생명이 우리의 것이 된 것이다. 이 땅에서 그분을 따르는 자들도 그분처럼 떠나는 자들이어야 한다. 온갖 죄와 고통의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야 한다. 빌어먹을 운명이나 탓하는 절망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떠나야 한다. 온갖 불협화음과 불화를 박차고 일어나 떠나라. 안일, 나태, 안주의 거적때기를 던져버리고 떠나자. 무거운 짐을 지워주신 분은 그 짐을 지고 그 자리에 머무르라고 지워주신 것이 아니다. 그 짐을 지고 멀고 먼 아름다운 여행을 하라고 지워주신 것이다.
우리의 떠남의 목적이 이기적일지라도 떠나라. 그분이 떠나심으로 그 유익이 온전히 우리에게 돌아왔듯이 우리도 떠나서 그로 인해 조금 이마나 우리가 여유로움을 배우고 배려와 사랑을 터득할 수 있다면 나의 그러한 변화로 인한 유익이 누군가에게로 반드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으로 인해 축복을 누린 자여 떠나라. 당신의 떠남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축복이 돌아가게 하라. 그분을 느끼고 싶은 자여 떠나라. 당신의 떠남으로 그 누군가에게 그분을 느끼게 하라.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은 준비를 한다. 먼저 어디를 갈 것인지를 정하기 위해 수많은 여행안내 자료와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내가 갈 수 있는 날짜를 잡고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한다. 준비 없는 여행만큼 무모한 것은 없다. 우리의 여행은 준비한 만큼 즐길 수 있다. 그 준비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준비는 필요한 짐을 챙기는 것이다. 아무 짐도 가지고 가지 않아도 되는 여행은 황천길로의 여행 밖에는 없다. 아무리 짧은 여행이라도 짐이 있어야 한다. 긴 여행일수록 우리의 짐은 더 많아진다. 그러므로 짐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여행을 떠날 수 없다. 내가 지고 가는 짐의 무게가 내가 갈 수 있는 여행의 길이를 결정한다. 먼 길을 떠나야 한다면, 더 무거운 짐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굳이 먼 여행을 계획하는 것은 거기에 가까운 곳에서는 볼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워도 먼 여행길을 나서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장거리 여행과 같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어깨에는 각기 다르지만 무거운 짐들이 지워져 있다. 어떤 이에게는 가난이, 어떤 이에게는 질병이, 어떤 이에게는 장애가, 어떤 이에게는 관계가, 심지어 어떤 이에게는 자식, 부모, 배우자, 친구 등이 짐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크고 작은 물리적,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각종 짐들이 모든 인생의 어깨에 지워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지워진 짐 때문에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그 모든 짐들은 우리로 하여금 먼 길을 가게 만드는 연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짐이 많을수록 우리는 더 멀리 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정호승 시인이 이런 시를 남기셨다.
내 등의 짐
-정호승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를 못했을 겁니다.
내 등에 짐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사랑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로 남의 고통을 느꼈고
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도 알았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 미숙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가 내 삶의 무게가 되어
그것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성숙시킨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겸손과 소박함의 기쁨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의 짐 때문에 나는 늘 나를 낮추고
소박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기쁨을 전해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물살이 센 냇물을 건널 때는
등에 짐이 있어야 물에 휩쓸리지 않고
화물차가 언덕을 오를 때는
짐을 실어야 헛바퀴가 돌지 않듯이
내 등의 짐이
나를 불의와 안일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게 했으며
삶의 고개 하나하나를 잘 넘게 하였습니다.
내 나라의 짐, 가족의 짐, 직장의 짐, 이웃과의 짐,
가난의 짐, 몸이 아픈 짐, 슬픈 이별의 짐들이
내 삶을 감당하는 힘이 되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하였습니다.
누군가 아직도 그 무거운 짐을 진 채 어디에고 가본 적 없이 고통에 눌린 채 허덕이고 있다면 떠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짓누르는 짐을 연료 삼아 어디론가 떠나라. 분명 어딘가 고통이 변하여 기뻐할 수 있는 곳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나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질지라도 내가 누릴 인생의 여행이 얼마나 아름다울지를 상상하며 기쁜 마음으로 지고 나아가면 모든 짐들은 언젠가는 가벼워지고 나에게 짐을 지워주신 분이 예비하신 아름다운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짐을 맨 채 제자리에 있으면 그 짐이 줄어들지 않고 점점 더 무거워져 내 어깨를 짓 누룰 것이지만 짐을 매고 어디론가 떠나면 그 짐은 점점 태워지고 줄어들어 마침내 그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지난 2년 간의 산행이 나의 삶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 보니 이루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그 감동이 크다. 내 인생의 가장 힘들었던 지점에서 기대하지 않고 찾았던 산이었는데 뜻밖에도 산은 나의 가장 친한 친한 친구가 되어 주었고 말없이 나의 말을 들어주는 상담자가 되어주었으며 내가 겪고 있었던 배신감과 실망으로부터 나를 회복시켜주고 자존감을 키워주는 치료제가 되어 주었다. 내가 그리 오래 산을 찾아서가 아니었다. 불과 두 서너번 정도 찾았을 때부터 나의 몸과 마음이 힐링되고 있다는 사실을 나 자신이 느낄 수 있었으니 산이 내게 가져다 준 축복은 신비 그 자체였다.
산은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이래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느니 그 어떤 훈수도 둔적이 없이 그저 자신들의 존재하는 모습을 내게 보여주기만할 뿐이었는데, 나무는 나무대로 돌은 돌대로 흐르는 개울은 개울대로 지저귀던 새들은 본래 그들이 짖어대고 울어대던 그대로일 뿐이었는데 나는 거기서 그들을 스치듯 지나다닌 것이 전부였건만 내 스스로 내가 힐링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 자연이야말로 최고의 의사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말을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사랑하게 만드는 자연이야말로 조물주의 숨결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The End...
But,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