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전설을 만나다.

2015년 1월 1일

by 길벗



지난 새해 아침에 Big Sur 지역에 있는 Ventana Wilderness에 있는 Sykes Hot Spring으로 하이킹을 갔었다. 10마일 길이의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 힘든 산행이었지만 그 끝에 가면 계곡을 따라 흐르는 아름다운 강가에 따듯한 노천 온천이 있어서 산행에 지친 피로를 풀 수 있어서 너무나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해에 페북에 올렸던 글에서도 썼지만 올해에는 뉴이어스 이브를 그곳에서 캠핑을 하고 새해 아침을 깊은 산중 시냇물이 흐르고 새들이 노래하는 곳에서 맞이하고 싶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다행히 별 다른 어려움 없이 그 결심을 실행해 옮길 수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10마일(40리) 산길을 오르려면 좀 더 일찍 출발했어야 했지만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시간은 어느새 오후 2시를 향해 급히 달려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트레일 입구 Big Sur Station 주차장은 게이트를 가로막고 Closed 싸인이 붙어 있어서 차를 끌고 나와서 반 마일쯤 떨어진 1번 도로 가에다가 주차를 하고 들어가야 했다. 주차할 자리를 찾아 준비를 마치고 배낭을 메고 나니 벌써 2014년의 마지막 날 오후 2시는 역사의 뒤로 사라진 뒤였다.


서둘러 등산로 입구로 돌아오니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고 몇 대의 차량만 입구에 있는 제한 시간 주차 구역에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텍사스 번호판을 단 차량이 있길래 그 가족에게 여행을 위해 거기서 온 것이냐고 했더니 인도네시아인들인 그들은 말을 걸어주는 나에게 그렇다며 반갑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고 그의 아내는 우리 둘을 놓고 사진을 찍는다. 생전에 처음 만나는 인연이지만 한 마디의 관심 있는 말로도 이렇게 모든 차이를 허물고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 신비롭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난밤을 머물고 1번 도로를 따라 샌루이스 오비스포까지 갈 거라는 그들에게 가는 길에 태평양으로 떨어지는 Mcway 폭포는 빼먹지 말고 들러가라는 말을 해주고는 작별을 고하였다.


부지런히 올라가다 보니 지난번에 내린 폭우로 인해서인지 지난해와는 달리 등산로 곳곳이 유실되어서 조심스럽게 돌아서 가야 했으며 아름드리나무들이 쓰러져 길을 가로막고 있었으며 크지는 않았지만 산사태로 인하여 흙들이 무너져 내린 곳들이 여럿 있는 것을 만나니 왜 주차장을 폐쇄하고 막아놨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나선길을 돌아갈 수는 없고 하산하는 몇 등산객들을 만날 수 있었기에 가던 길을 계속 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조금 늦게 출발한 데다가 가벼운 차림의 지난해와는 달리 무거운 캠핑장비를 모두 메고 올라야 하는 이번 산행은 여러 장해물과 무게 때문에 조금 더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오르는 길의 동쪽 산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던 해는 넘어가고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는 레드우드 나무숲을 지나는 등산로에는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한동안은 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빛에 의지해서 갈 수 있었지만 깊어지는 어두움은 인공적인 불빛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진행하기 어려워졌다. 다행히 목적지가 멀지 않았기에 헤드랜턴을 의지해서 올라가는 야간 산행은 그리 나를 두렵게 하지 않았다. 마지막 고개를 넘어 계곡 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저 아래에서 누군가의 불빛이 보인다. 목적지가 가깝다는 반가운 신호이다. 랜턴불빛에 의지해서 강가로 난 좁은 길을 넘어가니 자기들도 방금 도착한 듯 자리를 잡고 텐트를 치려고 준비를 하던 형제들이 "You made it!" 하며 반겨준다. 이미 텐트를 치고 있던 다른 하이커는 날더러 온천을 찾으러 아래쪽으로 찾아가 보았으나 못 찾았다면서 온천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조금 더 내려가면 있다고 일러주고는 내가 캠핑할 자리를 찾아 조금 더 내려갔다. 작년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캠핑을 하고 있었는데 올해는 너무나 한적하다. 그룹이 함께 텐트를 치기에 적합한 좋은 자리에 올라갔더니 아무도 없다. 부지런히 텐트를 치고 숙영 준비를 마친 다음 오는 길에 먹은 뉴트리션 바로 저녁을 건너뛰고 곧바로 온천을 향해 길을 나섰다. 거의 다 갔을 무렵 강가의 모래 언덕 위에 작은 모닥불을 피우고 텐트도 없이 비박을 준비하고 있는 노르웨이에서 왔다는 한 청년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했더니 온천으로 가는 길을 친절히 안내해 준다. 예상한 대로 온천에는 아무도 없다. 겨우 두 명 정도가 들어갈만한 첫 번째 것은 물론이고 네댓 명 정도가 들어갈만한 남은 두 곳의 탕도 텅텅 비어있다. 올라오는 길가에 군데군데 얼어붙은 흙덩이를 봤을 정도로 날씨는 싸늘했기에 옷을 벗고 온천물에 몸을 담갔을 때의 따듯함과 포근한 기분이란 이루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달빛을 받으며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그 깊은 산중에서 홀로 온천욕을 하는 기쁨, 정말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그 기분을 알 수 없다.


한 삼십 분쯤 지났을까 불빛이 가까이 오는 것이 보인다. 아마도 도착했을 때 나에게 온천 가는 길을 묻던 친구가 찾아오나 보다. 내가 있는 곳에 같이 들어와도 되냐고 묻길래 "왜 안 되겠느냐?" 하며 새로운 친구를 맞았다. 어둠 속에서 본 그의 모습은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몸집도 작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친구 보통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모두 라오스 출신인 서른두 살의 이 젊은 친구는 태국에서 태어났지만 캔자스에서 자라났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2650마일이 넘는 페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두 번씩이나 완주했고 콘티넨탈 디바이디드 트레일, 아팔라치안 트레일 등을 모두 완주한 등산계의 트리플 크라우너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플로리다의 키 웨스트에서 출발해서 캐나다의 퀘벡을 지나 뉴펀트랜드까지 가는 약 10,000킬로에 이르는 이스턴 컨티넨탈 트레일까지 마쳤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하루에 약 40마일씩을 걸었었고 어떤 날은 하루 24시간 동안 자지 않고 80마일을 걸은 적도 있단다. 이게 정말 사람이란 말인가? 그야말로 인간계를 넘어선 수준이었다. 비록 어둠 속이라 드러나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그와의 대화는 겨우 220여 마일의 존 뮤어 트레일을 두 번 완주한 것 가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던 나를 점점 왜소해지게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많이 남는 수준이었다. 흥미롭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또 다른 불빛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트레일을 따라 올라오던 길에 쉬고 있던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이제야 왔는가 보다. 그들은 온천 앞을 흐르는 작은 강 건너편에다가 텐트를 치려나 보다. 함께 이야기하던 친구도 자기가 피어놓고 온 모닥불이 걱정된다며 일어난다.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7시 반이다. 벌써 돌아가 잠을 청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은가. 나는 더 머물기로 하고 그와는 굿 나잇 인사를 하였다. 뉴 이어스 이브를 즐기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며 한 시간은 혼자 더 그 여유와 한적함 평안을 즐겼나 보다.


텐트로 돌아와서도 금방 잠이 오지 않아 렌턴 불빛에 의지해 가져온 책을 읽었다. 공지영의 소설 즐거운 나의 집을 펴서 한 30여 페이지를 읽다 보니 눈이 무거워진다. 점점 크게 들려오는 시냇물 소리를 자장가 삼아 2014년의 마지막 잠을 청하였다.


두어 번 약간의 한기를 느끼며 깨어나 옷을 여미곤 다시 잠들다 보니 어느덧 텐트가 훤해진다. 이처럼 깊은 산중에서도 새해의 아침은 밝아왔다. 밖에 나와보니 부지런한 새 몇 마리가 캠프 사이트에 날아와 먹이를 찾다가 인기척에 놀라 날아간다. 카메라를 메고 고요한 새벽을 담으려 온천으로 향했다. 어젯밤 비박을 하던 노르웨이 청년은 벌써 떠나고 없다. 강 건너편에는 네 동의 텐트가 잠들어 있었고 온천에서는 수증기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고요함을 망가트리고 싶지 않아 사진 몇 장만 담고는 돌아 나왔다. 옷은 따듯하게 입었지만 한참 밖에 있으려니 손끝과 발끝이 시려 온다. 텐트로 돌아와 아침을 준비하고 나뭇가지를 모아다가 모닥불을 피웠다. 아침은 현미 누룽지에 잣죽 수프를 넣고 끓인 죽이다. 따듯한 것이 몸속으로 들어가니 한기가 좀 가신다. 어젯밤에 조금 읽다만 책을 읽으며 아침을 먹고 있으려니 어젯밤에 만난 백인 청년이 온천을 확인하러 간다며 가다가 들른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잘 생긴 이 청년은 자기 동생과 함께 왔다며 이곳은 처음이란다. 그도 어젯밤에 내가 온천에서 만났던 엘피의 흥미진진한 하이킹 이야기를 들었다며 우리 모두 그의 놀라운 등산 스토리에 혀를 내둘렀다.


그가 떠나고 나무를 좀 더 주워다가 불을 지피며 소설 속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11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이젠 온천에 가서 몸을 한번 더 녹이고는 짐을 싸서 내려가야 한다.


다시 찾은 온천에는 앞서간 세 남녀가 내가 어젯밤에 들어갔던 위의 탕을 차지하고 있었고 다행히 아래 탕은 비어 있었다. 강 건너에는 개를 데려온 한 청년만이 먼저 일어나 자리를 정돈하고 나무를 줍고 있었다. 제법 차가워진 몸을 온천물에 담그니 너무도 따듯하여 추웠던 몸이 녹아온다. 가진 것 별로 없는 인생이요, 이루어 놓은 업적이 없는 초라한 중년을 지나고 있지만 아마도 내 인생의 가을, 푸르던 잎사귀들이 서서히 물들고 떨어져 가고 있는 이 무렵에 찾기 시작한 자연과 산은 이 온천만큼이나 내 쓸쓸한 몸과 마음을 녹여주고 감싸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그 고마운 자연을 음미하고 있으려니 강건너편 청년도 물을 건너와 내가 누리는 자유로움과 풍요로움에 동참한다. 대학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왔다는 이 친구는 나의 이웃 동네에서 왔단다. 그와의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새로운 손님이 우리의 낙원에 찾아왔다. 짧은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의 차림새를 봐서는 캠핑객 같지는 않고 당일 산행을 온 하이커 임에 틀림없다. 물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말을 붙이니 오늘 아침에 빅서에서 올라온 것이란다. 두 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나 뭐라나. 아니 10마일의 오르막 산길을 두 시간 조금 넘어서 올라오는 사람이 사람이야 짐승이야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넌 하이커가 아니라 트레일 러넌가 보다" 했더니 웃으며 물속으로 들어온다. 미국에서는 울트라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극한의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더 깨달은 것은 내가 산을 찾고 난 다음부터이다. 하긴 나도 지난해 나의 한계에 도전해 본답시고 JMT를 팔일만에 끝내지 않았던가! 많은 사람들은 아무 고통도 없는 편안함 안락함 속에서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넘나드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도전 같은 것에서 더 큰 행복을 느끼나 보다. 어쨌든 새해 아침에 옷을 훌렁 벗고 들어앉은 온천탕에 찾아온 이 손님은 그 포스부터 범상치 않았다. 둥근 안경을 쓰고 있었지만 호리호리한 체구에 군살이라고는 조금도 있지 않은 그는 이곳이 자기가 가장 많이 찾는 트레일이란다. 몬트레이 인근의 Sea Side에 산다는 그와 몇 마디를 나누다 보니 역시 그 또한 어젯밤에 만난 엘피만큼이나 대단한 하이커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세계 최초로 미국의 삼대 트레일(PCT, AT, CDT)을 일 년 만에 한꺼번에 끝낸 전설적인 인물인 BRIAN ROBINSON이란 사람이었다.


내가 그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내가 처음 산을 다니기 시작하다 서형민 장로님의 주선으로 킹스 캐년 국립공원에 있는 RAE LAKE LOOP TRAIL로 난생처음 백패킹 트립을 떠날 때였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가본 산이라고는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등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내게 장로님은 산행을 하는 동안 미국 내에 있는 유명한 등산로들을 알려 주시며 위에 언급한 세 큰 장거리 트레일을 말씀하셨었다. 그리고는 총 7000마일이 넘는 세 개의 트레일을 일 년에 다 주파한 사람이 있다더라고 말씀하셨던 그가 2015년 새해 첫날, 사람 몇 없던 그 깊은 산중 내가 들어가 있던 온천탕을 찾아온 것이다. 지난해 두 번째 JMT를 마치고 장로님의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스크랩 해 두었던 그의 신문기사를 카피해 주셔서 나도 흥미 있게 자세히 읽어 보았던 그가 지금 내 앞에서 산 증인이 되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믿을 수 있는 일인가! 내가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는 못했었지만 그가 틀림없었다. 너무도 반가워 나는 손을 들어 하이 파이브를 청했고 그는 한국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그를 기억해 준 나의 청을 기꺼이 받아들여 주었다. Flyin' Brian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2001년 그가 컴퓨터 엔지니어로 17년 동안 몸담고 일했던 실리콘 밸리의 컴퓨터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7,500마일에 이르는 PCT, CDT, AT 3대 트레일을 일 년 안에 종주하는 계획을 실행하게 된다. 그때까지 세 개의 트레일을 여러 해에 걸쳐서 종주한 사람은 약 20명 정도 있었지만 한 해에 다 완주한 사람은 없었던 전인미답의 극한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었다. 1월 1일에 시작한 그의 종주 여행은 그해 10월 27일 출발한 지 300일 만에 메인주에 위치한 아팔라치안 트레일의 종착점인 KATAHDIN산 정상에 섬으로서 역사를 새롭게 쓴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참 겸손한 그의 모습에서 그와의 만남은 나에게도 엄청난 감격과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가 나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 주며 조언을 해 주기도 하며 한 시간여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은 참 고맙고도 감사하다. 종일이라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어둡기 전에는 내려가야겠기에 탕에서 나와 전화기를 가져다가 함께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했더니 기꺼이 나의 셀피에 끼어준다. 난 먼저 가서 텐트를 걷고 내려가야 한다고 하지만 네가 나를 따라잡을 테니 또 보자고 하고는 먼저 옷을 입고 그 자리를 떠나왔다.


2014년의 마지막 밤에 만났던 라오스인 엘피와 2015년의 첫날 아침에 만난 브라이언, 이 두 사람은 내게 등산에 관한 한 전설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을 만났던 이 경험이 나의 남은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들은 나로 하여금 내 인생을 더 소중하고 가치 있게 가꾸어 가도록 하는데 깊은 영감을 주었다고 분명히 말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자기는 유명해지려고 한 것이 아니지만 자기의 도전을 성취하고 나니 유명해졌다던 브라이언의 말처럼 자신의 꿈과 비전을 이루어가는 삶이야말로 유명해지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새해이다. 참 감사하다.


아래의 링크는 그를 취재했던 뉴욕 타임스의 기사이다


http://www.nytimes.com/.../for-a-speed-hiker-three-trails...


아래는 한국경제 신문에 게재된 그에 대한 기사이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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